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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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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부흥이 다시 일어날 땅

 

출처: 이**(소아시아 A족 사역자) /개척정보, 2012, 8월호, Vol. 293, pp. 17-21

 

인류의 시작인 에덴동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 노아 방주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 믿음의 시작 아브라함의 여정이 시작된 곳, 최조 이방인 교회와 최초 선교가 시작된 곳, 그리고 사도 요한을 통한 세상 종말에 대한 계시의 현장이 되었던 곳 소아시아 창을 소개한다.







지리적 소개

 

소아시아(Asia Minor) 창은 곧 현재 터키지역에 해당된다. ‘소아시아라는 말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3장까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에 흩어진 일곱 교회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데 지리적으로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10/40, 미전도 종족운동이 일어나 터키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소아시아창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터키의 공식 명칭은 터키공화국이며 터키는 지리적으로 3%가 유럽, 97%가 아시아에 속해있는데, 아시아 지역은 지중해, 에게해, 흑해 등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다. 이 반도의 이름을 아나톨리아라고 한다. 아나톨리아의 뜻은 그리스어 아나톨레에서 나왔으며 동쪽 혹은 해돋이를 뜻한다.

 

사도 바울이 사역할 당시의 아나톨리아 반도는 에게해와 접한 서쪽으로는 소아시아, 흑해와 닿아있는 북쪽지역은 본도, 비두니아, 지중해와 붙어있는 남쪽은 길리기아, 동쪽은 메소포타미아, 중앙내륙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로 불려졌다. 사도 바울은 지금의 터키 남부 길리기아 지역의 다소 출신인 것이다.

 

터키의 면적은 남한의 약 8배이며, 국경은 서북쪽으로 그리스, 불가리아, 동쪽으로는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남쪽으로는 이라크, 시리아와 접해있다. 인구는 약 7500만명으로 투르크계 약 70%, 쿠르드계 약 25%, 기타 소수민족 약 5%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는 이슬람이며, 순니파 80%, 알레비파(시아파) 15%, 기타 5%이다.

 

 

역사적 이해

 

사도 바울의 사역으로 수많은 교회가 개척되고 복음의 부흥의 꽃을 피웠던 터키는 2천여년이 지난 지금 이슬람 국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 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터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다소 복잡하다. 왜냐하면 터키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세가지 방향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지리적으로 아나톨리아 반도를 이해해야 하고, 둘째는 종족으로써 투르크족과 쿠르드족을 이해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종교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을 이해해야 현재의 터키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지리적인 관점에서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수많은 고대와 중세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BC 18-13C 최초의 철기문명을 일으켰던 히타이트 제국, BC 12C 이후 그리스계가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였고, BC 6-5C에 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였으며, BC 4C에 헬라제국, BC 1C에 로마 제국이 지배했다. 그 후 동서로마가 갈라진 후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지배했고, 11C 중세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투르크인들의 후예가 세운 셀축제국의 영향 아래 있다가, AD 15C 이후 완전히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AD 20C부터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후신인 터키 공화국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지금의 터키 땅은 각 시대마다 그 땅의 주인이 달랐고, 주인에 따라 종교가 바뀌었는데 현재의 주인인 투르크인이 이슬람이기 때문에 현재 터키 땅은 이슬람이 된 것이다.

 

둘째 종족적 관점에서 터키를 보면 앞부분에서 약간 언급했던 것처럼, 중세 11세기 이전까지 아나톨리아 반도는 유럽인들이 지배하며 살았는데, 11세기부터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주해와 정착하던 투르크민족이 세력을 형성하고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을 세우게 되면서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앙, 남부, 동부 지역은 투르크 민족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잠시 공황상태에 있었지만, 그 틈을 이용하여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다시 세력을 얻어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 땅 전체는 물론, 중동,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 지배하였다. 이런 투르크족의 지배가 있기 전부터 이미 터키 땅에는 고대로부터 그리스계, 아랍계, 페르시아계 민족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살다가 자연스럽게 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이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인구 약 3천만)으로,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의해 분할되어 있다. 쿠르드족은 메대인의 후손으로 한때 페르시아와 함께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 역사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자립적인 국가도 형성한 적이 없었는데, 세계 1차대전 후 잠시 독립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지만, 서방국가들의 외면으로 무산되었다. 현재 터키 내의 쿠르드족의 정치 활동은 1980년대 이후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에 의해 무력 투쟁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세 번째는 종교적 관점에서 터키 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세 이전 터키 땅은 기독교가 번성하였던 곳이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최초로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선교가 시작되었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비롯하여 그 외 많은 지역에 교회들이 존재했고, 325년 니케아(현 이즈닉) 회의, 381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회의, 431년 에베소 회의, 451년 칼케톤 회의 등 7차례 종교회의가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부시대에는 영적 거장들이 많이 등장하여 교회를 이끌어갔는데, 갑바도기아의 세 명의 교부(카이세리의 바실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중의 하나인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의 타락과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터키 땅이 이슬람화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6세기에 발흥한 이슬람은 아랍족과 페르시아족이 중심이 되었다가 10세기 이후 투르크족이 대거 개종하면서 패권이 투르크 세계로 넘어가고 투르크 제국의 팽창과 더불어 전세계로 세력이 확장되었다. 151719월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1월 오스만투르크 황제 셀림 1세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슬람 왕조의 칼리프직을 이스탄불로 가져오면서 이슬람 세계의 새 주인이 되어 지금까지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근대 선교의 시작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말기에 이르러 서구 세계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내정간섭이 심화되고 있을 19세기 초, 개신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사역하기 시작하고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는 이미 오스만 투르크 제국 내에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 수백개의 교회, 다수의 신학교들이 존재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부흥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23년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무려 100년 동안 했던 선교 사역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선교전략의 변화와 정치활동에 있다. 초창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오스만 제국의 기득권층이며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수니파 투르크계를 대상으로 사역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자, 소수민족에게로 급속히 사역 전략을 바꾸게 된다. 그 당시 소수민족을 구성하고 있던, 아르메니아와 시리아의 정교계, 아랍과 쿠르드의 알레비계들을 중심으로 많은 개종이 일어나 교회들은 성장을 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선교사역에 있어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하였다. 오스만 제국 정부의 입장에서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로서 국가를 무너뜨리는 원흉으로 낙인찍고 여론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실제로 오스만 제국 내에서 활동했던 개신교 선교사들 가운데 일부는 소수민족 분리운동에 가담하였다. 한마디로 정부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스파이 역할을 한 것이다. 이때 형성된 선교사의 부정적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터키에서 선교사라고 하는 것은 곧 그 사회에서 아주 파렴치한 사기꾼 혹은 간첩을 의미한다.

 

둘째, 터키 땅에 순교자의 피가 없는 것이다. 터키 공화국이 세워질 무렵,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인구교환 정책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터키 내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물론 대부분 정교와 카톨릭이지만, 대부분 터키 땅을 떠나고 교회 건물을 지키는 소수의 세제들만 남게 되고, 개신교 선교사들도 모두 터키 땅을 버리고 떠났다. 후에 터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는 터키에서 이슬람이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방 기독교 세계에 개신교 선교사들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지만, 서방 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1923년부터 1960년대까지 약 40년 동안 터키 선교는 정지되었다. 또한 아타투르크 대통령 사후에는 터키가 급격하게 다시 이슬람이 강화되기 시작하여, 2002년에는 급기야 강력한 이슬람 정당이 정권을 잡고 2012년 현재까지 집권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수년 동안 장기집권이 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터키 근대 선교 100년 동안, 복음 전하며 교회 개척을 하다가 순교 당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소수민족들과 관련된 정치활동에 개입되어 살해당한 개신교 선교사는 다소 있다. 그러다가 이제 첫 복음적인 선교사, 최초의 현지 그리스도인 순교자가 20074월 터키에서 투르크 민족주의가 가앚 강한 도시 중의 하나인 말라티야에서 생겼다. 그독교 학자인 터툴리안이 교회의 씨앗은 순교자의 피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러한 순교의 피흘림이 터키 교회의 생명의 씨앗이 될 것이다.

 

 

터키의 영적 상황

 

터키는 삼겹의 강한 영적 진이 형성되어 있다. 하나는 세속주의, 두 번째는 이슬람, 세 번째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이다.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로써, 고대로부터 동서의 문물이 서로 교차되는 곳이며 실크로드의 종착지이기 때문에 무역이 아주 성행했고 지금도 터키는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 국가의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터키는 강한 세속의 영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강한 이슬람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가장 개방되었지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 누구도 쉽게 꺾을 수 없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실리를 추구하는 이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터키 내에는 민족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는데, 범투르크 민족주의와 쿠르드 민족주의가 충돌을 하고 있으며, 그 외의 민족 간에도 갈등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여러 민족이 함께 섞여 예배하는 것이 보기 드물고 함께 있더라도 그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심한 갈등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터키에는 50여 개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고,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복음적인 기독교인의 수는 약 4,000-5,000명으로 추정된다.

 

 

유대인들을 시기케 할 터키

 

로마서 1111-14절에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 말씀은 이방인들이 구원 받음을 통해 유대인의 시기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터키를 위해 기도할 때 마지막 시대에 터키인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시기가 일어나길 위해 기도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지역 등 터키 주변의 대부분 나라들에서 복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교회들도 급속하게 성장을 하고 있지만 터키만큼은 아직도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대한 영적 움직임을 지금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최대의 관문이 여리고 성이었던 것처럼, 아마도 터키는 유대인들이 복음화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마지막, 그리고 가장 견고한 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인들과 터키인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세 8-10 세기 경 디아스포라 되어 사록 있던 유대인 엘리트들과 터키인들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러시아 중남부 지역에 하자르 왕국을 세웠고, 유럽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받아들였으며, 19485월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이듬해인 1949년 이슬람 국가로서는 최초로 이스라엘을 인정해 주었다. 최근 들어서 양국간의 관계가 좋지 않지만, 여전히 터키가 이스라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고 생각된다.

 

과거의 역사적인 긴밀한 관계가 이제는 복음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되길 기도한다. 아직은 터키의 교회의 성장이 미미하지만 곧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형제 나라인 터키 안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 81개 도에 수많은 교회들이 개척될 뿐 아니라, 왕의 대로를 따라 이스라엘로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영적 시기를 일으킬 주님의 제자들이 터키에 속히 세워지길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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