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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정

 

하나님께서 지상에 세우신 기구는 가정, 교회, 국가이다. 이 가운데 가정은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세우신 것으로 교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가정의 문제는 교회의 문제만큼 크고 다양하며 복잡하다.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I.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정체성

 

1. 가정과 교회의 관계

 

1)가정의 시작과 정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순서는 처음에 한 사람 남자였으며, 그 다음에 여자를 지으심으로써 가정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가정은 다른 창조물들과 따로 구별된 특별한 모임이었다. (가정은 이후에 지역 교회가 되었다. 개인과 가정, 교회를 유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가정이 운명을 같이 하는 운명공동체라고 말씀한다. 출애굽기 12:21, 레위기 16:6,11에 따르면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18:25, 삼상 20:6). 가족을 하나로 여겨서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한 속죄의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2)가정의 중요성 역할과 목적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고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마귀의 관심도 가정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탄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교회인데, 교회를 파괴하는 방법으로는 먼저 개인가정을 공격하는 것이다.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가정은 개개인을 포함하며, 교회를 섬기는 모체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자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졌으며, 가정의 행복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바른 실행의 결과로 주어지는 열매이다.

 

최초 결혼을 통해 형성된 가정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보다 구체적인 사역을 수행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영광을 돌리는 목적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보다는 복이 있는 가정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이것은 혼자가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더욱 커질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 안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부수적으로 자신의 기쁨과 만족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정은 이 땅위에서 천국이 실현되는 모형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목적에 합당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그 책임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주어진 것이며, 이들은 가정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결혼을 통해 이룬 가정은 처음 두 사람 개인의 결혼이 아니라 주님의 결혼이며, 두 사람의 가정이 아니라 주님의 가정이며, 두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주님의 자녀이다. 가정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모실 때 그 가정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될 수 있다.

 

2. 그리스도인 가정의 경영 원리

 

1)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 함께 사는 사람으로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이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가정, 함께 사는 가정이다. 가정의 주인이신 주님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 권위 아래 있으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가정이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이다.

 

2)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들 가운데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의 핵심적인 원리는 권위의 질서이다. 권위의 문제는 모든 문제의 출발이다. 사랑, 섬김, 헌신, 봉사 이런 것들은 가정의 첫 번째 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 곧 남편과 아내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이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와 같이 남편은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으면서, 그리스도 앞에서 가정을 돌볼 책임이 있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 아래 있으면서 남편 앞에서 집안일을 돌보고 자녀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 아래 있으면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3)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도록 하셨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모델로 하고 있다.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가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그의 아내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 역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다(5:24,25).

 

4)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권위의 질서가 바로 서 있는 가정이다.

 

아담의 죄는 불순종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다른 권위를 좇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는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가정에 의존해야 한다. 사랑은 결혼의 견인차라기보다는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의 열매이다. 사랑에는 의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단지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심고 자라게 해야 하는데, 사랑은 감정이라는 모래밭에서 심겨지거나 자라지 않으며, 권위의 질서에 대한 의지적인 복종이라는 비옥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나님의 권위의 질서가 바로 서 있는 가정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목적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정의 주님으로 온전히 모셔 들인 가정이 성경적인 가정이다. 또 그리스도인 가정에는 책임이 있다(보아스, 3, 딤전 5:8). 주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셨다.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함께 해 주셨다. 책임질 줄 아는 남편과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가정(포도원)을 허는 여우들을 잡는다. 문제로 인해 가정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가정이다. 이와 같은 가정의 모습은 하나님의 권위의 질서가 바로 서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II. 아내의 복종, 남편의 사랑

 

1. 남편과 아내의 관계

 

1)남자와 여자의 창조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우신 목적은,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기에 남자를 위한 돕는 자로 지으신 것이다(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며 여자를 남자에게서 취한 갈비뼈로 지으셨고, 여자라고 부른 이유도 남자에게서 취해졌기 때문이다(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여자는 남자를 돕는 목적으로 지음받았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토대가 된다.

 

2)남자와 여자의 위치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다음 여자를 지으시고 그 역할을 정해 주셨다. 여자는 자신의 위치에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수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전 11:8.9).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타락한 이후에 여자와 남자에게 주신 말씀은 창세기 3장 이래로 지금도 계속 적용되는 말씀이다. (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자에게 권위를 주시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남자가 먼저 지음 받았기 때문이며, 둘째, 남자가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 했기 때문이다(딤전 2:12-14).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한편 남자가 주의할 것은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3:17)라는 말씀의 교훈이다. 물론 생활 중에 남편은 아내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며 아내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집안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책임을 부여하셨는데,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교회도 돌볼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또한 유의해야 한다(딤전 3:3,4,12).

 

남녀관계에서 주의할 점은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차별이 없이 동등한 영적 위치를 가지며(3:27,28), 단지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권위의 질서에 남자를 우선순위에 놓으신 것은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그에게 권위를 주셨기 때문이다(딤전 2:13,14). 한편 어떤 남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여자에게 고압적인 권위를 행사하려 한다면 그는 죄를 짓는 것이다.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남자는 자신의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고, 여자는 자신의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새우신 권위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2. 아내를 향한 말씀

 

1)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먼저, 그리고 나서 남편에게 말씀하신다. (5:22-2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5: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2:4-5)“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의 질서를 마음으로 따른다는 뜻이다. 교회가 주님께 복종하는 것은 교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영광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 역시 아내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5050의 지분을 가진 소위 민주적인 가정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100100의 존귀를 가진 남편과 아내를 결합하게 하셨고, 어느 쪽에도 강제적인 복종이나 사랑을 명령하지 않으셨으며, 자원하여 복종하고 자원하여 사랑하도록 하셨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2:5-9).

 

2)복종이란 외적인 태도가 아니라 내적 태도이다. 아내가 마음의 중심으로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남편이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남편의 권위에 더욱 순종하는 아내로 인정될 것이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벧전 3:5-6)“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큰 재능과 능력을 주셨다. 여자들의 지성과 능력은 남자들과 동등하며 남자들보다 뛰어난 영역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지위와 책임을 위해,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사용하고, 자매된 성도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여자의 설교는 허락되지 않는다. 여자가 육체적인 힘으로 목표를 이룰 수도 없다. 남편과의 수많은 논쟁도 잔소리도 효과가 없다. 여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적인 복종이다. 그러면 남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처리해 주신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함으로써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삼아주신 주님을 신뢰함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현숙한 아내에 대한 축복과 칭찬은 주를 두려워하여 복종하는 데서 나온다. (31:28-30)“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결론을 내려놓고서 그것을 유도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혼동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여자에게 모든 책임을 넘겨주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회피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복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남편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교회에 참여할 때, 교회는 능력 있게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게 된다. 남편의 리더십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와에게 경청하여 죄를 지은 아담을 기억하기 바란다. (3: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또 사라의 요구대로 잘못 행한 아브라함도 기억해야 한다. (16: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아내들에 의해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돌이킨 솔로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왕상 11:3-4,8)“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4)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가정과 이웃 및 지역사회와 교회에 대해서 가정을 대표하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셨다. 아내 위에는 남편의 권위가 있고, 남편이 책임을 지게 하셨다. 만일 아내가 남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사탄의 공격에 영향을 받게 된다. 성경에 따르면 혼자 있는 미혼의 자매와 남편이 없는 미망인은 교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6:1, 1:27, 딤전 5:3-16).

 

3. 남편을 향한 말씀

 

1)남편들은 아내를 얻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데려오신 것과 같이 남편에게 아내를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언약의 아내요 동반자이다. (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2)남편의 첫째 의무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5:25,28)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해야 한다(5:26). 남편에게 속해 있는 권위는 그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만 형성된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인간의 육신적인 권위가 아니다. 따라서 남편의 권위도 인간의 육신적인 권위가 될 수 없다. 그 권위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결과 희생으로 주님을 따르는 모범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둘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의 영적 필요를 돌보는 것이다. 아내의 영적 필요에 첫 번째 관심을 갖고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내의 영적 건강을 가장 잘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아시듯 남편은 아내를 알아야 한다. 아내의 영적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는 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아내에 대해 남편이 행한 것은 아내에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통해 아내를 변화시켜 주시고 영적으로 올바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마귀는 당연히 그리스도인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귀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은 남편의 능력있는 기도이다. 죄로부터 성별되고 성령충만한 남편의 영적 분별력과 기도가 아내와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셋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가정의 식탁에 빵을 가져오는 것이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땀을 흘려 먹을 것을 얻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여자 본래의 역할인 돕는 자로서의 일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여자는 돕는 자로서 지음 받았다. 따라서 남편은 자신의 일이 어떤 것이든지 아내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여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남편을 위한 기도 및 다양한 형태의 섬기는 활동에 아내와 함께 해야 한다.

 

다섯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이것이 남편의 책임이다.

 

여섯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아내를 존중하면 가정의 안정이 있게 된다.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서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서 귀히 여겨야 한다(벧전 3:7). 성경은 이렇게 해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3)남편은 아내에게 겸손하게 권위를 행사해야 한다.

 

남편에게 주신 권위는 권리보다는 의무나 책임으로 여겨야 한다. 자신의 책임은 통감하지 못하고 권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31:10-11)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보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신뢰해야 한다.

 

남편이 자기 아내 앞에서, 아내의 의무란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설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남편은 아내와 다투어서는 안 된다. 권위 있는 사람과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은 다투는 관계가 아니다. 다투는 것은 이미 권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싸워서는 안 된다. 만일 남편에게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아내를 말씀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으면 위에 있는 권위자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남편과의 어떤 문제에 있어서 아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불복종하면 그것은 남편이 은연중에 또는 공공연하게 그리스도에게 불복종하고 반기를 들도록 조장하는 것이며, 또 자녀들이 불복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어떤 권위 아래 순종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권위를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다.

 

 

III. 자녀의 순종, 부모의 훈육

 

1. 자녀들을 향한 말씀, “순종

 

1)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첫째이다. 성경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6:1-2)“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부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하는 것을 뜻한다. (5:7)“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7:24)“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8:32)“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순종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도 타고난 죄의 본성과 옛 성품이 있으며, 마귀의 공격이 있다.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모의 주관 능력을 시험할 때가 있다. 자기들의 뜻과 부모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기의 행동의 제약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뜻을 굽히셨다면 난 정말 아빠를 존경하지 않게 되었을 거예요.” 이것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다. 이렇게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가장된 방법으로 저항할 때가 있는데, 부모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마음 놓고 저항의 강도를 높인다. 왜냐하면 타고난 죄의 본성이 아이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불순종이 죄임을 알아야 한다(1:30 -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디모데후서 3:2에 따르면,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마지막 때의 징조이기도 하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같다. 구약에서는 그 처벌이 매우 엄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와 같이 취급되었다(21:17, 21:18-21, 24:15,16) - (21:18-21)“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또한 자녀가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 곧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은 옳은 일이며, 주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하고, 자녀들로 하여금 뼈 속 깊이 새기게 해야 한다.

 

2) 부모도 때로 미숙하여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며, 충분히 성숙하기 이전의 부모들은 지혜가 부족한 상태로 자녀들을 양육할 수밖에 없다. 결정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자녀에게는 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결정의 책임을 지우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순종함으로써 자녀들은 어리석음과 무지와 자유분방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즉 그들의 논리와 이론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부모의 결정은 아이들에게 모순투성이이고,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데 잔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순종의 자세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저희 부모님이 잘못된 명령을 하시면 어떻게 하죠?”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그리스도인 자녀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 부모가 실수하거나 잘못했다면 자녀들 앞에서 시인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도 잘못이나 죄를 감추지 않고 시인하고 돌이킬 것이다.

 

3)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을 위해 갖고 있는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에 보면 욥은 자기 자식들을 성결케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그들 모두의 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1:5)“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고 말하며 욥은 계속해서 이같이 행했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들을 향해 매우 특별하다. 그리스도인 자녀라면 더욱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순종해야 한다.

 

2. 부모를 향한 말씀, “훈육

 

1)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이요 보상이다(127:3) -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부모는 유업과 보상으로 받은 자녀들을 세상의 악으로부터 지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양육해야 하며, 또 그리스도인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서 성장하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되 성나게 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3: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훈육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자녀들이 성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잘못할 경우나 자녀가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지 못할 경우에 벌어지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녀들을 훈육해야 할까?

 

2) 자녀의 훈육을 위한 지침

(1) 자녀에 대한 훈육의 책임자는 부모임을 각인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가정에서 아이의 엄마가 아버지를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그 엄마는 자기가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것처럼 자녀들로부터 엄마 자신이 불순종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 아내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남편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손상시킬 때 자신의 권위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남편에게 대놓고 반대하고 몰아붙이는 언행과 습관을 버려야 한다. 남편이 자기 아내로부터 권위가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남편 역시 아이들 앞에서 아내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언행을 해야 한다.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가 고집 세고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으면 한 몸인 아버지는 함께 부모의 권위와 존엄성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선천적으로 아이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권위를 더 두려워하고 존중한다. 사소한 일은 어머니가 즉시 바로잡고 시행하지만 중요한 일은 아버지에게 맡겨야 한다. 최후의 보루가 있어야 원활한 훈육이 가능하다.

 

부모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권위를 사용하지 않고 보류해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모에게 권위를 주셨다. 부모의 권위를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권위는 자녀들 앞에서 부모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혹시 부모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내가 아이에게 잘못을 시인하면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두려움보다는 내가 이것을 숨기고 속이려 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과 자녀 앞에서 정직할 때 더 강화된다.

 

(2)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해야 한다.

(22: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훈육은 성경적 가치관과 바른 지식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부모는 자신의 욕망이나 야심, 혹은 세상적인 출세를 자녀들을 통해서 이루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통해 자신들이 이루지 못했거나 추구하는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또는 자신과 똑같은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자기의 과거를 재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버려야 한다.

 

자녀는 결국 부모를 떠나 결혼하게 된다. 누구에게 자녀를 맡길 것인가? 무엇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 줄 것인가? 하나님께 자녀를 드리는 것은 손해나 부족함이 아니라 최상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부모는 청지기로서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자녀를 주심에 감사함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주님께 쓰임받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고 쓰임 받게 해야 한다.

 

한나는 기도하는 여자였으며, 자녀를 바르게 드린 어머니였다(삼상 1:10,12,17,18,19,20). 아이를 주님께 드리는 것에 소망을 두었던 훌륭한 모범을 보인 것이다.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한 어머니였다. 수산나는 가정이 위대한 학교임을 입증해 주었다. 부모가 직접 훈육하지 않은 자녀는 바른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수산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명씩 개별적으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3) 규칙을 세우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는 반드시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녀들을 훈육하는 데 있어서 문제점은 한편으로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소하고 많은 규칙들을 과도하게 만들고 적용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규칙을 정하고 그것에 근거한 자유로운 판단과 실행으로 인도해 주어야 한다. 자녀가 따라야 할 모범은 우선적으로 부모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항해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전 11:1). 말씀을 읽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예배를 준비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모습, 하나님의 것을 자원하여 헌금하는 모습, 구령하고 거리 설교하는 모습, 성도들을 섬기고 교제하는 모습, 세상의 악으로부터 성별하는 모습, TV와 세상의 유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모습, 예의를 지키는 모습, 법과 질서를 지키는 모습,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모습 등 모든 부분에서 아빠처럼, 엄마처럼 되기를 바란다는 자녀들의 고백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간증이다.

 

(4) 어려서부터 훈육해야 한다.

자녀들의 문제는 부모의 교육과 훈련의 문제이다. 될 수 있는 한 어려서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이 책임을 부모에게 주셨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되면 늘 속이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어려서부터 깨닫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최대한 어린나이 때부터 부모에게서 충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어떤 아이도 부모로부터 매맞을 때 명랑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성경적 원칙을 세우고 자녀를 훈육해야 한다.

 

부모는 자신이 자녀들에 대한 권위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이 권위를 주셨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순종하라고 호소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매를 맞는다고 위협을 해서도 안 된다. 부모가 해야 하는 말은 한마디로 권위 있는 말이다. 권위 있는 말이란 여러 번 생각해 본 후에 하는 신중하면서도 성경적인 말이다. 또한 자녀가 이해하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말이며, 하나님께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옳은 말이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할 경우 성경의 말씀을 펴놓고 말씀대로 훈계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따라 훈련받은 아이는 절대로 아버지의 권위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아이는 매맞는 일을 별로 저지르지 않는다. 결국 그 아이는 아버지의 보호와 지배 아래 살면서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아이는 다른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목사님에게, 자신보다 위에 있는 권위자들에게 무례하게 행하지 않으며, 그 권위를 존중하여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위에 있는 권위를 향해 소리치고 시위하며 반항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5) 부모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훈육해야 한다. 자녀들이 노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게 해서는 안 되며좋은 습관을 익히게 해야 한다. 범죄한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너무도 시간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식은 책을 통해 얻지만, 지혜는 힘든 일을 통해 얻게 된다. 공부나 일은 몸을 피곤하게 하지만 휴식을 취하는 순간 기쁨을 주며, 어렸을 적에 훈련을 잘 받은 아이는 혼자 쇼파에 앉아 악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6:7). 예절을 지키는 일,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바른 행위, 옷을 입는 방법, 시간을 쓰는 방법, 돈을 절약하고 규모 있게 쓰는 방법 등 삶을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우선적으로 배워야 한다.

 

3) 매와 체벌은 사랑의 교육 방법이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징계의 훈련을 해야 한다. 원칙을 무너뜨리고 자녀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힘들게 훈련시킬 때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의 눈치를 살펴서는 안 된다. 20년이 지나서 어렸을 때 훈련시켜 주지 못했던 부모에 대한 불평을 듣는 것보다 현재 징계의 훈련을 잘 배우도록 히는 편이 더 낫다.

 

자녀들에 대한 매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아이들이라고 선한 것이 아니다(6:5). 자녀들의 잘못과 죄를 납득시키고 매를 들어야 한다. 이 점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13:24)“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2: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29:15)“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29:17)“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성경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게 된다.

 

성경이 매를 들라고 말씀하는 것은 두려움이 좋은 동기이기 때문이다잠 1:7; 3:7; 8:13; 14:16). 그리스도인이 주를 두려워하면 악을 미워하고 악을 떠나게 된다. 성경이 현명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난다고 말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부모는 자녀들을 훈계하고 체벌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어야 한다. 자녀를 훈계하고 체벌할 때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녀에게 징벌하시기 원하신다.

 

매를 맞는 것을 자녀들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인 벌로는 어떠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오직 아이들의 감정만 상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단지 신체적인 벌이 무서워서 악을 피하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동기가 아니라 체벌에 훈련된 것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체벌이 올바른 것이면 체벌은 아버지와 자녀의 유대를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해준다. 체벌은 사랑과 두려움의 양면을 하나로 결합시켜 준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좋은 영향을 미친다. 문제아로 불리는 어떤 여학생은,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한 번도 때려 주신 적이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는 매의 의미를 아이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다. 종종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은 항상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설득과 호소와 감언이설과 위협이 실패했을 때 노여움과 자포자기 속에 빠진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매를 든다. 그러나 매를 드는 때가 너무 늦어서는 안 된다. 최초에 매를 들고 불순종을 고칠 수 있다.

 

가끔 부모들은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엄한 벌을 주지 못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부모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6:4) 때문에 강하게 훈육하고 매를 들거나 체벌하는 것을 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들을 성나게 하는 것은 잔소리 정도의 제재를 가하고 우유부단하게 습관적인 훈계를 하는 것이다. 매질이 필요할 때는 호되게 매질해야 한다. 아이를 규칙 없이 잔소리하듯 부모의 상황에 따라 상대하는 것은 아이를 버리는 일이며 성나게 하는 일이다. 필요한 때에 언제든지 정당한 이유로 크게 혼내 주어야 한다. 때로는 아이에게 매를 드는 일이 부모와 아이가 겨루기 시합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부모는 여기서 져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지면, 자녀들은 이겼으면서도, 진 부모의 행동에 대해 성내게 된다.

 

4) 자녀를 바르게 훈육하지 못한 아버지, 엘리(삼상 2:12-17)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했으며, 또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바르게 훈육하지 못한 엘리가 그의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높였다고 말씀하셨으며(삼상 2:29), 또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존중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소홀히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삼상 2:29,30).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보다 자녀 교육, 자녀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자식들을 더 높이고 있으며,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멸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심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리는 장성한 자기 아들들에게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아버지의 훈육에 경청하지 않은 것은 어려서부터 순종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엘리는 아들들을 다스리지 못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일관성 있게 훈육해야 한다. 부모의 일관성 있는 대응이 필요하며, 함께 징계의 방법과 정도를 논의해야 한다. 게으르고 바쁜 아버지는 아이의 잘못을 지나치거나 한 번 말만 던지고 끝나 버린다. 시간을 들여 함께해야 한다. 부모가 시간을 들여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자녀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용돈을 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책임한 용돈을 끊어야 한다. 자녀들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가정과 학교 이외에 어느 곳에 있는가를 알고 있는가? 자녀들의 친구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자녀들의 친구 부모님을 알고 있는가?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알고 적절한 규칙을 주며 점검해야 한다. 부모의 허락과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5) 자녀를 바르게 훈육한 부모들

 

이삭은 자신이 번제로 드려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는데,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다(22:9,10).

 

위대한 자녀를 기르는 부모 중에는 모세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므람과 요게벳이 있다. 성경은 그들을 믿음의 부모라고 부르고 있으며(11:23) 또한 그들은 담대한 부모였다. 결국 모세의 어머니는 파라오의 딸에게 삯을 받아가며, 모세를 양육할 수 있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명령에 순종했는데, 이는 어려서부터 배운 대로였다(2:20) -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지닌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딤후 1:5) 말씀을 배우고 자랐으며, 성장하여 바울의 동역자로 귀한 사역을 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딤후 3:14-15)“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정의 모범은 고넬료의 가정이다. 가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모든 가족이 그를 따랐고, 그 결과 그와 그의 가정은 구원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10).

 

부모에게는 자녀 양육의 책임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몫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성경 말씀에 따라 일관성 있게, 규칙을 가지고 훈육해야 한다.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맡고 사랑으로 양육해야 한다. 부모를 닮는 것은 자녀이다. 우리는 자녀를 잘 훈육한 사례나 그렇지 못한 사례 중 어디에 포함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과 보상을 하나님께 할당하게 다시 돌려 드릴 수 있게 부모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론

 

그리스도인 가정의 경영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가족이 주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남자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하며, 여자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남편을 도와 가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의 질서가 바로 서 있는 가정이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이다. 이런 가정은 지역 교회를 강성하게 하는 든든한 기둥이다.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은 성경적 원칙에 충실할 때 열매로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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