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겪은 방언과 예언, 은사와 은사자들의 특징: 박성업과 홍혜선 류만 문제가 아니다..
작년에 쓴 글이나, 지금 꼭 필요한 글이라 생각하고 다시 올려 봅니다. 지금 해괴한 예언들이 난무하는데, 제 나름대로 정립해 놓은 중요한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글을 좀 더 다듬고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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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목사님 페북을 보면 (작년입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위 신령한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을 만나 나름 연구 분석한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롭고 매우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린 결론이 제가 경험한 것과 거의 비슷하더군요. 저는 그 목사님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녀볼 수는 없었지만, 선교지에 있다보니 각종 내공을 소유한 분들을 여러 명을 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약간의 경험은 있었고요.
저도 방언기도를 깊이 하곤 하는데, 통변하시는 분들이 제 기도를 듣고 몇번 특별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통변이 틀리지가 않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 방언 기도와 관련하여, 그분들이 제게 해주신 신비한 말씀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방언 기도가 저도 그렇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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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서는 "방언" (헬라어: 글로사)이 외국어로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에서는 아마 사도행전의 외국어를 지칭하는 동일한 헬라어 글로사 (glossa)가 쓰이는 것이 분명하나, 그것이 외국어로 볼 수 없는 <기이한 언어 현상>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본문에서 만큼은 바울이 방언을 예언과 한묶음하면서 초자연적 현상으로 분류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을 찬송하리라."
그의 편지의 문맥을 살피면, 이것이 단순히 외국어 구사 능력일 수가 없습니다. 방언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언어이며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언어라 이야기합니다. 경험적으로도 그런 류의 방언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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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방언 기도를 하면서 뜻은 알고 기도하지만, 그 내뱉는 소리의 내용은 전혀 모릅니다. 다만 기도하면, 한 10분만에 저도 모르는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 버립니다. 일종의 황홀경과 비슷합니다.... 가슴이 무언가로 꽉 차 오르면서 두 눈망울이 그 어떤 힘이 깃든 액체로 젖어듭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을 떠올려 하나님께 올려서 기도합니다. 어느 순간 방언만으로 그 기도를 올립니다.
어떤 분들은 방언 못받으면 열등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면서 방언 연습을 하는 등 잘못된 방언을 추구하는데, 그러시면 안됩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분들은 모든 방언은 마귀의 장난이라고 단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 또한 답답한 일입니다. 제 주변에만도 수 많은 건전한 신앙의 방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방언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그분들만은 꼭 방언 받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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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아공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일부 겪은 걸로는 신기한 것은 은사자들이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공통적으로 여성분들이라는 겁니다. 이것도 무슨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은 특히 감성이 발달해서 하나님이 그런 방면으로 쓰시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김요한 목사님은 아예 작정하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런 은사자들을 만나뵈었는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도 있네요. 방언 통변가들이 자기 방언은 통변 못한다는 것 말이죠... 저는 통변가들이 자신의 방언도 통변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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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정치적인 입장은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특히 아주 재미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지역적으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는 신앙과 신학보다 더 높다는 걸 실감합니다. 사실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신앙과 신학이 어떤 사회 현상 속에 갇혀 있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그걸 넘어 서야 진짜 신앙인인데, 은사 체험에 빠진 분들도 정치적 입장은 사회 정치적 현상 속의 한계를 못넘어 갑니다.
정치적으로 지역적으로 갈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런 은사자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수구적입니다. 그러니 박성업과 같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인간들을 치켜세우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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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낀 박성업은 병적 수준의 종교적 광신자입니다. 성경, 특히 아주 기본적인 구속사의 신학조차 모르는 천박한 선동가에 불과했습니다. 신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성경 신학도 모르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막 쏟아내는 이런 얼치기를 초대해서 강의 듣는 전도사 목사들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겁니까?
그런 자들의 특징은 선과 악의 이분법 속에서 악의 무리를 싹쓸이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과 분파는 모두 사탄이요 악마죠.
박성업의 이분법의 특징은 선과 악의 구도 속에 보수와 진보를 집어넣어 애국자와 빨갱이로 편가르기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죠.
대형교회 세습이나 재정비리 성적 추문 등으로 교회가 잘못했어도 그걸 비판하면, 악의 무리요 빨갱이라고 분류합니다. 그래서 그 이분법적 구도 속에 그걸 비판하면 심지어 김동호 목사님도 홍정길, 이동원 목사님도 빨갱이, 곧 악의 무리가 되는 겁니다.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자는 그 누구든 다 빨갱이 사탄의 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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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업의 황당한 여러 가지 말들 중에 가장 압권은 김동호 목사님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북한에서 남파한 고도의 간첩이라는 주장이었죠. 박성업 추종하는 분들, 제발 부탁건대 이 정도면 빨리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만 봐도 그는 사실은 사이비 광신도류의 인간일 뿐입니다.
이것은 중세의 마녀사냥 재판과 똑같은 겁니다. 카톨릭을 반대한 무리는 모두 사탄의 세력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사악한 이단 종파들이 다 저런 사고를 지니고 있지요. 박성업이 기독교라는 옷을 입고 저러는 것이니 그 위험성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죠.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은사자들도 이걸 분별을 못하고 박성업 류의 인간을 오히려 진리의 수호자니 말세의 주의 사자로 부름 받았으니 찬사를 늘여 놓습니다. 그리고 싸이가 <일류미나티>라느니, <프리메이슨>의 쫄따구라느니,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은사자들이 그걸 말세의 징조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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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는 안철수를 프리메이슨의 비밀결사 대원이라고 주장하더군요. 프리메이슨이 한국에 와서 안철수를 만나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했다고 말이죠. 정말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많고, 또 여기저기 카톡으로 페이스북으로 퍼 날라집니다.
올해는 홍혜선이라는 새로운 기독교 무당이 나타나서 예언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레퍼토리가 이미 수십년전부터 반복되어온 식상한 것이라는 사실이고,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그것이 먹히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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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과거 15-20여년전 쯤에 <바이블 코드>라 해서 난리법석을 한 적이 있었지요. 히브리어 성경의 단어들의 배열을 가로 세로, 대각선 등으로 맞춰보면, 인류 역사의 과거와 미래의 주요 사건들과 주요 인물들, 그리고 연대가 모두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성경이 무슨 토정비결도 아니고 말이죠.
저는 구약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그게 특정 단어가 빠지고 들어오곤 하면서 정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히브리어 성경 원전을 토대로 보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 했는데, 완전히 먹히더군요. 도대체 아무리 말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바이블 코드를 신뢰하지 않고, 또 그런 게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겁니다. 바이블 코드는 미국발 사기극이었는데, 미국을 포함한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수준이 정말 얼마나 천박한지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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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있습니다. 은사자들이 건강한 식견을 갖춘 진짜 온전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죠. 이건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제가 겪어본 사람들의 최소 60-70%의 은사자들은 윤리적인 인격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영적 우월감, 계급의식, 그리고 자동적인 권위주의가 몸에 배어 있더군요.
그 권위에서 오는 싸가지가 없는 말투나 거친 말, 욕도 불사하는 등 매우 비인격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재밌는 것은 자기들끼리 영적 계급 의식이 있습니다. 시기 질투, 비난 등등.. 심지어 "영이 틀리다"는 말을 흔하게 하고 다닙니다. 도대체 한분 성령님을 두고 서로 영이 틀리다니요.
은사가 많다고 성령의 아홉 가지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이런 인격적 열매가 자동적으로 따라오진 않습니다. 그건 별도로 하나님께 구해야만 하는 영역입니다. 윤리적 열매는 은사적 열매와 분야가 다른 것이 분명하고, 결국 바울이 고전 13장에서 말한 대로 방언도 예언도 윤리적 열매를 맺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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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굉장히 인격적이고 따뜻한 성품을 소유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 선교지의 저의 주변에 매우 친하게 지내는 은사자가 한 세 분 정도 계세요. 감사하게도 모두 성품이 좋으십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방문하여 이곳을 잠시 거쳐간 은사자들이 대체로 험하시더라구요.
한 분은 저와 함께 사역을 하는 분은 특이하게 은사자이신데, 굉장히 겸손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지요. 그런데 그분의 은사의 내공이 장난 아닙니다. 이분들은 지금도 성경 읽고 책을 읽어가며, 자신의 은사에 대해 연구하고, 그 위험성을 체크하며 조심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은 부부 선교사님으로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인데 은사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늘 자신들의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하려고 신중히 행동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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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은 비인격적인 분들의 경우라도 예언은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틀린 경우도 있습니다. 김요한 목사님이 탁월한 은사자라해도 최대 80% 적중률을 말씀하시는데, 저와 기막히게 생각이 일치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진 못했어도, 대체로 70% 정도 들어맞는 걸 체험했달까요.... (그럼 왜 틀린 게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저는 나름 정돈된 생각이 있는데, 조만간 페북에 올리겠습니다).
예언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사례가 있고, 저도 직접 받은 예언과 대언의 말씀도 있기에, 많은 예언이 들어맞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주 단순한 일도 들어맞습니다. 한번은 어떤 한국에서 오신 분이 제 친구 선교사님 차를 본적도 없는데, 만나자마자 혹시 갖고 있는 차가 빨간색 아니냐면서, 그 차 곧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염려하며 간단히 그 예언을 툭 던지듯이 하더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차는 빨간 색 자동차였는데, 3일 뒤에 그 차가 너무 어이가 없이 나무를 들이받는 실수로 큰 사고를 내고선 폐차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일의 분명한 증인입니다. 선교지에서는 이런 류의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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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쨌든 제 결론은 저렇게 은사 체험이 많고 예언도 들어맞는다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고, 윤리적 열매 부분은 영 그리스도인의 기준에 한참 못미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은 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은사자들은 역사를 공부하고, 온전한 정치적 판단을 위해 건강한 식견을 갖춰야 하고, 사상서를 탐독해서 역사와 사회 현상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균형을 갖춰가야 합니다. 그런데 은사자들은 대부분 그런 것은 세속에 속한 일이니 일 없다 하곤 하지요. 자신들의 영적 은사가 그 보다 우월한데, 그런 저급한 세상 학문이 무슨 필요가 있냐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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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언 자체는 지금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에서처럼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의 경우는 누가 저에게 이런 저런 예언을 하고 대언기도를 해줘도, 요즘은 그냥 참고만 합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다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대언이나 예언이 없어도 "순종," 그리고 "헌신의 각오," 이 두가지만 있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운전해 주시고 데려 갑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차가 사고가 날 걸 미리 안다해서 좋을 건 없다고 봅니다. 사고가 나면, 하나님께 물으며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그러니 그런 것은 참고는 할 지언정 의지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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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는 어떤 사역적 측면에서는 사도행전에서와 같은 경고나 예언이 주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아주 비상한 상황에서는 사도행전적 역사가 선교지에서 흔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은 그런 예언이 미리 주어지면, 모든 걸 싸잡아 사탄 나부랭이 뭐라 하면서 모조리 구라치지 말라고 웃어버립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런 걸 경계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싸잡아서 무조건 사탄의 장난이라며 거부하는 이런 태도는 도대체 또 뭐냔 말입니다. 이것이 또한 또 다른 커다란 영적 교만인줄은 모르시나요?
모든 직접적인 계시는 이제 다 끝났다, 성령님은 더 이상 직접 말씀해주시지 않는다, 이젠 모든 걸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신다 하는데, 정말 어이 없지요. 성령님은 벙어리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한번 선교지에 와보시길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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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개혁주의 신앙에 인생을 바쳐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성경의 계시가 완료된 뒤에는 지금은 직접 말씀을 못하시다니요.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요? 그건 성령님을 벙어리로 만들어 놓는 것이죠. 성경의 교리적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성령께서는 필요한 경우, 특별한 경우, 얼마든지 이런 저런 말씀을 직접 해주실 수 있는 것이죠. 앞서 말한 대로 사실 그런 일은 선교지에서 상식에 속한 일이고,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목회 현장에서도 그러할 겁니다.
물론 다만 그런 사역적 측면의 예언이나 대언이 주어진다 해도, 그런 것을 다 믿으려 하진 말아야 합니다. 매우 잘 분별해서 귀담아 들어야만 합니다. 즉, 자동차 사고 그런 건 그러려니 넘어가도 좋은데, 큰 그림, 차원이 높은 경우는 기도하며 예언을 분별하여, 미리 영적인 준비를 해둘 필요는 있다는 것이죠. 다만 정확히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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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체로 분별이 가능한 것 같더군요. 어떻게요? 여기에 어떤 교과서적인 답은 없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답은 성경 읽으며 주변의 영적 스승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해야지요.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 예언이 자신에게 지금 주어진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스스로 큰 구도 속에서 판단해야할 문제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단정 지어 말하지만, 홍혜선, 박성업, 데이비드 차... 이들은 말도 안되는 거짓 선지자들로 오히려 교회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어찌되었든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가지 사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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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어떤 여성 목사님은 정말 놀라운 은사자입니다. 그 분이 어떤 CCM 여성 가수의 동성애 사실을 환상 중에 보시고선 지적했습니다 (부탁하지만, 행여 CCM 가수들 다 그런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어느 단체나 막론하고 다 일부가 그런 겁니다. 저는 건강한 선교단체라 하는, CCC, 네비게이토, 예수전도단 등에서도 이런 일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여성 가수를 처음 대면하신 것인데, 보자마자 그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너 언제, 어느 모텔에, 누구랑 같이 들어가지 않았냐, 회개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너무나 두려운 마음으로 벌벌 떨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께 울며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은사 중지를 주장하는 분들, 그렇게 함부로 단정 지어선 안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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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다 쓸데 없고, 다만 한가지.. 하나님 살아계시니 인생, 장난으로 살지 말고, 하고픈 일 다 하며 멋대로 살지 마십시오.
자신의 궁극의 사명을 늘 생각하시면서 말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분 살아계십니다.
* 이런 글은 우리끼리 읽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주변에 홍XX 무당과 박성업 무리들에 의해 미혹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면, 그 분들에게 퍼 나르거나, 그분들을 이 글로 초대해주세요. @를 치고 그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자동 링크 됩니다. 제 경험상 그분들은 읽어도 생각을 바꿀 가망은 없다고 보나,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지 모르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