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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zen in Time

Chapter 13. Where Was Man During the Ice Age?

(빙하기 동안 인류는 어디에 있었을까?)

 

출처: https://answersingenesis.org/answers/books/frozen-in-time/where-was-man-during-the-ice-age/

 

 

성경의 역사기록은 빙하기 기간 중 또는 직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욥기와 유대 족장들의 삶과 시대에 대한 책들이 포함된다.

 

빙하기의 사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털북숭이 매머드와 털북숭이 코뿔소를 사냥했던 야만적인 유인원같은 혈거인을 생각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빙하기는 인간이 일련의 빠진고리(missing link)를 거치며 진화해 온 시기이다. (이번 장의 마지막 부분에 빠진고리라고 짐작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 사람과 유인원 사이에 빠진고리가 있는가?”를 보라.)

 

성경의 역사기록은 빙하기 기간 중 또는 직후의 사건들을 기록한다. 이 시기에는 욥기와 유대 족장들의 삶과 시대에 대한 책들이 포함된다. 성경은 대홍수 이후에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빙하기에 대해 읽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창세기 10-11장을 근거로, 대홍수 이후 처음 100년 동안, 인간은 오직 중동에서만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방주에서 나온 이후 노아와 그의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바벨탑 사건이 있을 때까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 머물렀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고 명하셨다.(창세기 9:7). 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퍼지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꽤 짧은 시간 안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이 시작되었다. 바벨의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만들었을 때 최악의 고비에 도달했다. 그 반란은 점성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여 그들은 심판했고, 그 결과 그들은 온 지구상에 흩어지게 되었다.(그림 13.1) 이 사건은 대홍수 이후 약 100년에서 300년 후에 발생했다. 그때쯤에는 빙하 시대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fig13-1.jpg

그림 13.1. 바벨탑에서의 언어의 혼란

 

 

Dispersion South(남쪽으로의 분산)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남서쪽과 남동쪽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그림 13.2). 남서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은 사해부근, 팔레스타인, 이집트, 사하라 사막 그리고 아프리카의 나머지 지역에 정착했다. 그 당시, 전 지역의 여름 기후는 여전히 현재의 기후보다 더 시원하고 습했다. 이는 현재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에서 대홍수 이후의 번성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대홍수가 끝나고 나서 몇 백 년의 시간이 지나 빙하기로 접어들었을 때, 사하라 사막에는 사람과 동물들이 버글거렸다.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되는 수생 동물들의 유해와 대규모의 바위 예술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일행들은 남동쪽의 인도, 동남아,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마침내 뉴질랜드와 서태평양의 섬들로 향했다. 호주 원주민들이 이 초기 그룹에 포함될 것이다.

 

 

Dispersion Northwest(북서쪽으로의 분산)

 

북서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원기 왕성 했다.(1) 그들은 북유럽과 북서부 아시아의 스칸디나비아 빙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처음 북쪽으로 향했을 때는 빙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들은 산에서 빙모(ice cap)를 보았다. 성층권의 화산재와 에어로졸(aerosol)은 낮 동안 약간 어둡고 춥게 만들었지만, 사냥감은 풍부했다. 여름이 너무 선선하고 성장시기(growing season)가 너무 짧아 작물을 재배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아마도 길을 따라 열매와 뿌리를 채집했을 것이다. 큰 사냥감은 그들이 점점 더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였다. 결국 몇몇 사람들이 털북숭이 매머드의 땅으로 들어갔다. 동굴들은 살기에 가장 실용적인 장소들이었다. 유럽의 고전적인 혈거인이 그때 현실이 되었지만, 그는 야만적이지도 않았고, 유인원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과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으로 알려져 있으며, (냉혹한 환경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을 만큼) 평균 또는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빠진고리가 아니었다.

 

 

 

 

fig13-2.jpg

그림 13.2. 바벨탑으로부터의 분산 (AiG-USA의 다니엘 루이스가 그린 그림)

 

네안데르탈인은 한때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로 여겨졌었지만, 이것은 진화적 편견 때문이었다. 그는 몇 가지 특이한 얼굴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뇌는 현대의 사람보다 약간 더 컸고, 그의 뇌는 평균적으로 유인원의 뇌의 거의 세배나 크다. 그것은 항상 빠진고리를 찾기 위해 열망하는 초기 진화론자들에게 많은 것을 말했어야 했다. 유럽, 서 아시아, 북 아프리카의 동굴에서 100개 이상의 네안데르탈인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들의 목 아래쪽 뼈는 현대인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네안데르탈인은 눈썹 둔덕을 가지고 있었고 턱이 없었고, 그의 머리 뒤쪽은 뒤로 뻗어 있었다. 이 두개골의 특징들은 (근친교배로 인한) 독특한 유전적 특징일 수도 있고 병에 의해 야기된 것일 수도 있다. 그 특징 중 일부는 구루병(rickets)과 관절염(arthritis)과 같은 질병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구루병(rickets), 흐리고 암울한 빙하기 동안 동굴 생활의 일반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비타민 D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

 

여러분과 나와 같은 현대인류와 거의 같아 보이는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은 얼마 후에 네안데르탈인을 따라 유럽으로 갔던 것 같다. 그들도 역시 동굴에서 살았다. 그들도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석기를 사용했는데, 아마도 그들이 바벨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금속 도구들이 다 닳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 지역 전역의 동굴 벽에 예술 작품을 남겼다. 크로마뇽인들이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에는 두 그룹 모두 삶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풍부한 사냥감이 그들을 살려 냈다. 12살 소년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빙상 가까운 지역의 동굴에서 사는 것이 어떤 삶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Life in the Great Ice Age”를 읽어 보라.(2)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상호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며 아마 오늘날의 유럽과 아시아인들 내에 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빙하기 시대의 해골을 발견했는데 이 뼈들은 두 그룹의 사람들의 특징이 섞여 있는 것을 보여 준다.

 

거대한 사냥감은 빙하기 말의 멸종 기간 동안 희귀해 질 수도 있었지만, 여름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인류는 다시 식물을 심고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부족 거주지를 지었고, 마을과 도시들을 지었다. 문명과 농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심한 빙하기의 삶은 유럽과 아시아 서부의 사람들의 삶에는 단지 한 순간일 뿐이었다. 진화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농업의 발전이 유럽에서는 느린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것은 인류가 유인원으로부터 수 백 만년 동안 진화해 왔다는 진화론적인 편견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유럽에서 농업이 급속하게 발전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의 수렵채집인들이 이것이 유리하다고 인식하면 목축업과 농작물 재배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의 농업 기원에 대한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3)

 

 

Origin of the Native Americans(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

 

다른 가족들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서 동쪽과 북동쪽으로 향해 떠났다(그림 13.2). 아시아 대륙의 내부가 비교적 추워 높은 산이 빙모로 덮여 있기 때문에 그들 또한 강건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정동쪽으로 이주해 온 이들은 동아시아에 정착한 고대 동양의 부족들이다.

 

그 부족들 중 일부는 북동쪽 시베리아로 이동했을 것이다. 이 지역의 겨울은 추웠지만, 오늘날만큼 춥지는 않았다. 사냥감은 압도적으로 풍족했다. 이곳은 털북숭이 매머드가 수백만 마리씩 살았던 곳이다. 초기 인류가 시베리아, 특히 남부 시베리아에 거주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최근에 인간이 북부 중앙 시베리아의 야나 강(Yana River)을 따라 빙하기 동안 살았다는 것을 발견했다.(4) 이 시기는, 진화론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Paleolithic, old stone age)”신석기 시대(Neolithic, new stone)” 기간 동안이다. 1800년대부터 사용한 이런 분류는 지금은 단순화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우리는 19세기에 유럽의 선사시대를 절단기구에 사용되는 재료 즉, 첫 번째는 돌, 그 다음은 청동, 그 다음은 철에 기초하여 시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보았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것들이 유용한 구분이 될 수는 있지만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거나 선사시대 공동체가 기능하는 방식의 중요한 변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5)

 

부족들이 여행을 계속하면서 일부는 시베리아에 남아 있었고, 일부 부족들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들이 온화한 태평양이나 북극해에 접근했을 때, 기후가 내부 아시아보다 더 따뜻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그들이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곧 몇몇 유목민들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협에 도착했다. 그곳이 얕거나 말랐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을 건너 신세계인 알래스카에 도착한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알래스카의 저지대에는 이 때 따뜻한 겨울과 선선한 여름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떤 사람들은 정착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주를 계속했을 것이다. 알래스카로부터, 그들은 북서 캐나다의 유콘(Yukon) 지역에 진입했고, 로키 산맥의 동쪽 경사면을 따라 남동쪽으로 그리고 얼음이 없는 회랑지대(corridor, 통로)을 통해 남동쪽으로 계속 갔다.(그림 13.3)

 

 

 

 fig13-3.jpg

그림 13.3. 베링 육교(land bridge)와 얼음이 없는 회랑지대를 통해 북 아메리카로 인류가 분산되었다. 빙하기 시대 대체 해안 경로도 표시되었다.

 

얕은 베링 해협과 대륙붕을 노출시키기 위해 육지에 충분한 눈과 얼음이 쌓이는 데에 대부분의 빙하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베링 해협의 현재 깊이를 가정한 것이다. 알래스카로 걸어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좁은 지역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기는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날씨가 좀더 추워졌을 때였을 것이다. 이미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앞서 북아메리카로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베링 해협이 빙하기 초반에는 더 얕은 수위였고 더 일찍 모습을 드러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사람과 짐승은 빙하기 초반에 북아메리카로 이주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육로로 여행을 했지만, 다른 이들은 태평양 연안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배를 만들어, 베링 해협을 건너서 알래스카와 서부 브리티시 콜럼비아(British Columbia) 해안을 따라 워싱턴(Washington) 주로 갔고, 거기서 남부와 동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태평양의 물은 여전히 따뜻했을 것이고, 빙하기 초기에는 브리티시 콜럼비아(British Columbia) 주의 산에 빙하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알래스카의 케치칸(Ketchikan) 근처의 헤세타섬(Heceta Island)에 있는 고대의 거대한 물고기 뼈 쓰레기 더미를 발견했다. Science News(6)의 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동물의 유해들은, 이 사람들이 연안 어업에 경험이 있고 수상 교통을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사냥꾼들이 거대한 얼음 층 사이에서 몹시 추운[얼음이 없는] 통로를 건너는 것과 비교할 때 비교적 온화한 해안 기후와 풍부한 해양 식품 공급원은 해안으로 접근하는 해양 이민자들에게 큰 혜택을 주었을 것이다.

 

이 진술은 동일과정설적인 빙하기 문맥의 내용이다. 창세기 대홍수에 의한 빙하기 모델 내에서, 록키산맥의 동쪽 경사지를 따라 있는 얼음이 없는 회랑지대(corridor, 통로)는 산 아래로 부는 치누크 바람(chinook wind) 때문에 겨울에 거의 그렇게 춥지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이주가 있었던 시기가 빙하기의 초기나 중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회랑지대는 여전히 열려 있었을 것이다. 동물들은 인간보다 몇 백 년 전에 그들의 확산을 시작했기 때문에, 일찍이 회랑지대(corridor, 통로)를 사용했었다. 이 회랑지대는 브리티시 콜롬비아와 캐나다 중심부의 빙상이 합쳐지면서 빙하기 후반에 닫혀졌지만, 최초의 사람들은 아마도 닫힌 이후가 아니라 닫혀지기 전에 통과했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 이것의 증거 중 하나는 남쪽 알버타(Alberta) 지역의 빙력토와 후기 빙하암설 60피트 아래에서 발견된 태버 아동(Taber child)이다.(7) 많은 고고학자들은 태버 아동(Taber child)의 빙하 전 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8) 이것의 위치는 빙하 전임을 나타낸다. (역주, Taber Child: 1961년 앨버타 태버 근처에서 발견된 아기 유골 조각//a fragmentary human infant skeleton found near Taber, Alberta in 1961.)

 

고고학자들에 의해 클로비스(Clovis)나 폴섬맨(Folsom man)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남쪽 북아메리카, 중앙 아메리카, 그리고 결국 남아메리카로 퍼지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까지 가는 여행은 일부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힘든 여행이 될 필요도 없고(9)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도 없었다. 만약 그 부족들이 유목민 사냥꾼이었고 가장 따뜻한 4개의 달 동안 하루 평균 2 마일(3.2km)을 이동했다면, 그들은 일년에 250 마일(400km)의 속도로 이동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까지의 거리는 약 15,000마일 (24,000km)이다. 매년 여름 250 마일(400km)의 속도로 사람들은 60년 만에 여행을 할 수 있었다.

 

60년이라는 시간은 남아메리카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최소 시간을 추정한 대략적인 계산이다. 실제 이주는 더 복잡하고 느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주가 더 급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었다. 어떤 부족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어떤 지역에 잠시 정착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에스키모와 같은 몇몇 부족들이 길을 가다가 정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더 많은 방랑 부족들이 왜 계속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가능한 많은 이유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방랑벽을 가지고 단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여행을 했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인간의 갈등 때문에 이동하도록 강요받았을 수도 있다. 젊은 세대는 이미 정착한 기성세대로부터 밖으로 벗어나 더 전도유망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부족들은 마치 산의 반대편 풀이 더 푸르다라는 말처럼 사냥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여하튼, 동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정착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다.

 

 

Was There a Purpose to the Ice Age?(빙하기에 대한 목적이 있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빙하기에 대해 의도하신 목적이 있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주기 위해 빙하기를 유발시켰는가? 아니면 빙하기는 단지 창세기 홍수로 인한 기후 결과였을까?

 

우리는 창세기 대홍수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사람의 불의를 없애고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5). 그것은 극도로 암울한 상황이었고, 하나님은 과감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벨탑에서의 언어 혼란 역시 그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홍수 이후에 인간이 지구를 채우게 하겠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일삼은 타락한 인간들이 결국 파멸의 길을 걸을 것임을 알고 계셨으리라 확신한다. 악한 결말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날 수 있었다. 이처럼 많은 성경적 사건들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빙하기는 어떨까?

 

빙하기가 인간을 위한 목적을 가졌는지 여부를 어떻게든 결론 내리기란 어렵다. 빙하기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대홍수라는 성경적 사건으로 인한 결과의 기후이다. 빙하기와 같은 그런 큰 사건이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언급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사실상 빙하가 녹은 후에 쓰여졌다. 아마도 욥기가 빙하기 동안에 쓰여진 유일한 책일 것이다. 욥이 눈과 얼음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그는 그런 특징들을 겨울 동안 목격했을 수도 있다. 인간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사건들도 있다. 게다가, 빙하기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은 먼 북쪽이나 산에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빙하기는 인류에게 거의 해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빙하기의 목적이 두 가지 있다. 빙상과 빙하가 바위를 갈아서 가는 세사(silt) 크기로 만든다. 이 세사를 암분(rock flour)이라고 부른다. 빙하기가 끝나 가는 동안, 이 암분은 해빙의 과정에서 강하고 건조한 폭풍에 의해 전 세계에 날려졌을 것이다. 빙하기에 형성된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의 빙상에는 먼지도 많이 있다. 털북숭이 매머드를 다시 다룰 때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이 바람에 날린 세사(silt)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매우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이다. 바람에 날린 세사(silt)가 특히 두껍게 쌓인 세계의 많은 장소들은 초 농업 지역(super agriculture area)들이다. 이 지역들은 미국의 중서부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국의 넓은 지역을 포함한다.

 

빙하기에 대한 또 다른 가능한 목적은 이번 장에 기술한 바와 같이 지구에 인구를 다시 거주시키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초기 및 중기 빙하기의 특징인 온화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은 사람들이 훨씬 더 시원하고 습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중앙 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로 이주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후는 사람과 짐승이 시베리아로 이주하고 북아메리카로 건너가도록 도왔을 것이다. 반면에, 온화한 겨울과 더 많은 강수량을 가진 더 시원한 여름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지역을 오늘날보다 살기에 훨씬 더 이상적인 장소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해서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였을 것이다.

 

 

Are There Missing Links Between Man and Apes?(인간과 유인원 사이에 빠진고리가 있는가?)

 

만약 인류가 수 백 만년 동안 유인원이나 유인원과 유사한 생물에서 진화 되었다면, 수많은 화석 고리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이(transition)가 빙하기 때에 일어났다는 이론이 있다. 어쩌면 일부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빙하기에 의해 야기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사람은 진화했는데, 동물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명백한 모순이다. 빠진고리를 찾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고인류학자(Paleoanthropologist)들은 빠진고리들을 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소비하면서 100년 넘게 세상을 샅샅이 뒤져 왔다. 사실, 그들은 몇몇 후보를 발견했지만, 그 수는 상당히 적고, 그 화석 조각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논란 중에 있다. 모든 고인류학자들은 뼈가 어떻게 배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들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빠진고리를 찾기 위한 그들의 열정과 극심한 경쟁의 결과, 고인류학자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일찍이 빠진고리로 생각되었으나, 전문가들은 나중에 그들의 편견이 이 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단지 다양한 인간의 하나였을 뿐이다.

 

심지어 하나의 이빨에 근거해서 빠진고리에 대한 과장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1922년 네브래스카 주에서 발견된 이 네브라스카인의 증거는 결국 돼지 이빨로 판명되었다.

 

사기꾼들은 이 필사적인 화석 인간 사냥꾼들을 속이기가 쉬웠다. 소위 말하는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은 명백한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와 중반의 모든 주류 고생물학자들을 기만했다. 빠진고리는 인간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을 연결한 것임이 드러났다.

 

가장 최근의 빠진고리 후보들은 그 지위가 다소 더 오래 지속되었지만, 여전히 논란 중에 있다. 치아와 턱 조각에 근거한 라마피티쿠스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첫 번째 빠진고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더 많은 자료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결국 멸종된 원숭이로 판명 되었다. 빠진고리 후보들에 대한 원래의 분석은 다시 한 번 편견이 개입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오스트랄로피시쿠스(Australopithicus)가 그 다음 차례이다. 그것은 미스터 빠진고리라고 신조어를 붙일 수 있다. 이 그룹에는 이디오피아의 도널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이 발견한 루시(Lucy)를 포함해 다양한 생명체가 있다.(10) 루시는 사람처럼 똑바로 서서 걸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고 이름 붙은 대부분의 조각들 역시 오스트랄로피시쿠스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고인류학자들은 그들의 인간과 유사한특성을 강조하고 대개 그들의 유인원 같은 특징을 경시한다. 이용 가능한 오스트랄로피시쿠스의 뼈대 중 많은 부분에 대한 컴퓨터 분석에 근거하여, 찰스 옥스나드(Charles Oxnard)(11)는 그것을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경계가 아닌 독특한 유인원으로 분류하였다. 물론, 그것이 멸종된 동물에 대한 정의의 일부이기 때문에 멸종된 동물에 대한 독특한 특징을 기대할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시쿠스는 압도적으로 원숭이같다. 20세기 중반 이 화석에 대한 선도적인 진화 전문가 중 한 명인 솔리 주커맨 경(Sir Solly Zuckerman)(12)에 따르면, 이 화석은 뇌의 크기가 원숭이와 같으며, 해골이 원숭이와 유사하고, 똑바로 걸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한다. 최근, 루시(Lucy)와 또 하나의 오스트랄로피시쿠스 화석의 팔꿈치 부분을 분석한 결과 일부 살아있는 원숭이에 비견되는 너클워커(knuckle walker/발가락 관절을 땅에 대고 침팬지처럼 걷는 형태)의 뼈가 발견되었다.(13) 유감스럽게도 오스트랄로피시쿠스가 빠진고리라는 지위를 고수하고 싶은 바램 때문에, 고인류학자들은 너클워커의 능력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새로운 증거를 구시대의 낡은 유물처럼 격하시켰다.

 

솔리 주커만(Solly Zuckerman) (14)은 빠진고리를 찾으려는 시도에 관한 전체적인 계획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감을 표했다:

 

앞서 암시한 것처럼 영장류 화석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그들 주제의 논리적 제약 내에서 작업할 때 주의할 사항에 대해 출중하지 않았다. 그 기록이 매우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찾아내야 할 과학적 부분이 여전히 많지 않은지에 대해 묻는 것이 더 타당하다. 빠진고리 및 인간과 동물 세계와의 관계는 여전히 매력적인 주제이다. 따라서 희망찬 생각의 우물에서 끌어올린 신화 같은 내용을 영장류, 생명체와 화석의 비교 연구에서 몰아내는 것은 늘 어려울 수 있다.

 

빠진고리의 마지막 후보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이다. 이 명칭에는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의심스럽다. 그 범주의 초기 멤버에 애매모호한 자바 원인(Java man)와 베이징 원인(Peking man)을 포함한다. 이 때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의 많은 화석들이 발굴되었다. 밝혀진 바와 같이, 호모 에렉투스는 네안데르탈인과 약간만 다를 뿐이다. 주요 차이점은 호모 에렉투스가 일반적으로 더 작은 키와 뇌 크기를 가졌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의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현대인과 혼합된 형태가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오직 한가지 결론만이 도출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마빈 루베노(Marvin Lubenow)의 책 쟁인(爭因)/Bones of Contention”(15) 에 기록되었듯이, 호모 에렉투스가 한 형통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Footnotes(각주)

 

1. Oard, M. and B. Oard, Life in the Great Ice Age, Master Books, Green Forest, AR, 1993.

2.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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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Frozen in Time(제5장) 멸종 전쟁 - Michael J. Oard 글 honey 2018.02.22 130
5 Frozen in Time(제4장) 매머드에 관한 수많은 가설들 - Michael J. Oard 글 honey 2017.09.30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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