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민족 청년 천국 운동
출처: 권****(아랍사역자) 글/개척정보 2013년 9월호, Vol. 306, pp. 1-5
들어가며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며 처음 선포한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되어 있다. 오직 주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제1선포에 이어 나오는 제2선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었다. 이 기도문은 2천년간 모든 그리스도인이 간구한 기도문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이 찬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이야기했다. 그냥 복음이 아닌 천국복음을 말씀하셨다. 교회에게 권세를 줄 때에도 “내가 이 반속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이야기 하셨다.
성경에 많은 구절, 핵심적인 내용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이렇게 성경은 천국에 집중하는가? 왜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한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역사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지 또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비교해 보아야 더욱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추구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세상 나라가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상충되며 다르다. 세상 나라는 무엇인가? 세상 나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명과 제국을 보면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문명이란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말한다. 즉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모인 결정체와 같다. 그렇기에 이 문명이 세상 나라의 성격을 잘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명이 커지면 제국이 된다.
다양한 형태의 문명이 존재하지만 모든 문명의 핵심 가치는 동일하다. 문명은 늘 현세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약속하고 추구한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은 문명의 중심부로 들어가길 원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중심부일수록 안락하고 편안하며 그 문명에서 말하는 성공신화는 보장된 미래와 풍요로운 삶들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이 합쳐져 만들어진 제국은 개인적인 안녕과 번영을 넘어 범세계적인 평화를 추구해 왔다. 결국 개인의 안정과 번영도 전체 공동체의 평화 속에서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제국들,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 영국제국, 미국제국들은 한결같이 평화를 추구해 왔다. 팍스 로마나Pax Rpmana,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와 같이 말이다.
결국 세상 문명, 세상 제국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의 힘과 지혜로 이 세상에 안정되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 즉 유토피아, 완전한 세상을 세우자는 것이다. 이 전형적인 모습은 성경에 바벨탑 사건에 노골적으로 잘 기록되어 있는데 비록 바벨 문명의 반란사건은 아주 고대형태였지만 그 중심가치와 주구하는 바는 사실 오늘날 모든 국가제도, 세계기구, 세계인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세상 왕국은 세상의 중심으로 오라고 한다. 함께 힘을 모으고 함께 지혜를 모아서 우리의 힘으로 완전한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전진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임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조인인 인간들이 만드는 결과물은 비국이며 또 다른 악일 뿐이라고 인류역사 전체가 그것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떻게 임하는가? 먼저 천국의 열쇠는 교회에게 주어졌다.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은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면 끝이 온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의 생각으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착각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우리가 착하고 선하게 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면 천국이 결국 임한다고 생각한다. 그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완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한 천국이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약속하실 뿐 아니라 믿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진한다. 세상은 역사를 만들려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들이 모인 아름답고 거창한 곳으로 오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늘 변방, 땅끝, 광야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이 동일하게 광야에서 역사를 시작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변방 나사렛 갈릴리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중심세력에 의해 나사렛 예수라는 조롱을 받으며 유유히 역사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늘 하나님의 역사는 땅끝 변방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역사를 이루어갔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청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오직 청년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기꺼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험난한 곳, 광야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늘 청년들이 그 역사를 만들어갔다.
오늘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나라 완성을 향해 역사는 강력히 전진하고 있다. 다른 말로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세계 교회가 일어나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선포하고 있다. 세계 교회의 관심이 갑자기 열방, 땅끝을 향한 천국복음증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천년간 세계 교회는 초대교회 시기를 제외하고 신기하게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 천국복음의 전파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기간 자신의 내부, 내면의 완성, 내면적 온전함에 집중했다. 천국소망보다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상황논리(윤리, 도덕)를 발전시키거나 현세의 삶의 번영과 안정에 집중하였고 많은 이들에게 천국은 죽음 이후 보험과 같이 여겨졌다. 또는 지나치게 신비화된 영성주의로 개인 명상과 자아완성에 집중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세계교회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각성해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선교의 완성,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눈앞에 보고 있다.
모든 민족 청년의 전진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들, 선교지 변방 땅끝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을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하지만 많은 세계 교회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열방에 천국복음이 빠르고 강력하게 선포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동시에 모든 민족에서 주의 제자들, 청년들이 함께 일어나 변방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보고 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복음을 선포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2가지 명령이 동시에 모든 민족 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것은 주의 신실한 청년들이 모든 민족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 교회는 민족단위로 경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을 초월해 하나님의 역사가 전진된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 바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던 때이다. 성령께서 처음 임해서 하신 일이 바로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하신 것이었다. 오순절 성령은 모든 민족의 나뉨이나 민족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이기고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되는 마지막 때의 일(계 7:9-10)을 보여주셨다. 바로 마지막 선교완성, 하나님나라의 완성의 꿈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세계교회는 구조적으로 민족 단위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선교역사는 부흥을 경험한 민족들의 선교리더십을 통해 경영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천국복음이 전 지구적으로 선포되었고, 마지막 남은 프론티어 변방을 공략하기 위해 모든 민족의 청년들이 함께 일어나고 있다. 한국, 북미, 남미,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유럽, 아프리카, 중동의 청년들이 한가지 꿈, 천국의 꿈을 꾸며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마지막 시대의 아주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변방, 땅끝, 열방으로 천국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든 민족의 청년들은 광야에서 아주 성경적인 방법으로 제자가 되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도의 원형을 잃어버리고 제도를 통해서 제자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원형의 제자양육은 간단했다. 바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땅끝 광야로 가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따르며 헌신하고 사역할 때 성령께서 직접 그를 강한 제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와 광야를 거닐며 함께 땀 흘리며 사역하며 제자를 키우셨으며,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아무런 안정체제가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독대하며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들은 투박하고 부족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그들 안에는 강력한 주를 향한 사랑과,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있었다. 아무것도 의존할 수 없는 광야에서 오직 그 위에 임하신 성령을 의지하며 주님이 주는 지혜로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며 결국 승리했다. 그들은 강한 주님의 군사였고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 불같은 연단을 받았다.
이와 동일하게 오늘날 열방의 청년들이 광야로 모이고 제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광야학교에서 그들은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공동체로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진정한 예배, 살아있는 예배는 세상의 중심에서 드려지는 화려한 예배가 아니다. 주를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며 그 몸과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고난과 십자가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 자들이 변방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일 것이다.
우리는 곧 그렇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천국 소망으로 자신을 100% 드리는 모든 민족 청년들이 천국을 바라보며 함께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험난한 마지막 변방에서 천국복음을 외치며 마지막 거대한 환난을 이겨낼 것이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숱한 전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넘칠 것이고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심장을 가진 강한 주의 용사들을 통해 마지막 변방이 회복되고 그들은 그토록 그들이 사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