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스와 헤테로스
신동수 (계명대 교수, 화학공학, synnds@kmu.ac.kr) 저
모든 살이 똑 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 고린도전서 15:39, 개역한글
All flesh is not the same: Men have one kind of flesh, animals have another, birds another and fish another. - 1 Corithians 15:39, NIV
All flesh is not the same flesh: but there is one kind of flesh of men, another flesh of beasts, another of fishes, and another of birds. - 1 Corinthians 15:39, KJV
凡肉体各有不同。人是一样,兽又是一样,鸟又是一样,鱼又是一样。- 哥林多前书 15:39
헬라어(그리스어)에는 ‘다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allos’와 ‘heteros’가 있다. 그러나 이 두 단어의 뜻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 이 단어들을 잘 구별해서 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신약성경의 한두 구절을 인용하여 두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고, ‘allos’에 얽힌 하나님의 지혜를 잠시 살펴보려 한다.
‘heteros’는 영어의 ‘different’에 해당하는 말로 A와 B가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3:35의 “그래서 다른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So it is stated elsewhere: "'You will not let your Holy One see decay.').’”와 히브리서 5:6의 “또 다른 곳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And he says in another place, "You are a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에서의 ‘다른’이라는 말이 ‘heteros’로 되어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다르다’라는 의미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쉽다.
‘allos’는 영어의 ‘another’, 또는 ‘other’에 해당하는 말로 A와 똑 같은 ‘또 하나의’ A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4장 16절의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또 다른 보혜사(another counselor)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에서 ‘또 다른’이라는 말이 ‘allos’이다. 여기에서 ‘heteros’를 쓰지 않고 ‘allos’를 쓴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또 다른 보혜사’(another counselor)는 ‘성령’을 가리키는데 ‘성령’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같은’ 분이라는 뜻이다. 삼위일체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9절의 “모든 살이 똑 같은 살은 아닙니다(not the same).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All flesh is not the same flesh, but there is one [flesh] of men, and another flesh of beasts, and another flesh of birds, and another of fish. - 1 Corithians 15:39, NASB).”에서의 ‘똑 같은’도 ‘allos’이다.
여기에서는 사람의 살과 짐승의 살과 새의 살과 물고기의 살이 각각 다르다는, 다시 말하면 단백질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단백질은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미노산의 종류와 수뿐만 아니라 그들이 결합해서 단백질이 될 때의 배열순서까지도 동물의 종류에 따라 모두 독특하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실 때 동물의 단백질을 똑 같은 것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처사였다고 생각된다. 동물이 먹은 단백질은 소화기관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그 동물의 단백질구조에 맞은 배열로 재구성된다. 만약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 생긴다. 누가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닭고기를 먹었다고 하자.
그 얼굴의 상처가 닭고기 단백질로 채워져서 닭털이 난다고 가정해 보라. 소름끼칠 일이 아닌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2차방정식으로 창조하셔서 포물체 운동을 하게 만드신 것도 그렇다. 만약 이 법칙이 3차식으로 되어 있다면 야구를 할 수가 없다. 공을 치기만 하면 3차식의 곡선을 그리며 하늘 끝까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다 떨어지는 백구의 궤적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에 고개 숙여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