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린네
생물분류학의 창시자 (1707-1778)
평생 1만2천종 동.식물 정리
목사집안 출생 ... 스웨덴 최초 귀족과학자 칭호
생물은 본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담이 그 이름을 지었다고 성경은 말한다(창세기 2장 19절).
오늘날 생물은 그 종류가 약 2백만종 가까이 되는데 멸종된 동물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나게 된다. 진화론자들은 도대체 무슨 재주로 아담이 그렇게 많은 생물들의 이름을 불렀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분류학자 린네가 홀로 8천가지의 식물과 4천1백62종의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분류하였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아담이 모든 동물의 이름을 명명하였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성경에 의하면 아담은 홍수 이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9백3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분류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에 의하면 2백만종 가까이 되는 생물 중 1백만종은 식물이며, 새우, 게, 물벼룩 등과 같은 81만 5천종에 달하는 절지동물을 포함한 90만종 이상의 동물들이 해양생물이다. 그럴 경우 아담이 1차적으로 명명한 동물의 숫자는 3천5백종의 포유동물과 8천여종의 조류 등 1만5천종 내외였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적 방법대로 교배가 가능한 생물을 동일한 종류로 통합하면 그 수는 훨씬 줄어들지도 모른다.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혼잡되면서 생물들의 이름은 민족과 나라마다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아담 이후로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생물의 이름을 사람들이 서로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신실하면서도 뛰어난 생물학자를 한사람 보내셨다.
바로 오늘날 식물학의 시조이며 생물분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를로스 린네였다. 린네는 프로테스탄트들이 모여 살던 스웨덴의 작은 마을인 라슬트에서 목회를 하던 보수적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과학자가 지닐 수 있는 대부분의 소양을 갖춘,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인물임이 분명하였다. 모태 신앙인으로 어린시절부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으며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났고 끝없는 호기심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었다.
일찌감치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보이면서 웁살라 대학에서 공부하던 그는 1729년, 식물의 번식에 관한 관찰을 정리하여 최초의 책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평생 저술한 1백80여권의 서적 중 한권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1732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으며 1742년, 린네는 모교인 웁살라 대학의 식물학 교수겸 의학 교수로 다시 돌아왔다.
훗날 린네는 분류학과 식물학에 있어서 그의 뛰어난 업적으로 스웨덴 최초의 귀족 과학자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때(1761년)부터 그의 이름은 귀족을 상징하는 칼 폰 린네로 불렸다.
'이명법'의 기본 입장은 '창조론'
"생물의 종은 불변" 성경 믿음 입각 분류 시도
현대에 와서는 엉뚱하게 진화론 도구로 왜곡
오늘날 분류학의 시조로 불리는 린네는 생물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확고한 기본 입장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의 종류를 분류해 보는 것과 그 종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종류로 절대 변화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것은 모태신앙인으로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 덕분이었다.
오늘날도 쓰이고 있는 린네가 창안한 명명 방식은 이명법(二名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매우 간단하면서도 뛰어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린네라고 부르는데 호모는 속명(屬名)이고 사피엔스는 종명(種名)을 나타낸다. 맨 뒤의 린네는 이 학명을 지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라틴어 표기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속명의 첫 글자는 항상 대문자로 쓰고 전체는 반드시 이태릭체로 표기하였다.
린네가 이명법을 도입하기 전 브리손(1756)이라는 학자는 사자를 '꼬리의 끝에 뭉치가 달려있는 고양이', 호랑이를 '길고 검은 무늬를 가진 황색 고양이' 등으로 불렀다고 하니 생물에 통일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번잡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여기에 비하면 린네의 명명법은 얼마나 뛰어난가!
라틴어 성경에 능숙하였던 린네는 영어성경에서 종류로 표기된 창세기에 나타난 히브리어 '민'(우리말 성경에는 종류로 표기된 말)을 그의 라틴어로 된 분류체계의 종명과 일치되도록 의도했다고 전해진다. 일단 종을 나눈 다음 그 종 안에서의 특성으로 생물을 구별해보고자 했던 린네의 분류방법은 참으로 성경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철저한 창조과학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철저한 성경적 믿음에 관하여 진화론을 서술한 어느 책은 이렇게 그를 묘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린네는 종이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의 정확한 해석에 따라서 모든 종들은 특별히 그리고 완전하게 창조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진화란 있을 수도 없으며 변화된 형태란 발견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철학에 따라서 린네와 초기의 여러 분류학자들은 각 종류를 고정시켜 유연성 없는 분류체계에 의해 분류하는 데 몰두했었다. 그런데 분류학이라는 것은 보통 생물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므로 린네의 철학은 진화라는 개념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그는 분명 아담이 생물을 명명한 이후에 바벨탑의 언어 혼잡으로 흩어져 버린 생물의 이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신 과학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거부하는 많은 생물학자들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이 주신 생물의 종류를 분리해 보고자 시도된 분류학을, 거꾸로 종류가 진화되어 간다는 진화론의 도구로 바꾸어 버렸으니 린네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과연 무어라고 외칠까.
피조물 분류 새 지평
평생 방대한 자료 수집 ... 사후 영국으로 넘어가
스미스가 계승 발전 '린네학회' 창립 업적 기려
린네는 스웨덴의 한 과학자로서 뿐 아니라 오늘날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뛰어난 수집가로서의 재능도 지니고 있었는데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식물과 곤충 그리고 광물의 표본을 무수히 많이 모았으며 그것을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였다. 그런데 훗날 그가 모으고 연구한 귀중한 자료들은 그의 사후 역사상 유명해진 몇가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모두 영국으로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이때 린네가 남긴 연구자료와 소장품은 모두 스물 여섯 상자나 되었는데 3천여권이나 되는 책은 여섯 상자에 담겨졌고 식물이 다섯 상자, 광물이 네 상자, 곤충 표본이 두 상자에 달했으며 조개껍질과 물고기, 산호의 표본이 각각 세 상자에 달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린네의 귀중한 자료들을 손에 넣은 영국인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라는 사람은 그가 배운 의학을 버리고 린네가 남긴 자료를 가지고 평생을 생물학 연구에 바쳤을 뿐 아니라 명성과 명예도 얻게 되었다. 린네에 대하여 여러가지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던 스미스는 1788년 마침내 린네를 기념하여 [린네학회]까지 창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이 일로 훗날 영국의 귀족들에게 주는 나이트 작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린네의 귀중한 유산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영국으로 넘어가버린 사건은 스웨덴으로서는 두고두고 서운한 일이었다. 이런 안타까움을 스웨덴의 한 작가는 1957년 그의 글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린네학회가 린네를 위하여 베푼 것은 린네의 보물들 값어치 이상이었다. 이것들이 런던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의 중심지에 보관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린네의 중요한 업적을 알리는 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헌을 한 셈이었다."
마치 프랑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우리의 고서적에 관하여 차라리 관리가 철저한 그곳에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어느 학자가 탄식조로 한 말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의 분류체계는 아주 편리하여 그가 쓴 '분류학'(1758년)은 지금도 동물의 명명법에 대한 기초가 되고 있으며 '식물의 종류'(1753년)는 현대 분류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국내 진화론 교과서에 서술된 이 말은 그가 분류학의 창시자임을 명백히 알려준다. 그는 생물에게 통일된 이름을 주기 위하여 아담 이후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생물학자임이 분명하였다.
다만 그가 개발한 분류학의 체계를 오늘날 진화론의 도구로 삼고 있는 일부 생물학자들을 보면 우리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하나님을 굳이 외면하고자 하는 심성(롬 1:28)에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778년 그는 고향 땅에서 평안히 안식하였다. 19세기 중반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기까지 1백년동안 그는 하나님이 종류대로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깨우쳐준 위대한 생물학자였던 것이다.
진화론이 온 학문을 뒤덮고 있는 오늘날 린네의 훌륭한 믿음과 뛰어난 통찰력은 다시금 우리들에게 경종을 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