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11:17-27
(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요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쯤 되매
(요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요 11: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 11: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요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절 :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은퇴한 신학교 교수인 Walter Bouman이 그의 몸 속에 암이 퍼져서 약 9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많은 일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중 한가지는 코미디언 Johnny Carson의 재치 있는 말이었다: "당신이 죽은 이후 몇 일 동안 머리카락과 손톱은 계속 자랄 것이지만, 전화 오는 것은 점점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그 유머가 놀라운 강장제 역할을 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혼을 떠받치는 무언가가 저 깊숙이 있었다.
Bouman의 신문 칼럼에, 그는 자기를 격려해 주었던 위대한 힘의 원천에 대해 썼다: "기독교인에게 좋은 소식은 나사렛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고, 그 죽음이 더 이상 그분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삶을 맡아왔지만, 이제는 죽음을 맡으라는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이 결정권을 가지실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의 친한 친구인 마르다가 그녀의 오라버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음을 본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25-26절).
매일의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피할 수 없는 "내일"이 올 것이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분이 결정권을 가지실 것이다.
- David McCasland -
육과 영이 분리될 때
내 혼, 내 몸을 그분께 맡기겠네.
우리가 노래하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격통을 영원히 제거하셨네.
- Anon -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에, 삶에서나 죽음에서나 그분이 결정권을 가지십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천국이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 실재하는 곳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삶은 무의미합니다.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삶은 비극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보여 주셨듯이 우리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살 때든 죽을 때든 결정권을 전적으로 그분께 맡기면 평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