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될 하나님의 땅 북인도
김스데반/인터콥 사역 디렉터, 출처 : 개척정보 236호, 2007년 11월호, pp. 2-9.
아직도 남아있는 카스트 제도로 철저한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 인구의 40% 이상이 글자를 모르는 채 살아가며 힌두교를 제외한 타종교에 대해선 배타적이면서도 타종교인에 대해서는 친절하고 수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나라, 힌두교 82%, 무슬림 12%, 기독교 2%, 불교 1%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며 과격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충돌로 엄청난 재난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끝없이 죽어 가는 나라, 한때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인도 남동부를 중심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 순교한 하나님의 땅이지만 아직도 세계 최대의 미전도 종족이 남아있는 땅, 인도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온전한 회복이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하나님의 영혼들을 세우는 것이다.
온전한 북인도의 회복 - 하나님 나라의 임재
북인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단기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고백은 다시는 인도에 가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무덥다 못해 후덥지근한 날씨, 더럽고 무질서한 도시와 도로, 쥐, 개, 소, 원숭이 등 대부분의 동물이 신격화 된 샤머니즘으로 인해 사람과 동물을 똑같은 인격으로 대하는, 환경적으론 선교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북인도는 아직도 선뜻 헌신하기 어려운 변방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헌신자들이 이 땅의 온전한 회복을 꿈꾸며 일어나고 있음은 북인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 신앙의 최종 목적은 열방의 온전한 회복이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10).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북인도 땅이 주께 돌아오고 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약 14억이 넘으며 그 가운데 인도의 무슬림은 세계 국가 단위로는 두 번째로 많은 1억 5천만을 가지고 있다. 인도 땅에는 지구촌의 미전도 종족 중 2000여 종족이 아직도 복음화 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어떤 선교학자는 인도가 복음화 되면 세계 복음화는 거의 끝을 볼 것이라 주장한다.
거룩한 순교의 땅 북인도 - 순교의 흔적들
인도의 남동부 거점 도시인 마드라에는 사도 도마의 선교를 기념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도마의 무덤이 있는 성 도마교회, 기도했던 동굴, 그가 잡혔던 언덕 등이다. 도마가 AD 50년경에 인도 선교를 시작하여 그곳에서 순교하였다는 것은 많은 성경학자들에 의해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그의 선교여행은 애굽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서 육로를 통하여 홍해안에 도착, 배를 타고 파사만을 항해해서 인도 서해안에 상륙했거나, 아니면 시리아에서 동남으로 향하여 인도의 남북쪽 인더스강 유역에 도착해서 선교하다가 남하하였다. 당시 유대인 정착촌이 해안선을 따라 흩어져 있었고 이곳에 온 도마는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남서 해안에 7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그 후 동남 해안인 마일라뿌르(현재 마드라스)로 옮겨 복음을 증거하다 AD 72년 브라만들에 의해 순교하였다.
사도 도마에 의해 시작된 선교는 인도 전역으로 확장되는 선교의 원동력이 되었고 2세기에는 시리아 교회가 인도에 전해졌다. 두 번에 걸친 시리아 교인들의 인도 정착으로 인도에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4세기경 네스토리안 교회의 신자들은 페르시아의 박해를 피해 약 400명이 인도의 캐랄라 지방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지방 왕에게 환대를 받았으며 신분상으로도 높은 계급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이미 상업에 종사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기에 인도에서 쉽게 그들의 터전을 일굴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이들은 인도 전역에서 관료나 상인, 은행가들로 활동하고 있다. 1542년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인도에 도착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선교의 장'이 열렸다. 그는 평범한 선교사이기보다 포르투칼 왕국의 대표로서 군사력과 함께 왕과 직접 교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왔다. 그는 국가의 권위를 배경으로 선교 사역을 감행했다. 1605년에는 예수회 신부 로베르토 노빌 리가 인도의 상류사회를 위한 선교를 전개하였다. 그는 자칭 브라만으로 행세하며 브라만의 개종을 위해 노력하였고 브라만 계층을 위한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다. 카톨릭이 1세기 이상 동안 인도에서 선교를 하던 유일한 원동력이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과 교회 위계조직의 부패 때문에 결국 사라져갔다. 1700년대 대부분 동안 선교사역은 네덜란드의 작은 식민지인 트란케바르와 세람포르에서만 적극적으로 고무되었다. 네덜란드 할레 선교회(the Danish Halle Mission)의 루터교 선교사들이 1706년에 처음으로 트란케바르를 향해 출발했는데, 그들은 하인리히 플루차우(Heinrich Plutschau)와 바르톨로메 지겐발크(Bartholomaes Ziegenbalg)였다. 두 사람은 타밀어를 빠르게 습득했으며 성경 번역작업에 착수하여 마침내 타밀어로 된 신약성경을 완역했다. 지겐발크는 그 사역의 결과로 영국인 감옥에서 넉달을 지냈다. 플루차우는 1711년에 유럽으로 돌아갔으며, 지겐발크는 그의 선교의 마지막 해에 최소한 350명의 개종자를 낸 후 1719년에 트란케바르에서 순교했다. 성공회 신부들이 영국 시민들을 돌보기 위해 인도에 있긴 했지만, 인도에서의 영국인들의 선교는 18세기 말경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며 그것마저도 네덜란드령에서였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캘커타에서 사역하는 것이 거부당한 채 1799년에 인근 네덜란드령 식민지인 세람포르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마침내 1813년에 영국령 인도에서 제한적인 접근을 허락 받았으며 캐리가 죽기 전 해인 1833년에 무제한 접근을 허락 받았다.) 캐리는 윌리엄 워드(William Ward)와 조슈아 마쉬맨(Joshua Marshman)과 함께 전도와 교육, 성경번역, 사회개혁의 사역을 했다. 그들은 최소한 36개 언어로 성경의 일부를 번역했으며, 개신교 선교의 2가지 중요한 원리를 세우게 되었다. 즉 선교사와 새로운 개종자들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과 선교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령 인도가 선교에 문을 열게 한 것 이외에도, 캐리의 위대한 승리 중의 하나는 남편의 장례식에서 아내를 태워 죽이는 사티(Sati)라고 하는 힌두교의 순장의식을 영국령에서 불법화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윌리엄 캐리도 인도를 행한 거룩한 순교자로 남았다. 20세기 전반기에도 뛰어난 선교사들이 인도에서 그 역할을 감당했다. 메리 리드(Mary Reed)는 1885년에 인도에 도착해서 경미한 병을 앓은 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서 회복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으로 갔는데, 1890년에 휴가차 미국으로 귀국해서는 문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인도로 돌아가서 1943년 사망 때까지 나병환자 소용소에서 사역하다 순교하였다. 인도의 선교 역사는 '순교의 피'로 회복되고 교회가 세워진 역사다. 순교자의 땅 북인도, 그 회복이 빠르게 시작될 것이다.
북인도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 기독교의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2.5%인데 실질적인 비율은 3-4%로 여겨진다. 신자의 구성은 천민이나 하층 계급이 80%이다. 매년 약 180만명의 신자가 새로 생긴다고 하는 인도의 기독교 인구는 4천4백만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남부와 동북부에 집중되어 있는데 주요 교파로는 22,460개 로마 천주교에 1500만명의 신도이고, 개신교 중 9,300 교회에 170만명의 신자가 있다. 다음으로 북동인도 침례교연맹이 160만명, 연합복음주의 루터교회가 160만명, 북인도교회가 100만명, 텔레구침례회가 78만명, 말 토마 수리아 교회가 72만명이다. 사도의 피가 뿌려진 인도 교회... 19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도 기독교는 아직도 인구의 3%선을 턱걸이하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 인도에는 대규모의 잘 조직된 '통 문화적(Cross-Cultural)'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고 있고 거의 모든 지역에 교역자가 파송되어 있다. 특히 외판원, 상인, 어부, 행상인, 안마사, 농사꾼, 세탁업자, 대학생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인도에는 약 900명의 국적을 포기한 기독교 사역자들이 미전도종족 지역에서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으며 성경도 1,600 언어 중 110개로 번역되어 있고 복음서는 300이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인도 선교단체에 의해 모집되는 선교사 지원자들은 대부분 젊은이들로, 이들은 선교대회나 회합을 통해 도전을 받고 선교에 참여하게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한 가정이 선교사를 맡아 후원하기도 한다. 주부들은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식사 때마다 한줌의 쌀을 따로 떼어놓기도 하고 암탉 한 마리를 구별해 놓아 그 닭이 낳는 알을 팔아서 선교 헌금으로 쓰기도 한다. 이러한 후원의 상당한 비율이 농촌교회에 의해 이루어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1986년에 인도 교회는 전도자와 교회 개척자로 약 4,200명의 인도인들을 파견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것은 그 이후 더욱 증가하였고, 주요 교회 개척 사역은 인도의 미전도종족 가운데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를 믿는데 있어 많은 위협적 요소가 인도 사회에 내재해 있다. 예수를 믿을 경우 사회와 공동체에서 추방이나 소외를 당하고, 카스트 제도로 인한 가족의 명예 손상, 그들의 미신적 신앙이 전도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많은 힌두교도들이 다른 종교의 신을 숭배하게 되면 신의 진노를 살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재산 및 경제권의 상실도 사람들이 개종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즉 낮은 계층의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는데 개종할 경우,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결혼상의 어려움, 심지어 폭행이나 형벌까지도 주어지므로 모두 예수 믿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누그러졌으며 반복되는 복음의 접촉이 열매맺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일정 기간의 교육과 토의가 상류계층에서 상당한 열매를 맺고 있으며 학생들을 향한 전도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도 당국에서는 공식적인 선교사는 받지 않으나 농업, 의료 등 특수 직능자를 받고 있는데 현재 알려진 주재 외국 선교사는 900명이며 자국 파송 선교사는 120단체에서 4,200명이다.
북인도 땅의 어둠을 파하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북인도 사역을 위해 우리는 어둠을 파하는 강력한 영성과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입국을 제한하고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는데, 첫째, 힌두교의 지도자들과 교도들이며, 둘째, 인도 정부의 선교사 입국 제한조치, 셋째, 인도 기독교 안에 이러한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97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후 지나친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와 서구적 자유주의 신학의 수입으로 선교의 정서적 개념이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 봉사와 복음 선교의 구분이 희미해졌고, 많은 신학자,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행한 "굶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옥에 갇힌 자를 해방"하는 일만을 강조하고 선교의 주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를 통한 구원의 문제는 경시되었다. 인도인은 수천년 동안 힌두 문화에 지배받았다.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나 실제로는 타종교에 대해 차별 정책을 펴고 있다. 만일 기독교로 개종하여 기독교식 이름을 가질 경우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현 집권당은 정교분리 정책을 펴고 있으나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위한 정당성과 명분을 얻기 위해 힌두교를 그들의 정치 이념으로 삼는다. 현재 제1당으로 부상한 여당은 힌두교 근본주의를 당헌으로 규정하고 있다.
힌두교는 표면으로는 대단히 포용적이어서 타종교에 대하여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나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외국인 선교사의 정상적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며 과격 단체인 힌두교 원리주의는 외국인 선교사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힌두교는 인도에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교리적으로 다른 종교들을 신축성 있게 포용하는 유연성 때문에 기독교 선교가 힌두교에 의해 변형될 정도이다. 힌두교는 세계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들보다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정의를 내리기가 힘든 힌두교는 거의 5,000년의 기간에 걸쳐 인도의 모든 종교적, 문화적 운동을 흡수 동화시키면서 서서히 생겨나게 되었다. 생활양식으로서의 힌두교는 근본적으로 절충주의적이며 혼합주의적이다. 힌두교의 뛰어난 점은 그 영향권 내에 들어오는 모든 종교적 믿음이나 관습들을 동화시키는 능력이다. 힌두교에는 가장 중요한 3신 외에 3억의 신이 있다. 이들 3억의 신들만큼이나 힌두교에는 어떤 다른 종교도 극복할 수 있는 엄청난 흡입력이 있다. 경제력도 힌두교에 집중되어 있다. 카스트 제도하에서 힌두 상부 계급은 조상 대대로 부를 축적해 왔으며 오늘에 와서도 이러한 부를 활용하여 자본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들의 자본이 자연히 힌두교 사원에 흘러 들어가 힌두교를 지탱한다. 반면 많은 기독교 교회들은 자립을 위해 허덕이고 있는 형편이다. 인도 교회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양성과 통일성을 함께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집단을 개인보다 강조해 왔다. 카스트 제도도 이러한 문화적 바탕 위에서 발전하였다. 이 제도는 선교적 측면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하여 교회개척 사역이 한 카스트 내에만 한정되었다. 기독교의 '만인평등사상'이 그들에게 이방의 사상으로 여겨진다. 1860년대 이후 많은 수의 불가촉 천민들이 기독교로 집단 개종을 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오히려 기독교를 천민의 종교로 인식하게 했으며 특히 상류 계층의 선교를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카스트의 공동체성은 개인회심의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도의 문화와 풍습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공용어만 해도 18개 언어에 다다르며 종교, 빈부와 사회 계층의 차이 등을 감안하면 그 다양성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간디는 현재 인도에서 신적 존재로 추앙 받는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큰 장애요소다. 그는 그리스도가 기독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그들이 어떤 이름으로 경배하든지 속해있다고 하였다. 간디는 모든 종교는 다 진리이며 보편종교의 반영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상화된 그리스도에게 지극한 숭배를 표했지만, 역사적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죄, 부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그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화평과 조화의 방해물로 여겼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개종이란 자기 정화와 자아실현이었다. 인도의 사회적 고질병인 카스트 제도의 타파, 특히 전체 국민의 21%에 해당하는 최하층 천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문제는 인도가 안고 있는 큰 어려움 중의 하나이며, 교육, 고용 등 여러 분야에서 이들을 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폭력 충돌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83%를 점하고 있는 힌두교도와 13%의 이슬람교도는 두 종교간의 대조적 교리, 전통 등의 차이로 항상 반목, 대립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의 이슬람교도 포용정책애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도들은 소수집단으로서의 소외감, 경제적 낙후, 일부 극단분자의 사주 등으로 92년 12월의 아요디아 사태에서 보듯이 항상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또한, 독립 이후의 지도자들은 비대한 연방국가에서 생길 수 있는 소수 민족문제 내지 지역주의 감정을 제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으나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특히 펀잡 지방에서의 시크 문제와 아쌈을 포함한 동북 지방에서의 Mizo족 및 Naga족 등 소수민족 문제는 지역주의 감정과 함께 인도의 난제이다.
북인도의 매력 - 회복될 하나님의 땅
인도는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크고 다양한 나라이기 때문에 선교전략 접근 방법도 전체가 아닌, 종교, 지역 또는 집단을 구분하여 각각의 접근 전략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서술된 것처럼 인도의 기독교인 비율은 3% 선이면서도, 기독교인의 80%는 하류층에 해당된다. 카스트 제도가 만연되어 있는 인도 사회에서 기독교가 하층민들의 종교로 인식되어 버리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보다 적극적인 상류층 선교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하여 가장 용이한 접근방법이 캠퍼스 선교라고 생각된다. 현재 인터콥에서 진행하는 SM(Student Missionary) 선교운동은 인도 선교에 전략적 사역이다. 더불어 인도 상류 사회를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샤머니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인도는 영적 전쟁, 혹 영적 능력의 선교가 병행되어야 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교전략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의 말씀은 인도사역의 사역적 기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Campus Ministry)과 영적 전쟁(MIT-Mobal Impact Team), MnB(Mission & Business), 의료선교에 보다 주력해야 하고, 고아원, 나병환자 등등을 섬기는 사회봉사적인 측면이 보다 강화되어질 때 인도인의 마음이 열릴 것이다.
인도인처럼 영화를 좋아하고 또 축제문화가 발달된 곳은 없다. 인도의 기독교는 영화나 방송에 대해 방어적 위치에서 오히려 영화나 방송을 선교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인도인의 경우는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여느 아시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색채들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고 그들의 몸짓과 손동작 하나 하나가 그들만의 의사표현이 되고 있다. 기독교는 이러한 정황을 이해하고 이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통해 그들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한다거나 그들의 전통 음률을 따라 복음송가를 제작하는 것, 또는 교회 의식들을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의 이해와 접목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지어로 만들어진 예수 영화는 좋은 사역도구가 될 것이다. 현재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개방화 정책을 펴고 있는 인도는 개인이 개종을 하면 공동체에서 벗어나 생계의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 인도의 상황에서 비즈니스 선교는 중요하다. 비즈니스 선교를 통해 Campus 사역과 관료계층 선교사역과 연계할 때 좋은 침투와 전도의 발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무슬림 인구는 약 14억이 넘었으며 그 가운데 인도의 무슬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약 1억 5천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도권 무슬림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1947년 인도에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독립하기 이전에는 역시 그들도 인도 무슬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들이 주로 분포하고 있는 북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델리, 펀잡, 카쉬미르 지역 등지에 사역이 일어나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선교전략도 북인도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인도는 유일하게 기독교와 무슬림이 적대적이거나 대치되지 않는 나라이다. 인도에 사는 무슬림이나 기독교가 동일하게 인도의 기득권인 힌두교에 의해 핍박받고 소외되는 대상이기에 기독교와 무슬림의 충돌이 거의 전무하며, 오히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대하는 것이 호의적이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학적인 면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으로 선교사들이 힌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둘째, 인도 무슬림들은 세계 선교학계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위하여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거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도의 무슬림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태(예를 들면, 북인도 무슬림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카쉬미르의 경우 늘 파키스탄과 카쉬미르 독립 반군과 인도 군인들과의 무력 충돌로 인하여 그곳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역을 할 수 없는)에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계 선교학계에서 '인도'하면 주된 종교인 '힌두교'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의 힌두 사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들로 인해 인도의 무슬림들은 소외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의 정보 부재도 이러한 소외의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인도 무슬림을 향한 선교의 가능성은 아주 크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 외에 힌두들에 대해 항상 소수(minority)의 입장에 있는 인도는 무슬림의 동북쪽 진출을 막는 최후의 변방이며, 이들을 위하여 사역할 헌신자들이 너무 많이 필요한 땅이다. 이들의 상황과 삶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의 땅 북인도가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60장 103절의 말씀으로 인도땅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어둠에 사로잡힌 북인도 땅이 하나님의 빛으로 나아오도록 이제 헌신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인도 땅을 회복시켜야 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영적 견고한 진 북인도 땅이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 마지막 Back To Jerusalem의 대로를 수축해야 한다.
북인도여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