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장 진귀한가?
본문: (시 49:1-12)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진귀합니까? 무엇을 하나님 앞에 내보일 수 있습니까?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12절)라고 말씀하시고,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 명예를 얻었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멸망하는 짐승과 같고, 자기는 똑똑하다고 여기고, 고위직, 재벌의 부를 누릴지라도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면 역시 썩어 버린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전 9:4-6).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는 한 가지 길, 즉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소망이라도 있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 다음에 전개되는 사후의 생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시체처럼 보시듯이, 사후의 생, 즉 영원에 대해 깜깜한 사람이 자기가 존귀하다고 여기고 활보하는 것은 안개 속에서 끊어진 다리 위를 걷는 사람과 같이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했다는 말이나,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이 같은 뜻이듯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 구원받았다고 억지를 쓰면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구원받지도 못했고, 말씀을 믿는 믿음도 없으면서 자기에게도 휴거와 부활의 소망이 있다고 여기며 자신뿐만 아니라 남을 속이고 하나님까지 속이는 죄의 값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앉아 예배드리고 찬송 부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회개를 수반하지 않은 고백이나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 기관입니다. 우리 몸의 기관들 중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있겠습니까? 뇌를 다치면 미치거나 말을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호흡은 이어지기 때문에 사망 진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멈추면 죽은 것으로 판정하기 때문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심장은 다섯 번째 갈비뼈 밑에 있습니다. 믿음은 영적 사람에게 심장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어떤 연유로 자기 믿음이 성장하지 못할 여건에 있거나 더 나아가 믿음이 변질되는 입장에 있거나, 더 나아가 믿음을 잃어버리는 환경을 택했다면 그 사람은 영적 자살을 한 사람과 같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8,19).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까? (1) 반역하는 사람들, (2) 주님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3) 말씀의 지배를 받지 않고서도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4) 더러운 양심으로 주님을 속이는 사람들, 즉 주님 앞에 거짓말하는 사람들, (5) 복음 전파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6)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기는 꽤나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등, 영적 양식 먹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고 입증하라
I.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주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합니다(1-5절)
예외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에게 주신 것인데, 마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성경을 주셨다고 한정시키고 있습니다. 모슬렘이나 불교나 힌두교나 여호와의 증인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마귀의 이런 속임수에 속은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구원받는 자들의 대열에서 탈락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거듭나지 않은 채, 말씀을 배격하고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골라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경청하지 않으면 멋대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람에게서 믿음이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입니다. 믿음도 눈에 안보이고, 영도 눈에 안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영적 생명이 태어났고, 동시에 영이 믿음을 세워 줌으로써 영적 생명을 지탱하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축구공과 같습니다. 혼은 몸의 형태로 있기 때문에 공속에 있는 튜브와 같습니다. 믿음이 없어 영이 빠져 버리면 바람 빠진 공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 바람이 세워 줄 믿음이 없게 되면 무용하게 되어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람 빠진 공처럼 되어 버립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성령이 잠시 소멸되어 버립니다. 죄 지은 그리스도인은 바람 빠진 공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고 하시며,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 5:19)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에 뿌리내리지 않은 데서 믿음은 생길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허구는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골 2:20-23).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고 입증하라
II. 혼의 구속은 귀한 것이요(6-9절)
이어지는 말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계기를 여러 번 받고서도, 자기의 일에 분망하여, 특히 재물을 모으는 데 열중하다가 구원 받지 못한 채 죽었다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데, 지옥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결심도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속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구속은 영원히 멈추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십니까?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을 인도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그 일이 너무도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잊지 말라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주의 만찬을 거행합니까? 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주의 만찬을 기념하게 하십니까?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너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 혼, 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몸은 썩어서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의 입김이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람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갑니다(전 3:21; 12:7). 하지만 혼은 다릅니다. 혼은 흙에다 하나님의 영(숨결)이 들어가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멸입니다. 사람의 혼이 불멸하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혼이 진짜 그 사람인 것입니다. 혼은 육신의 몸 안에 있는 영적 몸입니다. 구원받지 않고 죽으면 혼이 지옥에 가는데, 그곳은 불도 꺼지지 않고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둘째 사망”을 위해 묶여 있는 곳입니다(마 25:41, 계 12:9; 20:1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뱀같이 되셨습니다(요 3:14,15). 시편에서는 십자가 위에 있는 그리스도를 “사람이 아닌 뱀처럼” 보여 줍니다(시 22:6-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이것이 대속의 참된 의미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7-9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이 세상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며 성공이라는 이름을 걸고 추구하는 것들은 돈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오히려 가난한 자라고 부르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인간의 수단으로는 혼을 구원시키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고 입증해야 합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고 입증하라
III. 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하니(10-12절)
토지나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명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그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몰라서 성경을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진리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랬더라면 귀한 것들(precious things)을 모른 채 살면서 자산들을 꽤나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귀한 것들”이란 (1) 성전의 기명들(단 11:8), (2) 성도들의 죽음(시 116:15) (3) 지혜(잠 3:15), (4) 모퉁잇돌(엡 2:20, 벧전 2:6) -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사 28:16), (5) 예수 그리스도의 피(벧전 1:19), (6) 믿음의 시련(벧전 1:7), (7) 성도들의 믿음(벧후 1:4)으로 얻는 영생, (8) 향유(시 133:2, 사 39:2), (9)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신 33:13-17) 등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이 진귀한 것들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이 귀하겠습니까? 혼을 구속할 수 없는 인간적, 세상적 수단입니까 아니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진귀한 보물들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보화의 주인이시며, 지혜의 원천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주의 모든 보화를 가지신 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동전 한 닢도 없으셨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마 8:20). 예수님께서는 두 번 세금에 대해 도전을 받으셨는데(마 17장, 22장), 한 번은 가버나움에서 세리들로부터였고, 다른 한 번은(마 22:19) 헤롯 당원들로부터였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헤롯 당원들에게 도전을 받으셨을 때는(마 22장) 예수님께서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고, 그 동전에 그려진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시고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인 것입니다.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수단입니다. 돈은 이생에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영생을 살 수도 없고, 진귀한 것들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람들의 혼을 구속하기 위해 피값으로 지불한 것인데, 그 목적은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속죄, 혼의 구원, 영생, 믿음, 소망, 사랑 등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부유하게 되었고, 믿음을 지님으로써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매달리는 자들은 절대로 부요하게 될 수 없습니다. 혼의 구속은 귀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의의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엡 2:8,9).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 14:23)고 하셨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에 불과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명하셨습니다. 썩는 음식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는 음식을 위해 일하는 성도가 믿음을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6:27). 여러분 자신들을 돌아보아 이 믿음이 있는지 입증해야합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주님께 고백하고, 나는 죄인이었다고 회개하고, 말씀대로 믿겠노라고 기도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