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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 (13)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하나님 외의 다른 신

이재만 (LA 창조과학 선교사, 지질학, 구약학, ark@hisark.com)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20:3) 십계명의 첫째 계명이다. 이는 십계명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가장 큰 계명이다.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앞서는 어떤 첫 번째 원리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가장 강조하는 말씀 중에 말씀인 이 계명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적용되어야 할 절대적인 원리인 것이다. 이 계명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과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계명에 대한 복종은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실제로 천지를 지으신 분의 명령이 각자에게 없다면 정말 순전히 의지해야 될 대상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옳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자가 누구냐?' 바로 여기에 그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할 때, 기독교인이 윤리적인 면에서 그 근거를 말할 때, 구원에 대한 기준을 말할 때, 그 말하는 사람의 최종적인 권위가 어디에 있다고 보겠는가? 바로 옳다고 말하는 사람 뒤에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류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나라는 하나님을 최종적인 권위에 두지 않았다. 노아홍수 직후에 니므롯이 그랬으며, 바벨탑 이후에 흩어진 후 세워진 문명의 국가들도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신을 섬겼다. 하나님 앞에(before God) 어떤 신을 두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 앞에는 자신들이 만든 신이 있었다. 오늘날 세속적 학문이라고 하는 분야를 보더라도 너무나 많은 분야가 하나님보다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 각 분야가 하나님을 제쳐놓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모습을 보더라도 하나님을 제쳐놓고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결과는 폭력, 마약, 동성애, 뉴에이지, 포르노 등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겼던 나라들조차도 성경에서 멀어지면서 하나님보다 인간의 의견을 앞에 놓았으며, 그 결과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기독교 신문의 일면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각 교단들의 동성애 문제 보더라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리더들도 성경보다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The fool hath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Corrupt are they, and have done abominable iniquity: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53:1).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Professing themselves to be wise, they became fools)’(1:22) 부패하고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으므로 그의 계명에 대한 복종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창조주께서 주시는 이득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계명에 대한 불복종에 대한 결과는 피할 수 없는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결과는 부분적이 아닌 모든 곳에 드러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이 첫 계명은 맨 마지막으로 미루어야 할 부분이 아니며, 처음부터 고려하고 끝까지 점검해야 할 계명인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This book of the law shall not depart out of thy mouth; but thou shalt meditate therein day and night, that thou mayest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therein: for then thou shalt make thy way prosperous, and then thou shalt have good success.)' (1:8)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이 약속은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될 것이다. 율법 책의 첫째 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계명이 바로 그 첫째 단추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의 확신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

 

출처: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27&param=type=C|authorname=이재만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1) - 찰스 다윈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82, 영국)에 대하여 언급하려면 그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에 대해 먼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에라스무스 다윈은 의사였으며, 이전의 린네가 분류했던 식물계를 확대한 식물원(Botanic Garden, 1789)”의 저자로 유명했다. 그는 생물들을 진화의 순서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나오게 되는 손자인 찰스 다윈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찰스 다윈은 의학을 공부했으며 후에 신학도 공부했다. (신학생 당시) 성경을 단순한 사실로 믿는 정통주의에 의해 공격을 받았던 것을 두려워했으며, 한때 성직자가 되려는 것을 포기했다고 자서전에 기록되어있다. 나중에 그는 정통주의자들이 좁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으며, 결국에 전통주의자들도 그를 반대했다.

 

젊은 시절 다윈은 5년간 비글호에 함께 할 것을 초청 받고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가 바로 일생에 극히 중대한 기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진화신념의 가장 핵심 되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경쟁에서 이긴 개체들(individuals: 하나의 생물체)이 자연적으로 선택된다. 이 개체들의 특별한 능력이 주위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 유전적 체질은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이 작은 변화가 오랜 기간 쌓여서 결국에 지금의 여러 종들이 되었다라고 요약될 수 있다.

 

다윈 이전에 용불용설을 발표했던 프랑스의 라마르크(Lamarck, 1744-1829)나중에 획득된 장점의 결과가 진화를 일으킨다고 본 반면에, 다아윈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유전적인 장점이 다음세대로 전달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이론이 근본적인 차이는 있지만 진화가 한 종 안에서 다양해지는 가운데 일어난다고 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면 그 다양해지는 원인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적응에 의해 다양해진다고 믿었으며 이에 대한 주제로 무려 한 단원을 할애하였다. 이는 종들이 다양해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 자신의 책의 사실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책을 보면 다양성에 대한 과정에 많은 조건을 내걸거나 설명을 포기하는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양성은 많은 알려지지 않은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일지도등의 표현들로 이어지고 있다.

 

다윈은 또한 소위 말하는 생존경쟁에 의해서 유리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생존경쟁의 어떠한 법칙도 발견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강한 사자가 약한 사자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수컷이 암컷보다 강하다. 그러면 배가 고플 때 수컷이 모든 암컷들을 잡아먹어야 하는데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모두가 멸종될 뿐이다. 더군다나 생존경쟁이 있다고 할지라도 종이 변하는 진화하고는 무관하다.

 

다윈은 과학자라기보다 수집가였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많은 생물들을 수집했다. 생물들의 색깔, 모양, 크기, 부리의 길이 등을 잘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자연선택이라는 이해하지 못하는 힘이 이루었다는 가정으로 몰고 갔다. 즉 그는 훌륭한 수집가였지만 그릇된 해석자였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그의 생각에 감명 받았다. 감명 받은 과학자들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기원에 대하여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기원에 관하여는 관찰에 의해서도 논리적인 증명도 이루어진 어떤 것도 없다.

 

More reading: 7 men who rule the world from the grave, Dave Breese, Moody Press, 1990.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2) - 칼 마르크스

 

사회진화론자(social evlolutionist)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칼 마르크스(Karl Max, 1818-83, 독일)를 들 수 있다. 바로 공산주의의 이론의 골격을 만든 사람이다.

 

독일에서 마르크스는 그리스도를 비판한 유물론적인 인간중심의 철학자인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72, 독일)에 영향을 받았으며, 파리로 이주하여 평생동지가 된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95, 독일)를 만나 친분을 다지며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여기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 불렀던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의 원칙을 세웠다. 1847년 공산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였으며 곧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유명한 '공산주의자 선언문(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하며, 생산방식의 혁명을 언급하였다. 이어 1867년 바로 공산주의 교과서가 된 자본론(Das Kapital)을 집필하게 되었고, 엥겔스가 편집하여 완성하였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이 책이 근대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

 

그의 장례식에서 평생동지인 엥겔스가 비문 곁에서 읽은 송사는 마르크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윈이 생물계에서 진화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에서 진화법칙을 발견했다.' '마르크스는 모든 것에 앞서 진화론적 사고를 했다. 삶 속에서 그가 한 일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정부를 전복시킬 방법과 하층계급의 해방에 기여하는 것이었다투쟁은 그의 중요부분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열정과 불굴을 가지고 투쟁했다.' '다윈이 내용을 몰라서 거절당했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일부를 다윈에게 바치고자 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내용만 보더라도 마르크스는 생각은 다윈의 진화론에 철저히 기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이해는 공산주의의 이해와 직결된다 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유토피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와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다아윈의 생존경쟁의 원리를 계급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적용시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론 진화론자였으며, 추종자들이었던 레닌, 트롯스키, 스탈린 모두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모든 공산주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유토피아 꿈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의 몰락을 보고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모습은 진화론식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다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4:1).

 

마르크스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이다. 유물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개념이다. 유물론은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랑, 명예, 용기, 신념과 같은 영적인 것도 화학작용의 결과로 보며, 그러므로 돈(currency)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통제된다고 여긴다. 유물론은 인간 그 차체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인간 역시 하나의 물질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대하여는 상식 밖으로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유물론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말씀하신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soul)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soul)을 바꾸겠느냐?' (16:26) 라고 하셨다. 영적인 면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하셨다.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오늘 날의 모습 속에 무덤에서조차 세상을 지배하는 진화론자 마르크스의 흔적을 보고 있지 않은가?

 

참고도서 : 7 men who rule the world from the grave, Dave Breese, Moody Press, 1990.

The long war against God, Henry Morris, Master Book, 2000.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3) - 뵐하우젠

뵐하우젠 : 자유주의 신학의 시작

 

루소(Rousseau, 1712-78, 프랑스)가 등장하여 18세기 계몽주의가 유럽을 덮으면서 19세기에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분위기로 변하였다. 19세기 중엽까지 만약 서양사람이 누구에게 '종교적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는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정통개신교, 정통캐톨릭, 정통유대교 등이었다. 즉 그들에게 성경은 권위 있는 책이었으며, 정부나 사회가 성경을 경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예배당이나 찬양이나 세례도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분명히 빠졌다. 바로 기독교의 핵심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에 계시다는 것과, 그분의 영감을 무오한 말씀에 계시하셨다는 것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대답은 아주 분명하다. 자유주의 신학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독일의 한 이성주의 학자의 주도적인 역할이 있었다. 바로 쥴리어스 뵐하우젠(Julius Welhausen, 1844-1918)이다. 그는 구약학자였으며, 당시 지식인 신학자였다. 그는 성경을 인간의 이성에만 의존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가 해놓은 업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있는데, 바로 모세오경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모세오경에 대하여 적어도 네 명의 저자가 참여했다고 하는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을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위 말하는 JEDP 가설이다. 이 가설은 간단히 말하면, 여러 개의 신이 하나의 신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이다. 뵐하우젠에 따르면 신명기를 포함하여 어떤 부분은 나중에 삽입되었으며,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진화론적인 과정의 결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는 왕이 등장하기 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부정확한 것으로 취급했다.

 

이에 따라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훌륭한 전설 이야기로 변했다. 그는 구약이 성령의 영감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변화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심어놓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처음 인간은 그의 후손들과 달리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진화론적 원시인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뵐하우젠은 신학교수 당시 성경비평에 대한 많은 글들을 썼다. 해가 거듭할수록 구약성경해석의 자유주의적 방법론에 대한 그의 명성은 올라갔다. 윌리엄 하이트(William Height)는 뵐하우젠이 중심이 된 성경해석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지 않는 구약학자들은 성경을 진화론적 사고로서 설명하려 한다. 그들은 구약에서의 단일신은 덜 발달된 다신론, 또는 주위 부족들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여긴다' 라고 말한 것은 주목해야 한다 (1955). 뵐하우젠은 구약의 유일신을 고대동양의 다신론, 조상신, 애니미즘 등과 같은 데서 발전된 것으로 해석했다. 만약 진화론적 사고가 무엇인지 안다면 오늘날 구약성경 해석학계에 다아윈의 진화론적 사고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신학자들에게 '내가 성경을 신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은 'yes' 였다. 그러나 그 후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니라 이성을 신뢰하는 쪽이 되었다. 마치 이성을 신뢰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적인 자만심은 당시의 교회 리더들이 자유주의 신학과 손잡기도 하고, 또한 스스로 자유주의자가 되도록 하였다.

 

뵐하우젠은 '이스라엘 역사의 서언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Israel)'에서 성경 안에서 하나님 계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었다. 물론 자신의 이성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은 맞고,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전설로 취급한 것이다. 이것이 발표된 1878년에 새로운 바람이 교회에 불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신의 차가운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뵐하우젠이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명성이 성경보다 위에 선지 100여 년이 지난 후인 오늘도 많은 신학교가 그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가 인간이성에 의해 복잡해졌다. 성경에 대한 정통적인 관점에 흠집이 가면서 순수함이 사라졌다. 권위가 사라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은 그 때나 지금이나 살아있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4:12).

 

* 참고도서 : 7 men who rule the world from the grave, Dave Breese, Moody Press, 1990.

The long war against God, Henry Morris, Master Book, 2000.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4) - 프로이드

프로이드: 인간을 심리학적 힘의 집합체로

 

과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한 심리학자가 등장해서 한 시대를 움직이고 혼란케 만들었다. 바로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이다. 일생 동안 그는 수백만 사람의 삶과 정신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사실 오늘날 서방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지식층에 그의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프로이드는 우울증이나 소화불량 치료를 위해서 코카인이 효과가 있으며, 심리치료의 답이라고 여겨 전문가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소아과에 있을 때는 최면을 이용한 어린 시절 경험의 회상을 통하여 심리치료를 하였었다. 코카인이나 최면은 당시에 전문가들에 의해 반대를 받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시도했다. 최면방법이 한 동안 인기리에 실시했지만, 계속적인 연구에 의해 환자가 최면상태에서 말했던 것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자신의 최면이론이 문제 있다는 것을 깨닫고 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프로이드는 인간성을 세 가지의 겹쳐진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바로 본능적 충동인 이드(id), 고통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자아(ego), 도덕적 기준이 되는 초자아(superego)이다. 그리고 사람은 성적충동(libido)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성적충동에 따라 발달단계를 나누었다. 그는 성적충동을 일차적 동기이며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로 보았다. 그는 사람이 성적충동의 힘에 반대할 것이냐 찬성할 것이냐에 따라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달렸다고 보았다.

 

프로이드는 무식할 정도로 문화적 진화론의 개념을 지지했다. 스스로 '문화적 진화과정과 개인성장 사이는 유사하며, 문화적 진화의 영향 하에서 사회와 개인의 도덕기준은 계속해서 발전된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하여도 유치하게 취급했으며, 그는 천국도 믿지 않았으며, 다시 생명을 찾는다는 것도 몰랐다. 기독교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상대방에게 경멸하는 표현을 썼다. 대화를 할 때면 결론은 정신분석학이 새로운 계시이며, 심리치료가 새로운 구원방법으로 여기게 하였다. 그에게 사람은 단순히 이드, 자아, 초자아였으며, 곧 사라질 존재였다.

 

그는 우리에게 이드가 자발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근본적인 구성원이라고 믿었다. 이는 인간은 심리학적 힘의 집합체라는 것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은 영, , 혼으로 구성된 존재인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갖고 있는 육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성격은 하나님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프로이드가 성적인 면을 부각시킴과 함께 성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과연 그 후에 세상은 어떻게 변하였는가? 성 문제에 보수적인 행동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심리치료의 대상으로 변했다. 어떤 사람이 성적인 면을 가지고 판단하려 하면, 타락된 내용이라고 말하지 않고 프로이드적 사고라고 말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만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한다. 신성한 결혼이 파괴되고 있다. 영원한 축복 받는 장소가 아닌 일시적으로 들렸다 가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섹스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파괴시켰다. 또한 성 혁명은 상업에도 침투해 들어갔으며, 포르노와 나체사진이 만연해 버렸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고후 13:8). 성경은 진리를 떠나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하는 자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있으며, 진리를 거스리는 자는 엄청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님 없이 인간을 다루려는 인기있던 한 심리학자에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오늘의 세상을 본다. 역사학자 Paul Johnson(1984)'80년간의 경험에서 얻어진 그의 치료방법은 완전한 실패로 판명났으며,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불행 쪽으로 몰고 갔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5) - 듀우이

 

1900년대 초에 진화론은 그 실체를 망각할 정도로 서양 전체를 덮고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연에게 선택되어 자신들이 현 위치에 왔다고 하는 '자연선택'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편 사회진화론은 진화라고 하는 낙관적인 사고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풀지 못할 어떤 문제도 없으며, 시간만 주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도 주었다.

 

진화론의 확산은 또한 진리의 책인 성경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는데, 이것은 바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도 가려버렸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경제, 정치, 국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하는 질문이 빠진 것이다. 바로 인본주의적 사고인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진화론적 인본주의 사고가 어떻게 이토록 빨리 확산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바로 새로운 교육시스템의 변화와 이를 주도한 존 듀우이(John Dewey, 1859-1952, 미국)가 있었다. 그는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에서 칸트의 심리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894년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 심리학, 교육학 학과장이 되었고, 1904년에 컬럼비아대학의 교육학과장을 지냈다.

 

자서전은 그를 미국의 가장 뛰어난 철학가며 교육가며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재 개편한 자로 평가했다. 그는 교과서에 진리의 본질부터 교사의 책임감과 인간의 특징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부분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대학시절 듀우이는 헤겔 철학에 심취했으며, 실제로 헤겔이 말하는 어떤 본질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의 영향으로 인간을 변하고 있는 생각, 논쟁, 관심, 문제 등이 뒤엉켜있는 일련의 집합체로 보았다. 이는 역사에 관하여도 진화론적 유토피아로 바라보게 하였다. 그의 생각은 미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의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듀우이를 도구주의자(instrumentalist)라고 부르는데, '인간의 지성을 그 목적이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활동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교육에 진리가 얼마만큼 들어있느냐 보다는 학생들의 경험을 강조했다. 그는 '엄청난 질문을 받을지라도, 나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대답을 할 욕심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막연한 마음을 가진 채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연설하며 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어떤 것도 일관성이 있거나 궁극적인 답을 주는 것이 없었으며, 오히려 모든 것이 정황에 따라 변하고 재해석되기 쉬운 것들을 그때마다 메워나가는 식이었다. 철학대백과(1967)에서도 듀우이에 대하여 '그의 글은 자주 과장되고, 불분명하고, 문장력이 부족했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그의 교육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궁극적 진리는 허상이다. 2) 진리가 아니라 의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3) 진리는 경험에서 얻어진다. 4)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실험에 의존한다(그러나 그의 실험주의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인간을 실험한다는데 있다). 5)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이란 생각은 자연의 힘과 연결된다. 나는 생각과 실재 사이를 움직이는 관계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싶다.' 라는 식의 뉴에이지적 언급을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쉽게 뉴에이지 운동에 동화되고 있는 것은 듀우이 식 교육의 영향임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미국교육의 문제인가? 교수방법, 자금, 건물, 도시화 등 많은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가치상실이 있다. 진화론, 마르크스 이론, 자유주의 신학,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듀우이를 통해 우리 교실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들이 기본 전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직도 오늘날의 세상과 그 혼란한 생각은 그의 스승 듀우이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과연 어떻게 이 현실을 극복해야 할까?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9:17)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6) - 키에르케고르

 

1800년대 말 종교계는 뵐하우젠이 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여 성경은 점차 인간의 책으로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선생을 너머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존재로 떨어졌다. 1920-30년대 통해 자유주의 교회들은 진화론적 사고를 지적하기 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낙관주의와 발맞추어 앞으로 곧 원대한 천 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설교했다. 실제로 그때까지 세상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히틀러에 의한 나치즘,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이태리에서 파시즘이 일어났다. 세계대전의 히로시마 원폭이 있었으며, 전쟁 중에 사천만 명이 이상이 죽었다. 결국 세상은 낙천주의 사고로부터 흔들렸으며, 오히려 비관적 사고가 지배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 가운데서도 교회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유신학으로는 교회가 세상을 지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조차도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자유주의 교회들은 세상이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설교했다. 자유주의 신학으로는 하나님 없는 미래가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지적할 수가 없었다. 이는 많은 자유주의 신학이 신뢰를 잃게 되는 계기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과도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실제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때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다시 교회는 성경적으로 돌아갔어야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학 바로 자유주의를 대치할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화론적 낙관주의로 창창한 앞날만을 기대했던 세계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백을 메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이 공백을 메운 것이 있었는데, 바로 우울한 덴마크사람으로 불리는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1813-55, 덴마크) 였다. 그가 죽은 지 백여 년이 지난 뒤에 부활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글이 영어로 번역되기 전까지만 해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사망한지 한 세기가 지난 다음에야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그는 짧은 인생이었지만 다양한 주제로 많은 글들을 썼으며, 세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의 글들은 믿음에서 이성까지의 범위를 다시 정의 내리는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실존주의(existentialism)라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덴마크에서 부자상인이었으며, 아들에게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를 유산으로 남겼다. 사실 그는 결코 돈 벌기 위해 일을 한 적이 없다. 스물한 살 때부터 그는 집요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당시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흥분과 우울증이 동시에 반복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한편으로는 환희가 있었고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이는 그의 글의 번역가가 'Either/Or가 출판되어 고향에서는 떠들썩하였지만, 어떤 사람도 글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며, 어떤 서평도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키에르케고르의 가장 큰 영향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산만(diffusion)'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개인은 전적으로 믿었으나 그룹에 대하여는 개념조차 싫어했다. 그는 '군중은 비 진리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많은 것에 대하여 동의와 부정을 동시에 했다. 그러므로 그의 사고에 영향을 받으면 어떤 대상에 대하여 전체 의견보다는 개인의 판단을 의지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 자체가 진리냐 아니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20세기 중엽부터 최종적인 진리는 사라지고 산만함만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에 대하여 글을 쓴 커프만은 '실존주의는 철학이 아니라 기존 철학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반란이다. 이들은 실체에 대하여 다양하게 부정만 할 뿐이다' 라고 표현했다. 실존주의는 기존의 통념을 부인만 한다. 단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입으라고 말한다. 당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행하라. 거기에는 규칙도 원리도 없다.

 

실존주의는 오늘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철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비철학이다. 이는 다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부정한다. 이는 1960년도부터 젊은이들로부터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자유사랑, 자유섹스, 술 파티, 자살 등이 급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모욕했다. 진화론과 공산주의같이 실존주의는 인류를 더 저급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논리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규칙이 없다. 실존주의는 다른 철학과 다른 점이 있다. 거기에는 진리의 추구가 없다. 거기에는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는 순간만이 존재한다.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또 다른 형태가 태어났다. 다름아닌 신정통주의 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사고는 20세기 중엽부터 신학교와 교회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Barth, Bultman, Tillich, Macquarrie 등이 이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신학자들이다. 이들의 영향은 성경해석학과 설교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물'이 아닌 '우리의 존재영역'으로 해석했다. 당장에 하나님의 존재와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신정통주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다룰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글이 그렇듯이 이들의 신학도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자신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듯한 내용도 많이 있다. 단순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개인의 그릇되고 한정된 생각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복잡해진 것이다.

 

신정통주의가 출현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한계를 느껴왔던 자유주의 신학은 마치 정통주의로 들어가는 것인 냥 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빠져있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다' 라고 다시 가르치기 시작한 것 같았으나, '영감' 이라는 의미를 퇴색시켰다. 영감이라는 의미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셨는가 보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가 중요했다.

 

구원에 관하여도 '구원'은 그리스도 피로 인한 죄의 사함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었지만, 예수와의 심리적인 개인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죽음에서 부활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된 관계로 퇴색됐다. 구원이 전적인 것이 아닌 추상적인 영적 의미로 변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라, 삶 가운데 깨달음과 평안이 되었다. 갈보리, 보혈, 용서, 원죄 등의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들이 적당히 무시되었다. 구원은 경험 위주로, 신학은 문맥연구로, 진리는 모순덩어리로 변했다.

 

신정통주의는 많은 지식층 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지금까지 아주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 깊숙히 영향을 주어왔다. 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나? 우리가 구원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교회의 목적인 무엇인가? 천국은 어떠한 곳인가? 이들에 대한 대답인 근본적인 신조가 사라졌다. 실존주의의 산만이 곧 혼돈으로 이어진 것이다.

 

위의 모든 것들이 키에르케고르가 이룬 것들은 아니나, 그는 아직도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남아있으며, 여전히 그 영향을 기독교와 세상에 끼치고 있다. 우리는 다아윈의 진화론을 통해 성경에서 멀어진 생각들이 실존주의 신학인 신정통주의까지 변화하는 그 맥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 도다.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7:16)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 - 결론

 

죽어서도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여섯 명을 다루어 보았다. 진화론의 시작인 다아윈을 비롯하여, 진화론을 인간의 지배원리로 적용시킨 마르크스, 진화론을 성경보다 위에 올려놓아 자유주의 신학을 태동시킨 뵐하우젠, 하나님의 형상을 심리학적 힘의 집합체로 격하시킨 프로이드, 진화론과 그 사고를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진화론 확장에 불을 지른 듀우이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 사람이었지만, 진화론적 낙관주의의 붕괴 동안 100년 만에 부활하여 실존주의를 낳게 하였다. 그 실존주의는 급기야는 신학에도 영향을 주어 오늘날 신정통주의라는 하나님과 분리된 복잡한 신학이 나오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19세기에 잘못 꿰어진 단추로 인해 20세기가 신음해왔는데, 21세기를 맞이하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두 가지로 단순화 시켜보자. 하나는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와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이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3:9-10). 창조자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 이제 그의 몸 된 교회(1:23)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이 일은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전 우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대하실 곳은 교회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그 이유로 세우셨으며, 교회만이 만물이 창조하신 목적과 그 비밀이 드러나는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떤 경우도 세상이 바로 섰기 때문에 교회가 제대로 변화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함이 없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거기에는 곧 사탄의 영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일 4:2). 언제나 순서는 성경을 가진 교회가 바로 설 때만 사회가 변한다. 실제로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 이전에 교회가 예수님의 몸 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도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는 절대로 스스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따르면 교회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그 담당자가 되야 하는지 답이 정해졌다. 바로 교회이며, 교회밖에 없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도 다행한 일은 문제의 뿌리를 발견했다는데 있다. 그 뿌리는 다름아닌 진화론이다.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함 없이 거기서 파생된 생각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뿌리인 진화론의 바른 이해가 없다면 진화론의 출현 이후에 변화된 사고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오직 그 문제 안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런데 할일 많은 교회가 과학에까지 신경 써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과학도 하나님의 각종 지혜 속(3:10)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과학이 아닌 부분은 정확히 교회가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곧 지적해야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만연되어있는 사이비과학, 바로 진화론 때문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지고 있고 것을 막아야 한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실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된 증인이며 창조의 근본이신 자라 하시며 등장하셨다 (3:14). 그리고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15, 16) 하셨다. 창조에 관한 사실과 방법에 미지근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창조냐 진화냐 중간에 서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토해내실 지 모른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지금의 우리 교회들에게 하는 듯 하지 않은가? 교회! 예수님은 교회에 모든 것을 걸으셨고 담당시키셨다. 진화론에 대하여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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