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위의 구절은 기도 응답을 받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임을 보여 준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여 필자는 성경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축복하다”라는 말처럼 “기쁘게 하다”는 누군가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구약은 “하나님을 송축하다”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즐겁게 만드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살펴보자. 필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다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할 것이다.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는 이마저도 너무 무리한 주문처럼 들리지만 원래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고픈 마음이 있어야 한다.
1.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시편 147:11에 보면,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씀하신다(잠 9:10).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마감할 때 이렇게 결론 내렸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명령은 다만 구약의 상황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벧전 2:17을 보라). 사도 요한이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라고 했을 때, 그 “두려움”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바로 앞 구절을 살펴보면(요일 4:17), 그 “두려움”은 지옥으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임을 알 수 있다. 즉 당신이 당신의 죄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을 믿었다면(요일 4:10) 당신은 더 이상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경건한 경외”라고 재정의 한 것도 아니다. 두려움은 “경건한 경외”가 아니다(히 12:28). 잃어버린바 된 죄인은 자신을 영원한 불못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마 10:28).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올바로 행치 않을 때 매를 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히 12:5-7). 두 경우 모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멀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욥 28: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전파될 마지막 복음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계 14:7).
2.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당신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을 믿어야 한다. 무신론은 바보나 믿는 것이며(시 14:1), 무신론자는 그 믿음에 있어서 마귀보다도 못하다(약 2:19).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을 열심히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죄인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롬 3:4). 그러나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빛에 따라 반응할 수 있다. 성령께서 이교도 죄인에게 자연을 통한 말씀과(시 19:1-3) 죄인의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찔림을 주실 때(롬 2:14,15)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받은 빛을 믿고 그에 따라 행할 수 있으며, 그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경과 복음을 통해 더 많은 빛을 주시는 것이다(확실한 예는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다).
혹자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믿을 때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마 8:6-13). 요한일서 3:22의 문맥에 따르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그분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다(요일 3:2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참조 요 1:12; 20:31).
3. 죄인이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겔 18:32; 33:11).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모두 행하신다면 지옥 가는 죄인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당신이 죄인인 채로 죽어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다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당산을 위해 마련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죄인은 히니님을 기쁘시게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5:7).
4. 죄인이 더 이상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롬 8:8-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구원받기 전에는 죄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는 죄들 가운데 죽었고 진노의 자녀요 불순종의 자녀이기 때문이다(엡 2:1-3). 그는 완전히 부패한 죄 있는 육신의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롬 7:18).
그러나 죄인이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성령께서 그의 몸 안에 들어오셔서 사신다(고전 6:19). 죄인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이다(골 1:13). 성령께서 구원받은 죄인을 취하셔서 그에게 세례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으로 넣어 주시는 것이다(고전 12:13). 그러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 계시게 되며, 그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골 1:27).
죄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롬 6:4, 고후 5:17). 이 새 사람이 죄 있는 육신의 몸에 의해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의 혼을 그의 죄 있는 육신으로부터 하나님의 수술(operation)을 통해 잘라내신다. 이것이 바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이다(골 2:11,1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왜냐하면 위치적으로는 여전히 육신의 몸 안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더 이상 그의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영적으로 그의 구주와 함께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것이다(엡 2:5,6).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행위들을 죽이고 자신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롬 8:13,14, 갈 5:16-25).
5.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복종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갈 1:10, 행 5:29).
바울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말했다(엡 6:6, 참조 골 3:22).
6. 우리는 매일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살전 4:1).
이와 관련해서 바울 서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많은 명령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하고(요삼 1:4), 물론 이 진리는 성경 자체를 말한다(요 17:17). 우리는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행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롬 8:1, 참조 갈 5:16,25).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고후 5:7). 우리는 “단정히 행해야” 한다(롬 13:13, 살전 4:12). 우리는 선한 행위들로 행해야 한다(엡 2:10, 골 1:10).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좋은 간증이 되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합당한 일을 행해야 한다(살전 2:12, 엡 4:1). 우리는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골 4:5, 참조 엡 5:15). 우리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엡 5:2, 참조 요일 3:23).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행해야 한다(빌 3:17, 고전
11:1).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7.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골 3:20)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장수를 약속하셨다(엡 6:1-3).
8. 하나님께 찬양으로 노래 부르고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드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시 69:30,31).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세계 종교”와의 차이는 우리가 가진 찬송가로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할 때 또한 즐거워한다. 필자가 가진 찬송가만 해도 한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노래가 500곡이 수록되어 있고, 다른 찬송가에는 100여곡이 더 수록되어 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모든 사람이 행하지 못한 것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이 2,000년 전에 죽은 그분에 대해서 600개나 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노래한다. 왜냐하면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뭔가를 행하셨기 때문이다(요일 4:10,19). 나의 “선지자”는 나에게 진리를 주셨고, 또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주께 노래하고 곡조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엡 5:19,20).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희생제물이다(히 13:15,16).
9. 살펴볼 마지막 구절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제물들” 중의 하나는 바로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것”은 주는 것을 말한다(갈 6:6, 빌 4:14, 딤전 6:18). 하나님께서는 희생적으로 주는 것을 혹은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부 여인이 그녀의 궁핍함 중에서 드린 것을 눈여겨보셨다(눅 21:4). 그녀는 극도로 가난한 가운데 주께 드린 것이며, 이는 분명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하나님께 드림에 있어서 당신의 태도를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양이 얼마가 되든지 인색하거나 마음에 언짢아하면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나님의 사랑에는 정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제자 모두를 사랑하셨다(요 15:9). 그러나 그중에 세 명이 그분께 특별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다. 또한 이 세 명 중 요한은 “사랑하시는 제자”로 알려져 있었다(요 13:23; 19:26; 20:2; 21:7,20). 예수님은 빌립, 도마, 마태, 바돌로매, 시몬 등보다 특별히 더 요한을 사랑하셨던 것이다.
똑똑히 잘 들으라. 그리스도인들의 무리 중에서 “도드라지길” 원하는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길 원하는가? 이제 당신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