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기독교와 십자가의 도
열린말씀 컴퍼런스, 열린말씀, 2009년 8월 17일 초판 발행, pp. 237, 12000원
(2009년 11월 28일 읽음)
2-1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는 파워 - 십자가의 도
정민영선교사(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 부대표)
* 미국 기독교가 안고 있는 파워기독교화의 문제
- 사실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도 얽히고 뒤틀린 역사의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청교도를 실은 메이플라워호의 뒤를 이어 노예선이 들어온 모순을 풀어야 하고, 가나안 전쟁에 비유하며 북미주 인디언들을 학살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 교회는 어떤 체제나 이데올로기도,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함부로 손들어줘서는 안된다.
- 교회는 인기영합이나 편들기를 멈추고 진리에 근거해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 회심-역설적 가치 보듬기
- 회심이란 한순간에 시작되는 사건인 면도 있지만(칭의), 장구한 시간을 거쳐 변화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성화)이다. 따라서 결신이나 개종 자체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위험하다.
- 나는 개인적으로 '성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경을 더 잘 배우기 위해 과거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신 팔레스타인 지역을 돌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곳이 곧 성지는 아니다.
- 회교에는 메카가 있고 불교에도 네팔과 인도가 있지만 기독교에는 별도의 성지가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되는 것이다."(요 4:24)
* 초대교회의 세가지 특징
(1) 자유로운 공동체
(2) 기이한 공동체
- 믿는 자보다 잘 사는 불신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진정한 차별화는 무엇인가? 이 세상은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가치,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상황을 초월한 평안(요 14:27 참조), 감옥에서 외치는 기쁨, 가히 생지옥이라 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에서 발견되었다는 놀라운 고백 - 바다를 먹물 삼고, 나무들을 붓대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다는 기이한 고백 -을 우리 삶에서 구현할 수 있다면,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을 복음화한 그 위해한 반전이 오늘날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3) 매력있는 공동체
2-2 복음의 능력 - 십자가의 역설
* 기적을 바라는 세대
-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분노하신 경우를 몇 차례 기록한다. (1)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을 장사꾼의 굴혈로 만들었을 때 화를 내셨고, (2) 기적을 가장 많이 베푸신 지역에서 주님을 거부했을 때 그들의 교만에 분노하셨으며, (3) 사람들이 주님에게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화를 내셨다. 왜 그러셨을까?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곧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그에게 표적을 구하는가? 기독교는 신비로운 종교이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므로 필요하면 표적을 행하시지만, 표적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요 모독이다.
2-3 파워기독교의 실체 - 십자군의 도
* 파워기독교의 출현 이유
- 파워기독교는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가공된 예수님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 우리가 만든 주님을 우리 나름대로 사랑하고 열심히 섬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진지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했다. 그의 문제는 열심의 부재가 아니라 진리의 부재에 있었다.
* 파워기독교와 십자군의 도
- 원래 초대교회의 패러다임은 연약함을 통해 드러나는 영적 능력, 곧 십자가의 역설이었다. 예수 믿는다고 성도가 슈퍼맨처럼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의 연약한 질그긋 안에 그리스도라는 보화가 담기는 개념이다. 벽에 붙어있는 종이를 두드려도 좀처럼 찢어지지 않는 것은 종이가 강해서가 아니라 강한 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 예수 믿고 성공한 슈퍼신자들의 간증이 난무하면서 대부분의 연약한 신자들은 상대적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든다.
- 사실 잘 살고 못하는 것은 일반 은총의 영역이다. 하나님이 악인과 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골고루 태양을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이다(마 5:45 참조). 잘 살고 못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건강하거나 병약한 것 등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진정한 차별화가 아닌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그러한 기대를 충족해 주실 것을 강요함으로써 우리의 환경이나 상황과 무관한 하나님의 주권(신적 파워)으로부터 우리가 잘되고 강해지는 것(휴먼 파워)으로 복음의 초점을 옮기는 오류를 범한다. 바로 이것이 파워 기독교의 병리 현상이다.
- 그래서 지난 2천년 선교 역사는 십자가 아닌 십자군의 도, 즉 평화가 아닌 피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회교도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기 전에 역사상 파워기독교가 자행한 오류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비록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대의 선교사들에게는 이 시대의 힘이요 무기인 재물이 있다. 선교사들은 이 무기를 권력 삼아 일한다. 선교지에서 돈의 힘을 이용해 현지 리더십을 독차지하고 결정권을 거머쥐는 것은 식민 시대에 군사적 힘을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선교지 형편에 비하면 선교사가 가진 돈의 힘은 엄청나다. 오죽하면 성경이 돈을 '맘몬'이라는 신에 비유했겠는가?
* 고난받는 기독교와 반격하는 기독교
- 최근 인도 오릿싸에서는 힌두교도들의 기독교 탄압이 있었다. 현장의 지도자들은 당시 두 종류의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는 교회와, 날아온 돌을 집어 다시 던지는 교회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몰살당하는 참담한 극한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옵션은 고난을 감내하고 악을 행한 자를 용서하는 것이라 믿고 순종했던 현장의 지도자들의 간증이 우리가 취해야 할 모습인 것이다.
* 초대교회의 패러다임 - 흡인력
- 흔히 전도를 영혼 구원이라고 표현하는데, 영혼을 얻기 전에 먼저 마음을 얻어야 한다. 주님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우리 안에 들어오시지 않는다(계 3:20 참조). 교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는 이때에 세상을 감동시키는 매력을 회복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지상명령 완수는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