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성경참고

오늘:
173
어제:
226
전체:
1,933,904

이 게시판의 모든 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하시는 김광락 목사님의 글입니다.

조회 수 25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I. 성경적 토지사상: 하나님의 공의와 토지권에 대한 성경신학적 조망

 

그러면 성경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첫째,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땅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하셨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토지소유권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지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토지에 대한 개인의 사유화는 하나님의 토지소유권을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권 매매는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둘째, 토지에 대한 사용권은 사람에게 위임되었다. 여기서 소유권과 사용권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 토지법의 핵심이 된다. 사람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단지 토지에 대한 사용권만 있을 뿐이다. 사람은 토지소유권을 매매할 권리는 없고 단지 그 사용권을 매매할 뿐이다. “희년 후의 년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년수를 따라 네게 팔 것인즉 년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년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 팔 것이라.”(레25:15,16) 이와 같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하나님께만 있고 사용권 내지 수익권의 거래만이 허용될 뿐이라는 사실은 율법의 기본정신이자 개혁자인 헨리조지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학적 반대자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첫째,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가나안 땅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둘째, 구약의 율법은 더 이상 신약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율법폐지론자). 첫 번째 반대는 율법을 유대인만의 문화로 간주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 편협하게 본 것이다. 율법에 문화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요구를 담고 있다. 즉, 율법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 명시하기를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나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유대인만의 문화로 간주할 수 없다. 율법은 모든 인류에게 대한 하나님의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만을 창조하셨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지구 전체의 땅도 창조하셨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성경의 법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타당한 양심법에 호소하고 있다. 두 번째 반대는 율법을 복음과 이원론적으로 보는 것인데 이 문제는 율법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폐기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구약에서 토지법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규정되었는지를 파악한 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어떻게 완전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다.

 

구약의 토지법은 레위기 25장에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구약의 토지법은 희년법으로 명시화되는데 레위기25:23절은 구약의 토지법의 핵심이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그러나 토지권에 대한 규정은 구약 레위기 희년법에서 명시화되고 구체화 되지만 사실은 이 토지권 개념은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할례가 있기 전에 믿음이 먼저 있었듯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땅이 먼저 있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인 “땅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나타난 토지권 문제를 간략하게 살펴본 뒤 모든 믿는 자의 조장이자 레위기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나타난 토지권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즉, 레위기의 희년법 이전에 이미 토지권에 대한 중요한 사상이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지권이 이스라엘 역사에 어떻게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졌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기독교 세계관과 신앙고백의 근본을 형성한다. 최초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시고 땅에 사람을 두셨다. 창조하신 땅 안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정착하여 살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땅에 대한 정복, 통치권을 부여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경제학적으로 풀이하면 “토지에 노동을 투입하여 부를 창출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최초의 명령은 다름 아니라 경제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땅에 사용권을 부여하시고 또한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명령하셨다.

 

“땅을 다스리라” 이것은 타락 이전에 주어진 명령으로서, 명령 그 자체가 동시에 사람에게 복이다. 즉, 윤리적 근거이자 천부적 권리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와 땅에 대한 사람의 통치권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발견되는 서판에서는 왕이 수호신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은데, 여기서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대리자’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이 토지를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땅에 대한 소유권을 서로 주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땅을 성실하게 관리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사람은 토지를 창조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한 청지기같이 되어서 토지를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토지소유권은 토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지만 토지사용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것도 토지에 대한 사람의 청지기의식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주어진 이 최초의 통치위임령은 모든 사람의 천부권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사회변혁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땅에서 추방당하고 땅에서부터 소외되고 유리하며 방황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그것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범죄의 결과 토지에서 유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데 왜냐면 범죄란 하나님에 대한 자기주장 즉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됨을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역사는 곧 토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의 범죄란 하나님의 소유권을 부인하고 자신의 소유권으로 주장하는 의지였다. 청지기권에 대한 거부, 즉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였다. 결국 토지에 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부인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자 할 때 사람은 그의 근본된 토지에서 분리되고 만다. 이것이 영적죽음의 본질이다. 토지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부인하고 자신의 것으로 내세우는 자기주장의지(self-assertive will)가 곧 아담이 범한 죄였다. 죄를 범함으로 사람은 에덴 땅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에덴동산이 받아주지 않았다. 에덴이라는 토지를 관리할 특권을 상실했다. 사람의 근본이 토지이기 때문에 토지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은 범죄의 결과이고 저주이며, 사람에겐 곧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룻기에서 나오미가 자기 기업을 상실한 후에 베들레헴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죽은 자’라고 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룻1:8). 땅 없음은 죽음이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아들 가인도 자신의 범죄를 인하여 땅에서 유리하며 방황하게 되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하나님의 소유권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람의 청지기직분의 의미를 망각하였을 때 사람의 근본된 토지에서 분리되고 끊어지고 정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고백이었다.(시37:9,11;잠10:30) 그러므로 율법 이전에도 사람이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곧 범죄이며, 범죄의 결과 공의로운 심판의 표로서 죄인은 토지관리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아 이후의 사람들이 바벨이라는 자기중심적인 도시건설의 죄를 범함으로 온 땅에 흩어지게 되었다. 바벨건설은 하나님의 토지소유권을 부인하는 세속운동의 전형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되면 토지에서 분리되고 유리하며 방황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생명이 단절됨을 의미한다. 이같이 토지에서의 분리라는 심판을 내리심은 모든 사람과 맺은 일반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모든 자연인과 맺으신 언약법(covenantal law)에 의거하여 성실하게 상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는 그분의 ‘공의’ 혹은 ‘정의’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하나님의 토지소유권을 부인하고 스스로 땅의 주인행세를 하려는 사람의 교만과 탐욕은 최초 에덴동산 안에 있었던 뱀이 품었던 것과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시고 땅 위에 사람을 두시고 땅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다. 여기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사람에게 위임된 것이다. 사람은 선한 청지기같이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천상의 사탄이 사람이 가진 토지사용권을 바라보고 질투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왜냐면 사탄 자신은 토지를 다스릴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에 내려가 사람을 속이고 사람이 다스리던 토지를 강탈하게 된다. 그래서 사탄 자신이 토지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된다. 사람은 토지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하게 되고 사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사탄이 실질적인 땅의 지배권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토지에 대한 청지기직분을 사람에게 돌려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은 구원역사의 비밀이기도 하다. 사탄은 땅을 차지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되찾고 사람에게 관리권을 다시 돌려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 본토를 떠날 것을 명령하셨다. 토지사유제가 보편화된 바벨의 땅에서 떠나 하나님의 토지법이 확립된 땅, 하나님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자기소유를 주장하는 세상나라 한 가운데 하나님 소유를 주장하는 제사장 나라를 건설하기로 계획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 대한 약속이었다. 이 땅은 의의 땅으로서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로 채워질 땅이었다. 사람이 원래 가졌으나 사탄의 속임수로 잃어버린 토지에 대한 청지기직분을 회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명령은 구속명령에 의해서 회복되어진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데서 구속사의 의미는 분명히 밝혀지게 된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땅을 주겠다’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을 받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복의 근원이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이란 무엇인가? 땅에서 방황함의 반대개념, 즉, 태초에 주어진 하나님의 창조명령처럼 선한 청지기가 되어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저주는 ‘방황’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은 정착과 통치권 회복을 의미한다. 즉, 복은 개인소유에서 하나님소유에로의 이전이다. 창 11장까지 인간의 역사는 심판, 즉 흩으심의 역사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흩어진 사람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잃어버린 땅의 통치권을 원 청지기였던 인간에게 돌려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복을 어떻게 각 족속이 받게 되는가? 그것은 아브라함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아브라함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의존한다. 그것은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관점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자에게 복이 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토지법을 수용하는 족속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토지권에 관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왜 우리가 아브라함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심에도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배경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7 현대 영성운동의 현주소와 방향 file honey 2012.10.24 884
166 레노바레 강의안에 대한 교리적 비평 file honey 2012.10.22 819
165 레노바레의 관상기도에 관하여 file honey 2012.10.22 921
164 Slain in the Spirit에 관한 교리적 적용 file honey 2012.10.22 813
163 Slain in the Spirit 에 관한 교리적 평가 file honey 2012.10.22 835
162 시편 23편 강해(영어판) file honey 2010.03.25 2257
161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10) 4장 honey 2010.03.19 2623
160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9) 3장-3 honey 2010.03.19 2301
159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8) 3장-2 honey 2010.03.19 2474
158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7) 3장-1 honey 2010.03.17 2250
157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6) 2장-4 honey 2010.03.10 1936
156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5) 2장-3 honey 2010.03.10 2421
155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4) 2장-2 honey 2010.03.10 1844
»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3) 2장-1 honey 2010.03.09 2531
153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2) 1장 honey 2010.03.04 2044
152 성경적 토지사상과 그 현대적 적용(1) 서론, 목차 honey 2010.03.04 2502
151 로마카톨릭사상평가-마틴 로이드 존스 file honey 2010.03.04 3403
150 이신칭의3-맺는 말 honey 2009.12.29 2465
149 이신칭의2-본론(9)(10) honey 2009.12.29 2587
148 이신칭의2-본론(7)(8) honey 2009.12.29 1900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7 Next
/ 17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