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김무현 저 (Texas A&M 대학교 해양ㆍ토목공학)
1) 성경적 세계관 정립의 방해요소 부수기
폴 발레리(Paul Valéry)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écu).”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즉, “크리스천들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지 않으면 세속적 세계관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 Paul Bourget
나의 매일 매일의 삶에서 성경적 세계관을 바르게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들 두 가지를 적어보십시오. (예: 술, TV, Internet 등)
그것들이 어떠한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그것들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더 바른 성경적 세계관과 삶을 형성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함께 나누고 결단하여 봅시다.
2) 기독학술교육동역회(DEW: Disciples with Evangelical Worldview)
한국에 크리스천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성경적인 세계관 및 삶의 구체적인 구현을 위해 실천하며 섬기고자하는 성경적 세계관 모임 ‘기독학술교육동역회’ DEW(Disciples with Evangelical Worldview)가 있습니다. (미국에도 Answers In Genesis (www.answersingenesis.org), Focus on the Family (www.family.org), Discovery Institute (www.discovery.org; www.uleaders.com)등 성경적 세계관 운동이 있음) www.dew21.org 또는 www.view.edu를 방문하셔서 어떠한 사역들이 진행되고 있고, 어떠한 일들에 동참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3) 경배, 사랑, 사용의 대상?
성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고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며 물질은 “사용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관점이 개인의 삶에 잘못 적용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이나 돈을 경배하거나 사랑하면서 삽니다. 바로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에 젖어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금송아지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sorts of evil, and some by longing for it have wandered away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griefs. - 1 Timothy 6:10, NASB
명예나 권세를 위하여 일생동안 영적인 삶과는 무관한 채로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15-17)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경배하거나 사용하면서 삽니다. 교황/성직자나 절대적 권력자나 재벌총수 등을 숭배하거나 반대로 주위의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없으면서 평소에 교회도 안 다니다가 자녀들의 입학시험이 가까워지면 백일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개인의 치부와 영광을 거둬들이는 이단교주나 삯군 목사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물질을 사용의 대상으로 옳게 구분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위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거는 그러한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한일서 5:21)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 같이 물질적으로 부요치 못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부는 복이 아니라 은사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이상의 부를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주의 나라와 일들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올바로 쓰여질 때, 그것이 바로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움켜쥐고 있을 때 오히려 영적인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남보다 더 풍부하게 (돈이나 지식이나 재능이나 건강이나 시간이나) 주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들을 위하여 쓰라고 주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1-33)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서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19-21)
"Do no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on earth, …… "Bu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 Matthew 6:19-21, NASB
하나님께선 부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통도 하나님 나라와 그 일을 위해서 쓰라고 허용하십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고통도 은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C.S. Lewis)는 “고통이란 변장한 하나님의 복” 이라 하였습니다. 혹시, 남보다 더욱 쓰라린 어려움이나 고통을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중에 무용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허락하신 것일 겁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의 위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려웠던 경험들 하나 하나가 나중에 비슷한 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살려내고 격려하며 복음을 강하게 전도할 수 있는 귀한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4)
[적용] 오늘날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남보다 풍부하게 허락하신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어떻게 쓰여질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고 나누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5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eating and drinking, but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 Romans 14:17, NASB
4) 성경적 세계관대로 살아가기
김동호 목사의 설교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포항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육하는 대학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세워진 한동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의 교정은 주위 시설이 미흡한 외딴 곳에 있기 때문에 전교생을 위한 기숙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교 재정의 부족으로, 계속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할 만한 기숙사 증축이 어려워지자, 입학생들에게 그를 위한 100만원씩의 자발적 기탁금(voluntary donation)을 받기로 했답니다. 하지만, 기탁금 기부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 관한 한 공평한 권리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근 수용량에 비해 계속 사생이 늘어나는 바람에 결국 그 중 일부는 할 수 없이 2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하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누가 그러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기숙사를 떠나야 할 것인가를 놓고 교원 및 학생들이 같이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세상 방식대로라면 100만원씩 기부금을 낸 사람들이 “우리들은 기부금을 냈으니까 여기 남을 권리가 있고, 기부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고 행하려고 노력하던 학생들이 “기부금을 낸 사람들이 오히려 못 낸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을 것임으로 퇴사하여 하숙을 하자”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에는 집단적 이기주의의 극단적 표현들로 매우 어둡고 혼탁합니다. 이 세상의 방식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최대로 활용하여 남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누리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생들 사회에서 이와 같이 성경적인 방법으로 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직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할 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세상에 비출 수 있고, 세속적 세계관에 젖어있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적용] 오늘날 나의 가정, 교회, 직장, 학교 등에서 위의 예와 비슷한 문제점이 있어서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갈등들이 있습니까? 그 안에서 성경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해 보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십시오.(출처 : "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