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건국 과정
약 2천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는 “시오니즘”이 있었다. “데오도르 헤르츨”이 198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온주의자 회의를 개최했고, 그가 시온주의 협회의 초석을 놓았다.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열망을 갖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견인차가 되었다.
1860년 예루살렘 교외에 최초의 유대인 거주지 미슈케노트 샤나님이 건설되었고, 1882년에서 1903년 사이에 이스라엘 땅으로의 이민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로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이 한참 진행 중에 있을 때에도 이민 행렬은 줄지 않고 더 늘어났을 만큼 유대인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계속해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A. J. 벨푸어는 유대인이 시오니즘에 따라 과거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다. 이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은 시오니즘 운동의 재정 후원자인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혔던 것이며, 1922년 국제연맹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결정했을 때 그 전문(前文)에 포함되었다. 그 결과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벨푸어 선언에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1948. 5. 14) 이전인 1918-1948년에는 이스라엘 이민자들이 영국의 통치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이라고 잘못 불리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영국의 통치에서 독립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한 반대와 방해는 끊이지 않았다. 1936-1939년에는 아랍군의 반 유대 폭동이 일어났었고, 1937년에는 팔레스타인위원회가 유대인과 아랍 국가들에 대해 영토 분할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1939년에는 영국이 유대인의 이민을 제한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1939-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내 유대인 대학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대학살의 큰 고난을 겪고 나서 건국하게 되었다. 1947년에 국제연합의 결의로 팔레스타인에 아랍과 유대인의 개별 국가를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국제연합의 관리 하에 두게 했다. 드디어 1948년 5월 14일에 영국의 통치가 종료되고, 이 날 텔아비브에서 열린 시온주의자민족평의회에서 데이비드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미국과 영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11분 만에 승인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