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신학과 선교언약
출처: 최**SKS(인터콥 본부장) 글/개척정보 2013년 11월호, Vol. 308. pp. 1-5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성취하신다. 창세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구속의 언약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후에 동물을 피 흘려 잡아 인간의 옷을 만들어주시고 보살펴주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행위언약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의 언약을 주셨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구속언약에는 보낸 이와 보냄을 받은 이가 있다. 하나님은 보내시고 보내심을 받은 이는 구속언약을 이행한다. 이런 점에서 구속언약은 선교언약이라 할 수 있다.
선교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는 언약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을 거쳐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를 통한 구속언약의 완성 및 보내심을 받은 성령의 선교언약의 이행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선교언약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역사와 직결되는 것으로 인간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인간과 행하신 언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선교언약은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향한 종말론적 언약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따라서 선교언약은 교회에 주신 언약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하지 않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선교언약을 전제하지 않는 교회의 사역을 생각할 수 없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선교언약을 통해 연동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진전시키는 거룩한 도구인 것이다.
선교의 언약은 인간 타락 직후에 처음 나타난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구원의 약속을 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것을 언약하셨다. 여자의 후손, 즉 그리스도가 오시어 사탄을 멸하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언약이다. 여기에는 어떤 특정 개인이나 특정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선교언약을 선언하신 것이다. 선교언약의 이행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사탄의 세력 간에 영적 대립이 계속될 것이다. 발꿈치를 상하심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인간을 구속하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바벨 반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주시고 모든 민족을 복주시는 선교언약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적극적으로 선교언약을 이행하실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네 씨,” 즉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언약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대적의 문을 취할 것, 즉 사탄의 세력을 제어할 것과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창 22:15-18).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신약시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씨”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선택된 백성은 복의 수혜자인 동시에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선교언약의 이행(사역)을 위해서 구별된 백성이라는 의미는 이사야서 6장 13절에서 그 자손을 “거룩한 씨”라고 칭함에도 잘 드러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선교언약의 이행자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 여기서 언급된 유업은 선교언약임이 분명하다.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을 ‘보내시는 자’로 보는 관점이 독특하고 뚜렷하다. 요한복은은 선교언약의 성취를 위해 ‘보내시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주고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선교언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예수님의 선교언약을 수행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 요한복음은 보내시는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를 통해서 영생이 선교언약과 직결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겟세마나 기도에는 보내시고 보내심을 받음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드러낸다. “...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26).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다른 보혜사를 주시도록 구하겠다고 미리 말씀하셨다. 성자 하나님이 구하시고 성부 하나님이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제자들 안에 계실 것이다. 또한,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사역을 통해 선교언약을 이행하신다. 제자들 역시 보혜사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증언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제자들 안에 거하시며 선교언약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제자들을 절망 속에 몰아넣었다. 절망에 빠진 제자들은 여자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홀연히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성령님은 선교언약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라고 하셨다. 이와 관련하여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언약 성취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사함의 회개의 복음을 한 민족도 빠짐없이 전해야 한다는 것과 선교의 목적이 단순 사회봉사를 넘어서 각 개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영생을 얻게 함인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에는 선교언약을 지상명령으로 주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다. 이것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는 말씀과 연계된다. 즉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신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에서 지상명령을 하시면서 다시 확인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불과 바람으로 임하셨다.
개혁주의 신학자 싱클레이는 오순절 사건을 시편 2편 6절-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라는 메시지의 메시아적 약속 성취로 보았다. 열방을 향한 선교언약의 메시아적 성취로 본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및 승첨에 이어지는 메시아적 구속사적 사건이며 동시에 열방 모든 민족을 향한 성령의 사역이 불과 바람으로 권능으로 전개되는 선교언약의 종말론적 이행의 사건이다.
한편 선교언약의 이행에 삼위께서 모두 참여하신다. 성부께서 정하시고 아들을 보내셨다. 아들이 구속하시고 성부와 함께 그리고 부활의 능력으로 성령을 보내셨다.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고 선교언약 성취를 위해 세계 열방으로 보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부께 영광을 돌리셨듯이 성령님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신다. 예수님은 지상명령을 말씀하시면서 선교언약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임을 암시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선교언약은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핵심사역이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중대한 사건임을 암시하였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오순절 성령강림은 선교언약을 수행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열망과 비전을 밝히 드러낸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역사의 주제는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언약의 이행으로 수렴되었다. 성령께서 오순절 이후 선교언약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오셨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에베소 등 모든 민족을 향햐 선교언약을 성취해 가는 역동적인 역사운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1952년 독일의 빌링겐에서 열렸던 제5차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 사용된 용어로 선교운동의 근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령 하나님은 선교언약의 이행의 주역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적 구속사 및 종말론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종말론적 구속사는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언약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신 목적은 엄밀히 말해서 온 세상을 향한 그분의 선교언약 때문이었다.
선교언약은 구약과 신약 시대에 통일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점진적으로 뚜렷해지고 명백해진다. 선교언약의 성취를 위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시며 성령은 제자들, 즉 교회 안에 계시며 선교언약을 이행하시고 성취하신다.
지역교회들과 교단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참과 거짓의 혼합물이며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언제나 영적 갱신과 선교적 우선순위에 대해 철저히 헌신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시대이지 교회 조직을 신격화시키고 있을 시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시대이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보다 상위개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존재의 근거를 하나님의 나라에 둔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지상과제는 선교언약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