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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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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11:34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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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출 15:22-23)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마라'라는 말은 "쓰다"는 뜻이다. 또 다른 시련의 시작으로서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욱 깊은 시련을 의미한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최초로 진을 친 곳이며 지금의 수에즈 남동쪽 72km 지역의 아인하와라 부근으로 추정된다. (출 15: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민 33:8-9) "하히롯 앞을 떠나 광야를 바라보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 에담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마라에 진을 치고 9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으므로 거기에 진을 치고"

 

가뭄을 피해서 이방인 모압 땅으로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이방인 며느리 롯과 함께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마라'로 바꾸어 부르라고 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 1:20).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생은 '마라'의 삶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영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이 처음에는 구원받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기분에 도취되었다가 차츰 구원의 기쁨을 잃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고 세상에 탐욕을 품고 살다가 세상의 쓴 맛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피값을 치르고 구속하신 우리를 세상에다 내어 주시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세상을 향한 마음,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는 모든 탐욕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서 "마라"의 삶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견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가지치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주님과 동행하는 데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버리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이후에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계속 '마라'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통해서, 또 일가친척들을 통해서, 절친했던 친구를 통해서 세상에서 '마라'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등을 돌린 형제들, 부모, 그리고 가까운 친척, 친구들, 직장 동료들, 잘 보살펴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박해하는 것들은 모두 견디기 어려운 것이며, 비애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이 모두가 '마라'의 삶을 통과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놀라거나 실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고 그분을 따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마라'의 세상에서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는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에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보여주셨는데, 이것을 물 속에 던져 넣었을 때 쓴 물이 단물로 변했다. 그 나무는 바로 샘물 곁에 있었고, '마라'의 쓴 물 속에 던져진 그 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주님의 방법은 우리에게서 시련을 제거해 주시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련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난 당하신 주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 세상의 순례자인 그리스도인의 바로 곁에서 함께 하신다. 우리는 그분께서 광야의 사막에서 그분이 지나가신 그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 외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며, 또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해 주시는 분이시다(고전 10:13). 바울도 그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도록 간구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가시'를 제거해 주시지 않고, '은혜'를 주시어 견디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고후 12:8,9). 그분은 또 쓴 물을 달게 하시어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게" 하신다(롬 5:3).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군대의 맹렬한 추격을 피해 홍해를 건넌 직후 구속의 기쁨을 노래하였으나, 구원의 기쁨도 잠시였고,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몇 배나 더 험난하고 김 광야생활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구원받는 순간 대개의 경우 흥분 속에 파묻혀서 용솟음쳤던 기쁨이 순례자의 길을 걷는 동안 슬며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또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서서히 알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과 함께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 앞에는 황량하고 메마른 광야 외에는 보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물도 없고, 그늘도 없었으며, 보이는 것이라고는 강렬한 뙤약볕과 심한 갈증과 절망뿐이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직후에 세상을 보니까 모든 것이 변하여 새롭게 보였고(고후 5:17), 이 세상은 멀리 뒤에 보이고, 하늘나라는 매우 가깝게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구원받으면 이제 모든 것이 다 된 것처럼 보였고, 이 세상은 모두 내 것으로 알았는데, 예기치 않게 광야라는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으로 둘러싸인 믿음의 훈련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는 불뱀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며, 전갈들이 틈만 나면 쏘려고 기다리고 있고,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워서 일교차가 심한 데다가 물도 구할 수 없는 곳이고, 그늘도 없고, 오직 사막으로 둘러싸인 메마른 황량한 곳이다. 오직 위를 바라볼 때만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앞을 바라보아도, 옆을 쳐다보아도 절망뿐인 곳이며, 갑자기 들짐승들이 나타나서 공격을 당하기 쉬운 곳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 믿음의 광야에서 시련을 겪는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불같은 시련을 잘 견뎌 내라고 격려하고 있다(벧전 1:6-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광야에서 훈련받는 도중에 실망과 좌절과 의욕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이전보다도 분명히 더 깊은 말씀의 지식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영적 생활에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헌신하지 않은 채 성경지식만을 추구하다가 실족하고, 섬김 없는 생활에 젖어 있다가 시름시름 병을 앓듯이 쇠퇴하게 되어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적 위기를 맞는 것이다.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 구출될 방법이 없다.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나서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면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는 그렇게도 열심히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간증을 하고, 복음을 전하고 확신에 차 있고, 주님을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때부터인가 서서히 주님에 대한 사랑은 식어지고, 열정도 사라지고, 마음속에 황량한 광야만 남아 있게 되면 위험한 것이다.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들이 구원받은 직후에 했던 것같이 믿음의 광야에서 훈련을 거치는 도중에 구속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계속 부르면서 그들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광야에서 도중에 이탈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평만을 일삼다가 '마라'의 세상에서 실족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므로써 죽음의 천사가 지나간 사건을 경험했고, 홍해라는 죽음의 바다를 또 한번 통과했으면서도 광야에서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쓰러지고 말았다. 셋째 하늘을 향한 광야 세상의 믿음의 여정은 늘 평안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위험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구원받았을 때 양심의 문설주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진 순간 주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사와 찬양과 감격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이것은 결코 성경 지식으로 대치되거나 주님을 위해 드린 섬김의 양으로만 헤아릴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마라'에서부터 비로소 실제적인 광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의 여정에 벌써부터 험난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그들은 본격적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민 11:4-6).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은 그분 자신만이 그들과 함께 계시려 함이었고(출 19:4),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인도하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시려는 의도에서였다(신 32:9,10). 이것은 그들의 첫 번째 교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평하고 불순종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시련을 받는 것은 자신에게 대단한 영광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광야인 세상으로부터 유업을 받으려 해서도 안되며, 광야의 여정 도중에 평안하게 주님의 위로만 기다리셔도 안된다. 실로 많은 위험에 직면해야 하고, 수많은 복음의 원수들을 만나야 하고, 수많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견뎌 내야 한다.

 

바울은 이 세상 광야 여정 중에 수없이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당했고, 몽둥이로 맞았고, 파선을 당하고,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과 배고프며, 목마르고 자주 금식하며 춥고 헐벗은 일을 겪었다. 인생이라는 광야 여정에서 사도 바울만큼 시련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후 11:23-27). 구원받기 이전의 세상은 쾌락과 즐거움과 낭만이 넘치는 생활이었을 것이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세상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것처럼 쓸쓸하고 황량하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곳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심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자신께로 우리를 이끌려 하심이요, 주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증명하시려는 의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적인 팔을 의심함으로 인해서 어리석게 징계를 받고 약하게 되고 맥없이 쳐질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팔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믿음의 광야 여행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광야 여정은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딛 2:13) 기다리는 매우 값지고 소중한 훈련과정이다. 믿음의 시련은 주님의 약속을 더욱 달게 만들기 때문이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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