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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삶

 

본문: (6:1-10)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자연인으로 살다가 복음을 믿고 거듭난 순간부터 그 성도는 적의 표적이 됩니다. 자연인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고상한 말 같지만 마귀의 자녀를 세상적으로 부를 때 그렇게 부릅니다. 자연인이란 마귀의 자녀를 말합니다. 요즘 자연인들이 많이 설치는데, 그들은 대개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합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한 가지 모르는 것은 바로 마귀의 실체입니다. 왜 그들이 마귀의 실체를 모르는 것입니까?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자연인이라고 점잖게 불러 주지만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natural man/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적은 마귀, 세상, 육신, 이 세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의 적들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패배하면 성장하지 못하게 되고, 성장하지 못하게 전면 계속되는 공격으로 타격을 받게 되고, 좀 더 나아가게 되면 구원을 의심하게 되며, 믿음까지 잃게 되어 옛날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는 마귀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점을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벧후 2:22).

 

마귀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죄로 유혹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게 되면 후회하고 자백합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자백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는 것은 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반쪽 그리스도인, 반쪽 마귀의 자식, 그런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 구원을 의심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것이 전부인가 하고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장하지 못했기에 나온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의 삶이 불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죄 없이 살수는 없지만 죄를 극복하고 죄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I. 승리의 비결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것입니다(1-5).

 

2절에서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들었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한 그 고백 안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나도 죄와 함께 죽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실감하지 못할지라도 성경은 그렇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1-13).

 

주님께서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5:39). 성경은 교회에 다니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죄에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구원받은 순간 십자가에서 죄인인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 고백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죄 된 인생을 예수님의 무죄한 삶과 바꾸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복음은 고린도전서 15:3,4에 정확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예수님이 공범이십니까?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거하신다면, 우리가 몇 가지나 주님과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특별한 몇 가지뿐일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속에 계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몸 안에 거하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1:29).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4).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위대한 교훈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늘나라에서의 승리는 확실합니다. 이 점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장하십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매일의 승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신 대로 순종할 때만 가능합니다. 육신은 죽을 때까지 육신입니다. 육신은 죄와 한패입니다. 육신을 즐겁게 하려면 죄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첫째로 사랑하면 둘 중 하나를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죄에게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에 더 이상 너와 함께 할 수 없다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런 힘과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성경이 최종권위가 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II. 승리의 삶의 비결은 예수님의 삶을 공유할 때입니다(6-10).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적은 병 안 걸리고 오래 산다는 약 개발도 아니고(그런 약은 나온 적도 없지만)우주선의 달 착륙, 핵무기 개발,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 양 극지방 정복, 우주 정거장, 공산주의와 모슬렘 국가들의 붕괴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영생과 무관한 것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적은 인류의 죄를 제거하고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복음의 탄생입니다. 이 일이 유일한 희망이고,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이 진리를 가리고, 방해하고, 희석시키는 여러 가지 마귀의 무리들의 획책이 있다는 점입니다. 영생을 얻는 길을 제시하였는데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뚱한 종교를 가지고 나와 현혹하기도 하고, 교회라며 나와서 사람들을 혼란시켜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성도입니까? 70억 인구 중에 5억 명도 채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마귀가 제안하는 길이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지옥의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은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편지를 써서 개개인 앞으로 보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해 놓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고(7),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으며(8)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셨기에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9).

 

성령님께서 그렇게 믿겠다고 고백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그분의 삶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모두 승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어떤 성도는 그렇게 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탈락했습니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과 공유한 삶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고후 12:9,10). 어떤 성도는 자기가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노름을 끊고, 마약을 끊고, 나쁜 습관에서 돌아섰기에 승리의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방언이 터졌다고 하는 것은 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살 수 있는데도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고 극복하는 삶이 승리하는 삶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 의료봉사, 집 지어 주는 일, 나눔, 그것은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냄비, 김장, 연탄배달, 아프리카봉사 등은 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C.G. Trumbulla 박사가 말했듯이 승리의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한 가지 조건은 부러진 날개, 깨어진 본성, 그리고 나약함 그것입니다.

 

야곱은 아주 교활한 사람이었죠?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한대 걷어차여 절름발이가 되었을 때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고 그에게 열두 아들을 주시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통의 교제를 알 때까지 부활의 능력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3:10).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공유하게 될 때, 영생을 공유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 믿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간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III. 승리의 삶의 비결은 믿음입니다.

 

로마서 6장 나머지 부분을 믿는 것은 물론이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이 승리의 삶을 보장하고 이끄는 힘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6:23, 2:8,9). 우리의 승리도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승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그 일을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사탄을 패배시키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승리를 우리가 얻을 수 있도록 원천적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주님을 소유하고 그 능력을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승리를 쟁취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막강한 힘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주님께서 승리를 쟁취하시는 것입니다(고후 12:9). 그렇다면 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입니까? 그들은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려고 애쓰나, 내적 조건에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체면이 중요합니까, 자신 안에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까? 체면 같은 것은 거짓말 한 마디가 들통 날 때, 죄가 드러날 때, 위선이 드러날 때,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한순간에 드러나면 나가떨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육신 안에서 행위로 살려고 했던 갈라디아인들을 호되게 힐책했습니다(3:1-5).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려 하기에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지적인 사람이나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투옥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공산집단에게 헌금으로 지원해 주는 것은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죄성이 역사하여 성도를 마귀에게 복종하는 위치에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면 인생을 허비하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보다 육신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면 성령님은 그 사람을 주관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둘째 하늘이나 이스라엘에 있는 므깃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판입니다.

 

마귀의 손을 뿌리치고 주님의 손을 잡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진리가 진리 되지 못한 삶을 조장하면서 죄 짓고 자백하고 죄 짓고 자백하는 삶을 지속하게 되면 교화는 다녀도 미귀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 수가 많게 되면 그 교회는 쭉정이의 무덤이 됩니다. 주님께서 성도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 세상, 육신, 이 세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실아 주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못해 인생을 낭비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주님과 동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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