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커넥션
(THE FRENCH CONNECTION)
'오랜 연대'에 대한 서구의 믿음은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Western belief in ‘deep time’ first appeared in 17th and 18th century France.)
Andrew Sibly 글, 이종헌 역
출처: creation magazine Vol. 42(2020), No. 2 pp.53-55
우리들 대부분은 진화에 대한 믿음을 수반하는 수백만 년이라는 긴 연대의 개념에 익숙하다. 그것은 여러 세대 동안 서구 문화의 사고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오랜 연대’에 대한 믿음은 실제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에 퍼지기 전에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저자가 다룬 더 많은 정보는 creation.com/french1 및 creation.com/french2를 보라.)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6)와 같은 초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헌신을 유지했으며 대홍수 기사와 지질학적 증거를 조화시켰다.(1) 프랑스에서 오랜 연대의 사고가 발전하는데 포함된 인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회의와 의심의 방법(method of skepticism and doubt)에 따라, 창조와 대홍수에 관한 성경의 기사가 과학의 자리에서 부인되었으며, 타락한 인간의 추론은 과학 지식의 중재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회 수사들이 남인도와 중국에서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프랑스로 가져 왔을 때, 이것은 지구의 나이에 관한 토론을 조장하도록 허용했다.
The Jesuit role(예수회 수사의 역할)
예수회 수사(Jesuits)는 1540년에 개신교 종교개혁에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로마 가톨릭 교회 내의 수도회(religious order)인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회원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를 위협하는 종교개혁 원칙인 성경의 충분함과 명료함이라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신조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최소한 일부 회원들이 성경의 권위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크게 관여했다.
더욱이 인도와 중국의 동방 종교 철학의 다양한 측면을 그들의 생각에 기꺼이 수용하려는 의지는 가톨릭 신앙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기는 많은 동료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의 가톨릭교 안에서 소위 중국의 의식과 말라바 의식 논쟁에 반영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개종자들을 얻기 위해 중국과 남인도에서 가톨릭을 더 수용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정 전통 종교 관습을 가톨릭 의식과 혼합했다.
이 적응주의(accommodationism)는 가톨릭의 다른 수도회와 어느 순간 로마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또한 ‘중국 의식’ 관행은 또한 수학자이자 가톨릭 신학자인 블레이즈 파스칼(1623–1662)에 의해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2)
예수회 수도원은 이 나라에서 명성 있는 학교를 세우는 데 열심히 노력했으며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주요한 의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종종 그들 학교에서 가르쳤다. 결과적으로 힌두교에서 나온 ‘오랜 연대’의 개념이 서구 과학, 특히 지질학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혁명에 대한 동요가 커지고 있으며, 성경에 대한 핑계와 부정을 통하여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이에 대한 일부 원인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예수회 수사들과 그들의 추종자 일부의 행동은 사기와 선동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예수회 수도원은 1764년 프랑스 왕 루이 15세에 의해 파문되었고, 1773년 교황 클레멘트 14세가 그 파문의 범위를 넓혔으며, 1814년에 가서 복권되었다.
Movers and shakers of French thought(프랑스 사상의 제안자와 전파자)
18세기에 성경의 권위와 대홍수에 대한 믿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가장 주목할 만한 프랑스 사람으로는, Bernard de Fontenelle(1657–1757), Benoît de Maillet(1656–1738), Voltaire(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및 Denis Diderot(1713–1784) 등이 있다.
Bernard de Fontenelle(베르나르 드 퐁트넬)
퐁트넬은 Jesuit Collège de Bourbon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수십 년(1697~1740) 동안 파리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명성 있는 간사(Secretary)의 지위를 역임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성경적 대홍수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프랑스의 지질 과학의 발전과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1686) ‘세상의 다원성에 관한 대화’(3)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3) 실제로 그것은 공상 과학 대화인데, 거기서 우주여행 및 달과 다른 행성에서의 생명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퐁트넬은 수십만 년에 걸쳐 자연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상상했으며, 그의 책은 다음 세기에 걸쳐 프랑스 사람들의 상상 속에 다른 세계관을 준비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4) 그 대화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보다 10만 배나 더 오래 지속된 것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나이로는 불멸의 징후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연은 아무 것도 갑자기 하지 않으며, 자연의 방법은 우리가 거의 인식 할 수 없는 매우 완만한 눈금으로 모든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5)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는 아카데미의 공식 논문, 메모 및 서신에 대한 자체 요약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았다.(6) 그러나 그의 요약은 그 연구를 완전히 반영하는 것에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대신에 종종 그는 화석 기록의 성질과 지구 역사에 관련하여 자기 자신의 관점을 반영했다.(7) 이것을 통하여 그는 프랑스의 학술 단체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기사보다는 세상의 역사가 더 오래 되었다는 것을 주입시켰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의 ‘회고록/Mémoires’(1720)에서 저명한 과학자 René Réaumur는 프랑스 Touraine주의 팔룬/Falun 층이 수많은 껍질과 껍질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퐁트넬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홍수의 증거를 부정하고 그 대신 오랜 기간에 걸친 지질학적 변화를 주장했다. 그는 7m 두께의 껍질 층이 쌓이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바다가 점차적으로 물러가는 과정을 수반하는 연속적인 홍수가 필요하며, 지구의 생명은 인류의 출현보다 훨씬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홍수들 중 어느 것도 모세의 기사에 기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8)
Benoît de Maillet(베누아 드 마이예)
18세기 중반의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은 드 마이예가 편집한 책 텔리아메드/Telliamed(그의 이름 철자를 바꾸어 놓은 것)였다.(9) 그것은 그의 사후에(1748) 예수회 사제 Abbé Jean Baptiste le Mascrier가 처음 출판했는데, 초고는 이미 파리에서 수십 년 동안 회자되고 있었다. 드 마이예는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어서 중동으로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믿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텔리아메드는 프랑스 선교사와는 반대로 힌두 현자의 관점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변화를 주장했다. 초기의 은밀한 초안은 지구가 적어도 20억 년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힌두의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의 대략 반나절과 연관지었다. 그들은 브라마의 낮 12시간이 43억 2천만 년 동안 (이 기간 동안 브라마가 깨어있다) 지속되었으며, 이는 비슷한 길이의 밤에 뒤이어 왔다고 말한다.
+ Diderot writes about millions of years in 1754//Diderot는 1754 년에 수백만에 관하여 쓴다.
+ De Maillet’s Telliamed published 1748—infers millions of years//1748년에 출판된 드 마이예의 텔리아메드는 수백만년을 추론한다.
+ Voltaire writes anonymously in 1746 about millions of years//볼테르는 1746년에 수백만년에 관하여 익명으로 쓴다.
+ Fontenelle Secretary to Royal Academy (1697–1740)//퐁트넬이 왕립 아카데미의 간사를 맡다(1697–1740)
+ Fontenelle’s book The Plurality of Worlds published 1686//퐁트넬의 책 ‘세상의 다원성’이 1686년에 출간되다.
Voltaire(François-Marie Arouet)(프랑수와 마리 아루에 볼테르)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역시 지질학적 변화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746년에 볼로냐 아카데미에 익명의 서한으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자연의 위대한 건축에 비추어 볼 때 수십억 년의 회전은 우리에게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한바퀴 도는 바퀴보다도 무한히 작은 것이다.(10)
볼테르는 또한 알파인 산에서 발견된 화석 물고기는 사실상 기독교 순례자들이 흘린 음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찰스 라이엘 (Charles Lyell)은 비록 그가 모세의 기사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볼테르는 그러한 화석 증거가 성경적 대홍수 기사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볼테르가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지질학 주제에 관해 그가 쓴 수많은 에세이들은 자기의 편견을 강화하기 위해 계산되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과학의 실제 상태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의 나쁜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11)
심지어 볼테르는 힌두의 저술이 성경보다 더 오래되었고 믿을 만 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는 진리를 잘못 표현했다. 그는 Ezour Veda (또는 Ezourvedam)가 서방 국가들에게 귀중한 선물이라고 칭찬하면서 그들은 이 동양 종교에게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고대의 원전이 아니라 훗날 예수회 수사들이 위조한 작품이다. 그것은 베다의 현자로 짐작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한 사람은 유일신론자이고 다른 사람은 힌두의 다신론은 어느 정도 변장한 유일신론이라고 결론 내리는 다신론자이다.
Denis Diderot(드니 디드로)
디드로는 정치 및 종교 당국에 저항하는 선동자였으며, 한때 선동죄로 수감되었었다. 그의 책 ‘자연의 해석에 대한 생각/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1754)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철학자가 아닐 수 있고, 그 자신의 추측에 맡겼으며, 태고의 시간부터 동물의 삶에는 고유의 구성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들이 흩어지고 물질의 일반적인 몸체와 섞였으며,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심했다. .. [그리고] 이들 각각의 발전 사이에는 수백만 년이 지나갔다 ...?(12)
예수회 훈련을 받은 디드로는 볼테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점차로 자기 신념을 잃고, 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음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백과사전/Encyclopédie의 편집을 맡았는데, 포괄적인 저작이 1751년에서 1772년까지 출판되었고 그 작업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사회의 사고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다.
Making the connections(커넥션 만들기)
그러니까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오랜 연대와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초기에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지질학에서 대홍수에 대한 성경적 서술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때때로 이것은 혐오스럽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또한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프랑스 사회의 사고 속에 들어오면서 수백만년에 걸쳐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과학에 파고들 수 있었지만 모세의 기사는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종교적 질서에 반대하는 혁명에 대한 갈망이 자라고 있었다.
수백만 년의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은 제임스 허튼, 에라스무스 다윈, 찰스 라이엘, 찰스 다윈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많은 지구 과학자들이 오랜 연대에 대한 믿음의 뿌리에 대해 거의 무지하며, 현대 지질학에서 이 ‘프랜치 코넥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히, 이 믿음은 순수하게 퇴적암층의 연구에서 발전하지 않았다.
References and notes(참고문헌과 주석)
1. Walker, T., Geological pioneer Nicolaus Steno was a biblical creationist, J. Creation 22(1):93–98, 2008; creation.com/steno.
2. Pascal, B., The Provincial Letters, Letter V, 20 Mar 1656, Trans T. M’Crie, University of Adelaide, Australia, 2005.
3. Fontenelle, Bernard Le Bovier de, Entretiens sur la Pluralite des Mondes; it went through many French editions.
4. Stott, R., Darwin’s Ghosts: In search of the first evolutionists, Bloomsbury Publ., London, p. 117, 2012.
5. Fontenelle, B., The Plurality of other Worlds, Gunning, E. (trans.), Paternoster-Row, London, pp. 129–141, 1803.
6. Rappaport, R., Fontenelle interprets the earth’s history; in: Revue d’histoire des sciences, tome 44, no. 3–4, pp. 281–300, 1991. This discusses the Histoire et Memoires de l’Academie royale des sciences, Paris, annual volumes from 1699. Fontenelle wrote the Histoire.
7. Fontenelle, B., Histoire … , ref. 6, preface and p. 9, 1699 (Paris, 1702). Rappaport (ref. 6, pp. 282–283) writes: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first publication, ‘we even took care on occasions of sowing our own clarifications to facilitate the reading of the Memoires’ ” (my translation).
8. Fontenelle, B., Histoire..., pp. 5–9, 1720 (1722); in Rappaport, ref. 6, p. 297.
9. It was fully entitled: Telliamed, or Conversations Between an Indian Philosopher and a French Missionary on the Diminution of the Sea, and the Origin of Men and Animals (English translation); Le M.ascrier, J.B & Antoine Guers, J. (Eds.), Amsterdam, 1748.
10. Voltaire (Arouet, F.-M.), Dissertation on the changes that have happened in our globe, and on the Petrifications which are alleged as Proofs thereof, Letter to Academy of Bologna; in Smollett, T. et al., (trans.), The Works of M. de. Voltaire, vol. 18, London, pp. 243–256, 1762.
11. Lyell, C., chapter 4 of Principles of Geology (9th Edn), book 1, University of Adelaide, Adelaide, Australia, pp. 54–55, 1854 (also in 1834 edition).
12. Diderot, D., 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Other Philosophical Works, (Ed. Adams, D.) Clinamen Press Ltd, Manchester, p. 75, 2000.
ANDREW SIBLEY B.Sc. (Hons), M.Sc., M.Phil.
Andrew is a UK meteorologist who is also qualified in environmental science and decision making. His master’s degree in philosophy examined the theology and science of Intelligent Design. He is a speaker and writer on creation and apologetics, and has authored two books on creation issues. For more: creation.com/andrew-sib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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