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을 시험하신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질문)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 앞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셔서 그를 시험하시고, 그 열매를 먹을 경우 그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또한 아담이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시험에 실패할 것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는가?”
(답변)
1. “권위”의 문제이다.
*관련 성구: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시험하셨다는 관점을 넘어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문제의 본질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신 분의 “권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권위 아래 있기에 그분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영적 원칙이다.
-(골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딤전 2: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딛 2: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피조물인 아담이 넘보지 못하도록 아담 앞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경계선을 그어 두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서 나온 명령을 어긴 죄를 짓고 말았다.
-(전 8: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권위의 문제로 볼 때, 아무도 아담에게 하신 명령에 관해 그분께 따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기에 아담은 그 권위의 명령을 지켜야 했다.
2.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시며, 동일한 자유의지를 지닌 독립된 피조물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눅 3:38)이라고 불린 아담이었다. (Luk 3:38) “... which was {the son} of Adam, which was {the son} of God.”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은 책임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아담 자신에게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아담이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가 자유의지를 사용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환경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시험하신 것인데, 이는 주게서는 사람의 마음과 속을 시험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시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trieth).” (시 17: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은 그의 의지를 강제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분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그가 자유의지를 사용해 실행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계신다.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살인자에게조차도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간에게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주신 명령이다. 복종할 수 없는데 복종을 명하셨다면 주님께서는 가장 모순된 하나님이 되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에게 경고를 하시지만, 그가 경고를 무시한다고 해서 강제로 막는 분은 아니시다.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있었을 때 주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그들에게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 역시 작심하고 죄를 지었음을 구약성경에서 보게 된다. (대하 33: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심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아담 역시 죄에 대한 경고를 받았지만(창 2:16,17) 결국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 죄를 짓고 만 것이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자유의지에는 두 자유의지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이 원칙을 갖고 계셨으며, 그의 자유의지를 강제로 조종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분의 뜻을 분명한 말씀으로 계시하시어 인간 스스로 그것을 따르기를 바라셨다.
-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류의 눈 앞에 한 권의 책, 즉 “성경”이 놓여 있으며, 주께서는 온 인류가 그 책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계신다.
3. “미리 아심”의 문제이다.
*“미리 아심”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핵심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의 속성을 근거로 창세기 3장에서의 인간의 타락 원인을 그분께 돌리며 성경을 공격한다. 그러나 성경은 미리 아심조차도 자유의지의 작용에 따라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 다윗이 사울을 피해 그일라로 피신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삼상 23:11) 그때 주님의 미리 아심의 답변은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삼상 23:12). 그러나 다윗은 그의 “자유의지”를 사용했고,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삼상 23:13)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을 미리 아셨지만, 다윗은 자유의지로 피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넘겨줄 것을 아셨지만, 다윗이 피신함으로써 넘겨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미리 아심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아담 역시 금지된 열매를 먹지 않고 살 수도 있었고, 먹고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의 자유의지에 따른 바른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신 것인데, 그러나 아담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했다. 이로써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라 정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여명이 밝아 와야만 했던 것이다.
*디도서 1:1-3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결정된 일이었음을 보여 준다. (딛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를 결정하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을 것과 그런 인간에게 그분의구속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미리 아셨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아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아담이 죄를 짓지 않을 경우, 그분이 이루시기로 미리 정해 놓으신 구속 사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것임을 뜻한다. 마치 다윗이 그일라를 벗어나 살게 된 것처럼, 아담 역시 금지된 열매를 먹지 않고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자유의지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튈 것인가까지도 미리 아셨기에 하나님의 어린양의 구속사역을 미리 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영역을 초월한다. 자유의지에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가변성이 있다면, 미리 아심에는 그 가변성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여 그분께서 의도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어 미리 기록해 놓으신 것이 바로 “성경”이다. 미리 아심과 자유의지는 상호 종속되지 않지만, 미리 아심은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위의 법칙”에 속한다.
-자유의지로 말미암는 모든 가변적 상황까지도 “미리 아심”으로 통제하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며, 우리가 믿고 섬기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이신가를 깨닫게 하신다.
*단 1초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깨달음을 위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뿐이다(히 11:3).
*자유의지는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이 따르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지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것이 갈보리 십자가이다.
-아담이 죄를 지을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를 시험했다고 비난한다면, 여전히 갈보리 십자가를 가리키실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에 대한 책임을 주님께서 친히 지셨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모든 비난까지도 종결시켜 준다.
-아담을 부당하게 시험하셨다며 의심과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을 믿지 않고 인본주의적 사고와 논리로 그분을 궁지에 몰아넣고 싶어 하는 사악하고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들려는 마귀의 계략이다. 이제 타락한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뿐이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