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의 만남
신동수 (계명대 교수, 화학공학, synnds@kmu.ac.kr) 저
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과학을 전혀 다른 세계로 생각하고 있으며 종교적 세계와 과학적 세계는 서로 대화할 수 없다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이들이 서로 모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화학공학과 교수이자 기독교 신자이어서, 이른바 모순이라는 종교와 과학의 양면세계를 모두 체험하고 사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지금 다루려고 하는 이야기의 기초는 수년 전 미국항공우주국의 부국장이었던 미첼 박사가 우리 대학에 와서 강연한 내용이며, 거기에 나의 생각을 보태어 정리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빛에 비유해서 설명한 구절이 많이 보인다. 특히 요한1서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빛을 동일시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빛의 성질과 관련된 부분이 비교적 많은 분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나는 빛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속성과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빛의 성질을 서로 연결시켜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우주에 절대기준계가 없다는 생각과 광속불변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광속은 절대적이며, 우주에서 절대적인 존재는 빛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우주에서 유일한 필연존재로 묘사되는 하나님, 절대존재 하나님과 일치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들을 기초로 하여 유도한 특수상대성이론에는 몇 가지 재미난 결론이 있다. 그 결론의 하나하나와 하나님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연결해 보자.
첫째는 물체의 운동속도에 따른 길이의 변화이다. 물체는 운동속도가 빨라지면 운동하는 방향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서 운동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마침내 그 길이가 0이 되어 버린다. 사람이 광속으로 달린다고 하면 배꼽과 등이 한 평면이 되어 종잇장처럼 납작해진다는 결론이다. 하나님은 빛이므로 광속으로 운동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당연히 그 길이가 0으로 축소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이 영체라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둘째는 시간에 관한 문제이다. 운동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은 점점 느리게 간다. 그래서 운동속도가 광속이 되면 시간은 아주 멈추게 된다. 즉 시간이 무한대로 걸린다. 그래서 인간차원에서는 유한인 시간이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무한대가 되며, 태초부터 영원까지 변함없는, 시간 초월의 영원존재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아서 시간의 길고 짧음이 없으며,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먼저 있다는 예수의 말씀도 수긍이 간다.
셋째는 질량에 관한 것이다. 운동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질량은 차츰 증가하게 되며, 운동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질량은 무한대로 커진다.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다. 질량뿐만 아니라 그 능력이나 지혜나 사랑이나, 모든 면에서 무한한 존재이다. 무한한 하나님은 광속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질량이 무한대가 된다는 사실과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속도의 상한에 대한 것이다. 우주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속도는 광속이다. 방정식에 의하면 광속에 광속을 더해도 그 답은 광속에 지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빛보다 빠른 입자에 대한 연구논문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그 실상을 체험할 수 없는 허입자(imaginary particle)에 불과하므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어떠한 방법을 써서도 하나님을 따라잡거나 능가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유추할 수 있다. 옛날 구약시대에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서 비롯하여 하나님을 부정하는 여러 모양의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접근하기 위한 수많은 도전이 있었으나, 그들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속도의 상한선이 광속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과 잘 일치하는 것이다. 빛의 굴절현상에 대해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빛은 시간이 가장 적게 걸리는 경로를 따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렌즈를 통과할 때 빛이 꺾여서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가장 작게 걸리는 경로를 찾을 줄 아는 빛의 ‘지혜’는 이른바 지능지수(I. Q.) 얼마라고 해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지능을 숫자로 표시할 방법이 있을는지 의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우주의 크기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우주의 크기를 말할 때 도무지 어디까지가 우주냐고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곳까지가 우주라고 쉽게 대답하겠지만, 물질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다시 묻게 되며, 결국은 질량-에너지(mass-energy)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빛이 도달하는 공간까지가 우주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편재성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우주의 어느 곳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것은 삼위일체설에 대한 것이다. 셋이면 셋이지 셋이 어찌 하나가 될 수 있느냐고, 아예 삼위일체설을 부정해 버리는 기독교회 교파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위일체설은 분명히 증명할 수가 있다. 유한존재에서는 셋이 하나일 수가 없다. 그러나 무한존재인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가능하다. 수학에서 집합개념을 빌려오자. 자연수의 집합, 홀수의 집합과 짝수의 집합은 모두 무한집합이면서도 이 셋을 다 합치면 자연수의 집합, 즉 동등한 자격의 하나의 집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성부는 자연수의 집합, 성자는 홀수의 집합, 그리고 성령은 짝수의 집합으로 대표시키면 그 각각이 무한집합이면서 모두 합쳐도 자연수라는 하나의 동등한 무한집합으로 되지 않는가? 우주생성의 기본으로 창세기에 등장한 빛은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물리적 존재(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성격을 물리적으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면서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빌어, 인간차원의 어떠한 방법을 써서도 도무지 파낼 수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밝혀둔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차원 그 너머에 계시는 초월의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