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처럼
아멘교회 김광락 목사
(빌 1:3-5)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오늘은 아멘교회가 설립된 지 23년 된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이제 아멘교회가 23살이 되었다. 사람이 가장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때를 23세 전후라고 말한다. 지금의 아멘교회 역시 건강하고 아름다운 때를 지나고 있다. 23살의 청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지금의 아멘교회 역시 앞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통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은 일생동안 5 퍼센트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재된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비전과 훈련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꾸준히 연습한다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멘교회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본받고자하는 모델을 가슴에 품고 끊임없이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지상교회 중에 어느 교회도 완벽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없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매진하며 충성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다. 그렇기 때문에 취사선택할만한 모델이 있어야 한다. 내가 본받고자 하는 모델이 없다면 그저 그런 범부가 되고 만다. 그래서 오늘 저는 빌립보 교회를 통해 아멘교회가 본받아야 할 2가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해 쓴 편지들 중 하나인데 빌립보서를 읽어내려가면서 다른 옥중서신들보다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친밀함이라는 것이다. 다른 서신들보다 더 인간적인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사람과 특별히 친해지는 계기는 보통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친밀한 감정을 보다 많이 표현하는 대상은 친구이다. 특히 같이 어려움을 겪은 친구일수록 더욱 그렇다. ex.청년들과 가까워지려면 같이 고생하며 같이 땀흘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고생하는 모습 보면...
-빌립보 교회가 처음 설립될 때를 살펴보려면 사도행전 16장을 보아야 한다. 빌립보 교회가 처음 설립될 때 사도 바울 일행이 겪은 고난과 시련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사역지를 옮겼는데, 빌립보가 첫 마게도냐 사역지였다.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바울 일행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빌립보 교회의 초기 멤버는 자주장사 루디아, 그리고 빌립보 간수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예배당은 빌립보 간수장의 가정이었을 것이다.
-빌립보 교회의 초기 멤버가 사도 바울 일행을 보면서 도전 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도행전 16장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면서 찬양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빌립보 교회를 보면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첫째,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교회>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한다. 빌립보서에 ‘기쁨’이란 단어가 17번 나온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4:1)이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이 훗날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보낼 때 “내가 기뻐한다”고 하면서 너희도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당부할 때 빌립보 교회는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빌립보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가보자. 빌립보 간수장의 집으로!!
-한 밤 중에 갑자기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기 시작했다! 기쁨 없이 찬송은 불가능하다! 한 밤 중에 기쁨이 임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기쁨이 아니라 아픔으로 인한 서러움, 슬픔, 낙담이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의 채찍은 끔찍하다!
ex.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느껴보았던 기쁨이 어떤 기쁨이었는지 생각해보자.
ex.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세상이 주는 기쁨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환경과 조건이 주는 기쁨 vs.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알고 있는가?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다! 매주일은 기쁨의 잔치여야 한다! 이 기쁨의 원천은 우리 주님의 부활하신 사건이다. 부활의 사건은 우리의 죄사함을 영원히 확증한 사건이다. 따라서 매주일은 부활절이다. 주님의 부활하신 사건을 경축하는 날이기 때문에 매주일은 기쁨이 넘쳐야 한다. 또한 우리 삶 역시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기쁨이 넘쳐야 한다. 고난이 와도 부활의 사건, 부활의 소망 때문에 기쁨이 넘쳐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기독교가 아니다. 기쁨을 잃은 기독교인만큼 안티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참 기쁨을 아는 교회였다.
<둘째, 복음에 동참할 줄 아는 교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가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가?(5절, 4장 10, 14, 15, 18절 참조) “참여”-‘코이노니아’란 말은 원래 ‘물질의 나눔’을 뜻하는 단어였다.
-오순절 강림후 탄생한 예루살렘교회가 서로 물질을 통용하였다.
-복음에 참여한다는 말은 ‘선교’를 의미한다.
-본문 5절에서 “첫날부터”란 말은 ‘빌립보 교회가 처음 설립된 날부터’란 뜻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은 7절에,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
-4장14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4장15절,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4장16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다른 교회는 처음에 선교를 시작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였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과 함께 끝까지 ‘동역’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날이 새어 상관들이 바울 일행을 놓아주라고 했을 때 바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행16:37절,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그러자 상관들이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두려워하며 직접 와서 떠나기를 청했다고 한다.
-빌립보 교회의 초기 설립멤버들은 복음의 능력을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사도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고난받지 않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자청해서 받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았다.
-고난받지 않아도 되는데 고난을 자청함으로 나에게 복음이 전해졌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고난 받는 주의 종들과 끝까지 ‘동역’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선교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선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아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선교는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난받지 않아도 되는데 와서 나에게 이 귀중한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에 대해 우리는 고마움을 알 때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복음의 능력으로 진정한 기쁨을 알아야 한다. 또한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들고 나에게 찾아와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세계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2만여명의 선교사를 온 세계에 보내었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 속에서 복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교회별 파송비율을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4만교회를 자랑하면서 겨우 2만 밖에 파송하지 못했다.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2030년까지 30만의 선교사가 더 필요한데 한국교회는 6만을 목표로 하지만 아직 5%도 채우지 못했다.
-2007년말 기준 168개국 1만 7697명 파송, 세계선교의 15%를 담당, 예장합동 95개국 1913명, 매년 선교사 파송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사항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교리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동안 카톨릭은 선교에 열중,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선교하는 수도원을 폐쇄하고 선교사 파송하지 못하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 선교사 파송. 모라비안이란 신자들이 60명당 1명을 파송하면서 24시간 지속적으로 기도로 후원하는 일을 하면서 기독교 선교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맺는 말>
기쁨과 선교, 이 두 가지는 교회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축이다. 오늘 설립 23주년을 맞이하는 아멘교회는 빌립보 교회처럼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줄 아는 교회, 복음의 능력으로 참 기쁨을 알고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복음사역자들의 땀과 피와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 또한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금도 복음의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과 함께 고난에 참여할 줄 아는 진정한 의미의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