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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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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0 22:10

전도지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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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의 효능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현명한 일은 잃어버린 혼을 지옥에서 건져오는 일이다(12:3, 11:30).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사역을 교회에 맡겨 주셨고(28:19,20),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파를 통해 이 사역을 신실하고 담대하게 수행해 왔다.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개인구령, 거리설교, 복음전도 집회, 라디오 방송설교, 문서 사역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복음 전파의 기본은 문서사역 기운데 하나인 전도지의 보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소개되었을 무렵, 전도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상당했었다. “이상한 말씀이라는 제목 하에 요한복음 3:16의 말씀이 적혀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지는, 복음을 처음으로 접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목 그대로 이상하게 들렸을 만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이후로 다양한 내용에, 다양한 디자인이 들어간 전도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휴대용 티슈비닐 겉표지에 교회 약도와 예배순서를 담은 교회 홍보용전도지가 등장했는가 하면, “소개팅 브로셔같은 전도지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전도지를 담은 작은 비닐봉지 안에 커피나 사탕 등 먹을 것을 함께 끼워 넣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도 한다.

 

 

전도지의 정의

 

전도지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보면, 전달하고자 하는 길(, )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란 영원한 생명의 길이자,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말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바로 이 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올바른 전도자이며, 그 내용을 담은 것이 올바른 전도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지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올바른 길올바른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지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혼을 이겨올 수 있는, 구령”(winning soul)을 할 수 있는 전도지가 아니라면, 아무리 형형색색의 다자인으로 보기 좋게 구색을 갖춘 전도지라 할지라도, 그것은 뭐라도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한 장의 휴지만도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받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쨌거나 사람들이 받고 읽을 수 있는 전도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럴듯한 말로 넘어가려 하지만, 순수한 복음의 진수만큼은 결코 희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의 시나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은 글 정도의 전도지가 무슨 힘을 발휘하겠는가! 아무리 꽃을 예쁘게 그려 넣고 디자인을 세련되게 도안해 넣는다 할지라도, “희석된 복음이나 한편의 멋있는 글귀혹은 교회 홍보지따위로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죄인을 단 한 계단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전도지를 건네주기에 앞서서

 

요즘과 같이 쓸데없는전도지들이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전도지의 중요성과 위상 및 역할을 새삼 언급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또한 너무 평범하게 되어 버린, 그래서 하찮게 여겨져 버린 전도지 보급사역에 대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이 펜을 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부담을 주시는 어떤 사람이든지, 우리는 구령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구령의 부담감을 우리에게 지워 주셨다면, 그것은 분명 주님께서 그 시간에 그 혼을 구원하실 의도가 있으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런 부담을 주셨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지를 누군가에게 건네주기에 앞서서 다음과 같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째,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11:24).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이 전도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고,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잃어버린바 된 죄인의 마음이 전도지를 통해 잘 준비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10:27). 하나님께서는 한 장의 전도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많은 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죄인들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14:13). 구령의 실제적인 동기는 단순히 구령의 경험을 쌓는다든지, 보고서에 몇 명의 숫자를 더하는 것이라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잘 보이기 위함이라든지, 그런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고,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는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서 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전도지의 내용을 건네받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13:13,15). 즉 죄인들이 전도지를 읽을 때, 자신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도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조용한 시간을 내어 그것을 읽고 깨달아 믿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죄인 안에 굳게 세워져 있는 사탄의 요새를 파괴하는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후 10:3-6). 마귀는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마음속에 거짓말, 거짓 교리, 장애물 등 수많은 다른 요새들을 세워 놓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않도록 그들을 눈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인내하며 기도를 해야 한다(18:7). 인내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전도지는 우리의 말과 함께 병행될 수 있어야 한다. 전도지를 건네주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계속해서 인내하며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도지의 효과

 

우리가 전도지를 잘 활용만 한다면, 개인 구령에 있어서 실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전도지를 통한 사역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역이다. 강단에 서서 설교하거나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일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사역은 아니다. 성령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느 정도의 성경적 지식을 갖추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일은 많은 성경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구원만 받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역이다. 심지어 눈이 멀었거나 귀가 먹은 사람조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의 사지”(四肢)는 멀쩡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 역시 하나님의 사역이기에 기도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전도지 한 장조차 건네주지 못하는 법이다.

 

둘째,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사역이 될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단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고 귀부터 막아 버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건네주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복 주실 것을 간구한다면, 그 사람은 언제 어디에선가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전도지를 읽고 복음을 믿어 영접기도까지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 역시 성령께서 역사하신 열매라고 말 할 수 있다.

 

셋째,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첫 한마디를 꺼내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지옥으로 향해 가는 혼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어느 때, 누구에게든지, 더 좋게는 모든 시간, 모든 사람에게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불멸하는 혼이 있음을 항상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약국 점원, 이발사, 구두닦이 소년, 미용사, 식료품 가게 점원, 우유 배달원, 빵집 점원, 주유소 직원 등 그 누구든 간에, 그들 모두에게는 구속주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혼을 의식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세요?”라고 묻기를 습관화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인이세요?”라고 묻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묻는 자신을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하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한때 복음을 열심히 증거한 바 있던 잭 하일스(Jack Frasure Hyles, 1926-2001) 목사는 종종 거울 앞에서 그런 질문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이세요? 회심하셨나요? 구원 받으셨습니까?”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생활 가운데 습관화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곳에 있든 간에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이런 습관을 체질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영적인 분위기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잭 하일스 목사가 텍사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당시, 하루는 마당에 나와 잔디를 깎고 있었다. 그가 맡고 있던 교회는 그가 살던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였다. 마을 사람 일곱 명 중 한 명은 그의 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가 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을 때, 그의 옷차림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어깨와 팔 밑에 구멍이 나 있었고, 바지는 무릎을 기운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신발은 구멍 뚫린 낡은 테니스화를 신고 있었다. 모자도 골프 모자인가 낚시 모자인가를 쓰고 있었다. 그의 행색은 실로 볼수록 가관이었던 것이다. 그때 아내가 마당에 나와서 말했다. 여보 이웃집에 가서 설탕 좀 얻어다 줄래요그때 잭 하일스 목사는 좋아 그렇게 하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컵을 들고, 구멍 뚫린 테니스화에, 구멍 난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낚시 모자를 쓴 채 이웃집을 찾아갔다.

 

주민들과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 노크하는 적도 없었다. 그만큼 가까운 이웃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서는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열세 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고, 모두가 다 정장에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 잭 하일스 목사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손에는 컵을 들고 낚시 모자와 찢어진 티셔츠에 기운 바지를 입고, 발에는 테니스화를 신고 있는 잭 하일스 목사를 상상해 보라. 그때 그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 이웃집 주인은 잭 하일스 목사와 손님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이분이 우리 목사님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 순간 잭 하일스 목사는 속으로 질겁했다고 한다. 그는 창피해서 증발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례합니다. 미안해요.” 순간 잭 하일스 목사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에게 말하자! 그냥 대화의 주도권을 잡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자.”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이세요?” 그는 방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잭 하일스 목사는 오래전부터 목회자가 병원에 가거나 자신이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장소에 가게 되면 그냥 사람들의 기를 꺾고 대화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으로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마주쳤던 젊은이가 아니요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해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다 싶어 잭 하일스 목사는 내가 바로 여기서 자네가 생각하는 것을 도울 수 있네라고 말하면서, 그 집 안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자 그는 곧 회심했다.

 

구령하러 나갔을 때 첫마디를 꺼내기가 힘들다면 전도지를 건네주는 것을 시작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보라. 그렇다면 좀 더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사실상 전도지를 준 이후에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상황이 더 이상하여 무슨 말인가 한 마디라도 시작하기 마련이다. 일단 전도지를 받는 사람도 시선이 모아지고 한 번쯤은 관심을 갖게 되는 법이다.

 

넷째, 전도지는 늘 사람을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 구령을 하다 보면 시간을 내어 복음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듣다가도 약속 때문에 성급히 대화를 끊고 가는가 하면, 그림판을 보면서 관심을 표명하다가도 막상 말을 걸었을 때는 어디론가 급히 사라지기도 한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전도지다. 비록 구령자 자신이 그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 목적지까지 따라갈 순 없어도, 그 사람이 받은 전도지는 그가 찢어 버리지 않는 한 그 주머니 속에서 그 사람을 집까지 쫓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건네준 전도지 한 장이 어디선가 그 영혼을 이겨 오고 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땅에 버려진 낡은 전도지 한 장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하지 않던가?

 

어떤 사람이 뉴욕의 한 선교회 본부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한 선교사가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 선교사는, “만일 오늘밤 내가 죽는다면, 나는 ______에 가게 될 것입니다. 빈칸을 채워 주시고 서명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전도지를 그 남자에게 주었다. 항해사였던 그는 자신의 증기선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그 전도지를 던져 놓고는 리버풀로 향하는 항해 길에 올랐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항해하는 가운데 쉬거나 잘 때마다 그 침대 위에 있는 전도지가 그 사람을 늘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마침내 그 항해사는 그 빈칸을 채웠다. “오늘밤 내가 죽는다면 난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난 거기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항해사는 다시 뉴욕의 그 선교회 본부로 돌아와 이러한 간증을 전해 주었다. 전도지를 통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이다.

 

다섯째, 전도지는 우리가 몸으로 직접 갈 수 없는 곳에서 놀라운 사역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떤 목사님은 언젠가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 사람에게, 나 지금 예수 사람, 나 정글 당신의 종이 사진 발견, 나 구원받았고, 나 성경 필요하다. 제발 무엇 보내 줘. @#%$*아프리카의 어떤 원주민이 보낸 편지였다. 그는 누군가가 건네준 전도지를 읽고 구원 받은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사소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

 

1889년 드와이트 무디의 요청으로 무디 신학원의 학장이 되었던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1856-1928)가 늘 말했듯이, “영원에서만이 이러한 방법(전도지를 통한 사역)으로 수행한 선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았고, 자신의 성령 충만한 상태를 확인했다면, 바로 지금 전도지를 준비하고, 만나게 될 누군가가 구원받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말씀을 전하라(딤후 4:2).

 

이 쉬우면서도 능력 있는 전도지 사역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아무런 능력이 없어 교회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면,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다만 게을러서 기본적인 일을 수행하기 싫을 뿐인 것이다.

 

전도지가 우리 손 안에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그 무기의 화력을 시험하는 것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여러분의 몫이다. 전하는 자가 없이 복음이 전파되지 않듯이, 전도지를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아무 능력이 없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가? 전도지 한 장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고 나가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건네주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그 때부터 시작되고, 당신은 더 없는 큰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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