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믿어야만 하는가
Should we trust the Bible?
Jonathan Sarfati 글, 이종헌 역, Creation ex nihilo, Vol. 33(2011), No. 1, pp. 32-36
창조과학 사역은 성경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대두된다. 왜 성경을 신뢰해야 하는가? 성경은 아주 여러 번 필사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성경은 사건들이 일어난 지 한참 지난 후에 그 사건들을 보고하려고 쓴 것은 아닌가? 또한, 고고학은 성경을 부정하는가? 마지막으로, 성경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요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신약성경 원전은 신뢰성이 있는가?
일부 비평가들은 우리가 신약성경 원본을 가지고 있기는 한가 하고 의심한다. 이 논점은 일리야드 혹은 시저의 저술을 판단할 때 사용했던 것과 유사하게, 신뢰성을 위한 서지학 시험을 이용함으로써만 해결된다.
신약성경은 AD 1세기에 침례받은 유대인들에 의해 저술이 완성되었다. 최소한 24,000개의 신약성경 필사본이 있으며, 그 중에 가장 빠른 것은 실제 기록 이후 100여년 안에 기록되었다. 알려진 가장 최초의 필사본은 P52로 알려져 있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John Rylands 파피루스 조각으로, 요한복음 18:31-33, 37-38을 담고 있으며 AD 125년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다른 위대한 작품들과 비교해 보라(MSS = manuscripts/사본):
따라서, (다른 모든 고전 작품들을 제거하지 않고) 학자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엄격한 표준을 적용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이 원본의 신뢰성 있는 복사본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신약 학자 F.F. Bruce(1919-1990)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기록에 대한 증거는, 그 확실성에 대해 아무도 꿈속에서조차 의문을 갖지 않는 고전 작가의 많은 저술에 대한 증거보다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신약이 세속의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확실성은 전혀 의문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신약 성경 내용의 신뢰성
원본에 대해 믿을만한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원본 자체는 믿을 만한 것인가? 자유주의 학자들은 보통, 복음서들이 거기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통상적으로 그들은 마가복음이 AD65-75, 마태복음이 80년대 중반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83-90년, 요한복음은 1세기 말경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실제 일어난 사건과 기록된 시기 사이에 35-75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면 복음서들은 신뢰할만한 기록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주의 학자였고, Woolwich의 Bishop이었던 J.A.T. Robinson(1919-1983)이 복음서의 기록시기가 AD40에서 65년 사이라고 하는 납득할만한 주장을 하였다. Robinson이 맞다면 복음서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BC 6년경부터 예수님의 초기 생애인 AD 30년경) 기록된 것이다. 마태와 누가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기록했지만(마 24:2, 눅 21:20-24) 그것이 AD 70년에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만약 마태가 사건이 일어난 후에 기록했다면 또 다른 성취된 예언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 없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를 쓴 이후에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다른 박해는 기록되어 있을 지언정 예루살렘의 멸망이나 네로 황제 치하의 엄청난 박해(60년대 중반)도 언급하지 않았고, 또한 야고보(61), 바울(64) 및 베드로(65)의 순교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므로 그 책은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스웨덴 학자 Birger Gerhardsson은 정경으로 인정받은 복음서는 그 당시 구두로 가르치는 방법에 의해 공동사회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기법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 매우 정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며, “의미의 훌륭한 회상”을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매우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일을 성실하게 했음을 증거해 준다. 예를 들면, 그들은 날조자라면 생략해버릴 만한 어떤 사건들도 수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이 겁을 먹었고, 천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심,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정한 사건, 예수님이 그분의 고향 갈릴리에서 여러 기적을 행하시기 실패한 것(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 마 13:58, 막 6:6), 그분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구실과 태생에 관하여 고발한 사건 및 그분이 언제 재림하실지 그분 자신이 몰랐다는 것과 관련한 기사들.
만약 복음서가 네 명의 복음서 저자 대신에 교회 공동체에 의해 기록되었다면(많은 회의론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듯이),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 해결책을 담아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초기 교회에 있었던 몇 개의 논쟁(예를 들면 할례 문제)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반면, 대개 이교도로 알려진 교회에 매우 엉뚱하게, 예수님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다(마 10:5-6)는 등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내적인 증거로 보면 복음서가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은 보다 더 이른 시기에 기록했다: 복음서를 요약한 고린도전서 15장은 AD 55년경에 쓴 것인데, 거기서 바울은 그보다 15년 전에 그 사람들에게 설교했던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이 죽으신 지 20년 안에 이미 굳어진 어떤 전통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줄리우스 뮬러(1801-1878)는 19세기의 회의론자들에게, 역사에 실존했던 사람에 대해 30년 이내에 전설이 형성되고 그것이 단단히 굳어버린 예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면 대 보라고 도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유론자들이 말하는 최단의 시기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저명한 고전 역사가 Sherwin White(1911-1993)에 따르면 전설이 되려면 두 세대 이상의 시간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복음서가 전설이라면, 그 전설이 “믿을 수 없는” 비율로 누적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도행전에는 역사성을 확증해 주는 것이 넘쳐난다. … 사소한 것에 있어서까지 사도행전의 기본적인 역사성을 거부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제는 어리석은 것이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요한은 눈으로 목격했다고 주장한다(요 21:24). 누가는 눈으로 목격한 바에 근거하여 기록했다고 주장하며(눅 1:1-4), 그는 사도 바울의 동료였다(골 4:14). 그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글로바의 동료였을 것이다(눅 24:13). 마가는 베드로에게 크게 의지했는데, 베드로는 마가가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벧후 1:16).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중 마태라는 이름을 가진 세리였던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 대한 고고학적 확증이 있는가?
실제에 있어서, 1세기에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확증한 비기독교인 역사가와 저자들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코넬리우스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사모사타의 루키안(Lucian of Samosata), 플라비우스 조세푸스(Flavius Josephus), Suetonius, Pliny the Younger, Thallus, Phlegon, Mara Bar-Serapion 및 탈무드의 참고문헌, 기타 유대인 저술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그 자료들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들 각각의 기록들은 고대에 심지어 기독교에 대한 적대자들도 예수님의 역사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것을 처음으로 그리고 부적절한 배경에서 논쟁을 삼은 것은 18세기 말, 19세기, 20세기 초에 일부 저자들에 의한 것이다.
복음서는 고고학적으로도 지지를 받는다. 고고학자이며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William Mitchell Ramsay 경(1851-1939)은 누가가 여러 면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가정 하에서 누가복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Ramsay는 장소명과 여러 통치자들의 변화하는 직함에 있어서 누가가 절대적으로 정확했다는 것을 재삼재사 발견했다. Ramsay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누가는 첫째로 꼽히는 수준의 역사가이다; 그 이유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게 기록했다는 것뿐 아니라 … 이 저자를 가장 위대한 역사가들과 동일선상에 두어야 한다.”
구약도 역시 고고학적으로 지지를 받는다. 힛타이트족은 한때 성경에 등장하는 신화로 여겨졌었지만, 그들의 거대한 고대 수도인 핫투사(Hattusa)가 현대의 보가스코이(Boghazköy)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고고학은 창세기 14장의 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 및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왕에 대해 사실성을 입증했다.
신약성경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래서, 예수님이 실존하셨다면, 그분의 삶과 가르침이 역사적인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문서들을 신뢰할 것인가 신뢰하지 않을 것인가? 신약성경이 신뢰할만한 기록이라는 역사적인 증거를 수용한다면, 그것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신성에 관한 그분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이며(롬 1:4),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진리임을 확증하며(마 28:6), 그분이 죽음을 정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따라서 믿는 자들의 부활도 보장한다(고후 4:14).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17, 19, 32b)
유대인들은 육체를 사람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부활에는 육체가 포함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전적으로 영적인 견지에서 부활하셨으며 그의 옛 육체는 무덤 안에 놓여 있다는 개념은 순전히 현대에 나타난 개념이다. 1세기 유대인들의 사고에서는 그런 관점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으며, 초기의 기록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의 코앞에서 부활했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
비기독교인 학자들에게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난점은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그럴듯하게 대체하여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적들은 만약 그들이 시체를 훔친다면 그들이 억누르고 싶은 부활 이야기를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단순히 시체를 제시하는 것으로 부활 이야기를 억누르려고 할 것이다. 제자들도 부활 이야기를 조장하기 위하여 중무장한 로마의 군대와 맞서서 시체를 훔칠 만한 동기가 없었다. 제자들은 고문을 당하고 살해당했는데, 누구라도 자기가 거짓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죽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부활을 부정하는 초기의 논쟁 가운데 하나로, 로마의 군인들이 뇌물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마 28:13). 이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자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한, 근무 중에 잠을 잔 로마 군인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해진다.
어떤 비평가들은 무덤이 없었다거나 예수님이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주장함으로써 빈 무덤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묻혔다고 진술할 때, 그리스 단어 etaphe(에타페)를 사용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매장했다(entombed)는 뜻이다. (etaphe는 en + taphos로서, en에서 영어의 ‘in’, taphos에서 영어의 ‘tomb’이 나왔다.)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육체는 “썩음을 당하지” 않았지만 다윗의 육체는 여전히 그의 무덤에 누워있다고 대조시켰다(행 2:22-35).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복음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은 고대의 전통을 인용한다. 빈 무덤에 관한 마가의 기록에는 아람어가 들어있는데, 이는 그 출처가 아주 초기의 것임을 반영한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박사는 매장과 빈무덤에 관한 기사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많은 증거를 제공했다. 또한 제임스 패트릭 홀딩은 부활에 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았더라면 고대 세계에서 기독교가 성공할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최소한 17가지의 요인들을 제공했다.
복음이 나에게 어떤 것인가?
성경은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를 소유하시는 하나님이 있다고 제시한다. 그분은 완전한 도덕적 표준을 세워 놓으셨는데 우리는 곧 바로 타락했다(롬 3:23). 그분은 완전하게 의로우시므로 죄를 벌주셔야만 한다. 우리의 죄가 그분의 무한하신 거룩함에 위반된 것이므로, 벌 또한 무한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벌의 고통을 당하든가, 아니면 대속자가 우리 대신에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사 53). 그 대속자는 인류를 위한 대속이 되기 위해 완전한 인간이어야 하며(히 2:14),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를 감수하기 위해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한다(사 53:10).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써, 예수님은 그 둘 다 되심이 분명하다. 디모데전서 2:5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롬 3:24; 4:2, 엡 2:8-9). 이 구절들은 의롭게 됨, 즉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죄 없다는 선언은 선물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일어난다(롬 5:1).
믿음(그리스어 pistis = belief)의 내용은 예수님이 선택하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