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와 쓰나미
이종헌 글//출처: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생명의말씀사, pp. 246-252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이 글은 문화를 생각하는 창조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영화 <해운대>와 해일 현상인 쓰나미(Tsunami)에 관한 것이다.
70~80년대에는 여름철만 되면 ‘바캉스’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렸고,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바캉스 장소로 단연 해운대가 손꼽히곤 했다. 지금도 해운대 백사장은 젊은이들이 낭만을 불태우고 싶은 꿈의 장소일 것이다.
2009년 여름에도 어김없이 해운대는 수많은 피서인파로 붐비고 있다. 그런데 지진을 관측하는 과학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의 징조를 포착하게 된다. 일본의 대마도가 가라앉으면서 10분 이내에 높이 50m의 엄청난 쓰나미가 시속 800km의 속도로 부산의 해운대를 강타한다는 것이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강연희(하지원)의 아버지 강 선장은 갑작스럽게 닥친 쓰나미에 목숨을 잃고 만다. 사고현장에서 구조를 받고 살아난 최만식(설경구)은 연희의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늘 그녀 앞에만 서면 죄인처럼 몸 둘 바를 모른다.
영화 <해운대>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던 쓰나미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해운대에도 그만한 위력의 쓰나미가 곧 닥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위험이 닥치기 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서민들과 연구에 몰두하느라 이혼까지 당한 과학자, 토박이 건달,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 자기 소유의 배와 선원을 잃고, 이제는 재래시장을 현대식 쇼핑센터로 만들려는 경제인이 등장하며, 젊은 해양구조대원, 해운대에 놀러온 젊은이들 무리 중의 재수생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부산에서 개최되는 비중 있는 국제행사를 개최해 놓은 상태에서 쓰나미라는 재난의 경보를 믿고 싶지 않은 커리어우먼은 쓰나미를 경고하는 그녀의 전남편인 과학자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는데, 두 사람의 딸 아이가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정치인과 과학자 사이의 갈등 등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등장하며 스토리가 다양한 각도에서 전개된다.
아무튼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는 거의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고, 그에 걸맞는 흥행을 거두기도 했다. 모든 재난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재난에 반응하는 각 사람들의 모습과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과 방관하는 사람, 또 위기를 맞아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끝내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개되어, 희생은 있었지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매스컴을 통하여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 재난영화의 현재 수준이 궁금했다. 역대 최고의 재난영화라면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꼽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어떤 소재로 재난의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해운대>를 보면서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올려 세울 수밖에 없었다.
먼저 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적으로도 합리적이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수준이 있으며,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다. 그리고 투박한 부산 사투리로 전개되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서울에서 내려온 재수생과 부산 토박이 해양구조대원의 은근한 사랑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등 스토리 전개 면에서도 그런대로 훌륭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에 그만한 쓰나미가 실제로 닥칠 확률을 떠나서 영화는 오늘의 현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만하며, 과학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사실적인 편이므로 황당무계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무튼 영화 <해운대>는 여러 가지 극적인 다양성을 지닌 영화이다. 쓰나미가 임박해서는 동물들이 미리 대피를 하고, 새가 차에 머리를 박고 죽는 섬뜩한 장면이 묘사되기도 하는 등 지진에 동반된 현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전반적으로 ‘해운대’ 영화는 극적이고, 교훈적이고, 재미있다.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스토리 설정의 당위성도 있다.
충격적인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이와 관련한 다른 재난영화들도 각국에서 만들어졌다. 2006년 할리우드에서는 <쓰나미(Tsunami: The Aftermath)라는 영화가 나왔고, 인근 국가인 태국에서도 2009년에 <2022 쓰나미(2022 Tsunami)>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예전에도 물과 관련된 재난영화는 다수가 있었지만 이런 영화들은 해일로 인한 세간의 공포와 충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해운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며, 쓰나미와 관련한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누고자 한다.
해운대에 정말 쓰나미가 올 수 있나?
그럼 먼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쓰나미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쓰나미(Tsunami)’란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육지로 몰려드는 해일을 말하는 것으로, 일본에서 그 어원이 시작되었으며, 우리말로는 ‘지진해일’이라는 용어로 번역한다. <해운대>에서는 대마도 부근 해저 30km 지점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그 진앙지가 점점 한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이어서 해운대 동부 35km 지점에서 동물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는데, 결국 대마도가 가라앉으면서 파고가 50m나 되는 메가톤급 쓰나미가 시속 800km의 속도로 해운대를 덮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50m 높이의 초대형 쓰나미가 닥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굳이 그런 상황을 가정하자면 대마도가 엄청난 깊이로 가라앉는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마도가 순식간에 그렇게 가라앉을 확률도 없지만 해운대에 초대형 쓰나미가 닥친다는 설정으로 대마도를 가라앉힌 것은 상당히 사실적 가정이라는 뜻이다.
쓰나미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좀 더 생각해 보자. 판구조론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지각은 크고 작은 12개 정도의 판으로 나뉘어져 있다. 세계적으로 지진은 그 판들이 만나는 경계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으며, 95% 이상의 지진이 태평양판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일본의 동부가 태평양판과 접하고 있어서 일본에서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만, 대마도는 필리핀판에 속하고 현재로서는 대마도 부근에서 초대형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없으며, 대마도가 단층 작용 등으로 인해 해저로 가라앉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쓰나미 피해에 대한 예상은, 일본에 쓰나미가 닥쳤을 때 그 영향이 우리나라 동해안에 미치는 것이다. 실제로 1983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동해안의 임원항에 밀려와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행방불명 된 적이 있다. 지금은 경보체제가 잘 가동되고 있고, 일본 동해안의 쓰나미가 우리나라 동해안까지 오는 데에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쓰나미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해운대>를 재미있게 보려면 대마도가 가라앉았다는 영화 속 설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외에도 영화에서는 과학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우선 대마도에서 시작한 쓰나미가 10분 만에 해운대를 덮친다는 것도 그렇다.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이 대피하는 시간은 10분이 넘게 걸린 것으로 보인다.
배우 엄정화가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그 안에 물이 차서 거의 입까지 다다른다는 것도 그렇다. 엘리베이터에는 공기가 드나드는 틈이 많이 있는데, 그 안에만 물이 차서 거의 천정까지 이른다는 것은 영화 스토리 구성을 위해 필요한 설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쓰나미가 광안대교를 덮치고 지나갔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런 과학적 모순들은 영화라는 예술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설정으로 인정하고 싶다.
성경과 쓰나미, 노아의 홍수
최초의 쓰나미는 노아의 홍수 때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격변론이 아닌 지역 홍수설, 즉 국지적으로 특정 지역에만 홍수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비의 양만을 계산하여 한꺼번에 아무리 많은 비가 온다 해도 지구 전체를 물로 뒤덮을 수 없다고 하지만 노아의 홍수 때는 하늘의 물층이 쏟아짐으로써 지금의 비의 양보다 훨씬 많은 비가 왔던 것은 물론, 땅 속의 물까지 터져나왔기 때문에 그토록 거대한 격변이 가능했던 것이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고 150일 동안 물이 가득 찼던 때, 바다에서 밀려드는 쓰나미의 위력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보라.
그 이후로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전 세계를 심판하지는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각주 1) 그런 의미에서 영화 <2012>에서와 같이 전 지구가 물로 덮이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구의 일부를 강타하는 대규모의 쓰나미는 이전에도 일어났고,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각주 1)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0~13)
1950년에 일어난 칠레의 지진해일로 인하여 칠레에서는 90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바닷물이 39m의 파고를 이루며 시속 640km로 이동하여 하루 만에 멀리 떨어진 일본 동해안을 강타하여 119명의 사망 피해를 냈던 적이 있다. 2004년에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쓰나미의 위력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고, 2010년 2월 27일에 칠레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일본에서는 대피를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마지막 때가 되면 처처에서 기근과 지진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 성경말씀에 따르면 앞으로도 국지적인 쓰나미를 많이 겪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세상은 점점 그 무질서도가 증가하여 이러한 기상이변과 난리는 더욱 잦아질 것이다. 그래서 모든 창조물들이 신음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구원 받은 자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재난이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노아와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고 나서 7일 후부터 비가 내렸듯이, 지진이나 쓰나미에는 사전의 전조가 있다. ‘해운대’ 영화에서 피서객들이 바다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중에도 바다속 지하에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징조를 모를 수밖에 없지만, 바다 속에 센서를 두고 있는 과학자는 쓰나미의 징조를 알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재난의 영적인 의미
2004년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을 덮쳤던 쓰나미 때에는 휴양지로 밀려닥친 해일로 인해 외국의 관광객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그해 12월 24일에 닥친 태국 안다만 해변의 쓰나미 때 뉴스를 통해 한 어린 소녀가 태국의 한 리조트 전체에 있던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는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그 소녀는 바로 ‘크리스마스의 천사’라고 불리게 된 앤이다. 언젠가 TV 교양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쓰나미에 대해 잊지 않고 있던 앤은 멀리서 다가오는 심상치 않은 현상을 부모님과 호텔 직원에게 연락해 이 리조트에 있던 100여 명의 사람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앤은 ‘크리스마스의 천사’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의 소녀 앤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쓰나미로 인해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중에 자신과 같은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요나는 니느웨에 사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경고하여 13만 명이 넘는 이들을 살렸다. 그러나 성경의 대부분의 경우는 대언자들의 경고의 소리는 무시되었고, 멸망과 재앙이 사람들에게 닥치곤 했다. 어느 시대에나 <해운대>에 나오는 과학자처럼 재난을 경고하는 이들은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그들은 늘 소수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살아가다가 재앙을 맞이하고 죽어간다.
재난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재난을 피할 수 없다. 재난을 목격했을 때는 이미 늦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은커녕 자기 목숨 하나도 구할 수가 없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신 것처럼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은 날이 갈수록 육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있고, 재난이 점점 많아지는데도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더욱 깊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이런 시대에 영육간에 닥쳐올 재난을 경고하고 또 대비하며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재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어느날 영적 혹은 육적인 쓰나미가 닥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의 센서를 설치해 놓고 산다면 그것을 감지할 수 있거나 쓰나미가 닥쳤을 때 최소한 그것을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나미는 과학적으로 대비해야 하지만, 우리의 삶에 닥치는 쓰나미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며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 우리 영의 안테나를 주님께로 향하자.