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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경적 토지사상: 하나님의 공의와 토지권에 대한 성경신학적 조망(계속)

 

창세기는 시작에 관한 성경이다. 세계의 시작, 인류의 시작, 역사의 시작, 죄의 시작, 구원의 시작, 이스라엘 백성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아브라함의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 구약에 나타난 공의사상도 마찬가지다. 아브라함의 소명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이 사건은 오고 오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다시 문맥을 살펴보자. 창 11장은 바벨탑 사건이 나온다. 그 앞에 6장에서 10장까지는 노아의 홍수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노아 홍수 사건 이후 사람들은 위기를 느낀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이라는 높은 성을 지어서 그 성을 중심으로 자기들이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고 결의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바벨탑의 건설은 땅에 대한 독점적 권리 주장이었던 것이다. 바벨탑 건설에 대한 경제학적인 의미는 토지독점제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홍수 이후에도 홍수 이전과 같이 사람들의 본성은 역시 악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뭉쳤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악한 죄에 심판을 내리셨다.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이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세계 만국 땅으로 흩으신 것이다.

 

12장은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건설에 뭉쳤던 사람들을 흩으시고 이제 아브라함이라는 한 평범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시는 것이다. 흩은 족속을 향해 다가가서 하나님의 토지법 안으로 다시 모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바벨탑 건축사건과 아브라함의 소명사건이 크게 대조되고 있음을 보는데 그것은 두 왕국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바벨탑 건축은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축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들만의 왕국,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지 않으셔도 존속될 수 있는 인간나라를 세우려고 한 것이다. 그러한 계획을 하나님은 아시고 심판하셨던 것이다. 흩으신 것은 아담에게 내리셨던 저주였다. 땅에서 떠나 유리하는 것은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추방이다. 가인이 땅에서 유리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벌이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땅에서 유리방황하는 것은 저주였고 땅에서 정착하는 것은 복이라는 것은 구약의 일관된 기본 사상이다. 이제 그 심판 직후에 하나님은 곧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법과 통치가 확립된 나라와 족속을 세워서 흩어진 족속을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경건한 땅 한 가운데 하나님의 지정하시는 땅을 설립하시고 그 가운데 자기 백성들을 정착시키시고자 하셨고 흩으심 이후에 정착이라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엿보이는데 항상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그러하듯이 심판이후에 즉시 구원의 길을 여신다는 것이다.

 

이제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동사는 하나님 1인칭이다. 그것은 왕국건설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왕국을 세우신다는 의지의 선포이다. 반면, 11장의 주어는 사람들이다. “우리 이름을 내자” 그들은 땅에서 정착하려고 시도했으나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인간의 방식으로 시도했다.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사람을 위한 왕국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국이다. 두 왕국 사이에 토지가 끼어있다. 바벨탑 역사와 아브라함의 역사는 모두 왕국건설이 공통된 주제이다. 이것은 신구약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나라는 땅에 대한 저주와 흩어짐과 유리함으로 끝나고 하나님 나라는 이제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축복과 정착’으로 향하여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나라는 끊임없이 흩어짐을 당할 운명을 안고 있음을 성경은 말한다. 아담이 에덴에서 흩어졌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방랑자가 되었다. 홍수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홍수 이후 바벨탑 시민들 역시 그러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땅에서 유리하는 역사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정착하러 가는 역사이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면서 살아가기에 현세에서는 궁극적으로 자기 땅이 없는 나그네들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나라 백성들은 필연적으로 흩어질 운명이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로 모이게 되는 길을 가고 있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이후 11장 10절부터 끝까지 아브라함의 족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족보는 아브라함이 셈의 자손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아브라함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데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의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처음부터 사람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성실히 집행하시는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정의, 또는 공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언약에 신실하심은 심판뿐만 아니라 회복이라는 은총에도 나타난다. 셈의 약속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구체화되었다. 스스로 인간의 힘으로 평화의 나라,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한 인간역사는 심판과 멸망으로 끝났지만 이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왕국의 건설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초에 사람에게 주신 언약을 유효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은혜의 역사이다. 그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 종말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처음으로 전한 메시지의 내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다.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 건설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되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 세움의 방식은 피의 대속의 원리에 성령이 응답하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부도덕과 사유욕과 독점욕에 눈멀게 하는 사탄의 지위가 깨어지게 되고 경건과 나눔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되는 거룩한 도시가 건설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건설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써 온 세상을 향하신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히셨다. 율법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를 담고 있는데 율법에는 특히 공의로운 사회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 틀도 담고 있다. 모세오경 중에 레위기는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려고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부르신 목적은 거룩케 함인데 이 거룩함을 이루는 일에는 개인적인 거룩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도 포함되어 있음을 레위기 후반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회를 공의의 기초 위에 세워지도록 하는 경제법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레위기 후반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은 온갖 사회경제적 부조리인 착취와 불의와 빈곤을 구조적이고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 안식년과 토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공의로운 사회를 건설하여 온 세상에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심이었다.

 

거룩한 사회와 거룩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율법에 의하면 개인의 성결을 바탕으로 한 공의로운 사회임을 알 수 있다. 거룩한 사회로서 이스라엘은 구조적인 빈곤과 가난과 효과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세계 열방에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구조적인 악과 빈곤과 싸워야 하는가? 보통 빈곤이나 불황에 맞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구제를 통한 자비의 실천이 있고, 둘째는 구조적인 개혁으로 빈곤이나 불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공의의 실천이 있다. 이 둘의 관계는 공의의 실천으로도 완벽한 빈곤이나 불의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자비의 실천이 제시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의의 실천이 우선시 되고 그 다음 순서로 자비의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미6:8절 참조-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23:23에서 인용하고 계신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공의보다 성장에 집중한다. 공의의 실천에는 아예 문외한이거나 뒷전이고 오직 교회의 성장을 위한 목적을 염두에 둔 자비의 실천에만 관심을 갖는 듯하다.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며 공의의 모델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가? 단지 교회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좋은 소문을 내어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판일까?

 

이스라엘에게 주신 공의의 법도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성경이 말하는 토지법은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이른바 ‘경세법(經世法)’의 핵심을 이룬다. 하나님의 토지법에 관련하여 율법은 10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1)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토지를 만드셨고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토지에 대한 사유권은 율법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성경은 토지에 대한 신유권(神有權)을 가르친다.

(2)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토지에 대한 사용권(使用權)을 사람에게 부여하셨다.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명령은 경제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땅을 다스리라”는 말은 사유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지기권을 의미한다. 즉, “토지에 노동을 투입하여 창조적인 부를 생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적인 경제주체로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땅을 소유하고 계시지만 그 땅에 대한 관리와 사용은 사람에게 맡기셨다.(시115:16절 참조) 따라서 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땅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 것을 허용하고 또 정당화시키는 토지사유제는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토지사유제에 의하면 노동자나 기업이 토지에 노동을 투입하여 부를 창출하려고 해도 지주가 반대한다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대한 이윤이 그대로 지주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불합리가 정직한 기업과 노동자의 경제활동의지를 꺾어놓기 때문이다.

(3) 토지에 대한 천부인권과 평등권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땅을 제비 뽑아 분배하여 주신 것은 땅에 대한 사람의 권리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민33:54절 참조) 하나님께서 땅을 사람에게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이 땅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땅에 대한 권리를 빼앗거나 땅을 가지고 부를 독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4) 토지에 대한 임의의 변경은 저주를 부르는 것임을 말씀하셨다.(신27:17절 참조)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지계표는 소유를 나타내는 표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엄숙한 표지이다. 따라서 지계표를 옮기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인간이 탐욕에 의해서 변경하는 죄이다.

(5) 토지에 대한 영구 매매를 금지하셨다.(레위기25:23절 참조) 사람은 토지를 매매할 수 없고 한시적으로 임대할 수는 있다. 사람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팔 수 없고 단지 사용권을 팔 수 있을 뿐이다.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레위기25:15)

(6) 토지에 대한 무르기를 허락하라고 명령하셨다. 언제든지 토지에 대한 무르기를 요청할 경우 허락해야 한다. 나오미의 토지에 대한 보아스의 무르기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토지를 팔았다 할지라도 보아스와 같이 가까운 친족이 언제든지 무르기를 요청할 경우 그 땅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 토지를 파는 것은 그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7) 희년이 되면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레위기25:28절 참조)

(8) 땅의 가치 중 일부분을 공유하라고 명령하셨다.(신14:23-29절 참조) 이스라엘 자손의 십일조는 레위인과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의 것이다.

(9) 땅의 안식을 명령하셨다. 땅은 안식년마다 휴경하여야 한다.(레위기25:4,11절 참조) 이것은 오늘날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람은 땅을 무한정으로 개발해서는 안 된다. 땅으로 하여금 안식하게 함으로써 재생력을 확보하게 될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

(10) 희년이 되면 땅의 반환과 함께 신분의 자유 또한 선언하게 하셨다.(레위기25:10절) 오늘날 형식적인 노예제도는 없으나 실질적인 노예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형식상 신분으로는 자유인이지만 자신이 돌아가 일하며 소산을 거둘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 일할 수 있는 토지가 없으면 형식상 자유인이 되었어도 실제적인 노예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토지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No Land No Liberty) 땅을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그 땅에서 생명과 생존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노동을 막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공의 법 즉 하나님의 토지법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회는 불의를 근절하고 구조적인 악과 효과적으로 싸워 이기며 거룩한 나라 즉, 공의로운 나라를 이루어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게 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요구 속에는 개인적인 죄에 대한 정결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불의에 대한 정결도 포함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의로운 사회의 구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오늘날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변함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는 어느 하나도 취소되거나 폐기된 것이 없다. 교회는 공의의 법도에 대해 무지하므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를 깨닫고 공의의 법도를 배우며 연구하며 가르치고 전파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의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외쳤던 오므리 시대의 어용선지자들과 같이 그리고 교회건물은 많았어도 영적으로 암흑기였던 중세와 같이 교회의 참된 영성은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공의의 법도는 어떻게 실행되었는가?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고 토지소유권을 하나님께 돌리고자하는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12지파가 공평하게 땅을 분배하는 장면은 아주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토지를 하나님의 것으로 주장하면서 잘 관리할 특권과 책임을 부여받은 민족이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셨다. 이와 같이 하심은 타국으로 하여금 본을 받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었고(선교적 사명), 그렇지 못한 족속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이 토지권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자체에까지도 선전포고를 하셨다는 점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점이다. 결국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가나안땅에 들이심은 심판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만국에 보이고 토지에 대한 하나님 소유권을 주장하는 백성들을 세우심으로 만국으로 하여금 본을 받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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