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urgeon(0117) 18560907 Lovest Thou Me?(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on Sabbath Morning, At New Park Street Chapel, Southwark.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저는 이 질문을 세 가지 주요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합니다.
I. 첫째로, 엄숙한 질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과 얼마나 놀랍도록 변함이 없으셨는지, 그분의 성품은 하나님으로서의 속성과 마찬가지로 전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여전히 다정하게 말씀하셨고, 그들의 육체적인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상태에도 깊은 관심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통곡했던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아침에 이 질문을 받는 이유는 주님께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특히 큰 죄를 지은 후 기독교인이 자신의 상처를 잘 헤아려 보고 스스로를 시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믿음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사랑이 경건의 가장 빛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구원의 뿌리이자 근본 은혜이지만, 사랑은 다른 어떤 은혜보다 더 빛나는 증거이며, 사랑이 부족하다면 다른 모든 은혜 역시 부족하다는 징표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베드로의 행위(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얼마나 자주 회개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으셨고, 오직 그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사랑이 그 바탕에 깔려 있지 않다면 모든 외적인 종교 의식은 헛되고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큰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의 죄(화내는 말, 투덜거리는 말)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우리의 세속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업이나 장부를 위해 주님을 짧은 5분 안에 몰아넣었습니다.
지난주 동안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 그분을 잊고 지낸 적은 없습니까? 우리의 세속성을 기억할 때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기도 자리에서의 냉랭함도 우리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열렬한 간구가 부족했고, 때로는 기도가 오히려 마음을 더욱 차갑게 만드는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과의 교제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부재를 너무나도 평온하게 견뎠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며, 저와 여러분 모두가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제자도의 인장임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I. 둘째로, 현명한 대답
주님께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한다고 자만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깊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가장 낮게 평가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있어 우위를 주장하는 것을 가장 꺼릴 것이라 믿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사랑의 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 질에 대해 확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말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신다고 대답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질문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설교나 자선 활동 같은 선한 행위들을 사랑의 증거로 내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불타는 마음이나 황홀한 감정만을 증거로 제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베드로의 과거의 실패처럼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슬픈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주님의 전지하심에 호소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처럼 주님의 절대적인 지식에 호소할 수 있느냐가 위선자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시험대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업신여길지라도, 우리는 고개를 들고 주님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질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사랑이 불꽃처럼 커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III. 셋째로, 요구되는 증명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증명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리고 "내 양을 치라"였습니다. 모든 제자에게 증명의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을 먹일 자격이 없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가장 좋은 증거 중 하나는 그분의 어린 양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젊은 지체들(어린 양들)을 교리적으로 더 깊이 가르치는 일(교리문답반 등)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많고 은사가 있는 성도들이 젊은 지체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을 사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두가 설교나 교사의 직분을 맡을 수는 없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회에 충실히 참석하거나, 종들을 보살피거나, 혹은 자녀들을 주님의 두려움 속에서 양육하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지 않기를 간청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목회자를 가장 곤란하게 하고 교회에 가장 큰 폐를 끼치며, 항상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가장 쉽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진실성을 행위로 입증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한으로 주님께 봉사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했다고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으니, 우리도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사랑이 시들해졌다고 느낀다면, 그 치료책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의 복된 마음을 바라보고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을 끊임없이 느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셔서, 그 사랑이 우리의 모든 열정을 사로잡고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일으키게 하십니다.
성찬식은 우리가 주님께 우리 자신을 다시 헌신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찬에 참여할 때 건강과 삶과 재능,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능력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기도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실 때, 그분의 고난과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죄를 이기고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사랑으로 더욱 헌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헌신을 실천한다면 가장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지 않은 분들에게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신을 계시하셔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용서의 감각이 여러분의 돌 같은 마음을 녹이고, 여러분이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 그분이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주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