버리는 것과 벌이는 것과 벌리는 것에 대하여
(1)버리는 것
엊그제(5월 26일)는 생전 처음으로 정읍에 내려가 선교사님들을 만나 스리랑카에서의 창조과학 강의를 의논하고 왔습니다. 저녁에 수원역으로 돌아와서는 역시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고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5월 3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 마치 데자뷰처럼 다가왔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동일한 경험이었습니다.
5월 3일은 구미 강동교회에서 어린이주일 행사로 시행한 어린이 대축제에서 창조과학 부스를 운영하는 일에 ‘조선공학자’ 강사로 섬기러 다녀왔습니다. 한달 전부터 계획을 잡고 준비를 했는데, 당일에 갑자기 먼길 가니까 현금을 가지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택시를 타든 간단한 간식을 먹든 신용카드로 다 해결이 되니까 굳이 현금이 필요 없는데, 무심코 옛날 관념으로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녀왔습니다. 어린이 대상 강의라서 간편 복장으로 면바지를 입었는데 뒷주머니가 깊지를 않아서 밖에서 볼 때 지갑의 윗부분이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이제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놓자고 생각하고 뒷주머니로 손이 간 순간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와서 어디를 다녔는지 동선을 따라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지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구미에서 기차를 탈 때까지만 해도 지갑이 만져졌던 것 같은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수원역에 내려 화장실에 갔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이 어땠는가 하니, 소변을 볼 때 화장실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엊그제도 보니까 기차의 진행 때문에 화장실이 흔들거렸습니다) 이제는 하루만에 기차를 타고 구미를 다녀오는 것도 피곤해서 내 몸이 흔들리는 줄 알았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소매치기의 작전으로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뒤쪽 화장실 안에서 몇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가 나를 밀치는 느낌이 들 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줄 알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내려는 일당들의 작전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봄 유럽 여행 때 가이더를 통해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안내를 수없이 듣고, 핸드폰 등을 꼭 움켜쥐고 조심하면서 다녔던 일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안전한 나라가 아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위로하며 생각한 것이 인생에서 잃어버려도 좋은 것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돈이라는 것인데, 건강보다 생명보다 다른 어떤 것보다 돈을 잃는 것이 가장 싼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로하며, 그래도 찜찜한 기분으로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내가 웃으면서 다가와 내 지갑을 건네는데 어디서 찾았냐고 하니까 옷방 옷걸이 사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 거기까지 가서 지갑을 흘렸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어떻든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고, 지갑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집에서 흘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2)벌이는 것
요즘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원문을 번역하고(설교 한 편이 15쪽 정도), 그것을 요약하여(8쪽 정도로) 내 목소리로 낭독하여 유투브에 올리는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총 개수는 3563개입니다. 번역해서 유투브에 올리는 것은 10일에 하나씩이고, 스펄전 목사님 설교를 전부 올리려면 지금같은 속도로 앞으로 100년 정도 걸립니다. 남은 평생을 다 들여도 못할 일이지만 인생이 허락하는 한 하는 데까지 하고 가자는 생각으로 일을 벌였습니다. 생애 동안에 다 처리할 수 있는 일만을 하려고 한다면 시작도 못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형편이 되는 데까지만이라도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일 것 같아서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벌일 일도 몇가지 더 있습니다. 창세기를 원문으로 분석한 창세기 노트를 번역하는 일인데 아직 시작을 못했습니다. 그 일도 언젠가 계기가 될 때 시작하려고 마음 속에 그려두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마무리를 못할지라도 일을 벌이고 하는 데까지 하다가 가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벌인 일을 감당할 때까지 감당할 힘과 여건을 허락하시는 분께 마무리를 맡깁니다.
(3)벌리는 것
나이가 70이 되니까 이전에 없던 것들이 생기기도 하고 이전에 있던 것들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잠에 관한 것인데 이전에는 늦게 자더라도 피로가 풀릴 때까지 푹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낮에 햇빛을 많이 못보거나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은 잠을 길게 못자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밤에 갈증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잠을 자다가 새벽에라도 깨면 입술뿐 아니라 목 안에까지 갈증을 느끼고 입 안에 텁텁한 것이 뭔가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밤에 잘 때 컵에 물을 떠놓고 자다가 밤중에 갈증이 나면 한모금씩 마셔보기도 하고, 자기 전에 꿀을 한 숫갈씩 먹고 자기도 했는데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자다가 깨서 갈증을 느끼는 원인이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는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입술에 의료용 종이 테이프를 붙이고 자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다가 코고는 소리도 아주 작아지고 갈증을 느끼는 것도 입술 가까이에서만 느끼고 있습니다. 자다가 입을 벌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안할 수는 없고 테이프를 붙이고라도 강제로 입을 벌리지 않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것과 일을 벌이는 것과 입을 벌리는 것이 최근에 겪은 경험입니다.(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