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고(갈라디아서 4:19)
본문: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리스도인들은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이다. 육신의 출생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성령으로 또 한번 태어나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다른 종교들은 거듭남이 없으며, 지상에서의 종교생활로 끝이 나지만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얻고 주님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5-6). 많은 사람들이 물로 태어난 것을 세례로 잘못 알고 있다. (물로 태어난 것은 엄마 뱃속에서 육신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가 전해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기 영적 산고를 통해 거듭났다. 예수님은 이 영적 생명들을 낳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산고를 치르셨다.
육신적인 생명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라듯이 영적인 생명도 자라야 한다. 생태계에는 한 생명체가 자라가는 데 수많은 방해요인들이 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농부가 모를 심어 놓고 벼가 뿌리를 내려 막 자라려고 할 때 벼멸구가 붙어 연약한 속잎을 갉아먹는다. 또 피가 벼와 함께 자라면서 땅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버려 벼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 농부는 벼멸구를 제거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고, 피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 일일이 뽑아내야 한다. 많은 농기구들이 발명되었지만 피를 뽑아내는 기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두면 논은 온통 피 천지가 되고 만다. 게으른 농부의 논은 그때 표가 난다. 그뿐이겠는가? 벼가 자라서 낱알에 물이 오르면 새떼들이 몰려와서 이삭을 하얗게 빨아먹어 버린다. 성경에서 마귀들은 새들로 비유되는데 마귀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간다. 농부는 새들을 쫒기 위해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한다. 장대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고, 허수아비를 세우고, 반짝이는 색줄을 매어 놓기도 하고, 요즘은 확성기를 통해서 대포소리도 낸다. 농부는 이렇게 고생을 해서 벼를 자라게 한다. 산고를 치르는 것이다. 실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 중에 사람의 땀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사도 바울은 지금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갈 4:19). 우리나라 교계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마귀가 만들어 놓은 갖가지 올무와 함정, 장애물에 걸려 영적 성장이 멈춰버렸는지 보라. 정작 그 피해자들은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기형이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지 못하면 쓰임 받을 수 없다. 그들을 그런 함정에서 빼내어 정상적인 성장을 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산고를 치르는 것이다. 그들로 그리스도가 제대로 형성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역이요 선교요 양육이다.
성경을 사실로 믿는 교회로 인도받았다는 것은 태풍의 바다에서 항구고 들어온 배와 같다. 여러분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만큼 형성되어 있는가? 이 점을 여러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또 하나님께서 아시며, 그 다음에는 마귀가 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면 형성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형성된 그리스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간증 있는 삶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만을 자랑하다가 사라져 버렸는가? 왜 그렇게 되는가? 자라야 할 사람이 자라지 못함으로 인해 스스로 궤멸되어 버린 것이다.
1.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사람의 혼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그 시점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혼은 생명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믿어진다. 이 혼이 태어나면 씻기고, 먹이고, 가르치고,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한다. 돈도 많이 들고, 돌보고 가르치는 것도 많이 힘들다. 영적 성장도 육신적인 성장 못지않게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영적 성장을 위한 고생을 두 번째 산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생명도 자라야만 일을 할 수 있다. 자연인인 겉사람에게 성령으로 거듭난 속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에 겉사람이 양육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사람도 잘 자라도록 보살펴야 한다. 이 속사람 안에 형성된 인격은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어야 한다. 자기 안에 속사람이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자랄 것을 기대하겠는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고서도 속사람이 어떻게 양육되는지를 몰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형성시키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는 믿음의 생활을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구원 받았느냐고 물으면 머뭇거리면서 뒤통수만 긁적이는 것이다. 구원받은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의 삶은 성경의 궤도를 많이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속사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후 4:16).
인간이 행한 어떤 종교행위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무슨 종교행위를 하며 구원을 말한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들 수 없다. 이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행 4:12).
율법은 아무리 잘 지킨다 해도 생명을 낳을 수 없다(갈 3:21). 안식교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낳을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이단이다. 이단은 성경을 모른다. 율법은 생명을 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를 가져올 수 없다. 죄사함을 이룰 수가 없다(갈 2:21). 율법의 행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갈 3:2). 영적 유업도 받을 수 없다(갈 3:18). 율법을 지킴으로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의 믿음은 부도수표와 같이 영적 파산을 가져올 뿐이다. 성경적 진리를 모르면 하나님이 틀렸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2. 우리는 성령님께 관장된 사람들이다(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성령님이 내주한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요, 성령이 소멸되지 않은 사람이요(죄를 짓지 않는 사람, 엡 4:30, 살전 5:19), 육신적인 삶을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우리의 육신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제동을 걸고, 때로는 방해를 한다. 성령으로 인도되는 삶이 육신의 삶보다 우세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제대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받으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지식을 알지 못하면 영적 소통을 이룰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받을 때 수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연단시켜 사용하기를 원하시지만 그가 지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워본 적이 있는가? 마귀는 음행과 세상을 사랑함과,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계속해서 주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준다. 그때마다 우리는 계속 반격해야 한다. 그래서 속사람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겉사람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로 성장해야 한다. 겉사람보다 속사람이 우세할 때 속사람이 성장한다. 옛사람(겉사람)은 은혜로 근절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옛 성품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살아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이 죄성을 제거시킬 수 있었다면, 왜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게 하셨겠는가? 구원받고 나서도 인간은 스스로 죄를 제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구원받은 성도가 지은 죄까지도 제거시키는 효용을 발휘하는 것이다(요일 1:7-9).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을 제어할 때에도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지 못하는 근거가 바로 인간의 죄와 그 죄를 내는 육신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게 되면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로 남게 된다. 어린아이로 남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룰 수 없다. 성장하지 못한 사람, 즉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쓸모가 없다. 그래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았다면 성령님과 무관한 사람이지만, 속사람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흉내 내려면 그보다 더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에, 자기가 간증을 유지하려면 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이 사람을 자기들과 똑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미 늦었다. 그가 그리스도인들과 섞이면 계속 자신을 속이며 억지로 그리스도인인체 흉내를 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사람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지 못한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성경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돌아서면 허전하게 되고, 그런 생활이 고역이라는 것도 알게 되지만 마귀에게 점유되어 있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하고 위선적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지옥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의 삶에서 위선적인 열매는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령의 열매는 내지 못한다. 그 사람 안에는 불평이 습관처럼 따라다닌다. 불평은 교회를 죽이는 독이다(빌 2:14). 교회의 일에 열심을 내는 척하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사람들은 거의 다 그리스도가 형성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닌 쭉정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내어 드려 성령님이 관장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다.
3.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인간의 육신은 죄의 발이요, 따라서 마귀의 활동무대이다. 욕심이 잉태한 곳에는 죄가 장성한다. 마귀가 인간을 꼬드기는 수법은 육신을 부추기는 것이다. 성령으로 통제받지 못하는 육신은 마귀가 관장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믿음뿐만 아니라 긍정적 사고방식도 가지고, 이 짧은 인생에서 손해 보며 살 필요가 있느냐고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살려면 성경을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들은 성공한 목회에 대해서 떠들고 잇지만 성경 어디에도 신실한 목회를 하라고 하셨지 성공한 목회를 하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그런 편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성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이 정상적으로 살려면 죄(롬 6:11-12), 육신(갈 5:24; 2:20), 세상(갈 6:14) 이 세가지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하신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는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된 사람은 이런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사람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왜 산고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산고는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형성시킬 뿐만 아니라 장성한 일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는데 왜 또 산고를 치러야 하는가? 구원받은 삶의 영적 생활에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터인데 다른 것이 필요한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주님을 조건부로 영접했던 것이 아니라 구주로 영접했다. 예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내 병을 낫게 해 주시고, 취직을 시켜주시고, 좋은 데 시집장가 가게 해 준다는 조건부적인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주님을 영접한 것이다. 그분은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분이 내 안에 자리잡고 형성되게 하려면,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자라게 되는 여건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 마틴 웰스 냅(Martin Wells Knapp)이라는 미국 목사가 있었다. 그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을 때에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이 시련을 내게서 제거시켜 주십시오.” 기도한 후에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의 환상이 보였다. 한 대리석 돌멩이가 있는데 한 석공이 그것을 깎고 밀면서 정으로 새기고 있었다. 그러지 먼지가 일어났다. 나중에는 그것이 아름다운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보라, 내가 지금 너의 인격을 이렇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이 싫으면 지금 중단하겠다. 내가 중단하랴?” 냅 목사는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계속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의도를 두고 하신 일에 대해서 단순히 시련만 제거해 달라고 했습니다. 계속해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형성된 그리스도는 지금 어떻게 되셨는가? 심향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나아갈 때 “저를 이렇게 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자기를 부인한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아를 부인하는 삶, 이것이 또 하나의 산고인 것이다. 세상 사람처럼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어떻게 형성된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과 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매순간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될 때 생활을 통해서 그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것이다. 담배만 끊고, 술만 끊고, 나쁜 습관들을 끊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끊은 것은 잘한 것이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로 가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형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열매를 내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내기 위해서는 성령을 충만해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첫 번째 산고(자신을 부인)를 치르고 태어났고 두 번째 산고는 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믿음이 자란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께서도 첫째로 사랑해 주신다. 반대로 자기를 첫째로 사랑하게 되면 주님은 그 사람을 맨 뒤로 제쳐두실 것이다. 그래서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될 수 있는 원리가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주님께 칭찬받고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