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년주의는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후에 이 땅에 펼쳐지는 왕국은 진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무천년주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회 시대에 영적으로 임했으므로 실제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천년주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알렉산드리아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핀테누스, 클레멘트 등이 풍유적 해석을 도입했고, 무천년주의는 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풍유적 해석에서 기원했다. 이는 영적 의미만이 알맹이라고 여겼던 풍유적 해석의 대가 오리겐(AD 185-254)으로 이어진다. 또한 <하나님의 도성>을 쓴 어거스틴(AD 354-430)이 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어거스틴은 천년왕국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가르쳤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왕국에 대한 거부를 그들의 해석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원수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 19:27).
종교개혁자들은 풍유적 해석을 정죄했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장로교 안에서 계시록의 천년왕국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며, 천년왕국에 대한 성경적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장로교 안에 전천년 신앙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뜻이다(딛 2:13). 그리스도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믿음과 실행을 순수하게 보존해 주는 소망이다(요일 3:3)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고대가 없는 것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문제의 핵심은,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전천년신앙과 무천년주의를 단순히 해석상의 차이라고 치부한다. 즉 그들은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전천년주의가 있는데, 이것은 단지 성경의 종말론에 대한 세가지 다른 해석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무천년주의를 믿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뜻이다(딤후 4:8). 또한 무천년주의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실과 섬김을 심판하고 보상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이다(고후 5:10). 무천년주의는 주님을 성경대로 신실하게 섬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딤후 2:12).
무천년주의는 단순히 성경해석의 일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