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의 생가를 세 번 방문한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남아공 발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사역을 하면서 오래도록 미뤄온 독서는 <넬슨 만델라>의 영문판 자서전과 그의 평전들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절대적인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에 돌아가면 즉각 구입해서 읽을 참입니다. 그 분에 대한 글은 그의 자서전과 평전을 읽고 난 뒤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몇 자 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위독한 상태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의와 싸운 전사요 고난 받던 혁명가이자 동시에 위대한 성자입니다. 27년간이나 로벤스 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결코 불의한 백인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일생을 비폭력 저항으로 그들과 맞섰습니다. 그가 성자인 이유는 그의 위대한 용서 때문입니다. 백인 정권이 남아공 국내외의 거센 압박에 굴복하여 마침내 만델라를 석방해주었고, 만델라는 그렇게 해서 결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어떤 보복도 자행하지 않고 백인의 과거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했습니다. 마치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을 살해하려하고 감옥에 보내고 고문하며 탄압한 세력의 온갖 죄악을 용서하고 (심지어 전두환까지) 박정희 기념관을 앞장서서 세워주었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백인 정권의 역대의 범죄는 샅샅이 조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백서로 만들었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역사적 사실의 규명과 분명히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9년 째 남아공에 있는 동안, 저의 집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만델라 생가>와 바로 근처의 <학생 민주화 운동 기념관> (Hector Peterson memorial museum)을 세 차례 방문했습니다. 헥터 피터슨 박물관은 1976년 백인 교육 정책에 반대해서 일어난 대대적인 학생 운동이 발발했을 때, 백인 경찰의 발포로 최초로 죽은 12살짜리 아이였던 헥터 피터슨을 기념해서 세워진 박물관입니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소요가 확산되면서 700명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 인근의 500미터 떨어진 만델라가 살던 집은 작고 아담하고 소박한 벽돌집에 불과합니다. 감옥에 가기 전, 그리고 석방 후의 그의 검소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집이지요. 제가 처음 남아공 갔을 때, 시골 지역에 선임 선교사님과 함께 교회를 세운 뒤 그곳의 청소년들을 몇 년 동안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만델라 생가와 학생 운동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오늘의 자유를 얻게 되었는지, 그들의 선배가 자유를 위해 어떻게 피를 흘리며 희생을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남아공 흑인들은 자신들이 피의 댓가로 얻은 자유를 남용하고 오용하는 가운데 서로를 속이고 해치고, 강탈하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저항했던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델라는 그들에게 바로 그 저항과 희생의 영원한 상징적 인물이며, 거의 종교적 수준의 경외의 대상입니다.
백인들도 거의 모두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니 남아공, 아니 아프리카의 희망의 코드는 영원히 <만델라>가 될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곳의 남아공 선교사들 가운데 그곳을 방문해본 적이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틈만 나면 그분들에게 거긴 꼭 가봐야 남아공 흑인들의 과거와 아픔, 상처를 알고 그들을 보듬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역설하나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가보려 하시나 대부분이 매우 바쁜 일정 때문에 그 곳을 못가시는 것을 늘 봅니다. 남아공 선교사님들은 거길 꼭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만델라가 살던 집과 학생 운동 기념관을 세 번 방문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로서 제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더불어 자유의 소중함과 미래의 희망을 함께 품기 위함이었습니다. 만델라가 그들에게 종교적 수준의 경외의 대상인 것은 제가 여러번 체험했습니다. 한번은 저의 집이 실수로 전기 요금을 납부하지 못해 전선 절단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부랴부랴 요금을 내서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이 경우 절단하러 다니는 기술자들이 절대로 절단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에 한전 (우리식으로 말하면) 직원들이 차를 타고 와서 회사에서 준 통지서를 보여주면서 이 서류대로 자신들은 전선 절단을 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아직 회사의 다른 부서에는 저희의 납부 사실이 전달되지 않은 것이죠. 이 경우 제가 납부 영수증을 보여주면 그냥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은 그건 모르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며 전봇대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사실 그것은 돈을 주면 그냥 가겠다며 협박하는 것임을 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죠. 저는 목사로서 뇌물을 줄 수는 없어서 하소연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30분을 부탁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 집으로 연결된 전선을 전봇대에 올라가 일단 절단해 버리면 며칠을 고생하고 새로 연결할 때 사용자가 그 비용을 다 내야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요지부동이자, 마지막 저의 수단은 <만델라>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아공은 만델라의 나라다. 나는 이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너희는 이 위대한 만델라를 가지고 있다. 너희는 만델라의 사람들이다. 만델라와 함께 불의와 맞서 싸운 너희는 위대하다. 너희가 이래선 되겠느냐. 내 부탁을 제발 들어 달라...."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내 말을 들은 그들은 장비를 챙기고 묵묵히 그냥 떠났습니다. 이것이 만델라의 힘입니다.
이제 만델라, 그가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 마음 가운데 많은 염려가 있습니다. 만델라는 흑-백 갈등 속의 평화의 중재자로 그 존재 자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고, 나아가 점점 심화되는 가운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흑-흑 갈등을 완충하는 스프링 역할을 해온 사람입니다. 그가 떠나면, 이 제동 장치가 점차적으로 아니 어쩌면 순식간에 풀릴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은 만델라의 위대한 유산은 모든 인종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 말하며 낙관하지만, 저는 사실 많은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델라의 다가오는 죽음과 더불어 미래가 염려되는 이 땅 남아공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남아공이 만델라가 꿈꾸던 <무지개의 나라>, 여러 인종과 사상, 다양성이 공존하며 어우러지는 그런 나라가 되어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이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P.S. 한국에 머물면서 가족과의 휴식을 가장 우선시 한 이유로 많은 분들께 연락도 못드리고 또한 만나뵙지도 못했습니다.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사진 1 - 넬슨 만델라
사진 2 - 최초의 희생자 헥터 피터슨 (12세)를 형과 누나가 울부짖으며 병원에 데려가는 모습. 이 사진은 퓰리처 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분노와 슬픔을 자아냈다.
사진 3 - 남아공의 청소년들과 헥터 피터슨 기념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