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와 세계관
출처: 이용웅원장글/GP연구개발원, GMP 2015년 여름호 제76호, pp. 4-7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기원전 6세기 인도 북부(지금의 네팔)에서 고다마 붓다에 의해 시작되었다. 힌두교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힌두교와 유사한 교리(윤회설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카스트 제도를 배제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당시로서는 개혁종교로서 주전 300년경 아속왕 당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포교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불교권은 교리에 따라 소승불교권(태국,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대승불교권(한국,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밀교불교권(부탄, 몽골, 티벳)으로 나눌 수 있으나 공통점은 초기의 순수 불교에서 벗어나 미신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불교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아시아 불교권 인구가 전 세계로 이주하면서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가는 것과 명상, 요가 등을 통한 신비 체험이 서구인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근본 교리와 세계관
불교에는 기본적으로 원죄의 개념이 없다. 죄는 무지의 소산으로 본다. 사망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며 연기법칙(緣起法則, 우주의 존재법칙)의 결과이다. 사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죽음 이후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을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 한다.
‘고다마’는 불교 용어로 ‘붓다’ 즉 각자(覺者, 깨달음을 얻은 자)의 의미가 있다. 불교의 목표는 니르바나(열반), 욕망과 고통에서 해방된 완전한 평화와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길은 철저한 자기 수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사성제라고 한다. 사성제(四聖제(言帝))를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성제는 다음과 같다.
(1) 고제(苦제): 모든 존재는 고통이다.
(2) 집제(集제): 고통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3) 멸제(滅제): 욕망을 끊으면 고통이 끝난다.
(4) 도제(道제): 행실과 생각과 믿음을 제어하면서 팔정도(八正道)를 따름으로써 욕망을 끊을 수 있다.
붓다는 임종 때 제자들에게 “진리 안에서 혼자서 구원을 찾으라. 자신 외에 다른 어떤 이의 도움도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붓다의 말에 따르면, 깨달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과 선한 행실을 발전시키려는 개인의 노력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교는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그 후 제자들에 의해 불교의 ‘삼보(三寶): 붓다(佛), 다르마(法), 상가(僧)’가 완성되었다. 삼보는 사람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도록 돕는 수단다.
팔정도는 불교에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여덟 가지 구도의 방법이다. 팔정도는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덕목을 여덟 가지로 나눈 것인데, 이 팔정도야 말로 올바른 길로서 완전한 수행 방법이라고 보았다.
(1) 정견(定見): 올바른 견해를 의미한다. 즉 자기와 세계를 보는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견은 이 세상은 인과 연의 관계에 의해 진행된다는 연기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며, 현실 세계는 고통스러운 곳[苦제]이며, 이 고통의 원인[集제]을 알아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道제]을 통해 절대 행복의 경지[滅제]에 도달할 수 있다[四聖제]는 것을 잘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치에 맞게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3) 정어(正語): 정어는 올바른 말을 뜻하며, 허망한 말 대신 진실한 말을, 입에 발린 말 대신 정직한 말을, 이간질 하는 말 대신 화합시키는 말을, 험악한 말 대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즉 정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4) 정업(正業): 정업은 올바른 행동을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정업은 살생하지 말고 방생하며, 도적질하지 말고 보시하며, 음란한 생활을 하지 말고 청정하게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5) 정명(正命): 바른 견해에 입각하여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서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정명은 실천적 과정에서의 방법을 강조한 것이다.
(6) 정정진(正精進): 정정진은 올바른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굳은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라는 것이다. 이는 곧 불자로서의 구도의 자세라고 볼 수 있는데, 아직 발생하지 아니한 악이 생기지 못하게 하고, 발생하지 않은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고 실천해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7) 정념(正念): 정념은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항상 해탈의 경지를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서 얻어지는 바른 생각을 말한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여 다른 잡념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을 확실하게 다스리는 것이다.
(8)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다. 정정은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온갖 번뇌와 어지러운 대상이 모두 없어지게 되면서 모든 것이 빛나는 경지를 말한다.
불교와 정치 사회적 관계
불교는 스리랑카에서 동쪽으로 미얀마, 태국 및 그 밖의 인도차이나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북쪽으로는 카슈미르와 중앙아시아로 퍼져나갔다. 기원 1세기에 불교 승려들은 중국으로 불교를 전하였다. 그리고 불교는 인도 북쪽에 인접한 티베트로도 들어갔다. 불교가 티베트 지방의 신앙과 혼합되어 생겨난 것이 라마교인데, 라마교는 그곳의 종교와 정치생활을 모두 지배하였다. 기원 6세기와 7세기 무렵에는 동남아시아와 극동 전역에서 불교가 확고히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불교가 영향력을 뻗어 나가고 있는 동안 정작 인도에서는 불교가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다. 수도승들은 철학적, 형이상학적 탐구에 너무 깊이 몰두한 나머지 평신도와의 관계가 너무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왕실의 후원이 없어지고 인도인들이 힌두교의 사상과 관습들을 받아들인 까닭에 인도 불교의 쇠퇴는 더 가속화되었다.
종국에 고타마가 태어난 룸비니나 그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같은 불교 성지들도 폐허가 되고 말았다. 13세기 무렵, 불교는 인도차이나의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꽃피웠다.
20세기에 들어와 중국, 몽고, 티베트 및 동아시아 나라들의 정치적 격변(공산화)으로 불교는 심한 타격을 입었다. 수천개의 수도원과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남녀 수도승이 추방되거나 투옥,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습관에서는 불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소승 불교인 테라바다(장로들의 길) 혹은 히나야나(소승) 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서 번성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불교가 보수적 유파라고 생각한다. 이 유파는 지혜를 얻는 것 그리고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에서 명상과 연구에 전념하는 수도승 생활을 함으로써 개인의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한다.
마하야나(대승) 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그 유파가 “진리와 구원의 길은 동굴에 살든, 수도원에 살든, 집에 살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반 불교도들은 불교 교리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수행을 통해 열반에 이르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고 당대에 좋은 업을 많이 쌓아 다시 윤회하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것 정도를 소망한다. 불교가 이들에게는 생활종교이지 삶의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는 불교 교리는 좋은 통치 수단이다. 내가 가난하고 못하는 것은 정치를 잘 못해서가 아니라, ‘전생에 업이 안좋은 탓’이라는 윤회사상은 통치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것이다. 따라서 일부 불교 국가에서는 ‘불교진흥정책’ 등을 펴면서 학교 교육 등을 통해 불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인구가 전과 같이 늘고 있지 않고 젊은이들의 탈종교화 현상으로 태국 같은 경우도 사찰에서 승려지망생이 줄고 있다고 한다. 세속화 현상이 불교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