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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우시더라(요한복음 11:35)

 

본문: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Jesus wept.)

 

* 사람은 자기 감정을 억제할 수 없을 때 울게 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은 남모르게 행한 선행이 아름다운 결과로 드러났을 때이다. 그러기에 눈물은 순수한 감정의 발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보신다고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25:8),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7:17; 21:4)고 말씀하셨다.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죽을 준비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나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호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38:5)라고 하셨다.

 

* 우리도 진지하게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또 하나님께 진실로 고하면 들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가 눈물로 호소할 때에 주님께서 경청할 것이다. 진리를 위해 묵묵히 주님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성도들의 기도, 눈물, 사랑을 다 알고 계신다.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자기보다 더 불행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때에 인간은 감동한다. 이 일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 주님께서는 베다니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고서도 이틀을 더 기다리셨다가 말씀하시기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11:11)라고 하셨다. 사람을 살리실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분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죽었을 때에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표현하신다. 왜냐하면 다시 일으켜 세우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하시고는 14절에서 자기 주위에 있는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나사로가 죽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15절에서는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을 인간들로 하여금 알게 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었더라면 마냥 살 것처럼 거드름 피우는 인간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고전 15:26,27). 주님께서 죄의 결과로 온 사망을 이기셨을 때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키신 것이다. 왜 그런가?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심판주이시며 새로운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4).

 

*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볼 때 인간은 울게 되어 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들은 그 죽음을 비웃을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성도들의 유일한 소망은 우리가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 우셨는가? - 주님은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4:14-16)

 

*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는 생애 동안 세 번 우셨다. 첫 번째는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절함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이 당하게 될 비극을 미리 보시고 우셨다(19:41).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 예루살렘 외곽에서는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렸고 예루살렘은 약탈당했으며 무수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 두 번째로는 겟세마네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우셨다(5:7).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죄인에게 퍼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으실 이유가 없으셨지만 우리 때문에 그 진노의 잔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주님은 그 잔을 받으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12:24).

 

* 세 번째로는 본문에서이다.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죄로 인해 죽음을 맛봐야 함을 보시고 분개하고 슬퍼하실 수밖에 없으셨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마귀 들려 미친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17:17). 본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부활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데, 믿음도 없고 비뚤어진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병든 자와 마귀 들린 사람만 데리고 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실행하시고 올라가셔야 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고통을 언제까지 참아야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 히브리서 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고백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 두어야 한다. 주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멜기세덱의 계열에 따른 것으로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 직분보다 훨씬 우월하신 것이다(7:11).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4:14).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1:1, 요일 1:1, 19:13).

 

* 이사야 53:3에서 그는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주님은 종교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우리가 이 지상에서 겪고 아파하는 모든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그 심경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53:4-7).

 

*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믿음과 지식이 부족하여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왜 당장 해결해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가리키며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계신다. 그래서 어떤 성도들은 진리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했고 목숨까지 바쳤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다른 삶을 예비해 놓으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 비하면 이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원했던 것이다(고후 5:8).

 

 

예수님은 왜 우셨는가? - 사람들에 예수님 자신을 부활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주님께서 나사로의 동네에 오셨을 때, 나사로의 장례는 이미 끝났고, 시체는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나 악취까지 풍겼다. 나사로의 인생은 끝났고 그는 병으로 죽었다. 사람은 병우로만 죽는 것이 아니다. 늙어서 죽고 사고와 재앙, 전쟁 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죽는다. 불확실한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밖에 없다. 좀더 일찍, 좀더 늦게 죽는 것뿐이다. 죽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것은 정통 유대교의 기본 교리이다. 그러나 유대교의 부활의 교리는 명확하지도 않고 온전하지도 않아 마치 그림자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책에 기록된 교리를 실제로 자신에게 적용시키신 것이 본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제는 그 그림자가 걷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옛날 유대인들의 신앙 속에서 부활을 믿지 않고 입으로만 되뇌고 있는 것이다. 나사로의 두 여동생도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셨던 것이다. 그 두 자매는 예수님이 부활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한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확인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에 대한 개념이 유대인들을 닮아가고 있다.

 

*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주님을 소유하게 된다. 주님을 소유했다는 말은 부활을 소유했다는 말이고 영생을 소유했다는 말이다(요일 5:1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했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3).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약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들이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데 곧 죄인의 죽었던 영이 살아남으로써 거듭나게 된다.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되며, 부활의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된다. 교회만 형식적으로 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분을 소유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3,4). 주님의 현재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왜 우셨는가? - 예수님을 앞에 모시고도 그들은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마르다는 돌을 치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작 한다는 말이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11:39). 그녀는 믿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11:41-43). 그랬더니 죽었던 자가 손발이 수의로 동여지고 얼굴이 수건으로 가려진 채 나왔다. 인류 역사 6천년 동안 이런 기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창조주가 부르면 송장도 일어나는 것이다. 흙으로 지어진 우리의 몸은 96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살아있는 동안에 흙을 갈아먹으며 살다가 죽은 후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나사로는 흙으로 돌아가는 한 과정에 있었을 뿐이다.

 

* 창조주는 피조물에게 어떤 권세도 행하실 수 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산 혼이 되었다. 산 혼이 되었기에 그 혼에는 의지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혼이 되어버린 인간의 의지를 마음대로 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기에 당연히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하였던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6:7).

 

*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마귀의 뜻을 따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마귀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인간이 자기 의지로 주님을 찾고, 또 믿고 영접해야 만나 주시고 거듭나게 해 주신다. 사람이 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자기 의지의 표명이다. 하나님께 결심을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주셨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종교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행위로는 이 믿음을 대체시킬 수 없다. 율법 시대에는 가능했지만 은혜 시대에는 불가능하다(2:8,9).

 

* 그때 예수님을 안다고 했던 사람들과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말했다(11:36). 지금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설교자들도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 감싸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병 낫고 생명을 연장하는 일을 하나님의 일로 아는 자들도 있다(11:37).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이 부활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이 믿지 않고 엉뚱한 것만을 가지고 아는 체했을 때, 예수님은 다시 속으로 신음하셨던 것이다(11:33).

 

* 만일 오늘날도 오순절 때처럼 다른 나라의 말로, 실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들은 믿음이 필요 없게 되고, 성경을 치워버리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내는 생활도 불필요하게 되어 그리스도인의 기준과 품격 전체가 변질되어 버렸을 것이다. 기독교는 복음이 없는 종교로 전락하여 사람들은 타락한 이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것이 현대판 기독교요, 한국식 기독교이다.

 

 

결론적으로

 

*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0:27,29)라고 조용한 조언을 하셨다. 진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지금 당장 하나님의 통치 목적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는 것과 같으며 또 영원한 구원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알았다면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다 믿음을 정립시켰을 때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곧 성취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살아야 주님을 슬프시게 하지 않고 아프시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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