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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에 관한 몇 가지 의문과 답

한국창조과학회, "창조", No. 153, 2008년 4-6월호, pp. 52-64

 

Q1. 노아 대홍수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고, 노아로 말미암아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므로 일부 지역의 홍수가 아니었다.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땅에서 범죄한 인류 중 일부만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된 길을 계속 가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 (창 6:7)',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창 6:17),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호흡을 기식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 (창7:21-23)  

 

Q2. 노아 대홍수의 기간은 얼마입니까?

성경은 노아홍수의 사건을 창세기 6-9장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홍수가 진행되어진 날짜들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여 놓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설화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는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약 BC 2,350년경으로 추정. 이 연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연대가 있을 수 있음으로 오차 가능성이 있음 )에 일어났는데, 노아가 방주 내에 있었던 기간은 1년이 넘는 371일 이었다.     

480세

  대홍수 경고(창 6:13)

600세

  홍수 시작(창 7:11-14)

2월 10일

  방주에 들어감. 7일을 기다림.

2월 17일

  40주야간 비가 내리기 시작.

 

  150일간 땅에 물이 창일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 물이 감하기 시작.  

10월 1일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11월 19일

   비둘기를 내보냄.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옴.

601세

  방주에서 나옴

1월 1일

  방주 뚜껑을 제침

2월 27일

  땅이 말랐으며, 방주에서 나옴.

 

Q3. 노아의 대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성경적 증거

1) 노아홍수의 크기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홍수로 인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거대한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식구들과 동물이나 조류는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3,200m3의 용량을 가진 거대한 방주를 축조할 이유가 없다.

3)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홍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며,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 심판을 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4)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다.  

 

(2) 지질 지형학적 증거

1) 지구 표면 중 75%이상이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이며 세계 도처의 고산지대에 바닷물 호수인 염호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 때 만들어진 것이다.

2)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에 조개류, 물고기류, 해초류 등의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언젠가 이 지역도 바다 속에 잠긴 적이 있다는 증거이다.

3) 아라랏산 4200m 부근에는 용암이 물에 급격히 식을 때 만들어지는 베개용암이 발견된다.  

4) 영구 동토지역에서 발견되는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5) 지구 육지 표면의 80~85%는 진화론적인 순서대로의 3개의 연속적 지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3) 화석학적 증거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되는데 대부분 급격히 매몰된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2) 열대, 한대, 건조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된다.

3)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 채 발견된다.  

4) 수십만 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나무 화석들이 발견된다.

5) 수억 년 된 고생대 지층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똑같이 화석으로 발견되며, 어떤 종류는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6)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7) 수억, 수천만 년 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8)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4) 역사적 증거

1) 모든 고대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뉴질랜드 마오리족, 호주 원주민 등에는 홍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나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등에는 노아의 홍수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 40일간에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갔을 텐데, 방주는 강 상류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산에 도착했다. 이는 강물에 의한 작은 홍수가 아니라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동반된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준다.

3) 상형문자인 중국의 한자에 창세기와 홍수관련한 문자들이 남아 있다.   

4)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도 약 6천 년 전이고, 노아의 홍수는 대략 4350년 전이다.

5)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상형문자로 5~6천  년 전이다.

6) 고대 언어는 5천 년 전부터 나타났으며 이 시기에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알려졌다.

7) 농업을 시작한 시기, 가축을 길러 이용한 시기를 5~6천 년 전으로 보고 있다.

8) 최초로 야금술도 5~6천 년 전으로 보고 있다.

 

(5) 인구통계학적 증거

홍수 이후 노아의 8식구로 시작된 세계인구는 통계학적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인구와 잘 들어맞는다. 만일 홍수이후 인구의 연간증가율이 현재 세계 인구증가율의 1/4에 불과한 0.5%만 되어도 현재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300년이면 충분하다.

 

Q4. 세계적으로 육지 깊숙한 곳이나 높은 산 위에 염호(鹽湖)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지구의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려면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등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침범이 고려되어야  한다. 노아 홍수 시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노아의 홍수가 단지 강우에 의한 일부 지역의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노아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떠내려갔을 텐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방주는 상류쪽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鹽湖)의 존재는 바닷물의 육지 침범의 증거가 된다. 많은 학자들이 고산지역에 있는 염호의 생성원인을 조사하였는데 담수호가 증발이나 어떤 원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염호가 될 수 없으며, 결국 언젠가는 바닷물의 침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터어키 동부에 위치한 반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다. 카스피해와 고비 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內地海)는 염호로써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고산지대의 염호는 과거 그 지역이 언젠가는 바닷물로 덮였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Q5. 노아 홍수 시 식물들은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성경에서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라는 동물만 멸절시킨 것이지, 식물을 멸절시키지 않으셨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창 8:11)'란 구절을 접하면, 동물들을 방주로 인도하는데도 특별한 섭리와 인도를 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닷물 속의 식물들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셨음을 알 수 있다.

1) 식물들은 씨앗(seed)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육상식물의 종자들은 여러 농도의 소금물에서 1년 동안 담가 두었다가 꺼낸 후에도 발아할 수 있다. 또한 이 보다 더한 혹독한 환경에서도 식물의 종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 고대 미이라의 손에 쥐어진 밀알 씨를 땅에 심었더니 싹이 텄다는 보고가 있다.

2) 식물들은 홍수 시 떠다니던 거대한 나무 매트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세인트 헬렌산 폭발 후 스피릿(Spirit) 호수에는 백만 그루 이상의 떠다니는 거대한 통나무들로 매트처럼 덮여졌는데, 노아의 홍수 시에도 화산폭발에 의해 엄청난 면적으로 이 떠다니는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이 수면 위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석탄층들이 종종 한 주(state)를 덮을 정도로 넓은 면적으로 발견되며 심지어는 극지방에서도 두꺼운 석탄층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식물들은 이 나무 매트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얕은 물가로 흘러간 나무 매트의 식물들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고 묻힌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넓은 면적에 석탄층을 형성했음이 틀림없다. 방주에서 노아가 내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 새 잎사귀(Olive branch)는 감람나무가 싹이 새로 나서 자란 것이 아니라, 이 나무매트에서 살아남은 감람나무가 물이 감하면서 뿌리를 내려 새 잎사귀를 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감람나무는 매우 재생력이 강하여 작은 가지를 꺾어 땅에 심어도 쉽게 자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무매트 위에서 식물들의 씨앗, 포자들은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일부 식물들은 방주 내에 비축된 먹이 중에 섞여서 우연히 또는 노아에 의해서 많은 종자들이 계획적으로 보관되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사실 노아는 홍수 후에 피폐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많은 준비들을 했을 것이다. 기구, 기계, 연장, 재료, 물품, 의복, 그릇 등등을 준비했을 것이고, 농사를 위해 곡식, 야채, 과일나무 등 많은 식물들의 종자들을 준비하였을 것이다.

 

Q6. 노아 홍수 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1)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홍수 중 바닷물의 염분농도가 서로 다른 층을(salinity stratification)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즉 심부의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13~15ppt, 중간부위는 7~11 ppt, 표면은 5ppt 이하로 염분농도가 다르게 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민물이 바닷물과 완전히 섞이지 않고 바닷물 위에 염분농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면 바다고기는 심부에서, 민물고기들은 표면부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홍수환경에서 어떤 지역은 민물로 고립된 지역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비는 담수이다. 퇴적물들에 대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구성성분이 다른 퇴적물들이 어떤 지역에 격리되어 발견되고 있으며, 물의 화학성분, 물의 온도 등이 서로 다른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홍수동안 상당기간동안 이러한 고립지역들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3)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사는 물고기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바다에 살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산골짜기의 차가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연어, 줄무늬농어, 철갑상어 등은 민물에서 알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며, 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호수나 냇가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민물고기들은 홍수시기에는 민물과 바닷물에 다 같이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홍수 후 분화가 되면서 많은 종들이 그 능력을 잃어 버렸을 수 있다.

 

Q7. 홍수 후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바닷물이 물러간 후 육지표면은 소금이 남아있어 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7,18 세기부터 이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주장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물러가면서 남긴 소금은 빗물에 의해서도 쉽게 용해되어 제거되며, 관개용수로 사용된 물에 의해서도 쉽게 제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는 한 번의 강한 비에도 소금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홍수 후 지구의 곳곳은 바닷물의 급격한 후퇴로 인한 침식으로 수로와 계곡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임으로 빗물에 의한 염분의 세척은 매우 신속히 일어났을 것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후 수일에서 수주 후에는 육지의 대부분에서 염분은 제거되었을 것이고, 염분에 민감한 식물들까지도 쉽게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Q8. 수술에서 암술로 화분을 옮겨 줄 곤충이 없는데 식물은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곤충매개식물(entomophilous plants)은 곤충에 의해서 번식하는 식물로서, 성경비판자들은 이들 식물들이 홍수 후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나는 홍수 직후에는 곤충들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곤충매개식물은 종자를 퍼트리는데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곤충들은 방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곤충들의 수는 홍수말기에는 매우 증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들이 자라 처음으로 꽃을 피울 때쯤에서는 곤충들은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곤충매개식물들은 자가수분이나 바람에 의한 수분으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식물의 꽃에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씌운 후 관찰한 결과 곤충 없이도 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곤충매개식물의 대부분은 곤충 없이도 씨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곤충들이 매개할 때보다는 수분율이 떨어지지만 멸종할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Q9. 홍수 후 육식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방주에서 나온 육식동물들은 방주에서 내린 다른 동물 외에는 먹이가 없었을까? 그러나 홍수 후에도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1) 먼저 홍수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다. 나무의 껍질들은 토끼, 코끼리, 호저(porcupine) 등에게 임시적인 좋은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2) 빠르게 자라난 풀이 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먹이는 해초(seaweed)들이다. 홍수기간 동안 해초들은 광대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소, 코끼리, 토끼 등은 해초를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 말, 여우, 곰 등도 해초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양은 눈이 많은 겨울의 4달을 해초만을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버섯류도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5) 파묻혀진 죽은 동물의 사체들도 식량이 되었을 수 있다. 6) 상당기간동안 매우 중요한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생생물들이다. 홍수기간 동안 전 지구의 물고기의 종수는 감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종은 홍수 후 바다에 영양물질들이 풍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숫자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후퇴하면서 어떤 지역은 물이 갇혀  작거나 큰 호수를 이루다가 말라가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남겼을 것이고, 이러한 지역에서는 많은 수생식물들과 죽어 가는 많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이나, 매, 갈매기와 같은 각종 조류, 설치류, 파충류 등은 이러한 풍부한 물고기들을 먹으며 어쩌면 먹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여유롭게 번식해 갔을지도 모른다.

또한 홍수 직후에는 모든 동물들이 초식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궁창위의 물층이 있는 동안에는 항상 따뜻한 기온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고에너지 식량(육식)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육식동물의 먹이도 증가하였고 기온도 내려갔기 때문에 육식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일부 동물은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홍수에 의해서 동식물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 중에서 곤충과 벌레들과 설치류들은 빠른 시간 내에 현저하게 증가했을 것이며, 덩치가 큰 동물들의 개체 수는 천천히 증가하였을 것이다.

파리는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에 많은 알들을 낳았을 것이다. 증식하는데 장애물이 없다면 한 마리의 곤충은 6개월 후에는 1,200억 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300마리의 개미도 1년 안에 수십억 마리로 증식될 수 있다. 홍수 후 초기부터 곤충들은 이미 상당수에 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우, 야생돼지, 호랑이, 사자, 곰, 늑대 등은 곤충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설치류의 경우 그들의 증식률은 믿기 어려운 정도인데, 방해하는 경쟁자가 없을 경우 한 쌍의 쥐는 1년 만에 15,000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야생의 경우에서도 10개월에 2,557마리로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번식은 홍수 후 땅에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들이 풍부하였다면 더욱 가속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수개월 후에 설치류들은 땅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여 육식동물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Q11. 동물들은 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남아메리카의 밀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늘보나 개미핥기 등 빈치류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먼 근동의 아라랏산에서 옮겨올 수 있었을까? 캥거루 같은 유대류들은 오직 호주와 서반구에서만 발견되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왔을까?

1) 오늘날 동물들은 대륙과 바다를 놀라운 속도로 횡단하며 이동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1883년 크로카토아 섬의 화산폭발 당시 이 섬에서 서식하던 동물들은 완전히 멸종하였고 수년 동안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25년이 지난 뒤에는 곤충, 벌레들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류, 파충류들 심지어 소수의 포유동물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많은 생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멀리 떨어진 육지로부터 건너 왔던 것이다.  

 2) 과거의 대륙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많은 진화론적 고고학자들도 과거에 베링해협이 육지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육교(陸橋)를 통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3) 또 하나의 중요한 분산 방법은 사람에 의해서 일 수 있다. 호주 개척 초기에 이주민들은 몇 마리의 토끼들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 대륙 끝에서도 야생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방주에서 내려서 호주까지 계속 깡충깡충 뛰어갔는가?' 가끔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캥거루는 뛰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배의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호주대륙에 도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많은 예에서 보고되고 있다. 호주대륙으로 전해진 많은 새들은 한 쌍으로부터 출발했고, 하와이군도에 전해진 Laysan Finch 새도 한 쌍으로부터 번식되었으며,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전해진 미국산 밤색다람쥐(American Gray Squirrel), 하와이에 전해진 rock wallaby,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밸리아릭 섬에 전해진 토끼, 19세기 호주에 전해진 토끼, 바하마에 전해진 아메리카너구리(raccoons), French Ⅰ섬에 전해진 코알라, 캘리포니아에 전해진 고라니(elk),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양(sheep), 마우리티우스 섬에 전해진 짧은 꼬리원숭이(macaques) 등은 모두 한 쌍으로 오늘날의 숫자로 늘어났다. 또한 한 쌍은 아니지만 소수의 동물로 늘어난 예는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순록(reindeer), 유럽에 전해진 미국산 사향뒤쥐(muskrat), 남아메리카 광대한 초원에 살게 된 유럽산 말들, 남아프리카에 전해진 여러 종류의 유럽지역 새들, 유럽에 전해진 중국산 꿩(pheasants) 등 많은 수의 동물들이 한 쌍 또는 소수에서 오늘날의 숫자로 번식하였던 것이다.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군집으로 모여 사는 동물들은 한 쌍만 있을 경우 번식할 수 없고 멸종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먼저 떼로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사는 습성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바다새처럼 떼로 사는 습성은 방주생활에서 생겨난 습성일 수 있다. 또 하나 바다사자나 다람쥐원숭이 같이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 중 많은 수가 수태율은 좀 떨어지지만 동물원 등에서 한 쌍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군집을 이루는 새들 중 많은 수가 독립된 한 쌍으로도 번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음을 여러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군집 크기도 같은 종 내에도 다양한데, 홍학의 어떤 군집은 수천 마리씩으로 집단 서식하나, 어떤 군집은 10쌍 보다도 적은 수가 모여 산다. 펠리칸은 6마리 보다 적은 수에서도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보고되었다. 군집생활은 홍수이후에 생겨난 습성일 가능성이 크며, 방주 내에서나 방주 밖에서 동물들이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Q14. 노아 홍수 이후에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노아의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균들이 오늘날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8명에 감염이 일어났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홍수와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는 콜레라, 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나병 등 온갖 질병의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심지어 매독, 임질 등의 성병과 회충, 요충 등의 각종 기생충, 에이즈 바이러스 등도 보유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노아의 식구 8명에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질병은 전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병원균들이 사람에게서만 감염을 일으키고, 사람에서 사람으로만 전염되며, 홍수전과 오늘날의 병원균이 수천 년 동안 전혀 변형되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유효한 주장이다. 먼저 방주 안에는 영장류만도 400여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이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의 감염병 균들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생하는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돼지나 소와 같은 여러 동물에 무증상으로 존재해 있을 수 있다.

또한 병원균과 기생충들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도 있다. 먼저 병원균이 매개 곤충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 몸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서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난 후 초기에는 식량의 부족으로 죽은 사체들을 파내서 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Q15. 고대문명들은 다 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대격변적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대홍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의 고어, 태평양 여러 민족들의 민담, 남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뉴질랜드 원주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 속에 남아 있다.  

앗수르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서판은 열한 번째 서판으로 1873년 니느웨의 아쉬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 창세기 기록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아 동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홍수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모든 중국인들은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 의 자손이라고 한다. 누와가 성경의 노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에서도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 선(船) 자는 아래와 같이 배 주(舟)와 여덟(八) 명의 사람(口)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방주에 8명이 탔음을 나타내고 있다(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 1991. 이강국 편역, 미션하우스 참조).

또한 미국의 인디언들은 무려 58개의 대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던 미시간 지방 일대에서는 오래된 석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석판 중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석판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일그러진 태양아래 한 노인이 경배하는 모습이 보이며, 둘째 부분은 큰비가 내리고 있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세 번째 부분은 물위에 떠 있는 큰 배가 보이고 40 주야를 나타내는 네모진 40칸이 좌우에 있으며, 나뭇잎을 물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넷째 부분은  둥근 태양과 함께 큰 배에서 동물들이 쌍쌍이 내려오고, 네 사람의 남자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를 볼 수 있다. 궁창 위의 물로 인한 빛의 산란으로 태양이 일그러져 보이다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둥근 태양이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석판은 노아의 홍수를 매우 정확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지구에는 엄청난 퇴적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1년여의 홍수로 퇴적되려면 방주는 진흙 수프 위에 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이 실제 어떻게 퇴적물을 운반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모든 퇴적물이 홍수기간 철저히 섞여져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퇴적물은 이와 같이 쌓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퇴적물을 'basin' 안으로 이동시키고, 이들은 퇴적되어 다시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같은 용량의 물이 더 많은 퇴적물을 대륙을 가로지르며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들은 대홍수 시 물에 의한 수압으로 다져지기 때문에 재 비산 없이 연속적으로 퇴적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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