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 (22) 부패한 땅
이재만 (LA 창조과학 선교사, 지질학, 구약학, ark@hisark.com)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 6:11-12)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 창세기 6:11-12, 새번역
창조론자가 아니면 모두가 진화론자인가? 창조모델과 진화모델 말고 다른 모델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질문을 가끔 받곤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기원에 관한 한 둘 중에 하나의 결론에만 도달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시작은 당시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보이는 것이 변하여 왔다는 시간을 중요시 하는 진화와, 반면에 보이지 않는 분의 설계(design)를 중요시하는 창조밖에 있을 수 없다. 전능하신 분이 설계하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마음의 의도는 창조와 진화를 다루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식의 마음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유물론적 세계관이다. 왜냐하면 이는 물질에 의해서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고 믿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을 믿으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진화론자들은 눈에 보이는 “자연”(nature)을 중요시 여긴다. 그들은 자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가 자연 때문에 산다는 내용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때문에 산다. 실제로 성경이 세계를 자연이라고 표현한 곳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이들을 “피조물”(creature 또는 creation)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naturally)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create)하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피조물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들을 다스려야 할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한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피조물을 자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태양이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양을 창조하신 그분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태양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인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왕하 17:16). 하나님을 버리면 보이는 것을 섬기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일월성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나라 가운데 태양을 숭배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며, 결국은 보이는 태양에 의지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들을 예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 그들은 주님이신 그들의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명을 내버리고, 쇠를 녹여 부어 두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세우고, 하늘의 별들에게 절하며, 바알을 섬겼다. - 열왕기하 17:16, 새번역
성경은 노아홍수 직전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다고 표현했다. 성경은 여기에서 이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했다. 영어로 보면 'corrupt' 즉 타락, 오염, 부패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corrupt)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성경은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부패하고 선을 행하지 못한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바로 그것이 사람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노아홍수 때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 했다(벧후 3:5). 그러므로 그들은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 시편 14:1, 새번역
오늘날도 우리는 진화론적 사고로 사람이 하나님 위에 있고, 자연이 하나님 위에 있고, 더 나아가 자연이 사람 위에 있는 이상하리만치 성경과는 완전히 역관계를 이룬 세상을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표준을 잃어버린 타락한 세상을 보고 있다. 낙태, 동성애, 나체주의, 안락사, 인종차별 등 수많은 이슈에 대하여 표준 없이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 있다. 우리는 물심판을 받을 당시의 창조주를 잊어버린 결과 부패된 모습과, 진화론적 사고로 부패해가고 있는 오늘의 모습을 통해 “노아 때와 같은 인자의 때(눅 17:26-27)”를 느껴야 할 것이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부패하게 만든 진화론의 웅덩이를 버리고 근원되신 창조주께 속히 돌아가자!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 예레미야 2:13, 새번역
출처: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89¶m=type=C|authorname=이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