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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8 21:57

덤으로 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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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사는 인생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평상시 주일 낮 예배에도 가끔씩 빠지던 교인 한명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제가 암이래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러더니 그때부터 교회의 모든 예배 및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열심히 기도를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기도회에서 모습이 안보입니다. 주일날 찾아오더니 오진이었답니다. 그리고는 그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암과 같이 어려운 병에 걸리면 열심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때 대개는 이런 서원기도를 합니다. {이번 병만 낫게 해 주신다면 남은 인생은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것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들 말합니다.

  실제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그런 서원을 잘 갚았던 사람이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생명을 15년 연장 받고, 그 당시 천하무적이었던 앗수르의 산헤립 왕을 물리침으로써 이스라엘을 구해냈습니다. 당시의 전쟁은 침략자가 공격하고자 하는 성을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으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항복을 하던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 밖에 있던 기혼샘을 막아서 성안의 인공 못인 실로암까지 수로터널을 뚫어 앗수르의 공격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의 대 제국 앗수르의 산헤립은 조그만 나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결국은 자기 아들들에게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과도 모두 기적적입니다. 병든 상처에 무화과 반죽을 갖다 놓았을 때 그 상처가 나았고, 회복에 대한 징표로 해그림자가 10도를 뒤로 물러가는 징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않고,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교만을 뉘우치기는 하지만, 결국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으며, 또 자기 몸에서 난 아들이 사로잡혀가서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덤의 인생을 잘못 알았습니다. 연장받은 15년의 삶만을 덤으로 알았고, 또한 그 덤의 인생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덤이었습니다. 자기의 삶은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에,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게 되었다가 살아난 이후가 덤의 인생이 아니라, 죽었던 영이 살아난 이후의 삶이 덤의 인생입니다.

  120년을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노아도 덤의 인생을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제 소설 같던 홍수도 끝나고, 자식들은 번창하고, 나의 이생에서의 임무를 잘 마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려가기 전까지 인간적인 즐거움을 조금은 누릴 수 있는 자격이 내게는 있지 않을까! 그러니 포도주를 마시자!}

  노아의 일을 거울삼아 우리는 구원 이후의 덤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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