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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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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9() 예수님, 우리의 평화(에베소서 2:11-18)

JESUS OUR PEACE(EPHESIANS 2:11-18)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Wherefore remember, that ye {being} in time past Gentiles in the flesh, who are called Uncircumcision by that which is called the Circumcision in the flesh made by hands;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That at that time ye were without Christ, being aliens 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 and strangers from the covenants of promise, having no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But now in Christ Jesus ye who sometimes were far off are made nigh by the blood of Christ.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For he is our peace, who hath made both one, and hath broken down the middle wall of partition {between us};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Having abolished in his flesh the enmity, {even} the law of commandments {contained} in ordinances; for to make in himself of twain one new man, {so} making peace;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And that he might reconcile both unto God in one body by the cross, having slain the enmity thereby: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And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ich were afar off, and to them that were nigh.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by one Spirit unto the Father.

 

(요절: 에베소서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EPHESIANS 2:17]

 

 

Joan groaned when she saw Susan’s social media post. The photo showed ten church friends, smiling around a restaurant table. For the second time this month, they were having a grand time-without her. Joan blinked away tears. She didn’t always get along with the others, but still. How strange to attend church with people who didn’t include her!

조안은 수잔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것을 보고 속이 상했다. 교회 친구 열 명이 식당 테이블에 둘러 앉아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친구들은 이 달에 두 번이나 조안을 빼놓고 좋은 시간을 가진 것이다. 조안은 겨우 눈물을 참았다. 조안은 다른 사람들과 늘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이는 좋았다. 하지만 자신을 소외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How strangely first century! But Jesus desires unity and came to heal our division. From the church’s beginning, people who didn’t get along were to find common ground in Him. Jews looked down on gentiles for not keeping the law, and gentiles loathed Jews for thinking they were better. Then Jesus “made the two groups one”; He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EPHESIANS 2:14-15). Keeping the law no longer mattered. What counted was Jesus. Would Jew and gentile unite in Him?

예수님 시대에도 그런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합을 이루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분열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 교회가 시작되면서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무시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우월감을 싫어했다. 그 때 예수님은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에베소서 2:14-15).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That depended on their response. Jesus “preached peace to” gentiles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Jews) who were near” (V. 17). Same message, different application. Self-righteous Jews needed to admit they weren’t better, while snubbed gentiles needed to believe they weren’t worse. Both needed to stop fretting about the other and focus on Christ, who was creating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V. 15).

그것은 그들의 반응에 달려 있었다. 예수님은 먼 데 있는 (이방인들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유대인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17). 같은 메시지지만 적용은 다르게 되었다. 독선적인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고, 무시당하던 이방인들은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믿을 필요가 있었다. 서로가 상대에게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신”(15) 예수님께 집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Feeling snubbed? That hurts. It’s not right. But you can be a peacemaker as you rest in Jesus. He’s still our peace. MIKE WITTMER

무시당한 느낌이 드는가? 그것은 상처가 되고 또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편히 거할 때 당신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

 

When have you felt snubbed? How can you be a peacemaker?

당신은 언제 무시당한 느낌을 받아보았습니까? 어떻게 하면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Dear Father, when I’m snubbed, I’ll rest in Your Son.//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제가 무시를 당할 때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안에 온전히 거하겠습니다. 교회로 모여 천국을 연습하라는 주님의 뜻을 알고 공동체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오직 주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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