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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세계체제와 개종전도 금지!

출처: 최**(인터콥 본부장) 글/개척정보 2013년 5월호, Vol. 302, pp. 1-4

 

소련의 해체 이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갈등의 역사는 끝났다. 이제 세계는 단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는 악마 소련이 무너졌으니 세계는 민주주의 지배체제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릴 것을 장담했다. 그리고 다니엘 벨, 피터 드러커 등 미래학자들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인간New Human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설파했다. “원시 고대 개념의 종교가 국제관계에 영향을 주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인류는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위대한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인간과 기술이 통합되는 신인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미래학자들과 지성인들은 영원한 평화와 위대한 신인간의 시대의 도래를 찬양했다. 그들이 장담했던 대로 급속히 디지털 인간, 스마트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 기술의 급진전에 따라 보통 사람들은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세계가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얼마나 빠른지 전문가들조차 5년 후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 애플, 삼성처럼 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신기술의 발달을 주도하는 기업은 갈수록 시장 지배력이 강력해지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서서히 도태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인간과 기술이 통합되는 세계로 재창조되어 가고 있다. 바로 ‘위대한 인간Great Human’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도래를 경험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는 위대한 하나님의 시대에서 ‘위대한 인간’의 시대로 급속히 재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갈등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것인가? 그리고 고대 개념의 진부한 종교는 더 이상 인류 사회에 작용하지 않을 것인가? 1990년대 초에 미래학자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예언했을 때, 역사학자요 사회학자인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예견했다. 후쿠야마를 좇아 사람들이 세계의 평화를 노래할 때, 소련해체 10년 후인 2011년에 9.11 사태가 발발했다. 종교문명의 지구적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후쿠야마가 아니라 사무엘 헌팅턴이 맞았다고 논평했다. 사고가 단편적인 사회학자들과 달리 사회학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자인 그는 인류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9.11 사태는 4천년 전 예루살렘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역사과정에서 팽창하고 또 팽창하여 지구적 갈등으로 팽창한 것이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8년을 동분서주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을 치르느라 미국 경제만 어렵게 되어 부시 전 대통령은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하여 임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세계경제는 지금까지 허덕이고 있다. 세계경제의 버팀목인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세계경제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 미국 지도부는 빚더미에 쌓여 어떻게 헤어날지 몰라 하는 연방정부 및 주정부들을 놓고 예산절감 강제조치Sequester 문제로 갈등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9.11 사태 이후 종교갈등의 문제가 지구적 이슈로 급부상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지구적 보편화를 통해서 영원한 세계평화를 구축하고, 테크놀로지(기술)의 발달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던 신세계질서 구축의 위대한 프로젝트가 예기치 않은 암초에 걸린 것이다. 도대체 종교문제는 왜 이리도 끈질기단 말인가! 영원한 세계평화를 추구해 온 글로벌 엘리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평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종교간 평화가 곧 세계평화의 중심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가?

 

종교갈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처방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종교다원주의 기조를 제도화하고 국제규범화하는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는 것이다. 지성사회에서 캠페인을 활발히 전개하고 또 국제규범을 강화하여 종교간 갈등의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집단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종교간 대회기조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종교다원주의 규범을 내부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슬람세계에서는 지구적 이슬람교육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이슬람 지도자 페툴라 귤렌Fethullah Gulen이 주도하고 있고, 세계기독교에서는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이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귤렌은 세계 3대 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합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면서 기반Infrastructure 작업을 구축하고 있다.

 

WCC는 개종전도금지를 기독교 내부규범화함으로써 세계평화, 즉 종교다원주의 세계체제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진리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과의 평화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진리를 추구하라고 한다. 전도하지 말고 사랑의 실천으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스스로 당신의 종교로 옮겨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타종교인에게 전도를 시도하면 그것은 ‘공격적 선교’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예수님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에서 “전파하라”는 단어는 널리 알리고 선포하라(herald, proclaim publicly)는 뜻이다. 사사롭게 와서 묻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가르쳐 주라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 박해로 인해 복음 전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핍박, 순교까지 감당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살전 2:2).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지난해 중동의 한 나라에서 현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수백년동안 조상대대로 이슬람 세계 안에서 생존해 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웃 종교인이 개종하여 당신의 교회 교인이 된 사람이 몇 명입니까?” 그들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 당신 교회 교인 중에 이웃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은 없다고 했다. 종교간 평화가 수백년 지켜진 것이다.

 

나는 전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복음을 증거했던 기독교 역사와 현대 중국에서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감내하며 복음을 전했던 ‘하늘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현지 교회 어른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백 년간 지속해온 이웃 종교와의 평화가 깨지고 핍박이 올거라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들은 현지인 기독청년들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이지만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라!”는 설교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종교간 평화가 절대 규범으로 교회 내에 수백년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인 기독청년들은 스스로 말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그렇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며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WCC는 복음전파를 고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만 위하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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