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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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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앞선 육신적인 계획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4-28).

 

야곱은 장인 라반이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고 하시자 두 아내와 아들들과 모든 가축과 소유물을 이끌고서 그의 아비 이삭에게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야곱이 도주한 것을 알게 된 라반은 마치 도둑을 잡으려는 듯 자기 사위를 쫓아갔지만, 밤에 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31:24)고 하신 경고를 받고서 야곱을 해치지 못했다(29). 결국 라반은 라헬이 훔쳐 간 자기 신들마저 찾지 못한 채(31:19,30,34,35) 사위 야곱이 지난 20년간 가슴앓이하며 쌓아 둔 설움 복받치는 책망을 들은 후(36-42)오히려 야곱에게서 라반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 내고 자신의 거처로 떠나게 된다(51-55).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의 도주에서 만난 첫 번째 관문을 그렇게 통과했다. 이제는 그가 20년 전의 속임수로 장자권과 그 축복을 빼앗은 형 에서를 만나야 할 두 번째 관문이 남아 있었다. 누구든지 야곱의 입장에 선다면, 자신이 지난날 형에게 저지른 속임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형 에서가 그때 그 일로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와 같은 궁금증은 우리가 충분히 가정해 볼 수 있는 당시 야곱의 마음속 깊은 고민일 것이다.

 

사실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전조가 결코 어둡지 않았다. 그가 라반과 헤어진 후 길을 계속 갔을 때 처음 만난 것이 그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32:1,2). 성경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을 만났다고 말씀한다. 우연한 마주침이 아니라, 야곱에게 어떤 암시를 주려는 분위기였다. 야곱이 그 천사들을 하님의 군대라고 불렀듯이, 그의 길에서 그를 보호해 줄 하늘의 군대가 그와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선을 베푸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형 에서에 관해 육신적인 계획을 먼저 짜내게 된다. 에서에게 자기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32:4,5)라고 전하게 한 것이다. 이 육신적인 계획 뒤에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6)라는 보고뿐이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야곱은 종들이 가져온 보고에 몹시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다.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사백 명을 비교했더라면 결코 심장이 벌떡거리고 손발이 후들거릴 상황이 아니었지만, 야곱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는 육신적인 계획을 이전보다 더 치밀하게 짜는 모습을 보인다(7,8).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야곱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이처럼 자기가 먼저 육신적인 계획을 다 짜 놓은 뒤였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다 세워 놓은 후 내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하며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32:9,11,12).

 

야곱의 () 계획, () 기도의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육신의 지혜를 더 신뢰한 사람은, 그가 비록 기도한다고 해서 그 후 하나님을 신뢰하고 마음이 평안해질 리가 없다. 처음 계획 때에는 사람들과 소유물을 둘로 나누어 에서가 한 일행을 치면 다른 일행은 피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기도를 마친 뒤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자기 형 에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더 치밀한 계획을 짰던 것이다(13-20).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20)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 야곱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해 놓고 그 기도가 응답받을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해놓으셨다. 야곱의 최대 난관인 에서와의 만남을 위해서 문제의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놓으신 것이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33:4,8,9).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분의 뜻을 실행하려 할 때에는 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거나, 장애물이 아닌데도 장애물로 보이는 것이 나타날 때가 있는 법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야 할 일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실 것인가를 기대하며 주님께 먼저 무릎 꿇는 것이다.

 

하나님이 배제된 육신적인 계획은 육신적인 두려움과 초조함의 산물이며,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없는 육신적인 계획은 또 다른 육신적인 계획을 낳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에서 오는 정신적 부담과 불필요한 물리적 소모만을 야기하게 된다. 기도하지 않고 쟁기질부터 하는 자가 캘 것은 쟁기 날을 닳게 하는 돌멩이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7,8). 주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를 놓고 간구할 때 헛되게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하는 것인가? 필요를 다 아시는 분께서 친히 다 해결해 주시면 될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육신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성도와 교제하시고, 그에게 주님을 향한 신뢰와 지식이 더 깊어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드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32:27).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139:16).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147:4,5).

 

성도는 기도를 통해 이와 같은 하나님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타락한 피조물들에게는 잊히셨으나, 그분께서 친히 구원하신 성도들만큼은 그분을 날로 더 깊이 알고 사랑하며 그분과 끊임없이 영원히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도가 그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그를 신실하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그분을 더 깊이 알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결코 우연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관장하고 계시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런데 당신의 삶에도 당신을 초조하게 하는 에서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야곱처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육신적인 계획부터 세우지 말라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에서 주님께 먼저 기도로 나아가도록 하라. 주님께서는 능히 그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잊지 말고, 오히려 그분의 품 안에서 안식하며 이전보다 더 깊이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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