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urgeon(0047) 18551021 Christ’s Prayer for His People(자신의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
on Sabbath Morning, At New Park Street Chapel, Southwark.
자신의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
(요한복음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이 기도는 참된 신자 모두에게 영원히 귀한 부분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 기도에 뗄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모든 무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믿음이 약하고 은혜가 적을지라도 우리 각 신자를 위해서도 중보하고 계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이 본문의 논의를 바로 진행하며 이 기도의 핵심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I. 이 기도의 의미
이 구절에는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기도가 담겨 있으며, 저는 이 기도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첫째, 이 기도는 신자들이 은둔과 고독을 통해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기를 구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 일부 은둔자들과 수도사들은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홀로 살면 하나님께 더 헌신하고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도원 제도가 그 자체로 오류를 입증했다고 생각하며, 홀로 사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방법으로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위대한 법의 다른 부분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한 마음을 싸매 주거나, 방황하는 자를 되돌리거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악은 마음에서 나오며, 우리가 어떤 고독에 들어가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죄를 지을 것입니다.
둘째, 이 기도는 신자들이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구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달콤하고 복된 방식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 중 누구도 너무 일찍 옮겨지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피곤한 순례자들이 "오,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쉴 수 있을 텐데"라고 기도할 때가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우리가 완전히 익은 곡식 단처럼 될 때까지 주님께서 기다리시도록 맡겨둡니다.
II. 이 간구의 이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기도하지 않으시는 이유, 즉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첫째,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깐 세상에 머무르는 것은 천국을 훨씬 더 달콤하게 만들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이 선행되어야 안식이 달콤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환난이 많을수록, 아버지의 궁전에서 맞이하는 우리의 승리는 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 더 많은 천국을 얻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잠시 여기에 머물러야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며, 다른 친구들이 모두 도망칠 때 구주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둘째,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그들의 형제자매를 구원하는 수단이 되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개종하자마자 죽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난받는 성도여,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려고 이 땅에 남겨 두셨을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여기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시련을 겪는 성도가 시련을 겪지 않는 성도보다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린다고 진정으로 생각합니다. 타지 않는 풀무불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면류관을 쓰고 영원히 찬양하는 자보다 하나님의 신성을 더 많이 드러냅니다.
성도들이 그들의 진실성을 보존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을 때 주님을 더 영화롭게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적들을 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면류관에 더 많은 보석을 추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원해서는 안 됩니다.
III. 이 기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리적 추론
이 기도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리적 추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행위이며, 하나님만이 그의 자녀들을 옮기실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악인들의 추수는 천사가 거두지만, 의인들의 추수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거두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곡식을 베는 추수꾼이십니다.
다음 추론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기도의 목적으로 삼지 않으시고, 우리가 생명 가운데 보존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묻지만, 저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죽음이 은혜의 징표는 아니며, 가장 중요한 증거는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입니다.
IV. 이 본문에서 배우는 실제적인 교훈
이 구절에서 배우는 실제적인 교훈은 우리가 짜증을 내며 하나님께 죽게 해달라고 간청할 격려를 결코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시련이 닥치면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며 죽기를 원하지만, 저는 이것이 주님의 동행보다는 힘든 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기도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므로, 그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전투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떠나고 싶어 하기보다는, 주님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격려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승리자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는 휴식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상의 죄를 보며 자신의 성화를 위한 교훈을 얻고, 악한 사회가 그 자체로 독성이 있더라도 은혜의 불로 유용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인 여러분, 봉사의 어려움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므로, 여러분은 수고와 전투의 참호에 머무르십시오. 여러분은 사업이나 모임에서 복음의 향기를 전하고, 거룩한 삶을 통해 죄를 책망함으로써, 적을 공격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세상에 머물게 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낙심하지 말고, 비록 성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일을 결코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싸움터에서 도망칠 수 없으니,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자신이 세상에 해만 끼치는 ‘땅만 버리는 나무’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저는 보잘것없는 가련한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의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가련한 죄인”이라고 느낀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여러분의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가련한 죄인”이라고 느낀다면,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의 전부”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이 고백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라고 중보하셨는지 그 복된 이유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