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토목전공

오늘:
174
어제:
226
전체:
1,933,905
2008.12.03 05:29

토목의 미에 관하여

조회 수 159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토목의 미에 관하여

- 교량 미학을 중심으로 -

The Arts of Civil Engineering

(자연과 문명의 조화, 대한토목학회지 제55권 제4호 2007년 4월, pp.113-126)

by 김영걸 : (주)테마환경디자인 대표이사

 

I. 서론

 

예술은 당 시대의 거울로서 시대상을 날카로운 직관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시대정신을 표현하려는 예술의 본성과 원동력으로 예술의 가치관이 위대함과 미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토목의 역사는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여 생존하려는 본능적 생명력의 발로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도구적 가치로의 토목은 인간 발전의 과정과 함께 숨을 쉬며 시대의 정신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여건들이 변화되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을 심어주었으며, 이로 인해 시대의 문화를 대표할만한 토목의 특성과 문화적 특성들이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이를 통하여 토목의 미(美) 역시 도구적 가치보다 목적적 가치로서 토목의 역사를 통해 토목이 추구했던 가치 있는 미의식을 찾아보고 우리 시대 토목이 나아갈 지표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시공을 초월해서 토목이 추구했던 가치 있는 미의 개념을 시대별 시대정신이 비교적 충실했던 서양예술, 문화사에 근거하여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시민혁명까지 자연법칙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로부터 위탁받은 신권과 왕권에 지배받던 시대를 자연주의적 미의 개념인 자연미, 세계관의 토목,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합리주의적 이성시대는 기존 관념에 오염된 고전전통과 단절되었다. 인간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에 매진했던 인간의 교만과 무지에 의해 스스로 초래했던 인류와 지구의 종말 위기에서 새롭게 생존본능인 인간의 생명력은 포스트모던의 인간과 자연의 타협을 거쳐 공존의 지혜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태미적 세계관에 도달하게 된다.

먼 미래는 몰라도 적어도 예측 가능한 미래의 가치 있는 미의 개념으로 토목이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미의식의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토목의 자연미

 

자연에서 인간 생존본능은 자연에 복종하고 순응하여 생존이 가능했고 이는 오랜 세월 인간의 가치관에 지표가 되어 삶의 양식으로 예술화되었다.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따른 모든 인간의 활동 즉, 문학, 수사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과 직조, 건축, 농업, 의술, 연극 등 모든 것이 미학의 대상이었던 고대 그리스 미학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점차 예술로서 미개념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보다 즐거움을 주는 정신적인 것, 즉 지성에 호소하는 미의식으로, 미학의 범위를 좁혀 비례의 균형으로 조화로운 질서창조를 위한 음악에서 시작된 미개념이 시각을 중심으로 한 미학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자연의 질서로서의 개념으로 비례와 조화의 미 이론의 정립과정을 살펴보면, 그대에 정립된 미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은 미가 여러 부분들 간의 비례와 상호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건축에서 주랑의 미는 기둥의 크기, 수, 배열에서부터 나온다는 등 예증과 음악에서도 관계가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이라는 점만이 다를 뿐 마찬가지였다.

이 이론은 여러 세기동안 지속되면서 미개념의 대이론(The Great Theory)으로 발전되었다. 대이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에 의해 후세에 전해졌다.

BC 5세기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미란, 질서와 비례는 아름답고 적합한 것이라 하였고, 플라톤은 미개념을 적당한 척도와 비례를 유지하면 항상 아름답다 하였으며, BC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를 크기와 질서 잡힌 배열에 있다하여 미의 형식으로 질서, 비례, 규정이라 주장하였다. BC 3세기 스토아학파, BC 1세기 비트루비우스 등 모두가 이 이론을 받아들여 5세기 기독교도인 위디오니시우스에 의해 기독교로 전수되어 13세기 스콜라 철학자에 의해 중세미학 미적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르네상스 미학 역시 이성을 추구하는 미적 개념으로 대이론을 수용했던 고전미학의 개념이 되었으나 마침내 경험론과 예술의 낭만적 경향에 밀려 도태하기까지 BC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천년간 지배했던 미의식이지만 미개념 자체의 변화로 자연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되었다.

대이론에 의한 자연미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나쳐 인간을 자연에 예속시키므로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교회와 왕, 귀족 등에 변질되어 지배개념으로 관념화됨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운 미적 질서임에도 배제됨에 따라 오랜 세월 소외되었다가 21세기 생태미를 새롭게 재인식되어 부활된다. 토목 또한 철저히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과 조화되었으나 권력의 상징으로 도구가 되면서 미적 가치를 상실하기도 하였다.

 

 

1. 원시토목

 

원시토목은 인간 생존을 위한 단순한 자연 장애극복 구조물로 통나무다리 등이 있었으나, 사회적 의미의 토목으로는 농경과 부족의 안녕을 위한 초자연적인 종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

BC 5000년경부터 부족의 권위와 안전을 상징하는 고인돌(Dolmen), 선돌(Menhir), 농사를 위해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숭배를 위한 스톤헨지(Stonehenge) 등이 최초의 기념비적 토목구조물로 나타났다(사진 1, 2).

 

01-고인돌.jpg

 사진1. 고인돌

02-스톤헨지.jpg

 사진2. 스톤헨지

2. 고대토목

 

1) 문명의 시작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에서 최근 중남미 지역의 마야, 잉카 문명을 포함시켜 5대 고대문명이라 한다.

이들 문명의 발상지는 온대지역으로 강을 끼고 있어 농경사회로서의 정착이 쉽고 잉여농산물에 의한 절대군주가 출현함에 따라, 자연재해와 외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농사를 위한 대규모 치수사업과 함께 권위의 상징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사진 3), 이집트의 피라미드(사진 4), 인더스의 모헨조다로 유적, 마야의 계단식 피라미드 등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일어나 농업경제체제로 도시가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도시기반시설구축을 위한 토목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토목은 인간중심이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여 신으로부터 신탁된 군주의 이념과 가치를 구현함으로, 영원성과 미술적 힘의 상징, 기하학적 규칙성과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의 결합으로 토목의 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자연주의적 토목의 미는 아름다움보다 완전함이었다.

 

03-지구라트.jpg
사진3. 지구라트

04-피라미드.jpg
사진4. 피라미드

2) 그리스, 로마의 토목

그리스는 국토의 기복이 심하고 복잡하여 지형학적으로 단일국가를 형성하기 어려워 다수의 독립된 작은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이웃 국가들과 해상교역을 시작으로 이집트와 근동의 문화와 접촉하면서 형식과 조화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범을 보여 주는 이상주의적 고전적(classic) 미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인간화된 신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실적 완전성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이상적인 균형을 위해서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조화와 이상적 비례의 이상적인 미의 양식 즉, 수학적 미개념의 대이론(The Great Theory)을 형성하여 중세까지 천년간 지속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미개념으로서의 비례는 「눈에 보이는」 감각적 질서가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이상적 질서로서, 감각이 아닌 지성에 호소하는 미의식이다. 또한 비례 속에는 사물의 신성한 본질, 자연의 질서를 갖는다는 신성함, 비례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절대적인 미로 인식되어 예술은 물론 건축, 토목 등 제 분야에 적용되었다(사진 5 참조).

05-파르테논신전.jpg

사진5. 파르테논 신전


BC 8세기경에 티베레 강변의 7개 언덕에서 시작한 로마는 그리스에 비해 지적이고 이상적인 면은 덜하였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기능적이었다.

로마 군대가 지나간 곳 어디서나 도로, 교량, 상하수도, 수로와 같은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토목구조물을 찾아볼 수 있다(사진 6, 8 참조).

그리스가 신을 경배하는 신화중심의 신격화된 이상화된 토목의 미적 가치를 표현함에 비해 로마의 토목은 제국의 영광과 위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공공토목구조물로 미적 가치를 나타냈다(사진 7 참조).

 

        06-세고비아수도교.jpg사진6. 세고비아 수도교


07-1-콜로세움.jpg

사진7. 콜로세움

07-2-콜로세움내부.jpg
콜로세움 내부

08-가르수도교.jpg

사진 8. 프랑스의 가르 수도교


3. 중세토목 - 신성과 상징적 추상

 

중세는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고전 시대와 그들 사이의 암흑과 야만의 중간시대를 중세 또는 암흑시대라고 불러왔다. 서로마 멸망에서 르네상스 전까지의 AD 400년에서 AD 1400년경에 이르는 천년의 세월로 로마제국의 해체과정에서 도시는 해체되어 농촌으로 인구가 유입되어 봉건 농노 경제체제가 시작되었다. 장원의 발달에 따라 장원의 잉여생산물에 의한 상거래의 부활은 도시의 성장과 번영이 가능하여 인구가 증가되고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분업이 시작되면서 외침으로부터 도시 보호를 위해 도시 성곽 축조(사진 9 참조)가 이루어짐에 따라 토목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현세에서 내세로 기독교 사관에 따라 옮겨가 신세계와 낙원 건설을 위해서 인간 중심의 미의식은 타락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으나 권위와 엄숙함의 중세 미의식이 교회 건축이나 요새화된 성곽 건설을 위한 명료성과 비례적 조화가 질서 있는 토목의 미로 추구되었다(사진 10, 11, 12 참조).

 

09-프랑스카르카손성채.jpg 
사진9. 프랑스의 카르카손 성채

10-이탈리아베로나스칼리거교.jpg

사진 10. 이탈리아 베로나스칼리거교

11-프랑스노트르담성당.jpg

사진11.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12-이탈리아 피렌체 비키오교.jpg

사진12. 이탈리아 피렌체 비키오교
        

4. 르네상스 토목 -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

 

십자군 원정과 중동지역과의 교역확대로 교회중심에서 교역중심의 중상주의로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상인, 자본가와 시민의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종교적 속박이 없는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인간과 현실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 사고방법을 신성에서 이성중심으로 변화시킨 인간중심의 문화재생 운동이 르네상스였다.

르네상스의 이념과 가치관이 신성에서 이성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나 일반적인 미개념은 중세 미이론 그대로였고, 똑같이 고전적 개념에 근거한 조화와 비례, 즉 부분들의 조화와 상호통합이라는 르네상스 건축가 알베르터의 주장은 아름다운 사물은 아름다움의 본질이며, 아름답다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 그런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미의식을 갖고 있었다. 단지 미의 주체와 대상이 실제 세계를 닮은 미를 창조하려는 고대의 이상이 부활되었던 것이다(사진 13 참조).

13-이탈리아 베니스 리알토교.jpg 
사진13. 이탈리아 베니스 리알토교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의 특징으로 이상도시(Ideal City)가 계획되었는데 그 배경은 콘스탄티노플이 대포로 인해 함락된 이후 전쟁에서 안전하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함이었다(사진 14 참조).


14-프랑스 파리 퐁네프교.jpg

사진14. 프랑스 파리 퐁네프교

 

한편 종교적 관점에서 중세 기독교 중심의 사회가 성당을 세우는 자체가 하늘과 이상향을 꿈꾸는 이상도시의 의미였다면, 중세 이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르네상스 시대는 이상도시의 개념 역시 바뀌어 하늘에서 땅으로 전환되어 인간이 지상에서 하늘을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실현(사진 15 참조)이 바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이때의 사람들은 신이 창조한 자연과 인체의 원리를 모방함으로써 도시나 토목의 완전함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상도시고 이상적 비례와 기하학적 구성을 통하여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도시 안이 모두 완벽한 비례감을 가지고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사진 16 참조).

15-포폴로광장.jpg

사진15. 로마 포폴로 광장

16-이탈리아 팔마노바.JPG

사진16. 이탈리아 팔마노바 전경

5. 바로코와 로코코 토목

 

17-18세기 유럽에서는 신성한 기독교적 절대주의에서 세속적인 국민 국가적 절대주의로 전환되어 권력의 상징인 왕의 표상아래 새로운 질서가 짜여졌다. 바로코 양식은 시간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연속이지만 사상적으로는 르네상스가 이상적인 것에 비해 바로코는 감상적인 것으로 고대 기념비적 도시성격이 부활되어 새로운 통치자 왕이나 귀족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강한 중심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기하학적 형태를 고전 미의식인 조화와 비례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지나치게 화려하고 과장되며 경직된 형태로, 보는 사람의 시각과 감성을 압도하게 되었다(사진 17 참조).

17-Avignon교.jpg

사진17. Avignon교


또한 축성술이 민간에게 전수되어 공공 사업에 토목이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토목구조물에 관심이 높아져, 토목에 대한 미의식 변화가 사회변화에 따라 시작되었다(사진 18 참조).

18-프랑스 파리 Neuilly교.jpg

사진 18. 프랑스 파리 Neuilly교

 

III. 토목의 순수미

 

인간의 오랜 세월 자연에 의해 지배받아 복종과 순종을 강요받았던 자연주의적 고전시대 가치관에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합리주의적 이성에 대한 인간 중심의 가치관 형성은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문명의 발달을 수단으로 인간중심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연에 대한 도전과 경쟁으로 점철된 풍운의 18세기부터 20세기가지의 인간의 정신세계가 추구했던 가치관의 발로가 예술로서의 추상적인 순수미이다(사진 19 참조).

 

19-독일 Fermarnsund교.jpg

사진19. 독일 Fermarnsund교


신과 자연에 의한 자연의 원리를 부정하고 원리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순수미는 기존의 관념과 인습을 철저히 부정함으로 인간 존재가치의 정체성을 부여함에 따라 인간이 새로운 세계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을 위한 약육강식적인 엘리트 의식의 교만으로 인하여 순수미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말의 위기를 좌초하게 된다.

순수미의 모더니즘 시대는 인간을 자연에 예속된 존재에서 자연으로 해방되어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자각의 위대한 이성시대였다.

토목 또한 모더니즘의 가치인 순수미로 위대한 시대를 열었던 구조주의로 모더니즘과 함께 시대를 주도하였으나 과거의 인습과 토목기술자의 무지로 인하여 단지 능률과 효용의 경제성에 함몰되어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과학기술로 점철된 시기였다(사진 20 참조).

20-시드니 Gladesville교.jpg

사진20. 시드니 Gladesville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의 이상을 잘 구현한 토목은 향후 포스트모던 시대 그 아픔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공존의 시대 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1. 근대토목 -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산업혁명을 거쳐 18세기 말까지 격변의 시대였다.

교회는 그 세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군주제도가 무너져갔으며 새로운 민주주의는 성장의 아픔을 겪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인구증가는 불확실한 미래와 혼돈의 가치관속에 문제와 갈등을 해소하고자 새로운 유토피아를 구현하려 하였다.

산업혁명에 의한 새로운 시대의 기계와 인간 사이에 관계설정을 위한 위기의식에서 파생되어 전통과 혁신 사이의 대립과 갈등, 미의식의 혼돈 속에 과거를 동경하는 낭만주의적 반항정신으로 나타나 19세기에 일어났던 새로운 사상과 문화운동의 대부분도 근대 기계문명의 분열 증상에 대한 타개책으로 반항운동이었다.

러스킨 같은 심미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은 기계시대가 생산하는 것에 아무런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소외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에 의한 미의식에만 가치를 부여하였다. 전통시대 관념적인 절대미보다는 인간생활과 결부된 유기적인 질서체로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미의식을 새로운 시대 미의 개념으로 고전미학에 변화를 시도하였다(사진 21 참조). 이와 같은 새로운 미의 개념은 예술 민주화를 추구하여 과도기적인 아르누보를 거쳐 기능주의적 모더니즘 미학에 근거를 이루게 된다. 또한 기존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재료의 대체재로 개발된 철, 유리, 콘크리트 등 탈관념적인 재료는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가 갖는 조형의식은 새로운 구조를 개발하여 토목은 건축적인 토목에서 분리하여 추상적 순수미로 향후 기능주의적 모더니즘의 미 개념을 주도하게 되었다(사진 22 참조).

 

21-Iron Bridge.jpg

사진21. Iron교

22-영국 Menai교.jpg
사진22. 영국 Menai교


1) 장식시대

관념적인 전통 및 인습과 단절된 탈관념적인 시민사회의 태동과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적인 발달은 일찍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던 기계문명과 그에 따른 경제적인 번영의 속도에 인간정신이 미처 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혼돈과 갈등 속에 새로운 가치관과 미의식은 시대적 요구로 대두되었다.

당시 사회학자 러스킨은 예술은 대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대중에 의해서, 대중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시민사회의 미의식은 소수자를 위한 절대미에서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의 민주화라는 보편적인 '미'만이 미적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기계에 대하여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 데카르트의 말처럼 인간에 의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인간중심적 사상에서 인간의 손을 벗어난 기계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소외시켜 인간성 파괴를 초래한다고 믿었다.

러스킨의 사상을 실천한 위리암 모리스의 예술의 민주화 사상은 미술·공예운동으로 실천하여, 20세기 현대디자인의 이념으로 살아남았지만, 그는 산업화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가 변해가고 개혁되어가고 있는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미의식에 대한 탐구 없이 자연으로부터 나온 것일수록 아름답다는 자연과 양식의 조화를 이뤄왔던 역사주의와 전통적인 장식 개념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사진 23 참조). 그렇게 때문에 반 산업사회로 일관했던 이상주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수공업 중심의 미술공예운동에 비해 적극적으로 기계를 이용한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시대는 결국, 자연주의적인 전통사회에서 기능주의적 산업사회로 변하는 과정에서 과도기적 시대였다(사진 24 참조).

 

23-Hammersmith교.jpg

사진23. Hammersmith교

24-Alexander교.jpg

사진24. Alexander교

2) 구조시대

구조(Construction)라는 용어는 19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로서 수정궁(Crystal Palace)을 설계한 팩스톤(Paxton)이나 에펠탑을 세운 에펠(Eiffel)과 같은 철구조 엔지니어들을 역사주의적 건축가들의 개념으로 볼 때 결코 이들이 기술과 예술을 겸비한 건축가일 수 없는 단순 구조기술자로서의 산물로 건축과 비교하여 구조라 하였다(사진 27 참조).

27-에펠탑.jpg

사진27. 에펠탑


그러나 르 꼬르뷔제가 말했듯이 이러한 구조기술자들이야말로 현대 건축의 시발점을 형성하였던 것이며, 기능주의적 모더니즘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전통에 의해 감추어진 장식에서 벗어나 단순한 구조체로 새로운 미적 반응을 요구하게 되었고, 또한 미에 대한 전통적 관습에 변화가 일어나 탈장식화된 구조자체의 추상적 순수미로 전통과 단절된 재료의 특성에 의한 새로운 미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사진 25 참조).

25-미국 Eads교.jpg

사진25. 미국 Eads교

그러나 초기에는 구조의 효용은 인정되었으나 그것의 미에 대해서는 아직 긍정적이지 못하였으며 미국의 건축가 설리반조차도 시카고 박람회 이후 상업 건축에 시카고 구조라는 철골구조 건축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로 장식을 사용하였다.

시카고학파의 철골구조는 지금까지의 건축과 구조 사이의 분리를 완전히 해소하고 통합하였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20세기 모더니즘시대 새로운 조형으로서 구조미학을 출현시켰고, "현대 미학의 그리스이다"라고 했다(사진 26 참조).

26-미국 Brooklyn교.jpg

사진26. 미국 Brooklyn교


구조의 진실성과 재료 및 기능과 형태의 순수성이 기능주의 원리가 되었다.

 

2. 모더니즘의 토목 - 20세기

모더니즘의 미 개념은 기능주의적인 기계미학에서 출발하였다.

기계와 예술의 만남으로 초래된 전통과 혁신의 대립 및 갈등은 미의식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유기적인 미의식으로 발전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의 보편적인 절대미로서 모더니즘의 미적 가치관을 형성한다. 19세기 예술의 민주화는 새로운 미의식의 합리성과 표준화라는 개념에 고취되어 형태의 효용적 가치나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계미학으로 국제주의 양식으로 발전하였다(사진 28 참조).

 

28-스코틀랜드 Forth교.jpg

사진28. 스코틀랜드 Forth교


의도된 기능에 적합하고 모든 것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합목적적 구조로서 진솔해야 하는 기능주의는 탈 장식을 통해 전통과 권위를 버리고 감각적으로 눈을 만족시키는 미와 실용적인 간결성(simplicity)으로 추상적 순수미의 기능적 질서로 기존의 자연주의적 유기적 질서의 미의식에 변화를 초래하였다(사진 29 참조).

29-캐나다 Sagenay교.jpg

사진29. 캐나다 Sagenay교


러스킨은 기능을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물의 속성'으로 해석하고 유기적인 것을 기능적인 것으로, 예술을 신성한 유기적 세계의 가장 인간적인 행위로 보고 예술과 사회의 유기적 결합을 주장했다. 관념보다 생활의 신성한 질서가 중요한 까닭에 토목 등 외부환경의 아름다움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공 구조물로 토목의 미가 요구되었다(사진 30 참조).

30-미국 금문교.jpg

사진30. 미국 금문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구조의 순수성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루이스 설리반의 말은 기능주의 미학의 개념을 대변하고, 제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의 내·외부 환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유기적 건축 이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르 꼬르뷔제는 주택은 삶을 위한 기계라 하여 모듈러라는 비례이론에 기초하여 자연으로부터 탈피하고 인간의 정신 속에서 영감을 찾는 추상적 순수주의 건축을 주장하였다(사진 31 참조).

31-시드니 하버교.jpg

사진31. 시드니 하버교


모더니즘 미학에서 구조 재료, 형태, 기능의 진실성이 기능주의 원리로 기계적 생산에 의해 매끄럽고 장식이 없는 기하학적 구조와 본질적인 기능성으로 현대 토목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최소비용에 최대 효과라는 모더니즘의 효용주의적 경제적 가치관은 기능성(function), 간결성(simplicity), 명료성(clearness)의 조형적 특성을 갖고 재료와 구조의 정직성에 의한 국제주의 양식의 표현양식으로 발전하였다(사진 32 참조).

32-뉴욕 Verrazan-Narrows Bridge.jpg사진32. 뉴욕 Verrazan-Narrows Bridge

모더니즘의 미의식은 전통의 자연주의적 미의식에서 생존의 본능적 깨달음으로 탈 관념적이고 원소적인 조형요소로 미의 정신적인 것을 통한 개념적인 미의식으로 시공을 초월한 유기적인 기능에 따른 보편적 미의식으로 인간내면의 조형의식에 호소하는 인간 상상력에 의해 재결합과 통합에 의한 이미지의 추상적 미의식이다(사진 33 참조).

33-독일 Theoder Heuss교.jpg 사진 33. 독일 Theoder Heuss교

천연자재인 나무, 석재, 벽돌에 의한 토목구조물은 재료의 특성상 구조적 한계성으로 구조와 표현의 제한을 받아왔으나 강철과 철근콘크리트의 개발로 토목구조물은 인간 스케일의 한계를 넘어 거대구조물화 되기 시작하였다.

토목구조물이 거대화됨에 따라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소외시켜 지구환경의 위기는 인간의 교만과 무지를 자초한 모더니즘 가치관의 한계와 모순의 결과이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공존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과 공존 필요성으로, 모더니즘은 스스로 한계를 포스트모던 가치관에 의해 스스로 대체되어 간다.

 

1) 새로운 재료에 의한 구조물로서의 구조미

   

2) 아르테코적인 구조물로서의 구조미

  

3) 모더니즘적인 구조물로서의 구조미

   

 

 

IV. 토목의 생태미

 

인간의 생존을 위해 자연에 복종하고 순응하여 온 고전시대를 거쳐, 인간의 만족을 위한 자연에 도전과 지배로 이어져 온 모더니즘 가치관은 그 자체의 모순과 한계로 종말의 위기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연과 화해와 공존의 패러다임 변화가 포스트모던 가치관이다(사진 34 참조).

34-독일 스튜트가르트 Nesenbachtal교.jpg 사진34. 독일 스튜트가르트 Nesenbachtal교

경쟁과 지배의 논리에서 배려와 공존의 미학으로 생태미는 모더니즘의 순수미가 배제시켰던 자연과 소외된 모든 계층은 물론 역사주의와 진화론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포용으로 획일성보다는 아양성의 용광로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사진 35 참조).

35-영국 런던 Hungerford교.jpg

사진35. 영국 런던 Hungerford교


이를 위해서 토목에 있어서 생태미가 도래하게 된 과정과 특징을 통해 토목의 생태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포스트모던의 도래

 

1) 과학기술문명과 환경 변화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관해서 칸딘스키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가치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추상에 대하여 말했듯이 인간다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인간 중심의 합리주의적인 이성사회가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였다.

신 앞에 하찮은 인간이 신성과 자연의 권위에 해방되는 르네상스에서부터 합리주의적인 이성중심 세계관은 자연창조의 법칙을 발견·이해함으로 신과 같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중심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와 안락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20세기 모더니즘을 꽃피웠다(사진 36 참조).

36-이탈리아 Solferino교.jpg

사진36. 이탈리아 Solferino교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기계문명이 유토피아건설보다는 자연 파괴로 생태계오염, 자원의 고갈, 핵전쟁의 위협과 인간소외로 이어져 지구 전체가 종말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약육강식의 정글화된 모더니즘의 가치관에 대한 뒤늦은 반성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통한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21C 생태학적 세계관을 도래시켰다.

이러한 위기는 인류가 살아남고자 하는 동물적 본능에서 생명에 대한 총체적 위기극복을 위해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각으로 전 인류적인 세계관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었다.

이는 자연에 대한 도구적 가치로서 인간지배와 목적적 가치로서 인간중심 사상의 충돌로 근대 과학에 근거한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인 가치관에 허구를 자각하여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을 배려하는 공존의 윤리적 가치관으로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여 생태학적인 가치관이 도래하였다(사진 37 참조).

37-영국 Ribble way교.jpg

사진37. 영국 Ribble Way교

토목에 있어서도 도구적 가치보다 목적적 가치로서 그 존재를 인정받는 친환경적인 토목개념이 요구되는 것이다.

 

2) 생태학적 세계관과 동양의 가치관

인간중심에서 자연중심으로 공존의 가치관 전환을 위한 과학의 변화를 위한 생태학적 세계관과 카오스 이론의 대두와 현대물리학의 세계는 분리된 부분의 합이 아닌 통합된 전체로 부분과 전체는 분리될 수 없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의 그물망 구조의 네트워크로 부분을 통해 전체에 접근할 수 있고 동시에 전체의 역동성 속에 부분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구조적 형상보다는 과정상의 일시적인 양태로 구조보다 과정이 우선하는 상호의존성과 역동성의 전일적 세계관은 자연지배와 통제보다는 배려와 동화의 근본적인 동양가치관 도(道)와 일치한다.

노장사상의 도(道)는 억지로 어떤 것을 만들지 않고 어떤 것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움직인다는 무위자연사상에 기초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순환으로 그 속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무의미하고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고 했다.

이것은 자연을 만물의 상호작용 속에 조화와 평행상태로 보며 인간도 그 일부로 그것에 순응할 것을 강조하는 생태학적 세계관과 일치한다(사진 38 참조).

38-독일 엣센 Main-Donau Kanal 보도교.jpg
사진38. 독일 엣센 Main-Donau Kanal 보도교


또한 경쟁과 투쟁의 남성주의에서 포용과 공존의 여성주의적 관념으로 자연위기를 대응하려는 가치관은 예술에 있어서도 변화와 촉매자이자 훼손된 자연 치유자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하여 직관이나 정감 또는 감각의 차원에서 사고의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포스트모던적이다(사진 39 참조).

39-스페인 Petrer교.jpg
사진39. 스페인 Petrer교


기능중심의 능률과 효용의 서구적 토목 가치관에서 생태학적인 동양적 가치관에 의한 토목으로 환경과 삶에 대한 관찰이 토목에 있어서 경관디자인 개념이 도입되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3) 환경과 예술 그리고 문화

예술이 당대의 거울로 시대상을 날카로운 직관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예술의 본성이고 원동력이라는 신념에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적 접근방법을 거부하고 삶으로서의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예술의 가치관으로 패러다임 변화가 필연적이다.

이것은 환경과 분리된 자족적인 물체로서의 토목구조물이 자연과 조화되고 효율성 증대라는 경제 원리에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교만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적 토목이 영역간의 상호관련성과 가변을 수용한 체계로서의 포스트모던적 토목으로 변해야 하는 이유이다(사진 40 참조).

40-스위스 Sunnibeng교.jpg
사진40. 스의스 Sunnibeng교


모더니즘의 현대 토목은 기능과 효용에 가치를 두고 매진한 결과 무미건조한 거대구조물로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시켜서 인간에게 혐오시설화 되고, 자연파괴의 주범으로 인간의 편의 위로 군림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구조물 자체의 인간화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친환경적 설계로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포스트모던적 접근방법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토목이 목적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의 선택보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생존 전략상 도덕적 반성을 통한 인류를 포함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을 배려하는 윤리적 발상에서 진화론과 역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연변화 과정을 수용하는 순환론으로 위대한 인간중심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교만과 강박에서 해방되어 탈 인간중심주의로의 전환과 자연을 포함하는 모든 영역과의 공존을 통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사진 41 참조).

41-영국 런던 Gateshead Millenium.jpg
사진41. 영국 런던 Gateshead Millenium교


작금에 토목에서 경관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현상으로 배려보다는 함께 한다는 동양적 자연관 및 여성주의적 원리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적 환경론은 과학문명의 인간중심주의와 결별이 아니고 인간의 편협한 이성에 자연속의 인간으로서 넓은 인간 중심으로 사고 패러다임 전환이고 이것은 현재 토목에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 포스트모던의 특징

 

1) 작가의 죽음/원본에서 차용으로

포스트모던은 천재적인 모더니즘 작가의 창작의 의미를 창시한 작가 개념을 파괴하고, 작가 내부로부터 창조된 것이라기보다 주변에 표류하는 사물을 차용하여 해체·변형·재결합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 것으로 신이나 자연과 같은 인간의 완벽한 창조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작품에 있어서 신의 창조와 같은 작가와의 절대적 관계를 거부하고 작품의 원본성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해체함으로써 전통과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인간의 정신세계에 의해 새로운 개념의 미의식이 창조되었다는 모더니즘의 기본 전제가 허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상호 Text에 의한 파편화된 표피들로 대체되어 무(無) 상태에서 완벽한 미적 창조로서 작품의 정체성, 원본성이 파괴된 주체의 종말로 천재적 모더니즘 작가의 신격화와 독창적인 작품으로서 가치를 부정하고 모더니즘과 단절을 주장하였다(사진 42 참조).

42-미국 Narrows교-Tacoma.jpg  사진42. 미국 Narrows교 - Tacoma


예술의 민주화를 위한 과학기술의 모더니즘적 유토피아를 패러디하여 모든 것이 상품처럼 소비사회의 표상으로 이상적인 질서나 숭고함이 있는 창조물이 아니라 시장에서 유통되면서 서로 창조하는 이미지 정보가 매스미디어에 의해 현실이 기호의 장막 뒤로 사라진 소비사회의 실체가 모조리 대체된 현실을 실제보다 우선하여 원본의 엘리트적 가식행위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형된 모방을 예술뿐 아니라 토목의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사진 43 참조).

4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Erasmus교.jpg
사진4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Erasmus교

 

2) 장르의 와해/순성에서 혼성으로

원본에서 차용된 이미지는 매체간의 혼합과 확산을 초래하여 모든 분야에 걸쳐 도입되어 변형된 형상으로 나타남으로 예술적 순수성을 위한 모더니즘의 권위를 해체하였다.

엘리트적인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의 차용 및 장르간의 교배를 통하여 순수와 고급을 거부하는 예술의 민주화와 참여로 교조적인 모더니즘의 파벌적 일관성의 합리주의적 허구보다 불일치와 역설의 조화라는 현실을 선택하여 모더니즘의 유토피아를 해체하였다.

어떠한 이데올로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양식이나 전통에서 자유로워 누구나 즐기고 참여할 수 있어, 차용과 창조의 구분을 극복하고 작가의 일관된 자아의 흔적을 지움으로 작가와 작품간의 필연성을 단절하여 모더니즘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누구나 소중한 존재가치로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였다(사진 44 참조).

44-독일 Kiel-Horn교.JPG
사진44. 독일 Kiel-Horn교


이제 예술의 목표는 더 이상 혁신적인 미의 개발과 창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원본성이 배제되면서 모더니즘의 추진 엔진인 새로움의 충격에서 벗어나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외부와 차단된 채 자체의 수직적 발전 논리에 따라 순수를 향해 정진해 온 소수 천재적인 엘리트 의식에서의 모더니즘은 와해되고 수평적 다양성으로 변화되었다(사진 45 참조).

45-스위스 Wettstein교.jpg
사진45. 스위스 Wettstein교


이에 따라 전문가의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참여와 수렴을 통한 창조자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예술뿐 아니라 토목에서도 전문가에 의한 전문 분야에서 일반인을 위한 토목으로 진보나 전위적인 것보다 절충과 모방이 결코 수치가 아니고 잘못된 신화나 모더니즘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행위발로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3) 이야기의 부활/형식에서 내용으로

포스트모던에서는 작가의 원본성이 거부되고 없어진 예술은 보는 것의 주체에서 읽는 TEXT로 소재화되었고, 작가는 창조자로서 예술적 오브제 제작에서 단지 기호 조작자로 변모되었으며 관람자 역시 수동적 관조자에서 능동적 독해자로 참여함으로 작가나 전문가들만의 룰인 형식이 파괴되고 작품에서 언어로 이야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전통을 거부하고 단절하였던 모더니즘 선구자적 엘리트가 주장했던 탈 관념적인 생활에서의 예술에 민주화가 오히려 그들의 형식에 함몰되어 삶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지적유희였다고 주장하고 모티브와 재료의 상징을 통해 이미지를 부활시켜 시대와 사회를 이야기하는 다성적(Polysomus) 코드의 짜임을 통해 읽히는 TEXT화 하였다(사진 46 참조).

46-영국 Millenium교.jpg
사진46. 영국 Millenium교


이야기와 함께 부활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모더니즘의 절제와 침묵에서 벗어나 감수성과 직관으로 표출되어 본질적인 변화는 새롭게 창조된 형태라기보다 이전의 익숙한 양식에 인용된 것의 통합을 통해 이미지의 파편화가 이루어져 민주화된 의식의 타협으로 주관성을 배제하는 객관성에 기초한 이미지의 파편화가 이루어졌다.

토목의 경우에도 무미건조한 단순 기능중심의 구조물에서 기존 기능을 포함하여 전설과 이야기가 있는 친근한 구조물로 변화되고 있다(사진 47 참조).

47-독일 Buga brucke uber die elbe교.jpg
사진47. 독일 Buga brucke uber die elbe교

 

4) 차이의 노출/중심에서 주변으로

모더니즘이 매체의 순수성이란 명목하에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함으로 삶과 유리된 자아 중심적 엘리트적 남성중심의 경쟁적인 지배구조에서 포스트모던은 예술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에 관심을 갖고 타인 중심의 대중적이고 여성적인 공존의 가치로 변화되었다.

또한 삶과 유리된 아카데미컬한 모더니즘에 저항하기보다 소외된 것에 대한 포용으로 예술의 정치화를 추구하였다. 1979년 미국의 미술전문지 옥토버의 포스트모던 선언 서문에서 예술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 정신의 표명이 아니고, 일시적이고 지정학적이며,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이 구체적으로 결합된 산물로 이러한 조건들을 탐색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임무라 규정하고 모더니즘의 힘에 의해 소외된 계급, 인종, 성별, 젠더가 주요 이유로 그동안 소외받았던 것에 대한 관심에서 예술의 정치화를 추구하였다.

모더니즘이 엘리트 중심의 힘있고 잘난 남성중심의 예술에서 소외된 계층 즉 여성, 유색인, 동성애자, 노약자, 외국인 등의 참여로 차이구조를 노출하여 잊어버린 것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포용하여 공존의 미학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사진 48 참조).

48-영국 Plashet Grove School 보도교.jpg
사진48. 영국 Plashet Grove School 보도교


이는 요즘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한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 토목에 적용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장애자와 노약자를 배려하는 듯한 교만에서 공존의 미로 토목에 적용되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물로 삶의 곁으로 돌아왔다(사진 49 참조).

49-스페인 Campo Volantin 보도교.jpg
사진49. 스페인 Campo Volantin 보도교


5) 예술로서의 가치관

"포스트모던의 모더니즘 해체는 예술로서의 기존 믿음을 부정하고 포기하는 것은 모더니즘이지 예술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처럼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의 신화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지 예술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역시 공존의 가치를 가짐으로 예술로서의 가치 즉, 미적 개념을 갖는다(사진 50 참조).

50-스페인 Alamillo교.jpg
사진50. 스페인 Alamillo교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이 갖는 장점은 수용하고, 소외시켰던 것에 대한 포용으로 공존의 시대정신을 가치관으로 하고 있다.

토목이 단순한 구조물로 건축과 달리 예술적이지 못하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새로운 시대의 미적 가치에 주도하면서도 그 가치를 몰랐던 무지에서 자각하여 삶으로써 환경과 기술, 인간을 위한 디자인으로 토목의 예술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사진 51 참조).

 

51-프랑스 파리 Bercy-Tolbiac 보도교.jpg
사진51. 프랑스 파리 Bercy-Tolbiac 보도교

 

 

V. 제언

 

먼저 토목의 미에 관하여 살펴보고 이를 통하여 감히 우리 시대 토목의 미적 가치를 찾고자 시작하였으나 연구자의 교만과 무지는 물론이고 토목사 및 토목의 미에 관한 자료가 연구자의 무능을 고려해도 미흡하여 연구를 청탁 받고 짧은 연구 기간에 비추어 매우 벅차고 힘들었음을 고백하고 아울러 충분히 못한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토목의 미에 관련한 연구에 계기가 촉발될 것을 기대하면서 연구를 통해 느꼈던 것을 토목 경관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비 토목인의 위치에서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토목의 자긍심 함양이다.

토목은 역사이래 신탁에 의해 자연과 조화롭게 환경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로 국토, 지구,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위한 환경을 창조하고 치료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창조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정신을 반영하는 예술적 가치를 구현하는 건축에 비해 단지 문제해결의 기술자로 전락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토목 스스로의 무지와 경제논리를 위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토목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다. 전문가는 문제해결 능력뿐 아니라 가치 있는 것으로 스승과 같은 반열에 위치하기 위하여 토목공학적 노력은 물론 가치 있는 학문으로 토목학에 관한 연구가 감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건축양식을 개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등장한 새로움에 대한 토목 스스로의 가치 부여에 소홀했고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건축에 비교하여 가치를 느낄 수 없음에 구조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전락하였고 이것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에펠탑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대 미적 가치로 인정받기보다 철거대상에서 1차 대전 이후 새롭게 인식됨에 따라 철거가 취소되어 오늘날 파리,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지성이었던 에밀 졸라조차도 흉물로 철거를 주장하였듯이 설계자인 에펠 자신도 새로운 미적 가치로 예술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20세기 거장 르 꼬르뷔제와 바우하우스의 그로피우스는 현대건축의 단초를 현대 토목구조에서 찾아 현대건축가를 구조기술자 양성 교육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토목의 가치를 인정하고 연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토목은 스스로의 위대성을 포기하고 토목기술자로 전락하였음에 연구를 통하여 알고 토목의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 자긍심을 함양해야 한다.

둘 째, 토목의 미를 찾아야 한다.

토목은 인간의 삶을 위한 환경창조의 사회적 행위의 산물이다.

토목 스스로 정체성 확보를 위함과 그것을 통하여 토목의 미적 가치체계를 정립하여야 한다. 근래 토목 설계에 있어서도 지속가능한 토목이 되기 위하여 생태적인 세계관에 의해 친환경적 설계와 토목경관 디자인이 도입되고 있으나 토목 스스로의 관습과 무지로 인하여 토목의 부가적인 가치로만 인식되어 사자를 거느린 양처럼 모순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토목이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비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이 토목 스스로의 미적 가치를 정립하지 못하고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만 일관한다면 모더니즘처럼 스스로 도태되고 타 분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단지 기술적 공학으로 전락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토목 이외의 다른 분야와 영역에서도 바라는 바는 아니고 토목 스스로의 자각과 자성을 통해 타 분야와 공존의 지혜로 토목의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토목이 존재해야 하는 정체성과 위대한 토목의 역사를 스스로 정립하여 시대정신을 반영한 토목예술의 가치를 구현토록 해야 한다.

연구자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토목경관디자인에 매진하면서 교량의 형식 선정 등이 시대정신이나 대상지의 역사·문화에 의한 선택보다는 애매모호한 논리로 발주처의 눈치를 보면서 선정되는 불합리함과 오히려 경제논리에 의한 형식선정보다 못한 토목기술자가 아닌, 우리의 토목적 가치를 구현하는 토목가로서의 토목의 미를 그려보면서 본 연구를 통해 토목이 인간환경창조의 장자로서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면서 토목 발전에 밑바탕이 되길 기원하여 연구를 하였다.

 

 

 

참고문헌

 

1. W. 타타르키비츠 저,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 개념사, 미진사, 1993.

2. 김문환 편저, 현대미학의 향방, 열화당, 1997.

3. 백승길 외역, 태공브리치,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애경, 2003.

4. 칸딘스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열화당, 2004.

5. 대한 국토·도시 계획학회, 서양도시계획사, 보성각, 2004.

6. 김문덕 외역, 20세기 건축가와 사조, 도서출판 국제, 1998.

7. 정시화 저, 현대디자인 연구, 미진사, 2002.

8. 杉出和雄 저, 교량의 조형학, 조창서점, 2003.

9. 도로공사 저, 아름다운 교량설계, 1997.

10. 청석엔지니어링 저, 세계의 철도교, 구미서관, 2005.

11. 윤난지 저, 현대미술의 풍경, 예경, 2000.

 

Atachment
첨부 '52'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