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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놋뱀을 보면 살리라(민수기21:4-9)

 

본문: (21:4-9)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해마다 폭염을 피해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한 사람이 많다. 그들 중 그 누가 나는 오늘 죽으러 간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이처럼 죽음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고가 아니고 나이가 차서 늙어 죽은 다윗왕도 죽음 즈음에 말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왕상 2:2)라고 말했다. 실로 죽음은 세상의 모든 자들이 가는 길이다. 누가 먼저 가는지 순서도 알 수 없다. 나이가 젊다고 해서 꼭 나중에 가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해서 영안실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들을 의사가 되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받아 조금 더 살고 싶은 열망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아들, 딸 다섯 명을 모두 의사로 키운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었을 때 그의 다섯 자녀가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겠는가? 연장했다면 어떤 상태로 얼마만큼 더 살게 해 주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삼성의료원의 그 많은 의사들이 그 병원의 설립자가 병에 걸렸을 때 얼마만큼 오래 살게 해줄 수 있었는가?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지만 어떤 병은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죽음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 길이 자기의 죽을 생명을 다시 살리는 것과 무관하다면 왜 우리가 애써 성경을 공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려 하는가?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의 배를 타면 그 목적지는 무덤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았건, 태어날 때 기쁨으로 시작해서 죽을 때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내가 세상의 모든 자들의 길로 가노라는 성경 말씀을 알고 살아야 한다. 마치 자기는 죽음에서 예외인 것처럼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다.

 

죽음이 인간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 죽음을 대비하고 사는 사람이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죄에 감염되어서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을 보게 하셨고, 아직 뱀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들도 사람이 왜 죽는지 보고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에서 살릴 수 있는 치유책으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놓고 그 뱀을 쳐다보면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주 단순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물놀이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죽을 줄 알았다면 물에 들어갔겠는가? 사람들은 몇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27:1).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자기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얼마나 다양한 가짜 종교가 인류를 기만하고 있는지 보라. 종교란 창조주 하나님을 숭앙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밖에 없다. 유대교는 구약만을 믿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종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본문은 죄로 죽어가는 인간에게 생명을 살려받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종교이다. 그런데 마귀가 불교, 힌두교, 모슬렘 등 잡다한 우상숭배도 종교라고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써먹고 있는 방법이다.

 

 

1. 불뱀들이 무니 많은 백성이 죽으니라(4-6)

 

뱀은 심판받은 죄를 상징한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중에 불뱀들을 풀어놓게 되셨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불평했고, 모세를 거역하여 불평함으로써 영적 권위에 대항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 대우 받으면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저 지도자인 모세는 약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녕을 책임지고, 그에 따른 가축들도 먹여 살려야 했다. 그 사람이 만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지도자가 아니고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그 200만 명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사막에서 절대로 필요한 것은 물과 음식이다. 200만 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 때 그들과 가축들이 마실 물의 양은 얼만큼이나 필요하며 음식은 얼마나 많아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프리카의 난민들처럼 되는 것이다.

 

사람이 불평을 하려면 하나님의 기준과 권위인 성경으로 해야 마땅하다. 특히 영적인 일에 관해 말하려면 성경으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이때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적용한다면 그 사람 자신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적인 발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가데스바네아에 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열두 지파에서 각각 한 명씩 뽑아 열두 정탐꾼을 보냈으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열명은 모두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일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낙담해 버린 그들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큰 결심을 하셨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20세 이상된 사람들은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40일간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그들로 광야에서 방황하며 그들의 음란함을(믿음 없음은 영적 간음이다) 담당하게 하신 것이다(14:29-38).

 

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상대로 빈 말씀을 하시겠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루실 수 없는 일들을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에게 헛 말씀을 하셔야 할 근거가 무엇인가? 누가 우상을 만들어 숭앙하는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속에 하나님을 둘 수 없고, 하나님을 규명할 수 없는 자들이다. 성경 밖에서 신을 찾으려고 하는 자들은 빈부, 귀천, 교육의 유무, 자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똑같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다고 하면서 성경을 믿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불안해한다. 그래서 붙잡는 것이 종교인데, 성경의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지 못하면 모두가 다 실격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고 불평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증거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의 결심이 내려진 후에 이스라엘의 여정은 에돔 땅을 돌아서 호르 산으로부터 홍해의 길로 다시 이동하는 것이었다. 사막의 길을, 그것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간다는 것은 기가 차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조치가 아니라 그들이 쌓은 죄에 대한 벌이었다. 뿐만 아니라 불평한 그들에게 불뱀들을 풀어 놓아서 물리면 죽게 했던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2.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불변하신다(7)

 

죄의 삯은 사망이다(6:23). 뱀은 심판받은 죄를 상징한다. 불뱀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선을 행했는지 악을 행했는지도 모른다. 그 불평했던 사람들을 모두 같은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7:20).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 즉 아직 뱀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와서 고백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21:7). 그들은 그때서야 영적 권위에 대적하여 죄를 지은 것을 알았다. 영적 권위란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에게 그분의 일을 하게 하시려고 부여하신 권위이다. 이 권위를 남용하거나 비성경적으로 사용하고 죄에 연루되면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신다. 백성들은 그때 아주 진솔하고 순수했다. 모세에게 영적 권위가 있는 것을 알았고, 모세가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주께 기도하여 뱀들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 처지에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책이 하나님께 있다는 소식은 희열이요 소망이며 복음이다.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인간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구원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인간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때 만일 모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 아니었다면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들도 그들의 발상과 고안으로 종교를 만들어 뱀에게 물려 죽게 된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다고 사기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면 죽어서 몸은 무덤에서 썩지만 혼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몸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가 죽으면 시체를 화장해서 강에 뿌려달라고 한다.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만 혼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혼은 비물질이기 때문에 타지 않고 썩지도 않는다. 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종교가 있고, 많은 종교들이 구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밝혀 놓으셨다.

 

이 짧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죄 때문에 죽기에 죄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해결받을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흘려졌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속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3. 하나님의 처방(8,9)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21:8). 당시 광야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불뱀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의 처방은 단순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하나님게서 내리신 처방을 믿고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의심했던 사람은 뭇 사는 것이다. 광야에서 불뱀 소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죽어갔다. 그 중에서 누군가가 목청을 높여 불뱀에게 물리면 죽게 된다. 그러나 불뱀에게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저 장대에 걸려있는 놋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살 수 있다!”고 외친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45:22). 매 시대마다 성경을 믿는 성도들이 나와서 죽어가는 독사의 자식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라!” 여기서 인간의 의심이 작용하면 죽고, 믿고 실행하는 사람은 사는 것이다.

 

복음은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건방진 사람들은 그런 것이 어디 있어?”라며 어리석다고 여겨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정작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 놋뱀은 성막과 관련이 없다. 헌신이나 예배, 제사와 관련이 없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종교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놋뱀은 심판을 의미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주님이 대신 받으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그분을 믿고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았다. 세상이 어리석게 여겨도 상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처방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현명한 사람들이다.

 

허물과 죄들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거듭남으로 새 생명을 받은 것이다. 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진리를 알지 못했을 때처럼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몰랐을 때처럼 살아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다. 말씀하신 분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그 뱀이 되셔서 장대에 매달리셨던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셨다. 오늘날 유사 기독교는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라고 가르치지 않고 대신에 자기들이 만든 교리나 전통, 은사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이 그 후에 이 놋뱀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같다. 그 느후스탄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그 때에만 유효했던 것이다. 나중에 히스기야 왕이 그 느후스탄을 산산조각 내에 버렸다(왕하 18:4).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이 되었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실행했건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뿐이다. 인간은 다 죽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려면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유해야 한다. 복음은 이처럼 단순하다. 영생을 얻는 것이 너무 쉽게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지만 이것이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다.

 

여러분 개개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보라. 믿으면 살 수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장난이다. 인생을 장난하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멍청하게 살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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