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귀납적 성경공부의 실제(2): 해석
1.1)⇒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으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을 하면 되지만, 보통의 경우는 기본적인 해석의 원리 또는 성경개론이나, 성경 파노라마 정도는 배우고 나서 개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읽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해석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르게 해석하는가 이다. 그릇된 해석은 그릇된 적용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성경의 해석 방법을 공부하고 훈련해야 한다.
2)(벧후 1: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말씀을 한 부분만 강조하여 자신의 주관대로 해석하지 말아라. 성경은 전체를 가지고 조명해야 한다. 그 문맥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먼저 찾아야 한다.)
➡로만 카톨릭 : 이 말씀을 근거로 성경 해석권은 교회에만(교황, 사제, 종교회의) 있다고 주장
문맥
1) 벧후 전체 문맥: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 주님의 재림을 없다고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고 그 결과 방탕과 쾌락을 좇는 자들이 생김. 이에 대해 베드로는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음.
2) 근접 문맥: 오늘 본문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라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논증하는 가운데 나온다. 즉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의 근거는 성경의 예언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의미
(원문 직역) “모든 성경의 예언들은 그의 자신(예언자들)의 해석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다.”
(의역) “모든 성경의 예언은 선지자 자신이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한데서 생긴 것이 아니다.”
즉 성경 말씀들은 그 기록자 자신의 이해나 해석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뜻. (대부분의 영어성경들이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RSV, NIV, NASV 등. 우리 성경은 KJV에 따른 것)
“... no prophecy of Scripture came about by the prophet's own interpretation'(NIV)
그러므로 21절과 연결시켜 우리말로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선지자 자신이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20절이 포함된 이 단락의 내용을 정리하면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므로(인간이 아니라) 재림이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라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 말씀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주의해서 그 말씀을 따라야 한다.
2.1)➡성경의 해석은 작게는 전후 문맥에서부터, 크게는 성경 전체의 맥락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2)➡이것은 본래(original)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적어도 1900년 이상의 문화적, 역사적 단절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와는 다른 것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성경 본문이 쓰여졌던 당시의 의미, 즉 그 글을 읽고 있던 독자들이 이해하고 있던 의미대로 해석해야 한다.
3)➡본문의 사소한 단서에 매인 해석이나 지나친 상상에 근거한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비유를 해석할 때 우화적인(allegorical) 해석이 되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의미를 취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우화적인 해석의 예: 예루살렘=하나님의 도성 / 여리고 = 죄악의 도성 / 선한 사마리아인=예수님 / 강도=사탄 / 강도 만난 사람=그리스도인 / 기름=성령 / 동전 두 닢=신구약성경.
소위 영해라고 하여 본문의 문맥을 무시한 지나친 상상을 사용한 신비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본문의 바른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 성경 해석의 일반적 원칙을 정리한 글(뒤에 첨부)을 참고하라.
3.1) ➡아가페 성구사전
2) ➡표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각종 영어 번역성경
3) ➡IVP 성경 사전, 아가페 성경 사전
4) ➡교문사, 성서 교재 간행사등에서 출판한 기독교 백과사전
5)
6)
7) ➡아가페 성경 지도
4.1)
(1)•(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Thou preparest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ine enemies: thou anointest my head with oil; my cup Runneth over.>
⇒상 = table
➡여기서 말하는 상은 식사할 때의 상(床, table)을 말하지, 상(賞, prize)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There were giants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also after that, when the sons of God came in unto the daughters of men, and they bare {children}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ich {were} of old, men of renown.>
⇒네피림 = giant
➡이 말은 ‘힘세고 위엄 있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단어인데,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이라는 견해도 있다.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And he was in the hinder part of the ship, asleep on a pillow: and they awake him, and say unto him, Master, carest thou not that we perish?>
⇒고물 = hinder(후방) ➡배의 뒷부분(船尾)을 말한다.
(2)•(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And} having spoiled principalities and powers, he made a shew of them openly, triumphing over them in it.>
⇒주권과 권력을 못쓰게 만들어버리시고 그것들을 공공연히 들러내셔서
➡NIV 번역을 참고하면 본문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disarmed the powers and authorities, he made a public spectacle of them'
표준 새번역은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켜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행(凱旋行)에 포로로 내세우심으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표현이다. 고대 전쟁의 개선행진의 장면을 비유함으로써 결정적인 하나님의 승리와 정복자의 영광을 표현한다.
(3)•⇒뜻: 둥글다.
1)구약 시대에는 요단강 서쪽 팔레스틴의 북부를 보통 갈릴리라 하였다(수 20:7; 왕상 9:11; 왕하 15:29; 대상 6:26).
2)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스불론(수 19:10-16), 아셀(수 19:32-39) 자손들이 제비를 뽑아 차지하였으며 여러 번 혈투를 하였지만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였다(삿 1:30-33,4,).
3)예수님이 12제자 중 11제자를 이곳에서 택하였다.
➡‘긴네렛’(민 34:11), ‘게네사렛’(눅 5:1), 디베랴(요 21:1)로 불렸던 갈릴리 지역의 호수로 길이 21㎞, 폭 11㎞이며 요단강이 이곳을 지나쳐 흐른다. 이곳의 수산업은 로마 제국 시대에 그 명성을 얻어 수출이 활발했다. 주위의 산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어서 마치 분지와 흡사하다. 동쪽에 가파른 절벽이 있고, 차가운 기류가 헤르몬산이나 다른 곳에서 내려와 가파른 언덕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날 때 호수면 위의 가열된 공기와 충돌, 이 명렬한 바람은 격랑을 만든다.
2)(1)➡관찰은 발견을 위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는 단계라면, 해석은 그 안에 담겨진 본래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하고 발견하려면 먼저 무엇을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 나가야 한다. 결국 질문을 만든다는 것은 본문에 대하는 우리의 탐구심 또는 알고 싶어하는 열정 등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해석을 위한 질문 만들기 실습
•마가복음 4:35-41
본문 |
해석 질문 |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
1. 예수님의 당일 일정? 2. 배에 물이 가득했을 때의 상황, 위험성 3. 제자들은 어떤 믿음이 없었는가? 1.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그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2. 광풍이 몰아칠 때 제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겠는가? 3.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의 행동과 말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4.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꾸짖으실 때, “믿음”은 어떤 믿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5. 41절에서의 두려움은 어떤 종류의 두려움인가? 6.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심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
(2)•가)(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나)(시 119:97-100)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물론 가장 먼저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라 해석 질문에 답하면 주관적인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
가)➡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것이 성경 다른 곳에 인용되었거나 기록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 구절을 ‘병행구절’이라고 말한다. 이 병행구절을 통해 본문에 나타나지 않은 부가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런 병행 구절을 찾기 위해서는 관주를 이용하면 좋다. 그러나 병행 구절은 단지 참고용이지 그것으로 본문을 대치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각 권은 각자의 독특한 신학을 가지고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맥의 흐름 속에서 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나)➡본문을 전후하여 원인이나 결과가 제시되어 있거나, 본문의 의미를 밝혀 주는 단서가 나와 있을 수 있다. 아울러 본문의 배경에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다)
▶•1)(막 2: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막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7,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막 4: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그 날은 안식일인데, 군중들에게 (큰소리로) 말씀을 가르치느라 피곤하셨고, 안식일에 대한 율법적인 시비로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피곤하셨고, 제자들을 택하시는 문제 등
➡예수님의 하루 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3:20-21 식사할 겨를도 없이 분주하심, 예수님의 친족들이 미쳤다고 함 3:22 서기관들의 비방과 예수님의 논쟁 3:31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음 4:1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심 4:10, 34 홀로 계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비유를 해석해 주심 4:38 그리고 본문을 보니 저녁때가 되었고, 예수님은 매우 피곤하신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폭풍이 치는 배에서 주무셨던 것이다.
2)⇒광풍으로 인하여 물이 배에 가득 찰 정도이고, 제자들 중에는 빼어난 뱃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두려워할 정도
➡본문의 광풍을 이해하려면 갈릴리 바다의 지정학적 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갈릴리 바다는 동쪽에 가파른 절벽이 있고 차가운 기류가 헤르몬 산이나 다른 곳에서 내려와 가파른 언덕 사이의 좁은 곳을 지날 때 호수면 위의 가열된 공기와 충돌하여 맹렬한 바람이 생겨나고, 이에 의해서 높은 풍랑이 치는 것이다. 아침이나 저녁보다는 오후에 바람이 세차게 불기 때문에 고기잡이는 보통 밤에 하지만, 저녁에 일어난 바람은 더욱 위험하다. 이런 때의 폭풍은 엄청난 세력을 동반하여 수면을 때리고, 높은 파도가 배 위를 덮쳐서 매우 위험하게 된다. 경험이 많은 제자들조차 공포에 떨었을 만큼 위력 있는 폭풍이었다.
3)⇒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자연을 창조하신 창조주와 같이 있는데 다른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40절에 보니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주님이 함께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주님보다는 큰 광풍에 온 마음이 빼앗겨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래서 이를 책망하신 것이다.
4)제자들의 호칭은 왜 이런가?
⇒제자들은 예수님을 아주 특별한 선생으로 받아들이고, 아직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선생으로 알 뿐이다. 메시아로서 그들의 주님으로서 알고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이 호칭은 그들의 주님에 대한 인식과 그들과 주님의 관계에 대해 말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에 또한 그들은 그를 ‘주’로도 믿지 못한 것이다.
5)⇒주 예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믿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과 그 분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6)⇒38절의 두려움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41절의 두려움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차원이 다른 분을 경험하게 된 데 대한 두려움
➡38절: 무서워함, 자신의 무력함, 광풍에 대한 공포; 39절: 평온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 경험; 41절: 자연 만물을 지배하시는 주님에 대한 영적인 경외심
→전자는 상황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이고, 후자는 주님의 일하심과 위대하심에 대한 경외감으로 인한 두려움이다. 겁을 내는 것과 경외심을 갖는 것은 다르다.
<참고> 성경 해석의 일반적 원칙
1. 문법적 해석(Grammatical Interpretation)
(1) 문맥을 따라 해석하라.
1) 문맥을 무시하기 쉬운 경우
<1> 성경 구절을 개별적으로 암기하는 것
<2> 같은 단어끼리 문맥을 무시하고 연결시키는 것
2) 문맥에는 근접 문맥(immediate context)과 원접 문맥(remote context)이 있다.
•근접 문맥은 어떻게 파악하는가?
*앞 뒤 문맥과 함께 그 구절을 읽을 것
*전체 대의를 파악한 후 구체적 구절을 살필 것
*문맥상 이것은 무슨 뜻일까? 질문을 던져 볼 것
•원접 문맥은 어떻게 파악할까?
*그 책을 기록한 목적을 먼저 이해하라.
*성경 전체의 흐름을 소화해야 한다.
※성경의 대부분은 앞 뒤 문맥이 있으나 문맥이 없는 경우도 있다. 문맥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문맥에서 의미를 짜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2) 어휘를 이해하라.
<1> 단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뜻이 변한다.
<2> 단어는 서로 달라도 의미는 같거나 유사한 경우도 있다.
<3> 같은 단어라도 상이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를 공부하는 방법
*사전을 찾을 것
*문맥에서 단어의 뜻을 공부하라.
*성구 사전을 사용할 것.
(3) 문법을 따라 이해하라.
(4)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 글은 저자의 목적과 구상에 따라 쓰여진다.
•목적과 구상을 찾는 법
*목적에 관한 언급이 있는지 살필 것
*저자가 무엇을 반복적으로 언급할 때 대개 그것은 그 책의 목적을 시사해 준다.
*책의 구성을 볼 것.
2. 역사적 해석 (Historical Interpretation)
"당시 지평" "지금의 지평"
(성경 당시) (해석자의 현대)
•역사적 해석을 위한 기본 가정
<1>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비추어서만 이해 될 수 있다.
<2>어떤 말이든 저자의 마음에서 기원된 대로 생생한 말로 인식될 때야 비로소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
<3>해석자가 합당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저자들을 이해한다거나 그 말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장소, 시간, 환경 및 그 시대 사조가 그 당시 쓰여진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와 “지금”의 간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을 부당하게 영화(spiritualizing), 도덕화(moralizing), 심리화(psychologing)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성경을 현대화(modernizing)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을 현대의 잣대로 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자의 잣대로 재는 것이다. 해석자는 성경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20세기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1세기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신구약 성경의 배경 역사 연구를 통해서이다. 각 권의 역사적 배경, 지리적 배경,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성경을 통해서 / 구약의 역사는 신약의 배경; <2>읽을 때 노트하라; <3>관주 성경의 사용; <4> 지도를 사용하라;
<5>다른 참고 서적 (배경사, 성구사전, 주석 등)
*그러나 이 일에도 극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 배경의 역사, 문화, 종교를 연구한 다음 그것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그 ‘잣대’로 성경을 마구 재는 것은 역사적 해석의 극단적 오류이다. 배경 연구는 어디까지나 성경 이해의 보조 수단이지 절대적 평가의 수단이 아니다. 성경의 기록과 어긋날 때, 성경을 기준으로 배경사를 비판해야 한다.
*또한 배경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경 당시의 독자와 현대의 독자간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통 분모를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성경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 ‘당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3. 성경적 해석(Scriptural Interpretation) 혹은 신학적 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
종교 개혁의 슬로건 중의 하나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이다. 당시 로마 카톨릭이 교회의 전통으로 성경을 왜곡하고 있었기에, 개혁자들은 “성경이 성경의 해석자이다(Scripture interprets Scripture).”라는 성경 해석 원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해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말은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해석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것이다.
왜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성경의 원저자(Primary Author)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설계자로서 다양한 재료들(인물, 역사, 언어 등)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완성하셨다. 따라서 성경의 각 부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 부분을 볼 때 다른 부분과의 연결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성경의 연결을 “유기적 통일성”이라고 부른다. 신구약 성경은 유기적인 진전 속에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기적 통일성을 무시하고 해석하면 엉뚱한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성경의 통일적 구조를 찾을 수 있는가?
<1> 병행 구조를 찾을 것
*병행 구절인지 확인
*양쪽 말씀의 차이점(독특성)과 유사점(통일성)에 주의
*짝을 찾을 때 표현상의 짝을 실제상의 짝으로 무조건 단정하지 말고 앞 뒤 문맥과 주제를 살피고 찾아야 한다.
<2> 더 포괄적 의미에서 성경 전체의 맥 속에서 각 본문을 풀어야 한다.
*성경 전체의 맥은 무엇인가?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해석을 신학적 해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의 흐름”이라고 본다.
*평신도 입장에서 성경의 맥을 바로 이해하려면 중생한 이성으로 성경 전체를 많이 읽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4. 성령의 조명하심을 의지하라.
문법적 해석, 역사적 해석, 성경적 해석, 이런 원리들의 적용만으로 성경이 해석된다면 성경 해석은 이러한 학문 훈련이 된 사람의 독점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딤후 3:16, 벧후 1:21)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이기 때문에 성령과 호흡이 맞아야 바로 해석될 수 있다. 성령과 호흡이 맞으려면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를 못 보는 눈뜬 소경(요 3:3)이요, 하나님 나라 밖의 이방인이다(요 3:5). 육에 속한 자연인은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한다(고전 2:14).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신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영적으로 분변한다(고전 2:12-15).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자동으로 신령한 자가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 속에서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갈 5:17). 육체의 소리를 들으면 성령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육체의 소욕이 심령에 차지하는 비중만큼 성령의 음성은 희미하게 들린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육체의 소리의 다이얼을 꺼야 한다.
육체의 소리의 다이얼을 끄고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성령 충만의 한 방면이다.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기능상(functionally)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엡 5:18, 골 3:16)
말씀 충만의 길은(시 119편) <1> 말씀의 가치 인식 <2> 소유 열망 <3>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말씀이 충만할 때 성령의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