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완악함은 하나님 책임인가?
Q: 출애굽기에는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그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은 것이라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닌가?
A:
*자기 백성에게 거부당한 모세를 40년 뒤에 만나신 주님은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셔서 그분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려고 광야에서 그를 만나셨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판단은 바로와 관련하여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출 3:18-20)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바로는 그의 “의지적 결단”으로 이스라엘을 가게 하지 않은 것인데,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오히려 그 일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심지어 모세가 바로에게 가기도 전에 주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어 그가 이스라엘을 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다. (출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다음에 (롬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라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가 창세전에 멸망으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예정론”이 틀렸다는 단서는 (롬 9: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문맥상 바로는 “진노의 그릇” 가운데 하나인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출애굽 때 바로를 곧장 멸하지 않으시고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셨고,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차원에서 바로의 완악함과 관련된 “어떤 역사”를 이루셨다. 바로 그 점을 알아내야만 하나님께서 바로를 다루신 일이 결코 불의하지 않으며, 주님이 전적으로 옳으셨음을 증명할 수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의 마음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대적하여 완악했다는 사실이다. (출 5:1-2)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나는 애굽에서 신으로 숭배받는 위대한 존재인데, 내가 어찌 알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신에게 복종하겠느냐?’
-바로는 처음부터 자신 스스로를 완악하게 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이적들을 행한 것은 출애굽기 7장부터인데 바로의 완악함은(출 5:2)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기 전에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출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은 ‘출애굽 당시 모세가 열가지 재앙의 표적들을 행하는 동안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 된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바로는 출애굽 때의 열 재앙들이(출 7-11장) 있기 전부터 완악해져 있었기 때문에(출 5:1,2) 바로가 이미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굳힌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더 완악하게 하신 일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바로가 스스로 완악해진 것은 출애굽기 5:1-2의 시점이 전부가 아니다. 그 후로도 그의 마음은 지속적으로 자기 스스로 완악해진다. (출 7: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출 8: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8: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9: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출 9: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가 스스로 완악해지는 가운데 주님께서 그를 완악하게 하신 일이 몇 차례 개입된다. (출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And he hardened Pharaoh's heart,(주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that he hearkened not unto them; as the Lord had said.” (출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10: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마침내 애굽의 첫태생이 죽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닥치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한번 더 완악하게 하셔서(출 14:4) 그와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뒤쫓아 왔다가 홍해에 수장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요컨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은, 그가 스스로 완악하게 된 뒤에, 또 계속 완악해지던 중에 개입하신 일이었을 뿐이다.
-주님은 스스로를 완악하게 하는 죄인의 마음을 그분께서도 친히 완악하게 하시어 그 죄인이 재앙과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행하신다.
-그러나 반대로 바로가 주님의 제안을 처음부터 수용했더라면 주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실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 18:25-27)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처음부터 완고했던 바로는 주님께서 재앙을 거두시면 그것을 악용하곤 했다. 재앙에서 한숨 돌리고 나면 이전의 완악함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인간의 간악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내를 악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면서 다루셨던 것인데 바로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결국 인내의 한계를 느끼시도록 했다.
*(교훈)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하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매우 인자하신 분이지만(출 34:6, 욘 4:2), 그분의 인내와 오래참음을 시험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