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빙고와 과학
신동수 (계명대 교수, 화학공학, synnds@kmu.ac.kr) 저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시대에 경주에 석빙고를 건립한 것을 비롯하여 고려 시대에는 평양에 내빙고와 외빙고를,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서울에 동빙고와 서빙고를 건립한 기록이 있다. 겨울에 천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여름철 더울 때에 왕과 고관들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경주와 안동의 석빙고를 중심으로 과학적인 측면에서 석빙고의 장빙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그 구조와 관리에 숨어 있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주 석빙고의 구조는 길이 16.75 m, 폭 5.83 m이고, 지붕에 세 개의 환기통을 내었으며, 바닥은 경사를 두어 하수구를 만들었다. 전체 구조는 남북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쪽에 출입문이 있고 석빙고 위와 주변, 특히 남쪽의 상당히 넓은 지역을 잔디밭으로 하여 복사열을 최대한 방지하였다. 북쪽은 낮게 경사져 태양열을 가능한 한 적게 받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의 구조 그대로는 이론적인 계산이 불가능하므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의 가정을 하였다:
첫째, 석빙고 외부 측면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되어 있으나, 이것은 원래는 원호이었던 것이 오랜 기간에 걸쳐 차츰차츰 훼손된 것으로 보았다.
둘째, 석빙고의 지평면 상단부분은 속이 빈 반 원통으로 되어 있고, 그 중심은 지평면보다 평균 약 80 mm 아래에 있으나, 전체 반지름 5.49 m에 비하면 이것은 무시할 수 있으므로 중심이 지평면 상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셋째, 밑바닥의 경사는 물이 빠지기 위한 것이므로 전열계산에서는 무시하였다. 또한 전체 길이가 16.75 m로 충분히 길기 때문에, 출입구와 환기통이 전열에 미치는 영향과 양쪽 끝부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있다. 위의 가정으로 도식화한 경주 석빙고의 구조는 외 반경 5.49 m, 내 반경 2.85 m, 두께 2.64 m의 동심 반 원통으로 된 지평면 이상 부분과 깊이 1.89 m인 직사각형 단면의 지평면 이하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연구로서, 우선 지표가 무한 평면이고 지면온도가 1년을 주기로 하는 사인곡선(sine curve)으로 변할 때 지하의 깊이에 따른 토양 온도분포를 계산하였다. 푸리에이(Fourier)의 열전도 법칙으로 이것을 구해 보면 지하의 깊이에 따라 온도변화의 폭은 지수 함수적으로 감소하고 계절은 깊이에 비례하여 늦어진다는 결론을 얻는다.
즉 깊이 11 m를 내려가면 연중 지온변화가 0.1℃ 미만으로 거의 일정하게 되며, 약 3.4 m를 내려가면 계절이 3개월 늦어지고, 6.8 m를 내려가면 계절이 6개월 정도 늦어지므로 지상과 정반대의 계절이 된다. 경주지방의 기온변화는 기록이 있으나 지면온도와 지하의 토양온도는 실측치가 없어, 가장 가까운 대구의 실측치를 내가 계산한 이론치와 비교하여 보았다.
지면 온도는 월평균 기온보다 평균 2.2℃가 높고 지하 1.0 m의 지중온도는 지면온도보다 평균 0.28℃가 높다. 또한 대구지방의 월평균 지면온도는 최고 29.6℃, 최저 0.1℃이므로, 이것을 근거로 계산한 깊이 1.0 m의 월평균 지중온도는 5.6-24.1℃, 계절은 0.9 개월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구지방의 월평균 지중온도 측정치는 6.0-26.9℃, 계절은 지면보다 약 1개월 늦으므로 계산결과와 잘 일치하고 있다. 경주지방의 월평균 최고기온은 26.6℃, 최저기온은 -0.3℃이며, 사인곡선으로 보았을 때의 평균오차가 7% 정도이므로 이 문제의 풀이에 크게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경주지방의 월평균 지면온도는 기온보다 2.2℃ 높은 최고 28.8,℃ 최저 1.9℃를 택하였다.
지평면 이상 부분인 동심 반 원통에 대한 전열은 베셀(Bessel)함수를 이용하여 계산하였다. 석빙고 내부에서는 뉴턴(Newton)의 대류전열법칙이 성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계산한 결과 바람이 없을 때와 많이 불 때 공기의 대류전열계수의 값에 따라 축방향 길이 1m 당 연간 약 1.5 - 2.3 x 10 kJ의 열이 전달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편 석빙고 내부의 지평면 하단 부분에서는, 열이 벽면과 바닥에 대해 수직방향으로만 전달되며 벽면과 바닥은 얼음과 잘 접촉되어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무한 고체(semi-infinite solid)의 표면온도를 갑자기 0℃로 낮추었을 때의 온도변화를 라플라스(Laplace)변환에 의하여 계산한 결과 축방향 길이 1m당 연간 약 1.4x10 kJ을 얻었다. 그러므로 축방향 길이 1m에 대한 1년간의 전열량은 4x10 kJ.
축방향 길이 1m에 저장할 수 잇는 얼음의 양은 20,000kg이상이며, 이 얼음이 녹는 데는 7x10kJ의 열량의 필요하다. 따라서 석빙고 체적의 60% 이상을 얼음으로 채워 두면 1년 내내 얼음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경주지방의 연평균 지표면 온도가 15.35℃나 되며, 지하로 1 m 내려가면 평균 0.28℃나 지온이 높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음을 저장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도 이만한 구조의 석빙고를 합리적으로 설계 건축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입구효과와 사람이 출입할 때의 열 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석빙고 관리에 매우 주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고려 때의 기록을 보면 석빙고를 잘 관리하지 못하여 중추 이전에 얼음이 다 없어질 경우 담당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던 것은 관리에 상당히 주의하여야 한다는 사실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석빙고의 윗부분인 반원통의 두께는 두꺼울수록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지하로 열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이미 언급한 대로 지평면에서 깊이 약 7 m를 내려가면 위상차가 6개월이 걸려 계절이 지상과 정반대가 되고, 깊이 11 m 이하에서는 연중 지온변화가 거의 없다. 경주 석빙고의 반원통의 평균 두께는 2.64 m로 이것은 열전달계수 값에 따라 1.6-2.0개월의 위상차를 의미하고 있으므로 그 두 배인 3.2-4.0개월간 얼음을 저장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두께이다.
따라서 경주 석빙고는 3-4개월간 전열량을 최소로 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부구조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며, 그 이상의 기간을 위해서는 석빙고 내부에 초목회나 왕겨 또는 톱밥 등의, 열전도도가 작은 보조단열재를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동 석빙고는 외 반경 6.35 m, 내 반경 3.05 m, 두께 3.30 m로 더 두터우며 따라서 경주보다 더 오래 얼음을 저장할 수 있다. 이것은 안동이 경주보다 평균기온이 더 낮기 때문에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석빙고가 장빙 가능하므로, 경주지방보다 연평균 기온이 더 낮은 안동, 서울과 평양의 석빙고는 더욱 장빙 가능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상의 연구결과에서 엿보이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주 석빙고의 외부구조에서 전체구조가 남북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석빙고 위와 남쪽을 잔디밭으로 한 것, 그리고 북쪽이 낮아지게 경사를 둔 것 등은 복사열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둘째, 화강암으로 지붕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이 구조물의 크기는 일 년 내내 얼음을 보존하기에 알맞다고 생각된다. 너무 작으면 전도에 의한 전열이 커지고, 너무 크면 대류에 의한 전열이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 석빙고 상부의 두께는 경주지방의 날씨가 가장 더운 해에 적어도 4개월간은 전열량이 최소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날씨가 보통이거나 평년보다 선선할 때는 보조단열재를 써서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얼음을 저장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설계이다.
넷째, 이 구조를 설계한 그 당시에 적어도 지표면의 열이 지하로 전달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안동 석빙고의 길이는 12.52 m, 폭 5.80 m이며 전체구조가 북동-남서를 향하고 있고, 입구는 한쪽 모서리인 북서쪽에 나 있다. 이것도 복사열과 대류 전열량을 줄이기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 출처: 에너지관리, 198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