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온 몸에 새겨라
박광리 저, 생명의말씀사, 2012년 6월 15일 초판발행, pp.199, 10000원
(2013년 12월 12일 읽음)
(책에서 소개) 분당우리교회 찬양사역자. 의료정보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던 그는 20여년간 예배 현장에서 평신도로 찬양 사역을 해 오며 평신도의 입장에서 진정한 찬양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이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삶에서도 찬양이 이어질 수 있도록 찬양의 의미들을 직감적이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이미지로 설명하며, 찬양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 추천의 글) 진정한 찬양은 창조주를 아는데서 나오는 자연스런 반응이어야 합니다. ... 찬양은 뼛속까지 깊이 하나님으로 가득해야만 선포될 수 있는 신앙의 정수임을 이야기합니다.
(소감) 찬양 사역자로 섬기면서 찬양이 무엇인지, 누구를 찬양해야 하는지,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사람이, 그 각각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하며 깨달은 것을 성경적으로 잘 정리했다. 1부, “찬양하는데 왜 공허해질까?”에서는 찬양이 삶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2부 “나는 누구를 찬양하고 있을까?”에서는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 북상한 것을, 3부 “찬양이 삶에 연결되도록 온몸에 새겨라”에서는 마음, 손, 발, 얼굴, 눈 및 입과 찬양을 연결시켜서, 말 그대로 온 몸으로 찬양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기술했다. 찬양 사역자로 섬긴다면 저자의 생각과 공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요약>
* 들어가면서
찬양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것은 인도자가 아니라 회중이다. 인도자는 하나님과 회중의 다리 역할만 잘 하면 된다.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면 분명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즉, 하나님이 이 자리에 함께하심을 믿어야 한다. 찬양은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랑과 선포이다. 복음의 진리에 빚진 자라는 생각이 있다면, 예수님이 너무 감사하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크게 강조할 부분: (1) 찬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2)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사람만이 삶의 순종으로 연결할 수 있다.
(방법)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진정한 찬양을 할 것이며 그 진정한 찬양이 삶의 순종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 말씀 앞에서 나의 온몸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새겨 넣으며, 온몸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며, 온몸으로 순종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1부. 찬양하는데 왜 공허해질까?
1. 자라지 않는 찬양은 공허하다.
* 찬양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의 마음을 열고, 예배를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찬양은 예배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흉내 내는 찬양은 진정한 찬양이 아니다. - 가사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 걸음마 수준의 찬양 –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경험하는 데에 자라야 한다.
* 찬양을 결코 쉽게 부르지 말라 –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심오하고 깊은 의미를 알라.
*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피요하다.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다.
2. 삶과 분리된 찬양은 공허하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공적으로 드러내라. 성경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삶 속에서의 찬양이다.
* 현실에 뿌리를 둔 찬양 –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
* 움직이는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라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나 한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는 데 목적이 있다. 주일날 교회에서 뿐 아니라 나머지 6일 동안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천명하고, 내 삶이 ‘찬양하는 그 시간’과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3. 찬양의 대상을 알지 못하면 공허하다.
* 찬양의 본질은 찬양하는 행위에 있지 않고 ‘찬양의 대상을 아는 지식’에 두고 있다.
* 찬양이 노래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말씀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 자주 등장하는 가사들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좋다.
* 말씀에 근거한 찬양이 되도록 하고 그 찬양이 삶 속에서도 드러날 수 있도록 하라.
*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매 순간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놓여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타락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2부. 나는 누구를 찬양하고 있을까?
1. 대표적인 호칭 ‘하나님’을 알라
* 욥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셨는가를 통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한다.
창조자 하나님
아름다운 하나님
친구가 되어주신 두려운 하나님
공의 곧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2. 하나님의 분명한 이름 ‘여호와’를 알라
* 여호와 = “나는 스스로 있는 자”
- (1) 모든 존재의 시작점이 되신다.
(2) 하나님의 백성과 항상 함께 하신다.
(3)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 – 여호와 이레(준비하신다), 여호와 로이(목자되신다), 여호와 닛시(승리되신다), 여호와 마케(대적하신다), 여호와 그몰라(보복하신다), 여호와 체바웃(만군의 주인이시다)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3.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를 알라
* 성육신 하신 예수님 – 하나님이 인격적 교제를 위해 하나님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이다.
* 찬양받으실 이름 예수 – 찬양은 내가 예배하고 있는 그 유일한 대상을 자랑하고 선포하는 행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완성이며 지금도 동일하게 능력을 베푸시는 모든 이름 중 가장 뛰어난 이름이다.
*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 - 그것이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졌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 이 땅에서의 육신의 아버지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사랑이시다. 이것을 우리의 이미지에 분명히 심고 찬양할 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3부. 찬양이 삶에 연결되도록 온몸에 새겨라
1. 마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인정하라.
*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
*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창세기 6장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 마음은 전쟁터이다. 끊임없이 갈등과 충돌이 벌어진다. 게다가 사탄도 우리의 마음을 노리고 있다.
*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탄이 노린다. 마음을 다해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교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이다.
2. 손: 능력의 하나님을 붙잡아라
* 찬양할 때 손을 쭉 펴서 하늘을 향할 때는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하며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겠다는 헌신을 나타낸다.
* 우리의 손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높여드리는 손이 되도록 정결과 겸손을 위한 삶이 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3. 발: 하나님의 거룩함을 쫓아가라
* 찬양할 때 발을 움직이며 춤출 수도 있다.
* 그러나 찬양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찬양팀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도 중요하다. 나는 기쁨으로 춤을 추며 찬양할지 모르지만 예배에 나온 그 누군가가 그 모습 때문에 신앙생활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을 회중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참된 기쁨의 찬양이 될 수 없다. 춤을 추면서 찬양하고 안하고는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 찬양하는 그 시간에만 우리의 춤추는 발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예배자로 살아갈 때 우리의 발이 어때야 하는지 바라보는 관심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룩
* 성경에 나타난 거룩에 대한 두 가지 개념 (1)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거룩, (2)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온전한 삶으로서의 거룩
* 거룩이 극대화 되는 장소가 바로 예배의 장소이다. 예배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경외감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거룩케 됨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는 존재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4. 얼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
* 예배 속에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함으로 나아갈 때만 가능하다.
* 만난다는 것은 서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의 육체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 신약에 오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땅으로 내려오셨다.
* 우리가 영광스런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담대함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광
* 영광의 두 가지 측면 (1)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심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무관하지 않다.
* (2)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반응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 인간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의무가 주어져 있다.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볼 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 찬양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2) 인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과 같은 일들을 만날 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3)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ㅡ렇다면 우리의 얼굴에 근심과 낙담의 표정이 아닌 기쁨과 감사의 미소가 드러나야 한다.
5. 눈: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라
* (3가지 눈) 육안, 지안, 영안
* 지안은 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눈이다.
* 우리 인생을 가장 잘 아시고 지금도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진리 안에는 영안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 인간에게 영안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육신의 눈이 밝아져 육신이 좋아할만한 것들에 욕심을 내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피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예배와 찬양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예배에 참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육신의 눈으로 찬양팀, 연주자, 성경, 설교자 등을 바라본다. 이때는 판단하고 저울질하고 연주와 노래를 낱낱이 해부한다.
*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므로 영적인 눈을 가질 수 있다. 영적인 눈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눈이다. 그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성령님은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눈을 밝게 열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하신다. 이런 눈을 밝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서야 한다. 말씀을 볼 때마다 우리를 조명해 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눈이 밝아짐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예배에 나와서 찬양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육안을 잠시 닫고 영의 눈을 뜰 필요가 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8-19).
6. 입: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라
* 입은 말하는 소리를 전달하는 기능적 역할밖에는 없는 통로이다. 실질적인 말의 근원지는 마음이다.
*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결정된다. 우리가 입을 조심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내용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우리의 입이라는 통로를 사용하신다. 언어체계, 즉 말과 글을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노라 해도 그것이 선포되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분명히 믿음이 존재하는 영역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적으로 선포되고 시인되어지는 과정을 통해 구원은 이루어진다.
* 찬양한다는 것은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노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 찬양은 예배의 대상을 향하여 ‘그분의 성품을 자랑하고 하신 일들을 선포하여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찬양은 꼭 노래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을 향하여 올려드리면 되는 것이다.
* 신령한 찬양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찬양이다. 창조주 앞에서의 찬양이므로 그분을 모르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심이 없다면 그 찬양을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실까?
<결론>
*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그리고 일하심에 대한 선포이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정확히 알 때야 비로소 찬양이 찬양다워진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 찬양을 잘 한다는 것은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이 아니다. 찬양을 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깊이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