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일서 1:1-4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절 : 요한일서 1:1,3)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 너희에게도 전함은
신화는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고대 신들에 대한 전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들어보거나 그들을 보거나 그들을 만진 적이 없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바램이었으며, 언젠가는 그분이 가까이 다가오실 것을 희망한다. 예수님의 성육신 -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 은 그러한 꿈이 실현된 것이다.
저자 Dorothy Sayers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실 수 없듯이 그분은 그분 자신으로부터 강요하지 않았다. 그분은 모든 인간의 경험을 다 겪으셨다. 즉, 가족 생활의 사소한 아픔과, 힘든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한과, 돈이 없는 것 등으로부터 고통에 대한 최악의 공포와, 굴욕과, 좌절, 절망,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분이 사람이었을 때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 가난 가운데 태어났으며 치욕 가운데 죽으시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당분간 그분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취급당하도록 내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분을 만졌던 요한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의 설명을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과 나의 가까이에 계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
- David Roper -
절대적으로 부드러우시다! 절대적으로 진실하시다!
모든 것을 이해하시며, 당신을 이해하시며,
무한히 사랑하시며, 좋으시고 친절하시고 가까이 계신다.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 Anon -
사도 요한만이 예수님을 만졌는가? 우리가 지금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니까 믿지 못할 일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증명이 된다. 사도 요한이 만진 것은 내가 만진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인간에게 허용하셨던 것이다. 다만 모든 역사의 사람들에게 항상 그것을 제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욕심 안에 예수님을 가두어 놓고 싶어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무한이라는 역사 가운데, 인간의 초대 시절은 곧 하나님의 영원이며, 초대 시절의 하나님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영원의 의미를 갖는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만졌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도 예수님을 만진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인간에게 허락하셨다. 성경의 사건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