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의 기본구조 1
김무현 저 (Texas A&M 대학교 해양ㆍ토목공학)
성경적 세계관과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과연 밤하늘에 펼쳐지는 저 광대한 우주를 비롯하여 우리 삶의 한순간 한순간들이 그냥 우연의 산물일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절대자에 의한 다스림의 결과일까? 본 장에서는 성경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내용들을 통해 어거스틴, 카이퍼, 도예벨트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 개혁주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성경적 세계관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이론의 종류만큼이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원리적으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성령의 조명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전적으로 초월적 창조주와 그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으며,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면 자연히 창조, 타락, 구속의 핵심 요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은 세계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그 본질과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다른 여러 중요 내용들도 제시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점을 간추릴 수 있겠습니다.
첫째,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완전하게 창조되었고, 죄로 인해 타락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의해 회복되었고 또 그 분의 재림으로 완성 될 것이다.
둘째, 세계는 시공적으로 유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존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셋째, 세계는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는 단순히 물리적 현상만 일어나는 자연세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역사 하시며 의미를 부여하시는 영역이고, 또 여기에서 인간은 단순히 지상적, 육체적 존재로만 머물다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삶을 영위하며, 또 그 삶의 의미도 내세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은 첫 번째에서 말한 창조, 타락, 구속(creation → fall → redemption)의 내용에서 종합적으로 잘 구현된다고 보이는데, 이것이 개혁주의의 성경적 세계관의 기본 틀이고, 기독교 철학의 종교적 동인이기도 하고, 모든 기독교적 학문의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1) 창조(創造, Creation: Where did we come from?)
먼저 창세기 1장과 2장을 정독하십시오.
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창조를 전적으로 믿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의 가장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힘있는 선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물질과 생명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까지도 초월자인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선포입니다. 천지만물을 그분의 자유의지로 무에서 유로 창조(히브리어로 바라, Bara)하신 창조주와 그의 선하신 의도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관계는 성경적 세계관과 다른 세계관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며 기독교적 사고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의 필연성이나 어떤 제한에 묶여 있는 분이 아니라(요한복음 4:24) 모든 차원을 초월하신 전능자시며 지금도 살아서 역사 하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피조물과 신의 존재가 뒤섞여 있는 범신론( pantheism)이나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없는 피조 세계만을 인정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와는 구별된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창조는 성경의 창세기에 엄연한 사실로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생물학이나 지질학 등의 연구서적과 같이 모든 상세한 과학적 세부사항을 다 전달하려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창조의 기사는 매우 함축적으로 계시되어 있으며 따라서 보는 이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성경이 비과학적(非科學的)이 아니라 초과학적(超科學的)이며, 여러 가지 차원의 제약에 행동과 사고의 틀이 묶여있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할 수 없는 전제(presupposition)이며 또한 사실로 받아들임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피조세계를 자세히 공부해 보면 많은 창조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위의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전제적 접근(presuppositional approach)의 입장을 취하든 또는 증거적 접근(evidential approach)법을 취하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완전하게 창조되었던 피조 세계는 창조주의 주관하심을 거부하려는 인간의 범죄와 더불어 사망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되며 그 완전성이 훼손되었습니다. 이는 피조 세계가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자연 내적인 힘이나 우연에 의해 더 나은 상태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도(entropy)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물리학의 중요 이론인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13-15에는 모세가 떨기나무 숲에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즉 모든 만물의 창조주(Elohim, -im: 히브리어의 셋 또는 그 이상을 나타내는 복수어미, 하지만 Elohim은 항상 단수 동사와 함께 쓰였음; 즉, 삼위이면서도 하나인 삼위일체가 이 이름에서도 나타남)라 하시고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즉, 모든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또한, 각 개인에게는 인격 안에서 그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4-28에서 사도 바울은 당대에 가장 철학과 문명이 발달했다고 자부하던 아덴의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Lord of the heaven and earth)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창조’의 내용은 세계관 논의와 관련해서 다음의 세 가지 명제로 집약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이 세계를 그의 선한 의지로 무(無)에서 온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특히 처음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히브리어 첼렘)대로(창세기 1:27)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닮은,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에 나오는 생령의 히브리 원어는 “네페쉬(생명, 기력) 하야(호흡하다)”입니다. 즉,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과 영으로 호흡하며 관계를 맺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육신으로는 호흡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창조주와 호흡하고 있지 않는다면, 육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존재입니다.
인류의 죄로 인하여 피조 세계의 죽음과 고통이 시작되고, 처음 창조의 많은 부분이 손상된 지금도, 온 우주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을 묵상하십시오. 지금도 모든 만물을 붙드시며, 또 새로운 생명을 회복하고 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역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3)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로서,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며, 문화적 명령(cultural mandate)을 수행해야할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었습니다(stewardship). 인류에게 최초로 주어진 문화명령인 창세기 1:26-28을 정리하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6-28)
셋째,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은 그의 선하심과 사랑에 있고, 따라서 피조물의 본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유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이며, 따라서 자연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인간의 욕심을 채우며 인간이 영광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사야 43:7과 이사야 43:21의 내용을 정리하여 보십시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7, 21)
‘왜곡된 진리’의 저자 리차드 마우의 지적처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분명하고도 명확한(clear and distinct)’ 존재론적인 간격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자연주의(무신론)나 뉴에이지(범신론, 일원론)같은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의 창조와 창조주에 관한 믿음은 성경적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기독교적인 신관, 인간간, 자연관, 학문관, 도덕관, 결혼관, 역사관, 시간관 등 모든 것의 기초가 됩니다. 사탄은 크리스천과 성경을 공격할 때, 그 기초(창세기)를 집중적으로 공략합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그 위에 쌓은 것들은 저절로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출처 : "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