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윤회설은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윤회설은 영혼이 완전한 상태에 이르러 그 원천인 신 혹은 우주적 영혼과 다시 융합할 때까지 윤회의 과정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좋은 카르마(인연)를 쌓으면 보다 나은 상태로 윤회하게 되며, 나쁜 카르마를 쌓으면 그보다 못한 상태로 윤회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뉴에이지 저술가 게리 주커브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에 관해 감히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런 고통 속에서 카르마를 통해서 무엇이 치유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회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의 일로 인해서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카르마의 목적이 수많은 생을 반복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왜 수천년 동안 윤회가 진행된 이후에도 인간의 본성은 눈에 띌 정도로 개선되지 않았단 말인가? 왜 악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는가?
또 뉴에이지 운동가들의 주장처럼 윤회와 카르마의 법칙이 실제로도 그렇게 유익한 것이라면, 오래 전부터 윤회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오고 있는 인도에 가난과 질병, 끔찍한 고통과 같은 사회 경제적 문제들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의 삶을 살고 있으며,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
결론 악의 존재가 전적으로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양립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그분 자신을 신뢰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때로 우리 인간은 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런 상황을 겪게 하시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해서 거기에 아무 이유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림 전체를 보고 계시며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다 알 수 없다 할지라도, 그분께서 우리가 고통스런 상황을 겪게 하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고통이 가지고 있는 선한 목적은, 고통이 더 큰 악에 대한 경고가 되며(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면 다시는 뜨거운 냄비를 함부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우리를 자기 파괴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해 준다(뜨거운 냄비를 계속 들고 있지 못하도록 우리 몸의 말초신경이 고통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갇혀서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목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시간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전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이신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서 선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에는 우리의 인격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포함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에서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왜 절대적으로 선한 기준점이 없다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 - 절대선의 기준이 없다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고 선과 악의 구별이 없어진다. 2. 저자는 '유신론자는 현재 우리의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최상의 세계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세계는 가능한 최고의 세계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무슨 뜻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 현재의 세계가 마지막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다른 세계가 있다. 즉 천국과 지옥으로 구별된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최고의 세계에 이르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영벌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3. 악과 고통의 문제로 씨름할 때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관점은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런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 당신은 어떻게 노력하겠는가? -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관점은 모든 것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즉, 현재의 고통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롬 8:18, 고후 4:17, 히 12:2, 벧전 1:6-7).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 지상에서의 우리의 존재의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